존 롤스 정의론 -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원칙 리더스 클래식
황경식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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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같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자 다원주의를 따르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도덕 체계를 내세우기보다는 개개인의 가치관을 자유롭게 추구하면서도 타인의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 핵심 과제가 된다. 즉, 롤스가 <정의론>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최소 수혜자(the least advantaged)'를 우선 배려한다는 전제 아래 정의의 구체적 내용은 시민 간의 자유로운 논의를 통한 중첩적 합의의 결과로서 도출되어야 한다. - '머리말' 중에서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정신을 성찰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면서 이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셈이다.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계층 갈등은 물론이고 부모와 자식 간으로 대변되는 세대 갈등 또한 심각하다. 이와 같은 다양한 갈등을 조정하는데 필요한 기본 잣대는 역시 사회 정의의 구현이라는 가치관이 아닐까 싶다. 나아가 언젠가 맞이하게 될 통일 한국의 사회적 균형을 위해서도 정의의 문제는 피해갈 수 없다. 정의야말로 당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화두이자 시대정신인 것이다. 

 

이 책의 저자 황경식은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 존 롤스의 <정의론>을 번역한 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1980~1981년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 대학원 방문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롤스에게 지도받았다. 그 후 한국윤리학회, 철학연구회, 한국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동국대학교와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거쳐 2018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및 의료법인 명경의료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사회정의의 철학적 기초>, <개방사회의 사회윤리>, <이론과 실천>, <시민공동체를 향하여>, <철학과 현실의 접점>. <자유주의는 진화하는가>, <덕윤리의 현대적 의의>, <정의론과 덕윤리>, <법치사회와 예치국가> 등이 있다.

 

책은 '왜 정의를 논해야 하는가?', '최소 수혜자 배려와 정의로운 사회', '공정으로서의 정의와 정의의 두 원칙', '<정의론>을 깊이 읽기 위항 보충 논의', '<정의론>에 대한 방향과 정의의 실천' 등 총 5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저자는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정의론>에 담긴 롤스의 참뜻을 이해하고, 나아가 이에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마중물로서 널리 읽히길 바란다는 의견을 표명한다. 

 

 

 

 

왜 '정의'를 논해야 하는가?

 

우리는 선조들이 축적한 유산을 물려받아 지금 이를 즐기고 있다. 그 유산이란 바로 오랜 역사를 통해 획득된 유무형의 모든 재산을 가리킨다. 즉 언어, 풍습, 사상 등 문화적 산물에서부터 돈, 토지, 식량 등 물질적 부富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따라서, 우리들은 앞선 선조들에게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 대해서만 빚을 지고 있는 걸까? 아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빚을 지고 있다.

 

이런 빚의 개념은 우리들에게 의무를 생각하게 한다. 사회 생활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야 할 권리이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그 수준과 정도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는 없다. 더 많은 빚을 진 사람은 당연히 더 많은 것을 지불하면서 상환해야 할 지극히 당연한 의무를 져야 한다. 이처럼 부채의 상환을 위한 공정한 방법이 중요해진다. 그래서 우리들은 <정의론>을 심각하게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능력과 지위는 공유자산인가?

 

우리들은 각자 서로 다른 자연적 자질을 지닌 채 태어나서 또 다른 사회적 여건 속에서 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요인들은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자신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바로 원천적인 불평등이다. 그렇다면 이 또한 우리들 각자가 책임져야 하는 몫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롤스에 따르면 자연적 재능의 배분은 그 자체로 정의도 부정의도 아니라고 말한다.

 

정의냐, 부정의냐의 여부는 인간의 제도가 이를 처리하는 방식 때문에 문제가 된다. 요즈음 현 정부가 내세우는 '적폐 청산'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자. 여기서 적폐란 무엇인가? 적폐에 대한 개념은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현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 '적폐 청산'을 거론한다. 왜 원자력 발전이 적폐인가? 이처럼 현 정부가 적폐로 규정내리는 것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만 추진된다면 이를 원치 않는 많은 국민들의 원성이라는 부메랑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이는 또 다른 적폐를 생산하는 셈이다.    

 

사실 롤스의 정의론은 불평등한 자질을 제거하거나 평준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최소 수혜자를 포함한 모든 사회 성원에게 혜택이 가도록 이득과 부담의 체제를 편성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더욱 중요한 것은 천부적 자질과 사회적 지위의 우연성을 처리함에 있어 우리가 자신의 여건을 행사하는 방식을 바꾸는 대신에 그 재능으로부터 나오는 이득을 주장하는 도덕적 근거를 변화시킨다는 점이다.

 

"정의로운 사회란 오히려 모든 구성원이 자신만의 이익이 아니라

모든 이의 공동선을 위해 자연적 자질을 이용하고 사회적 여건을 활용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이 가진 자질이나 그로부터 얻게 되는 이득의 독점자가 아니며 자연적 재능의 분배를 공동 자산으로 간주하고 결과에 상관없이 그러한 분배에서 나오는 이득에 동참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행운의 임의성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우연히 배당된 재능의 소유자이기보다는 그것의 경영자 내지 관리자임을 내세우게 된다. 천부적으로 보다 유리한 조건을 타고난 자들은 혜택 받지 못한 자들의 처지를 개선(교육의 부담을 지고 더 불리하게 타고난 자들을 돕는 등의 방식)해준다는 조건에서만 자신들의 행운으로부터 이득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정의론의 실천

 

한 때 한국에 마이클 샌델<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소위 '정의 신드롬'을 불러일킨 적이 있다. 그런데, 정의의 이론이 아무리 정연하고 우아하면 무슨 소용인가. 정의를 실현하고 실행할 우리 모두의 의지와 역량이 부족하다면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 학자들은 '정의'를 정당화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지만 사실상 이론이 제시된 다음에 더욱 중요한 것은 실천 의지를 단련하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동기화 작업이다.

 

그러므로 <정의론>은 실천을 향한 덕윤리德倫理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 정의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안다고 해도 그것이 내면화되고 체화되어 실천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이는 결코 하루아침에 함양되지 않는다. 배운 것을 일상에서 익히고 습관화하지 않는다면 실행은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슬픔에 잠기게 했던 세월호 사태의 진정한 문제도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선장의 무기력과 무력감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해묵은 적폐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랑의 길이 매우 감성적이라면 정의의 길은 매우 이성적으로 생각된다. 사랑이 나의 것과 남의 것을 나누지 않고 내 것까지도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정의는 나의 것과 남의 것을 엄밀히 나누고 남의 것을 정확히 그에게 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랑과 정의의 뿌리를 깊이 들여다보면 이 두 가지는 어느 곳에선가 서로 연계되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롤스의 <정의론>에 공감하다 보면 정의는 내 것과 남의 것을 철저히 갈라 각자 자신의 것을 칼같이 챙기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 저마다 타고난 자연적·사회적 운을 내려놓고 우리 모두가 운명 공동체에 함께 소속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운 좋은 자들이 가장 운 없이 태어난 자들의 운명까지도 배려하고자 하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결국 정의의 핵심이 인류애나 인간 사랑과 뿌리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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