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중반 파리에서 보낸 반년은 누구나 항상 뭔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내게 가르쳐줬다담배를 피울 것인지아니면 전날보다 조금 더 풍성한 식사를 할 것인지 매일 선택해야 했다어떤 박물관에 갈 것인지 선택했고언제 하루 종일 시간을 내서 그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아직 먼 미래지만 언젠가 어떤 이야기를 쓰게 될지 상상할 것인지 선택했다.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였다프랑스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알제리 독립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그리고 전쟁의 여파가 여전히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던 파리에서 나는 그것을 배웠다한편 그때는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이 시작되기 직전이기도 했다그 시절에는 나 자신이 나의 선생이었고보도나 지하철역 계단에서 내 곁을 지나던 모든 사람들이 나의 선생이었다.


그 후로 살아가며 가끔 잘못된 선택을 하긴 했지만아예 선택하지 않는다는 실패에 비하면 그런 잘못은 아무것도 아니다아무런 저항 없이 그저 자신을 흐름에 맡기고 살며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거나 꼭 해야 할 궐기를 시도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종종 놀라게 된다.

죽음이라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물론 그것도 궐기의 한 형태이기는 하다하지만 내 삶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와 같이 더 깊이 들어가는 결정들은 우리가 직면하는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내려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들이다.


앙티브에는 간단한 식재료를 판매하는 작은 식료품 가게가 하나 있다앙티브에 가면 나는 그곳에서 장을 본다그 가게에 가면 아침 일곱 시부터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열두 시간 동안 작은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남자가 있다내가 가게에 갈 때마다 그 남자는 예외 없이 텔레비전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정말 모든 프로그램을 다 보는 것 같다계산을 해야 할 때면 억지로 화면에서 눈을 돌리는 게 보인다그리고 내가 가게에서 채 나가기도 전에 남자는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린다.

하지만 그 남자는 항상 매우 친절하다자기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그러나 그의 인생에 나는 경악을 느낀다그 남자는 정말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는 일을 자기 삶의 의미로 만들기로 결정했단 말인가?


삶은 대부분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우리가 그런 우연에 맞닥뜨릴 때면 해당 상황에서 의식적인 결정을 내릴 능력이 필요하다.

어느 날 나는 어떤 집 모퉁이를 돌다가 훗날 결혼하게 될 여자와 부딪쳤다그 여자가 그때 그 모퉁이를 돌아오리라는 걸 나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나는아니 그보다도 우리는 결국 그 우연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각자 그리고 함께 선택할 수 있었다우리는 결혼했다.

내가 살면서 맞닥뜨린 가장 힘들었던 선택의 상황은 두 번의 낙태였다두 번 다 여자들이 임신중절을 결정하도록 내가 압력을 행사했다당연히 결국엔 그녀들의 선택이었고 결심이었다그러나 이제는 나의 영향력 행사가 너무 과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자기 몸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것은 몸의 주인인 그 여자들이었음에도나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그 결정을 내 결정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나는 또한 어느 정도 용기와 이타심이 요구되는 결심을 하고 결정을 내린 적도 있다고 생각한다특히 당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금전적인 문제에서 너그러움을 보였던 일들이 그렇다.


인간의 선택 가능성은 불공평한 사회에서 그가 어느 편에 설 것인지의 문제에도 적용된다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우리는 모두 정치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우리는 항상 정치적인 차원에 살고 있고동시대를 살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계약에 따라 살고 있다그 사회계약은 또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도 포함한다.

우리의 결심을 위한 조건들은 무엇인가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생각하거나 또는 절대로 하지 않기로 선택할 때의 전제조건들은 무엇인가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거부하는가?

 

자기 인생을 어떤 것으로 만들지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큰 특권이다지구상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에게는 오직 생존이그것도 아주 낮은 수준의 생존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인간이라는 종은 항상 그래왔다먹느냐 아니면 먹히느냐의 문제맹수와 적과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문제가 언제나 최고로 중요하다우리의 후손들이 살아남도록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삶에 최대한 잘 준비되어 있도록 만들어주는 일지난 세월 동안 순수한 생존의 문제가 아닌 그 무엇에 몰두할 수 있었던 인간은 극소수뿐이다지금은 그래도 그런 사람이 많은 편이지만그럼에도 최소한 인류의 절반은 선택의 가능성 없이 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을 쓰지 않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이 전제는 모든 사회형태에 적용된다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먹여 살렸기 때문에 그들은 일할 필요가 없었다그들은 신들을 달래거나 수수께끼 같은 운명의 길들을 해석해주는 사제나 신전관리인 들이었을 것이다봉기와 혁명은 근본적으로 항상 같은 것에 대한 저항으로 일어났다힘들게 일하고 녹초가 되도록 애쓰는데도 생존하기 어렵다면 사람들에게 결국 남는 건 폭동뿐이었다반란을 설명하는 그 외의 다른 근거는 드물었다그보다 나중 단계에서야 생존 이상의 것에 대한 권리의 요구가 전면에 등장하였다.


물론 나도 선택의 가능성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안다어떻게 가족을 먹이고 가족에게 생필품을 제공할 것인지 매일 고민해야 하는 가진 것 없고 가난한 사람들 말이다뭔가 선택하고 삶의 방향 전환을 결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사치이다.

아프리카에서 보냈던 긴 시간 동안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진행되는 그 생존 투쟁을 보았다매일 저녁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는 염려가 새롭게 시작된다.

 

나는 몇 년 전 인도의 자이푸르와 뉴델리에 간 적이 있다어느 늦은 저녁 자이푸르에서 기차를 탔다철둑을 따라 불빛이 사슬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철로 바깥으로 몇 센티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그 사람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곳천천히 조심스럽게 뉴델리 방향으로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는 기차를 공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앉아 있는 그 사람들의 초라한 오두막집들 사이로 내가 탄 기차가 달리고 있었다마치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에 나오는 주인공 말로처럼 어둡고 위험한 강을 거슬러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물론 열차 주변으로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검은 강을 거슬러 몰락을 향해 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1980년대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도로변에 앉아 돌멩이로 포장도로를 두들겨 부수고 있는 여자들과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돌먼지가 그들을 휘감고 있었고날씨는 말도 못하게 무더웠다도로를 부수고 있는 여자들을 보면서동행 중 한 사람은 그들이 어쨌든 이 일로 자신과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 외에는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할 것처럼 지쳐 보인다고 말했다뭔가 먹어서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는 순수한 생존의 문제 말고 다른 것들을 생각하기엔 그들은 너무 지쳐 있었다.

사회의 가장 변방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거리에 누워 죽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굶어 죽는 것도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못 된다오늘날 우리는 절대 빈곤을 근절하고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굶어 죽지 않을 만큼 식량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선택했다나는 이 선택을 범죄라고 일컬을 수밖에 없다그러나 존재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기아와 가난을 퇴치하지 않는 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세계적 차원에서 기소할 수 있는 법원이 없다그리고 우리 모두가 개입해서 그 책임을 넘겨받도록 강제하는 법원도 없다.


파리의 거리를 헤매고 다니며 때때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땅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모았던 시절로부터 긴 세월이 흐른 지금나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더욱 분명히 알고 있다파리에서의 그 시절을 제외하면 나는 항상 여러 대안들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할 수 있고 시간과 힘이 있으며 배불리 먹을 것도 있는 쪽가난의 반대편에 있었다.

 

나는 틀린 결정을 내린 적이 많았고 그래서 후회할 이유도 있었다그러나 내 결정들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내가 말 한 마디 없이 전혀 저항하지 않고 흐름에 몸을 맡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 적이 있기는 하다.

나는 30여 년쯤 전에 한 번 흐름에 편승한 적이 있다잠비아 북서쪽에 자리한 므위니룽가 주잠베지 강의 가장 큰 지류 중 하나에서 있었던 일이다우리는 선외(船外모터가 달린 조그만 플라스틱 배를 타고 있었다나까지 포함해 네 명이 그 좁은 배에 끼어 앉아 있었다우리는 상류로 올라가서 모터를 끄고 강의 흐름에 배를 맡기고 내려오면서 타이거피시(tigerfish)를 잡았다그렇게 내려오다가 강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우리 텐트와 자동차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그 지점은 하마들이 모이는 곳이어서 모터를 제때 구동하는 것이 중요했다하마들이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돼서 극도로 공격적인 시기였다굼떠 보여서 속기 쉽지만하마가 사실 매년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아프리카 동물에 속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강이 갈라지는 지점에 도착하기 전에 줄을 당겼지만 당연히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처음에는 그냥 장난인 줄 알았다그러나 배는 빠른 속도로 하마 머리가 수면에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에 접근하고 있었다노를 저어서 하마들을 피해 도망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다배가 하마들 사이로 들어가면 모든 게 끝이었다하마들이 우리 배를 뒤집어버리고 그 거대한 입으로 우리를 반으로 뚝 잘라 죽일 것이 뻔했다.


모터에 대해 가장 잘 알아서 그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열심히 시동줄을 당기는 동안 보트 안에는 이상한 고요가 맴돌았다아무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몇 분 안에 시동을 걸지 못하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강으로 뛰어들어 가장 가까운 강가로 헤엄쳐 가는 건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강에는 악어가 들끓었다우리 중 어느 누구도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 익사하거나 악어 밥이 되지 않고서 무사히 강가에 도착할 수는 없을 터였다.

다행히도 시동이 걸렸고우리는 무사히 하마들을 피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 야영지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모닥불만이 타닥거리며 소리를 냈고우리의 얼굴 위로 불길이 춤추듯 타올랐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때 함께 있었던 친구 한 명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우리 배가 하마들에게로 점점 다가갈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에게 물었다그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그 생각을 자주 했던 모양이었다.

 

뭔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있나 생각했어그런데 아무런 대안이 없더군아마도 그때가 내 인생에서 모든 걸 포기했던 유일한 때였을 거야그러다가 시동이 걸렸을 때 나는 한순간 신이 있다고 믿었어.”

 

내가 대답했다.

점화 플러그가 젖어 있었어시동을 걸던 친구가 너무 서둘렀던 거야그러니까 신이 있고 없고의 문제와는 별 관계가 없었던 거지.”

 

그 친구는 내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에게는 물에 젖은 점화 플러그보다 신이 존재한다는 게 더 나은 설명이었다.

신이냐 점화 플러그냐그것은 내 선택이 아닌 그의 선택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 걸까?

 


헤닝 만켈

스웨덴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연극연출가였고 헌신적으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헤닝 만켈은 2015년 67세로 타계했다.

불치의 폐암 진단을 받은 후 2년이 채 안 된 투병 기간이었다.

 

그림 그리고 음악이 세 가지를 번갈아가며 되풀이해 즐기는 방식으로

나 스스로가 병에 고착되는 것을 피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시한부 삶이라는 현실은 헤닝 만켈에게 오래된 악몽 하나를 떠오르게 했다사람을 가차 없이 집어 삼키는 모래늪에 빠지는 꿈이다헤어 나올 수 없는 정신적인 위기 속에서 그에게 도움이 된 것은 몇 가지 큰 질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일이었다인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현재의 인류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그 속에서 헤닝 만켈 자신의 삶은 무엇이었고 무엇을 이루려 했는지를 기록한다.

 

죽는다는 건 현존하는 인간의 전통 중 가장 위대한 전통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망각과 거짓은 종종 사이좋게 함께 움직인다.

기억은 이야기이다어쩌면 토막 나고 잘게 부서진하지만 또한 온전한 이야기일 때도 많다나는 망각을 빈 공간으로 생각한다우리 내면의 공허하고 추운 우주망각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무관심해지고과거에 있었던 것과 앞으로 올 것에 대해서도 무관심해진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발란더 시리즈외에도 여러 권의 소설과 청소년 시리즈를 왕성하게 발표한 그는세상의 어두운 구석을 비추고자 했던 작가로서의 남다른 삶을 살았다가장 빈곤한 나라 모잠비크에서 삼십여 년의 세월 동안 아프리카인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고소설을 집필하며 아프리카에 대해 깊이 이해한 그는 기아와 에이즈인종 차별과 불평등식민 지배의 잔재와 대륙의 분열로 고통에 빠져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풀기위해 매우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글을 쓴다는 일은 내가 가진 손전등으로 어두운 구석들을 비추고 전력을 다해 다른 이들이 숨기려는 것을 밝히는 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억압과 불의폭력에 고통받는 곳이라면 주저없이 자신을 내던졌다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봉쇄에 맞서 몸소 해상 봉쇄를 뚫고 들어가려다 체포되기도 했고인도의 빈민 구제 사업의 일환으로 마이크로 사업자 육성과 문맹퇴치아프리카 내전의 가장 큰 희생자인 아이들을 위한 마을 설립 등이 어둡고 고립된 세계에서 인간 연대의 믿음과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망으로 글을 쓰고말하고또 자신의 몸으로 증명했다.


 

나는 모두를 도울 수 없지만 작은 도움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큰 슬픔을 경험하지 않고선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다.

비극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비극은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다.

파리 시절 가장 강하게 내 기억에 남은 깨달음이 있다바로 사회의 밑바닥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내 경우에 그것은 불법 노동자로 사는 것닳고 낡아빠진 옷을 입고 항상 배고픔에 시달리는 것이었다사람들은 가난을 쉽게 알아본다아마도 자신도 언젠가 그런 상태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사회 밑바닥에 대한 경험이 그저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것이었다 하더라도그것은 우리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를 마주한다는 의미이다우리는 어떤 종류의 사회를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결정 말이다.

바로 그것이 내 평생을 관통해온 질문이다.

 

아프리카에서 나는 세상에 쓸모없는 고통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우리는 그걸 내일 당장이라도 끝낼 수 있습니다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 데 드는 비용은 서구 세계가 애완견 사료에 쓰는 비용만큼도 안 될 겁니다.

 

문명의 야만과 위선의 역사를 추적한 그의 소설 불안한 낙원에서 흑인들은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백인들은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다른 사람들아랍인들과 인도인들은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진실이 파고들 여지가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라고 탄식했던 것처럼 그가 바라본 세계는 고통스럽지만 그의 시선은 냉철하고 또 따뜻했다.

 

만켈은 대가였다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도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종의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그는 항상심지어 해결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갈등상황에서도 인도주의적 관점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다.

_바바라 패치_오스트리아 일간지 <Die Press>

 

나는 매일 곤궁함과 비참함을 봅니다.

그러나 또한 기쁨을 보고 웃음 소리를 듣습니다.

사람들은 스톡홀름 거리에서보다 마푸토 길거리에서 더욱 웃습니다.

마치 서양은 신용과 지불 사이에서 웃음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웃음은 아프리카인을 여전히 지탱해줍니다.

Teatro Avenida와의 작업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도전이었습니다.

가장 빈곤한 나라에서 연극을 올리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그곳에는 상상력이 있고 거기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고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합니다.

 

 


헤닝 만켈은 2005년 전 독일 대통령 호스트 쾰러의 초청으로 아프리카 지원 협력 회의 참석하여 최초로 연단에 올라 그가 만난 가난한 아프리카인에 관한 일화를 소개한다자신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발에 신발을 그려 넣은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적 위엄과 저항에 관한 상징이 된다.

 

산다는 건 ’ 또는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죽었다는 건 침묵에 둘러싸여 있음을 의미한다.

 

헤닝 만켈은 또한 평생 핵무기와 원자력 발전에 대한 반대의견을 적극적으로 펼쳤다그는 서구사회가 땅 속 깊은 곳에 최소 10만 년 동안 방사능 폐기물을 보관하고자 하는 계획에 대해 경고하면서그 폐기물에 대한 위험성을 후대에 어떻게 전달 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 모두 고민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했다.

 

나는 평생 원자력과 함께 살아왔다핵무기 공포와 핵무기 반대 시위계속 엉겨 붙어 싸우다가 어쩔 수 없을 때만 잠깐 서로 떨어져 일시적으로 평화로운 관계를 보이는 두 마리 야생동물 같던 소련과 미국그런 것이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그 다음에 찾아온 것이 원자력과 원전사고이다쓰리마일 섬체르노빌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사고까지나는 또 다른 원전사고의 카운트다운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나는 원자력에 반대한다.

목숨을 위협하는 방사능 폐기물이 10만 년이라는 시간 동안 안전하게 보관된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인간이 세운 건축물 중 가장 오래 유지되고 있는 것들도 기껏해야 5, 6천 년 되었을 뿐인데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살아남아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우리 문명에 속한 다른 것들이 전부 사라지고 나면 두 가지가 남을 것이다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우주공간에서 끝없는 탐험을 이어가고 있는 보이저 우주선과지하 수직굴에 저장된 핵폐기물.

우리에게는 미래의 인간들에게 어떻게 위험을 경고해줄 수 있을까 자문하고 고민할 의무가 있다.

만약 경고를 전달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없다면그렇다면 남는 건 망상뿐이다저 아래 암석 밑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도구는 망각이다그러나 망각을 너무 믿지는 말아야 한다.

망각과 거짓은 종종 사이좋게 함께 움직이니까.

 

소설로 연극으로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를 고발했던 만켈은 개인적이고 세계적인 재앙들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 만하다고 확신한다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전략의 유무이고산다는 것은 결국 생존기술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선택 가능성은 불공평한 사회에서 그가 어느 편에 설 것인지의 문제에도 적용된다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우리는 모두 정치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우리는 항상 정치적인 차원에 살고 있고동시대를 살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계약에 따라 살고 있다그 사회계약은 또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도 포함한다.

우리의 결심을 위한 조건들은 무엇인가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생각하거나 또는 절대로 하지 않기로 선택할 때의 전제조건들은 무엇인가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거부하는가?

자기 인생을 어떤 것으로 만들지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큰 특권이다지구상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에게는 오직 생존이그것도 아주 낮은 수준의 생존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모든 희망이 끝나는 곳에는 인간의 삶 자체가 없다.

하지만 무언가는 항상 남아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항상 희망을 절망보다 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희망이 없이는 사실상 생존도 없다그것은 암 환자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마찬가지다.

 

2015년 10월 세상을 떠난 헤닝 만켈그가 남긴 마지막 질문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한 위대한 문학인에게서 온 선물과도 같다사회와 역사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인간으로서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나은 인간더 나은 삶의 의미를 숙고한다.


 

헤닝 만켈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고자 하는 희망을 동인으로 활동해온 꼭 필요한 작가였다그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엘리트 의식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의 군더더기 없고 힘찬 산문처럼 그냥 그에게서 나온 것이다.

_펠리치타스 폰 로벤베르그(독일 일간지<Frankfurter Zeitun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가 너무도 아름다운 나머지 나는 늘 그가 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날 어떻게 바꿔놨는지 간단히 말하라면 이렇게 말하겠다. 그로 인해 나는 라디오의 온갖 거지같은 노래들을 따라 부르게 되었다고. 그가 날 사랑했을 때나, 사랑하지 않았을 때나.
-<사색의 부서> 중에서

“If someone had described this novel to me, I would never have read it,” 
"만약 다른 사람한테 이 소설의 얘기를 들었다면, 난 절대 읽지 않을 것이다." 
작가 제니 오필 자신의 말이다. 그 만큼 이 소설의 운명은 어두웠다. 그러나 결과는 2014년 뉴욕타임즈 올해의 책에 선정되면서 작가로서의 새로운 입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스물 아홉에 한 편의 소설을 낸 여자.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또 남편의 외도를 알게되는 일련의 사건과 감정, 순간을 조각조각내며 자아와 가정, 관계의 붕괴와 맞선다. 일상의 균열을 예리하고 의식하며 가족이라는 울타리 너머 우주를 사색하는 '그녀' 혹은 '아내', 또는 '엄마'의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켄트 하루프의 <밤에 우리 영혼은>(뮤진트리, 2016.10)은 인생을 거의 다 살아낸 노년의 남녀가 등장합니다. 

각기 배우자와 사별하고 변함없을 노년을 보내는 두 남녀가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11월에 선보이는 제니 오필의 <사색의 부서>는 마치 <밤에 우리 영혼은>에 등장하는 두 남녀의 각기 다른 젊은 시절을 연상케합니다.




가정생활의 매끈한 표피 아래엔 무수히 많은 굴곡과 틈새가 존재합니다.

자신만의 삶을 꿈꾸던 여자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어머니로, 

타인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배반의 가능성을 지닌 연약한 사랑, 불확실한 미래. 봉합의 불가능성은 실존의 위기로 다가옵니다.

결혼과 가정생활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사건들, 그 익숙한 서사의 통속성은 '사색'의 힘을 빌어 그 통속성을 벗고 일상을 다른 시각으로 관찰합니다.

남편의 외도마저 사색하게 되는 여자, 

지속해야 할 삶을 위해 섬세하고도 지적으로 자신의 일상을 사색하고

자신만의 명징한 언어로 굴곡과 틈새를 메워나가는 '아내' 혹은 '그녀'.


조각난 삶의 파편을 끌어 모아 하나의 우주를 만들고, 삶의 지속성을 고통스럽게 수긍하는 사색하는 여자

<사색의 부서>를 소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