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문장이죠. 릴케와 로댕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문장이 생각났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물론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강요로 여자아이의 옷을 입고 시를 읽어야 했던 가녀린 릴케, 늘 또래의 아이들에게 표적이 되곤 했습니다.

 

벨에포크라 불리는 유럽의 황금기이자 격렬한 변화의 세기말에 사춘기를 보낸 릴케는 시인으로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루 살로메, 유년의 왜곡된 모성에 대한 보상이었는지도 모를 루 살로메와의 만남, 그리고 위대한 예술혼을 찾아 도스토옙스키와 마주합니다.

 

자신이 예술가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오귀스트 로댕, 자신의 작업은 글자 그대로 일이었고, 그 일에만 파묻혔던 로댕, 머리보다는 손으로 꿈꾸었던 그는 대범하면서 호색적인 매우 남성적인 사내였습니다. 주류 미술계에 속하지 않았던 로댕, 학교와 '예술'이 그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석공의 손놀림과 자신만의 시각이 그를 위대한 조각가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진짜들 사이에서 진짜처럼 느끼고 진짜로서 존재하기를갈망했던 릴케가 로댕을 만납니다. 여전히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 헤맸던 릴케는 로댕에게 예술뿐만이 아니라 삶의 비의 같은 것들을 자연스레 전달받습니다. 그리고 끝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명성은 새로운 이름에 들러붙는 모든 오해들의 총합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 면에서 정반대의 기질을 갖고 있었던 두 사람, 그러나 예술은 예술을 알아보는 법이겠죠. 높은 산은 자신만큼 높은 산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의 일과 삶은 단순히 스승과 제자, 예술가와 조력자의 관계에 머물지 않고 각자의 예술을 일구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로댕 또한 이 낯선 릴케에게 섬세한 영감을 받기도 합니다. 물론 이 둘의 관계가 늘 좋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결별을 하게 되죠.

 

릴케는 자신의 시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를 적어나가면서 비로소 한 세계를 허물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갑니다. 릴케가 로댕으로부터 받았던 '생의 에너지'는 곧 [젊은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로 남아 삶의 의미를 찾는 청춘들에게 답하고 있습니다.

 

조금 길지만 릴케의 시 전문과 책[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의 한 구절을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그 누군가의 삶이라도 삶은 끊임없는 변화의 열정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진정으로 삶다운 것이라 하겠죠. 릴케와 로댕의 두 예술가가 전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였습니다.


 

-고대 아폴론의 토르소-


무르익는 과실 같은 눈이 머무르던

아폴로의 전설적인 머리를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의 토르소는

지금도, 마치 등불처럼, 내면에서 피어 나오는 빛으로 가득하다,

거기서는 그의 시선이, 이제 낮춰졌으나,

환히 빛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융기한 가슴이 너를 황홀하게 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미소가 평온한 둔부와 허벅지를 지나

생명의 불길이 타오르던 그 검은 중앙부를

향하지도 못하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이 돌은 투명하게 쏟아져내린 어깨 아래서

볼품없게 보일 것이고

들짐승의 털 가죽처럼 반짝이 지도 않을 것이며,

그 모든 가장자리에서

마치 별처럼 피어나지도 않으리라, 여기서 너를 보지 않는

부분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석상은 볼 수 있는 눈도, 말할 수 있는 입도, 생식할 수 있는 성기도 갖고 있지 않다. 말테가 자신의 죽음을 지니고 있었듯, 그것은 내면에 자신의 탄생을 지니고 있다. 아폴로와 릴케가 그들 사이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면서 서로를 탐색할 때, 릴케는 그 경험을 시로 세상에 전하기 시작한다....하지만 이제 릴케에게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눈을 원했다.

 

단순히 신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자가 되고 싶었다. 아폴로가 그에게 말을 걸어온 순간, 릴케는 대상과 관찰자의, 작가와 독자의 공감적 결합을 완성한다. 이 새로운 존재는 이제 소통할 수 있었다. 이제 완전체였다. 릴케는 예술을 인정했고 그 신에게 생명을 주었다. 그리고 그는 달라졌다."(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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