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여러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남편과 평생을 함께 해온 아내가 인생 황혼기에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한다. 오로지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킹메이커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온 아내가, 드디어 남편이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문학상을 수상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킹이 된 시점에, 남편을 떠나기로, 그것도 그동안 숨겨 왔던 남편의 비밀까지 밝히겠다고 결심하면,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엄청난 상금만으로도 전 세계 모든 작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헬싱키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남편과, 평생을 그림자로 살며 남편을 그 자리까지 올려세운 아내의 숨겨진 진실을 그린 매그 윌리처의 더 와이프를 읽고 나면 세 개의 단어가 떠오른다. gender, writing, identity. 이 책의 제목만큼이나 이제는 흔한 주제들이지만 메그 월리처는 이 무겁고 씁쓰레한 주제들로부터 경쾌하고 날렵한 소설 더 와이프를 뽑아냈다.

 

 


더 와이프의 주인공은 아내와 남편이다. 아내인 조안은 뉴욕의 유복한 집에서 자란 스미스 칼리지 여학생으로, 오래전부터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해왔으나 대학에서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자신의 이야기로 소설 습작을 하다 보니, 지도 교수로부터 재능이 있다는 말은 듣지만, 스스로 인생의 경험이 너무 없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좁다는 걸 느낀다.

 

일찍 아버지를 잃고 엄마와 할머니와 이모들에 둘러싸여 살아온 남편 조는, 어려서부터 동네 도서관을 드나들며 책을 읽는 것으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 온 터라 몇 권의 소설을 쓰고도 남을 만큼의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지만, 자신의 재능으로는 제임스 조이스의 발끝이라도 따라가고자 하는 희망이 달성 불가능한 것임을 안다. 그런 두 사람이 명문 여자 대학교인 스미스 칼리지에서 선생과 제자로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한 후 선택한 삶의 방도는 무엇이었을까.

 

세상을 모두 가진 듯한 남자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상에서, 어딜 가나 여자들에 둘러싸이고 본인 또한 넘치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지만 다행히 정치적으로 건전하고 세상에 대해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고 작가 남편과, 그 남편의 그림자로 어디든 함께 하며 그야말로 보살피고 가이드하고 챙기는 아내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문학 인생은, 남편의 소설들이 인정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성취감과 자신감을 더해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다.




부부의 사십오 년 인생을 조망한 이 소설 더 와이프에서는 자주 두 사람의 삶이 회상되고, 현재와 과거가 겹쳐지며 교차한다. 스미스 칼리지의 창조적 글쓰기과목을 새로 맡은 젊은 조 캐슬먼은, 자신에게 문학 재능이 있기를 바라며 홀로 도서관에서 단편을 습작하는 여학생 조안의 욕망을 끄집어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부부가 된다.

 

하지만 결국 아내보다 재능이 부족한 것을 견디지 못해하는 남편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묻는 삶을 선택한 아내의 재능과 헌신 덕에 남편은 작가로서의 최고의 명성을 누리지만, 공교롭게도 그 시점에 아내는 자신의 삶을 감싸고 있던 허무와 위선의 그림자를 본다. 둘만의 내밀한 공감과 타협으로 살아온 삶이 결국 거짓된 삶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그동안 숨겨온 이야기를 밝히기로 마음먹는다.


더 와이프의 아내는 영리하면서도 어리석고, 터프하지만 의지가 약하고, 끝내주는 위트와 유머의 소유자이지만 슬픔 또한 깊다. 여성의 재능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편견에 맞서 용기 있게 싸우기보다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재능을 실현해 온 조안, 그러나 그 사실을 평생 남편의 이름에 묻고 살아야 했던 여인, 남편의 그림자를 자처하며 살아왔지만 아내는 저보다 나은 반쪽입니다라는 남편의 입에 발린 인사를 이제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




 

메그 윌리처는 이 소설에서 최고의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작가라는 사람들의 욕망과, 부부라는 특별함으로 묶인 결혼 생활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세상을 다 가진 듯 거만하고 우쭐대고 이기적이고 남에게는 도대체 관심이 없는 남자의 허와 실을, 스스로 그 남자를 선택했고 거들기로 판단했기에 평생 모든 것을 보살피며 때로는 모른 척해야 했던 그 모든 배덕의 순간을 함께해 온 여자의 내면을, 늘 방문을 잠그고 함께 작업을 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들의 결핍과 일탈을 다독여야 하는 가족 내의 긴장감을, 나도 마음만 먹으면 저 남자들처럼 될 수 있다고 늘 생각했으면서도 결코 그러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남편의 모습에 질투심을 느끼고야 마는 아내의 꿈과 욕망을 감탄스러울 정도로 치밀하게 묘사한다.

 

킹메이커로,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한 여자가 원했던 삶은 결국 무엇일까. 그보다는 생의 황혼에 이른 아내가 오직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내리는 새로운 선택이 더 기대가 된다.




부부의 삶을 지탱했던 한 부분, 그 어두운 진실을 그대로 밝힐 수 있을지, 아니면 아내는 진정 저보다 나은 반쪽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처럼 누군가의 아내로서 살아온 덕택으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실현할 수 있었다고 인정할 것인지.

 

혹은, “인생에서는 당신의 노력을 인정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던 남편의 조언을 되새기며, 이제 그녀만의 실력으로 새롭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쓸 것인가. 이 소설의 관전 포인트는 참으로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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