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여러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남편과 평생을 함께 해온 아내가 인생 황혼기에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한다. 오로지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킹메이커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온 아내가, 드디어 남편이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문학상을 수상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킹이 된 시점에, 남편을 떠나기로, 그것도 그동안 숨겨 왔던 남편의 비밀까지 밝히겠다고 결심하면,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엄청난 상금만으로도 전 세계 모든 작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헬싱키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남편과, 평생을 그림자로 살며 남편을 그 자리까지 올려세운 아내의 숨겨진 진실을 그린 매그 윌리처의 더 와이프를 읽고 나면 세 개의 단어가 떠오른다. gender, writing, identity. 이 책의 제목만큼이나 이제는 흔한 주제들이지만 메그 월리처는 이 무겁고 씁쓰레한 주제들로부터 경쾌하고 날렵한 소설 더 와이프를 뽑아냈다.

 

 


더 와이프의 주인공은 아내와 남편이다. 아내인 조안은 뉴욕의 유복한 집에서 자란 스미스 칼리지 여학생으로, 오래전부터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해왔으나 대학에서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자신의 이야기로 소설 습작을 하다 보니, 지도 교수로부터 재능이 있다는 말은 듣지만, 스스로 인생의 경험이 너무 없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좁다는 걸 느낀다.

 

일찍 아버지를 잃고 엄마와 할머니와 이모들에 둘러싸여 살아온 남편 조는, 어려서부터 동네 도서관을 드나들며 책을 읽는 것으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 온 터라 몇 권의 소설을 쓰고도 남을 만큼의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지만, 자신의 재능으로는 제임스 조이스의 발끝이라도 따라가고자 하는 희망이 달성 불가능한 것임을 안다. 그런 두 사람이 명문 여자 대학교인 스미스 칼리지에서 선생과 제자로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한 후 선택한 삶의 방도는 무엇이었을까.

 

세상을 모두 가진 듯한 남자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상에서, 어딜 가나 여자들에 둘러싸이고 본인 또한 넘치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지만 다행히 정치적으로 건전하고 세상에 대해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고 작가 남편과, 그 남편의 그림자로 어디든 함께 하며 그야말로 보살피고 가이드하고 챙기는 아내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문학 인생은, 남편의 소설들이 인정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성취감과 자신감을 더해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다.




부부의 사십오 년 인생을 조망한 이 소설 더 와이프에서는 자주 두 사람의 삶이 회상되고, 현재와 과거가 겹쳐지며 교차한다. 스미스 칼리지의 창조적 글쓰기과목을 새로 맡은 젊은 조 캐슬먼은, 자신에게 문학 재능이 있기를 바라며 홀로 도서관에서 단편을 습작하는 여학생 조안의 욕망을 끄집어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부부가 된다.

 

하지만 결국 아내보다 재능이 부족한 것을 견디지 못해하는 남편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묻는 삶을 선택한 아내의 재능과 헌신 덕에 남편은 작가로서의 최고의 명성을 누리지만, 공교롭게도 그 시점에 아내는 자신의 삶을 감싸고 있던 허무와 위선의 그림자를 본다. 둘만의 내밀한 공감과 타협으로 살아온 삶이 결국 거짓된 삶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그동안 숨겨온 이야기를 밝히기로 마음먹는다.


더 와이프의 아내는 영리하면서도 어리석고, 터프하지만 의지가 약하고, 끝내주는 위트와 유머의 소유자이지만 슬픔 또한 깊다. 여성의 재능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편견에 맞서 용기 있게 싸우기보다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재능을 실현해 온 조안, 그러나 그 사실을 평생 남편의 이름에 묻고 살아야 했던 여인, 남편의 그림자를 자처하며 살아왔지만 아내는 저보다 나은 반쪽입니다라는 남편의 입에 발린 인사를 이제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




 

메그 윌리처는 이 소설에서 최고의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작가라는 사람들의 욕망과, 부부라는 특별함으로 묶인 결혼 생활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세상을 다 가진 듯 거만하고 우쭐대고 이기적이고 남에게는 도대체 관심이 없는 남자의 허와 실을, 스스로 그 남자를 선택했고 거들기로 판단했기에 평생 모든 것을 보살피며 때로는 모른 척해야 했던 그 모든 배덕의 순간을 함께해 온 여자의 내면을, 늘 방문을 잠그고 함께 작업을 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들의 결핍과 일탈을 다독여야 하는 가족 내의 긴장감을, 나도 마음만 먹으면 저 남자들처럼 될 수 있다고 늘 생각했으면서도 결코 그러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남편의 모습에 질투심을 느끼고야 마는 아내의 꿈과 욕망을 감탄스러울 정도로 치밀하게 묘사한다.

 

킹메이커로,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한 여자가 원했던 삶은 결국 무엇일까. 그보다는 생의 황혼에 이른 아내가 오직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내리는 새로운 선택이 더 기대가 된다.




부부의 삶을 지탱했던 한 부분, 그 어두운 진실을 그대로 밝힐 수 있을지, 아니면 아내는 진정 저보다 나은 반쪽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처럼 누군가의 아내로서 살아온 덕택으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실현할 수 있었다고 인정할 것인지.

 

혹은, “인생에서는 당신의 노력을 인정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던 남편의 조언을 되새기며, 이제 그녀만의 실력으로 새롭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쓸 것인가. 이 소설의 관전 포인트는 참으로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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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 낙서는 예술일까? 범죄일까?

공공예술은 공공이 우선일까? 예술이 우선일까?

고용된 예술가의 창작물은 누구의 소유일까?

예술가는 법적 지위를 갖는 걸까?

창작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호받아야 하는 걸까?

예술작품을 법적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예술 창작 역시 인간의 행위이어서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든 어떤 식으로든 공동체의 규율과 약속에 따라 상이한 지위와 법적 구속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예술과 법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진보성과 자유성이 강한 예술과 보수성과 구속성이 강한 법은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부터 예술과 법은 서로 관련이 없는 별개의 분야이며 다소 적대적인 관계라고 여겨온 것이 사실이고 현재도 그러한 생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법은 예술의 자유를 제약하는 존재라고 많이들 생각했다. “법과 예술이 만나면 서로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When law and art chance a meeting, they should do their best to avoid each other)”라는 말이 있듯이, 예로부터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법률을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미술에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의 미술은 그 산업적 측면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술품은 단순한 감상·보존의 대상에서 투자· 재산증식의 대상으로 변모하면서 미술품 관련 분쟁도 증가하는 추세다. 결국 미술품은 시장에서 유통되고 평가받는 과정에서 가치가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개입하는 법률은 과거와 같이 규제와 제약을 위해 예술에 강제적으로 개입하는 양상에서 벗어나 미술계에 도움을 주는 후원자적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 법과 미술의 거리는 더욱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비단 미술품 거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창작 활동과 예술 향유에서 현대사회의 복잡함 만큼 그 양상도 매우 복잡해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법의 개입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 미술과 법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을까? 독자들이 상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도 본질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변호사이자 대학에서 미술법을 강의하고 있는 저자는 자칫 어렵게 느껴질 미술법을 매우 쉽고 흥미롭게 설명한다. 미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업무 일선에서 부닥치는 다양한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 법률 지식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예술 관련 법적 소송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국내외 최신 사례들에 관련 법 조항과 판례들을 곁들여 판단의 기준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2012년부터 7년을 이어온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의 미술법강의

 


검사를 시작으로 35년 동안 변호사, 사법연수원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법률 분야의 이론과 실무를 넘나들고 있는 저자가 2012년부터 7년 동안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강의한 미술법을 토대로 미술 관련 분야 종사자뿐만 아니라 미술에 관심 있는 누구나 알아두면 좋을 미술과 법의 관계를 탐구한 책이다. 일상에서 만난 다양한 사례들, 뉴스나 언론을 통해 알게 된 국내외 여러 미술 관련 사건들에 대해 판례와 해당 법 조항을 곁들여 설명했다.


최신 국내외 사례들을 중심으로

법과 미술의 관계를 흥미롭게 설명한 미술법 안내서.


책은 주제별로 네 개 장으로 구성되었다. 본격적으로 미술과 관련된 각종 법률과 판례를 다루기에 앞서 저자는 서두에서 무엇이 미술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떤 창작물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법적 위배 여부를 가리게 되었을 때, 그것이 미술작품이 아니라면 법을 어기는 것이 되고, 미술작품이라면 법에서 정하고 있는 다양한 특별면책조항에 따라 보호를 받게 되기에, 법의 관점에서 미술작품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이 정의하는 미술의 범위와 한계는?

플라톤은 미술을 모방의 기술이라고 정의했지만 오늘날 미술의 범위는 매우 넓어지고 경계는 점점 더 모호해지는 상황이다. 특히 미술작품을 둘러싼 논란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시대의 흐름을 직시하며 미술작품의 정의를 둘러싼 유명한 재판들을 예로 들어 미술작품의 인정 범위와 예술가의 법적 지위에 대한 법률 규정들을 설명하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예술인 복지법과 문화예술 진흥법을 소개한다.


예술 관련 소송들과 그 절차

예술과 법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기본적인 갈등의 구조에서 협조의 구조로 바뀌어가는 현상을 살펴보고, 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적법한 예술 관련 소송절차들을 소개한다. 저자가 제시한 사례들 중 형사재판으로까지 번진 사례들은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로도 다뤄질 만큼 유명한 사건들이어서, 책을 읽다 보면 전문가는 아니지만 사건의 전모를 법적인 관점에서 따라가보고 싶은 흥미가 돋는다.


규제자로서의 법

예술과 오래도록 갈등을 빚어온 국가보안법, 미국 냉전시대의 매카시즘, 최근 국내의 큰 이슈인 블랙리스트 문제 등을 짚어보고, 저마다의 사회에 깊게 내재해있는 사회 상규와 창작의 자유가 어떻게 충돌하는지, 세계적으로 끊이지 않는 미술품 도난 문제와 위작 이슈, 메디치 가문의 메세나 활동부터 국내 대기업들의 미술품 투자 문제 등등, 미술의 규제자로서의 법의 역할을 살펴본다. 법과 예술의 발전적인 공존을 위해서는 미술 활동 및 창작의 자유는 보장하고 지원하되 그 모든 행위와 정책에는 사회적법적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하는 대목이다.

 

저작권법에 관한 다양한 사례 비교

피카소 사후 그의 작품들이 가족의 상속세 부담 때문에 해외로 팔려나가는 걸 막기 위해 수년 전부터 준비하여 세법까지 바꾼 프랑스 문화 정책 담당자들의 문화적 식견과 열정에 주목하며, 미술의 후원자 역할의 대표 격인 저작권법을 소개한다. 미술작품의 권리자와 사용자 양측에서 알아야 할 저작권법의 정의범위예외 조항국가별 차이 등은 무엇인지를 비교 설명한다. 특히 과거와는 달리 사진과 영화 산업이 발달하고 기술과 장비들이 혁신적으로 개발됨에 따라 새롭게 대두되는 문제, 패러디의 정의, 풍자와 모방의 이슈 들을 살펴보고, 개인의 성명초상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퍼블리시티권의 긍부정적 측면과 예술가들이 무명시절의 불리한 계약조건을 보상받을 수 있는 추급권에 대해 설명한다.



법과 예술

어떤 것은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지만 어떤 것은 범죄행위가 된다. 예술이라고 법의 테두리에서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이 해야만 하는 역할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회적 부패를 예술로 표현해 보여주고, 억압된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생각의 전환을 선도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이 지향해야 할 목표이자 역할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조금만 들춰봐도 원칙을 중시하는 법과 창의성이 생명인 예술이 갈등을 빚은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법과 미술이라는 썩 어울리지 않는 두 주제를 키워드로 삼고 있는 저자는 두 세계의 조화로운 발전이 가능할뿐더러 현대 사회에서 그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제대로 알아야 충분히 활용하고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것은 미술도 예외는 아닐 터, 이 책을 읽고 나면 권리자도 이용자도 법만 정확히 인지한다면 미술이라는 매력적인 컨텐츠에 오점을 남기지 않고 애써 만든 귀한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저작권법은 국제적으로 더욱 강화되고, 미술품을 사고 파는 것이 더 이상 특정인들만의 취미활동이 아닌 시대에, 법과 예술의 행로를 탐구하는 법 전문가의 안내를 받으며 즐겁게 미술법을 공부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의 권리를 지키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나의 무지로 인해 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은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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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있었지만 누구도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여덟 권의 책


한때 존재했으나 이제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 책들이 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거나 아니면 작가가 책으로 쓰기 위해 구상해놓았던 이야기가 아닌, 분명히 글로 쓰였고 누군가가 읽었지만, 지금은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린 책들 말이다.


영원히 전설로 남을 여덟 권의 책을 찾아서


프랑스 리옹 역에서 도난당한 여행 가방과 함께 사라진 헤밍웨이의 초기 작품들, 나치의 압박을 피해 도망치다 생을 마감한 발터 벤야민이 마지막까지 지녔던 가방 안의 원고 뭉치, 미망인에 의해 파괴된 로마노 빌렌치의 미완성 소설, 스캔들을 두려워한 주변 사람들이 불에 태워버린 바이런의 회고록, 전쟁 중 폴란드에서 사라진 브루노 슐츠 필생의 역작, 신경증에 가까운 저자의 완벽주의 성향 탓에 불에 타 사라진 고골의 작품, 언젠가 다시 나타날 수도 있는 실비아 플라스의 소설 등.


잃어버린 위대한 작품들은 우리의 애도 속에서 완벽함과 불멸을 얻을 것이며 우리는 거기서 위안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했던 알베르토 망겔Alberto Manguel의 말처럼, 한때 존재했으나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책들, 한때 우리 곁에 있었으나 이제는 전설로만 존재하는 책들은 애서가들로 하여금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


모든 사라진 것들에는 그들만의 뭔가가 있다.”


20세기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가 로마노 빌렌치의 소설 거리는 미완성 소설이 평소 매우 정확하고 적절한 글을 쓰려고 했던남편의 평판에 끼칠 악영향을 고려해 미망인이 없애버린다.

 

조지 고든 바이런 경의 회고록. 바이런이 자신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드러낸 그 원고는 19세기 영국에서 차마 입 밖에 내어 고백할 수 없었던 동성애를 밝혔다는 이유로 스캔들을 두려워한 주변 사람들이 불태워버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초기 작품들. 그가 캐나다 일간지의 유럽 특파원으로 일하며 작가로서의 미래를 타진했던 그 작품들은 그의 첫 아내 해들리 리처드슨의 여행 가방과 함께 리옹 역에서 사라진다.


<외투><> 같은 잊지 못할 단편을 썼던 러시아 작가 고골. 어느 서점이나 가면 찾을 수 있는 그의 장편 죽은 혼은 원래 훨씬 더 방대하게 구상된 작품으로,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작품의 1부에 불과하다. 그 작품의 2, 500페이지 가량의 원고는 신경증에 가까운 작가의 완벽주의 성향 탓에 불에 타 사라진다.

 

2차 대전 중에 유대인이었던 저자와 함께 사라진 가슴 아픈 작품들도 있다. 브루노 슐츠의 필생의 역작 메시아와 발터 벤야민이라는 20세기 위대한 지식인의 검정 가방 속에 들어 있던 작품. 전쟁이, 역사가, 운명이 삼켜버린 작품들이다.

 

운명이 아닌 화재가 삼켜버린 작품도 있다. 전설적인 알코올 중독자인 맬컴 라우리의 바닥짐만 싣고 백해로라는 소설. 9년 동안 캐나다 오지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손이 떨려 글을 쓰지 못한 상태에서 선 채로 손등을 피가 날 때까지 테이블에 문지르며 구술로 완성했다는 그 소설은 그가 살던 전기도 수도도 없던 판잣집이 불타 무너지면서 사라진다. “그에게는 시간이 있었다, 더 많은 시간이라고 쓰인, 불에 탄 종잇조각들만 남아 그 소설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실비아 플라스가 마지막 몇 달간의 삶을 기록한 일기와 이중 노출이라는 소설도 있다. 남편의 불륜으로 절망하다 자살을 결행한 그녀가 자신의 상황, 자신의 감정, 자신의 분노를 기술한 일기는 그녀를 떠났던 남편 테드 휴즈의 결정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그녀의 미완성 소설 이중 노출은 어떻게 되었는지 휴즈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사라진 책들]은 작가의 고집이, 운명이, 사회가, 역사가 사라지게 만든 여덟 권의 책들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되살아나는지를 보여준다. 완성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작가가 실제로 쓴 책, 즉 누군가가 보거나 읽어본 적도 있지만 그 뒤에 파괴되었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책들의 단서를 좇으며 그 책들이 사라지게 된 경로를 탐색한다. 태워지고, 찢어지고, 버려지거나 아니면 단순히 사라져버린 이 책들을 위해 저자는 수많은 학교와 기관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전문가들을 인터뷰하고 작은 증거들까지도 면밀히 조사했다.


조지 고든 바이런과 실비아 플라스의 작품을 찾아 영국으로, 그리고 헤밍웨이가 살던 1920년대 프랑스를 지나 니콜라이 고골이 살았던 러시아로, 발터 벤야민이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스페인 국경에서 브루노 슐츠가 총에 맞아 죽었던 나치 점령지 폴란드로, 맬컴 라우리가 피신했던 캐나다 벽촌으로 이동하면서 저자는 숨어있던 진실을 발견하고 생각지도 못한 연결점들을 찾아냈다.


땅이 더 이상 없어도 땅에 대한 기억이 있으면 지도를 만들 수 있다 (서문 중에서)


사라진 책들은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책들을 상상하고, 그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책들을 다시 지어낼 가능성을 유산처럼 남겨두었다. 그 책들이 우리에게서 멀리 달아날수록 그 책들은 우리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도.


테드 휴즈가 조지아 대학교에 맡겨놓은 문서 가운데 실비아 플라스의 사후 60년이 되는 2022년까지 열어보면 안 되는 문서가 있다니, 그 안에 플라스의 미완성 소설 이중 노출이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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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좋아하는 전직 신부이자 최고의 유방 절제술을 갖고 있는 암 전문의 헨델.

어려서부터 오빠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고 자살 기도 전력이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어두운 성격 탓이라고 말하는 가족과 절연하고 사는 화가 피카소.

스스로를 호색가로 주장하며 언어와 욕정의 결합을 좇는 사포.

 

피카소와 사포와 헨델이라는 세 캐릭터가 시공을 초월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형태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는 철학과 예술과 성에 관한 질문이자 모색이고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아름다운 미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피카소사포헨델 세 사람이 돌아가며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예술과 역사와 종교를 논하고 자신의 현재를 고백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을 찾아 미로를 더듬어 나가는 체험. 전혀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 등장인물들이 한데 모이고 어지러운 이야기의 가닥들이 하나의 타래로 엮이는 순간, 퍼즐을 풀고 미로를 탈출하는 후련한 쾌감이 기다립니다.

우리 모두 예술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술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진실이 주어질 때 그 진실을 깨닫게 해주는 거짓말이다.”

_파블로 피카소

 


시간을 초월한 근미래의 런던에서 이들 셋은 각자의 도시에서 도망쳐 같은 열차에 탑승하게 되고, 흥미로운 한 권의 책을 통해 서로에게 끌리게 됩니다. 바로 어느 창녀의 철저하고 정직한 회고록이라 불리는 책. 이야기 속의 이야기인 어느 창녀의 철저하고 정직한 회고록을 통해 우리는 18세기 창녀인 돌 스니어피스라는 여인의 황당무계한 연애를 엿보고, 언어가 치유능력을 갖는 고통스러운 아름다움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야기를 읽는 독자일 수도 있는 창녀 돌 스니어피스( 스니어피스Sneerpiece라는 성은 남자의 물건을 비웃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 인형이라는 의미의 이름 돌Doll과 충돌한다)는 전통적으로 남성이 차지한 전지적 화자와 독자의 역할 모두를 대체합니다.


예술작품의 본질은 (흔히 오해하듯) 현실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고, 현실세계의 복제품이 되는 것도 아니며,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 독립적이고 완전하고 자치적인 세계가 되는 것이다. 또한 예술작품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 그 세계의 법규에 순응하고, 현실이라는 다른 세계에서 당신이 가졌던 믿음, 목표, 그리고 특정한 조건들을 당분간 묵살해야 한다.


소설의 첫 장을 열기 전에 이런 문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의 길잡이 같은 구절이지만 온전하게 예술을 온전히 향유하려는 많은 이들에게 기본을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제언이 아닐까 합니다. 가벼운 소설들에 싫증이 난 독자라면 이 구절을 떠올리며 잠시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넷 윈터슨


이 소설의 작가 지넷 윈터슨은 독실한 기독교도인 양부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열여섯 살에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깨달은 후, 그 경험을 소재로 스물다섯 살에 발표한 첫 소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로 휫브레드상 데뷔 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합니다. 이후 30년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종교예술성적 정체성 등을 소재로 글을 써온 그녀는 피카소헨델사포라는 거장들의 이름을 지닌 주인공들을 통해 성별의 차이에 어마어마한 사회적 법률적 함의가 담겨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 통용되는 세상의 이치에 수많은 물음표를 던지며 그물망 같은 권력들이 더께처럼 굳어진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는 지넷 윈터슨은 페미니즘과 문학, 성과 정체성, 가족 안에서의 성폭행, 종교음악과 거세, 아동성애 등의 날카로운 주제들을 대담하고 시적인 산문으로 유연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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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영국, 학구파 대학생 세 명과 미술에 염증을 느낀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 한 명이 거침없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대중음악계에 뛰어든다. 야심만만하고 단도직입적인 데다가 통제가 안 될 정도로 의욕이 넘치는 이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 중의 하나가 된다. QUEEN.

자유와 열정으로 빛나는 록의 보헤미안, 삶을 사랑했고 노래를 사랑했던 영원한 로커,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자서전으로 퀸의 역사를 돌아본다.



 

우리는 단순히 시늉만 하는 음악은 할 생각이 없었다. 우린 이렇게 얘기했다. “좋아, 록에 뛰어들어서 진짜 그걸 업으로 삼는 거야. 어설프게 하는 게 아니라.” 그때 우린 아직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훌륭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독자들이 읽는 것은 전부 프레디가 직접 한 말이다. 20년 동안 이루어진 프레디와의 인터뷰와 무수한 자료들을 토대로 이 책을 편집했다. 경우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정리하기는 했지만, 맥락에 맞춰 더 보태거나 뺀 것은 없다.

 

어떤 경우든 프레디가 한 말을 최대한 정확하게 남기고 모든 구문과 어감까지 그대로 살리려고 최선을 다했다. 프레디가 남긴 말들은 그의 서정적인 노래들처럼 고맙게도 기록 보관소에 잘 정리되어 남아있었다. 이 책을 만들고자 그 막대한 분량의 자료들을 옮겨왔고, 모든 자료가 한데 합쳐지면서 프레디는 생전보다 더 크게, 생생하게 모습을 들어냈고, 이제 독자들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편집자의 말)


편집자의 말대로 책은 모두 프레디 머큐리가 직접 한 말들로 이루어져 있어 그의 생각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가 남긴 말들은 다양하게 남아 있었으나 그 기록들을 모두 한 권의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 역시 그를 이해하는 새로운 자료가 된다.

 

20년 넘게 각광을 받고 2억 장이 넘는 음반이 팔렸는데도 프레디 머큐리는 대단히 비사교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가까운 친구들 외에 조금이라도 낯선 사람이 있으면 지나칠 정도로 낯을 가리고 불편해해서 인터뷰도 피할 정도로 쉽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풍부하게 담아냈다는 것이 이 책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특히 그와 같은 내용들을 프레디 머큐리 자신의 입을 통해 직접 전하고 있기에 그의 솔직하고 진지한 내면을 충분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20년 동안 이루어진 프레디 머큐리와의 인터뷰와 무수한 자료들을 토대로 편집한 이 책은 프레디 머큐리의 모든 것이 담겨 있으되 지루하지 않다. 절대 지루할 수가 없다!


프레디 머큐리 본인의 육성으로 퀸이라는 밴드가 얼마나 자주 해체될 뻔했는지, 그러면서도 이들이 음악적인 경계를 넘나드는 열정으로 꾸준히 밴드를 지켜 온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프레디 머큐리는 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꿈을 추구하고, 부와 명예를 관리하고, 아무런 미련이나 후회 없이 과거를 회상하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나 유산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자신감과 자만심이 줄줄 흐르면서도 남들 모르게 외로운 시간을 보내며 행복을 찾으려 했던 프레디 머큐리. 바위에 깃든 여린 감성 같은 그의 내면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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