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문학의 거목이었던 스웨덴 작가 헤닝 만켈은 <발란더 시리즈>의 저자로 국내에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67세의 일기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다수의 범죄이야기와 희곡, 청소년 소설 시리즈를 발표하며 작가적 명성을 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사회 운동가로서 그의 남다른 삶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아프리카 모잠비크를 자신의 또 다른 고향으로 삼아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극단을 꾸리고, 기아와 질병, 정치적 불의와 억압, 인종차별과 내전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대륙의 산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적, 사회적 투쟁을 선도한 투사로서의 면모는 많은 유럽인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작가로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정의를 무기로 굴복하지 않았던 그의 삶은 그의 유고집 <사람으로 산다는 것>을 통해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을 글쓰기로 이끈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아버지는 늘 책읽기를 권했고 나는 그에 충실히 따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상당히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었고, 상상이 생존의 기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빠르게 익혔습니다. 상상의 힘이 현실과 대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합니다.

여섯 살 때 나의 할머니는 내게 읽기를 가르친 이후 여전히 단어를 쓰거나 문장을 만들고, 이야기를 전달할 때의 그 놀라운 감정을 매번 환기하곤 합니다. 내가 맨 처음에 쓴 것은 로빈슨 크루소를 한 페이지로 요약한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이상의 것을 해내지는 못했지만 그 순간이 바로 내가 작가가 된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토록 많은 독자들이 당신의 작품을 좋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 그리고 그 속에서 끓임 없이 변화하는 사람들을 묘사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로써 글을 씁니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근본적으로 실존적인 질문들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내가 사는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하는 것들 말이죠. 내가 쓰는 모든 것은 어떻든 그것에 관한 것입니다.

 

창작의 아이디어나 영감은 어디에서 얻습니까, 또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십니까?

 

나는 도처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특히 책을 많이 읽습니다. 나는 일에 상당히 몰두하는 스타일이고 글을 쓸 때는 극단적인 엄격함을 유지합니다. 창작자로서 나는 항상 스스로를 몰아 부칩니다. 그래서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풍경이나 느낌을 수집하는 것이 나의 휴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마치 빈 보트에 물이 차올라 보트가 침몰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보트를 다시 비워야 할 때와 마찬가지 일입니다




형사 발란더의 인기요인은 무엇입니까?

 

발란더는 매우 인간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는 유능한 탐정이지만 약점이 많습니다.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인간관계도 취약합니다. 자기 일에 몰두하지만 스스로 옳은 일을 하는지, 아닌지 여전히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종 미스터리와 동떨어진 또 다른 곳을 갈망합니다. 그저 우리 모두가 때때로 그러는 것처럼 말이죠.

 

발란더 시리즈를 쓰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또 커트 발란더라는 인물은 어떻게 탄생했습니까?

 

발란더 시리즈의 아이디어는 1980년대 스웨덴의 인종차별에 대해서 쓰려던 것에서 기인합니다. 인종차별은 내게 있어 하나의 범죄이고, 범죄 소설을 쓴다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자연스럽게 여겨졌습니다. 나는 커트 발란더의 이름을 전화번호부에서 골랐습니다. 글을 쓸 때 항상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려고 노력합니다. 현실은 점점 피상적이고 폭력적으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널린 폭력과 그것이 주는 영향을 발란더를 통해 반추하고자 했으나 현실은 언제나 시를 능가합니다.

  

당신은 커트 발란더와 많이 닮았습니까?

 

우리는 음악에 대한 사랑을 공유하고 둘 다 자신의 일에 엄격한 태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발란더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가공의 인물이니 상관은 없습니다.

 


당신의 문학적 롤모델이 있습니까, 있다면 누구입니까?

 

아우그스트 스린드버그, 존 르 카레, 고대 그리스 희극 등등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맥베스를 예로 들자면, 현존하는 최고의 범죄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아프리카와 스웨덴 양국에서 살 생각을 했습니까? 어디가 좀 더 집처럼 느껴집니까?

 

아프리카와 유럽 사이를 오가던 삶은 나에게 균형 잡힌 관점과 거리를 주었고, 나를 좀 더 나은 유럽인이 되게 해준 것 같습니다. 스웨덴의 꽁꽁 얼어붙은 땅과 모잠비크의 불모의 땅은 각각 스웨덴의 추운 겨울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메마른 열기까지 각인시킵니다. 양쪽 다 나의 집입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유럽인일 것입니다.

 

범죄소설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나는 무엇인가 배우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 나는 비평적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책을 선호합니다. 좋은 범죄이야기는 범죄에 대해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범죄를 해결해야 합니다. 범죄 이야기가 반영하는 문화의 심리 분석이 이루어져야 하는 거죠.

 

아프리카에 살며, 일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특히 가혹한 빈곤과 HIVAIDS에 관련된 최근 상황을 고려한다면...

 

나는 매일 곤궁함과 비참함을 봅니다. 그러나 또한 기쁨을 보고 웃음소리를 듣습니다. 사람들은 스톡홀름 거리에서보다 마푸토 길거리에서 더욱 웃습니다. 마치 서양은 신용과 지불 사이에서 웃음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웃음이 아프리카인을 여전히 지탱해줍니다. 극단 <아베니다>와의 작업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도전이었습니다.

가장 빈곤한 나라에서 연극을 올리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곳에는 상상력이 있고 거기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합니다. 아프리카의 빈곤문제, 문맹과 HIV를 해결하기 위해 서구사회에 도움을 청했을 때 그들의 냉소에 좌절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모두를 도울 수 없지만 작은 도움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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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산다는 것- 삶의 끝에서 헤닝 만켈이 던진 마지막 질문
헤닝 만켈 지음, 이수연 옮김 / 뮤진트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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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 파리에서 보낸 반년은 누구나 항상 뭔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내게 가르쳐줬다. 담배를 피울 것인지, 아니면 전날보다 조금 더 풍성한 식사를 할 것인지 매일 선택해야 했다. 어떤 박물관에 갈 것인지 선택했고, 언제 하루 종일 시간을 내서 그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아직 먼 미래지만 언젠가 어떤 이야기를 쓰게 될지 상상할 것인지 선택했다.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였다.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알제리 독립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리고 전쟁의 여파가 여전히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던 파리에서 나는 그것을 배웠다. 한편 그때는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이 시작되기 직전이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나 자신이 나의 선생이었고, 보도나 지하철역 계단에서 내 곁을 지나던 모든 사람들이 나의 선생이었다.


그 후로 살아가며 가끔 잘못된 선택을 하긴 했지만, 아예 선택하지 않는다는 실패에 비하면 그런 잘못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런 저항 없이 그저 자신을 흐름에 맡기고 살며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거나 꼭 해야 할 궐기를 시도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종종 놀라게 된다.

죽음이라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물론 그것도 궐기의 한 형태이기는 하다. 하지만 내 삶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와 같이 더 깊이 들어가는 결정들은 우리가 직면하는,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내려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들이다.


앙티브에는 간단한 식재료를 판매하는 작은 식료품 가게가 하나 있다. 앙티브에 가면 나는 그곳에서 장을 본다. 그 가게에 가면 아침 일곱 시부터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열두 시간 동안 작은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남자가 있다. 내가 가게에 갈 때마다 그 남자는 예외 없이 텔레비전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정말 모든 프로그램을 다 보는 것 같다. 계산을 해야 할 때면 억지로 화면에서 눈을 돌리는 게 보인다. 그리고 내가 가게에서 채 나가기도 전에 남자는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린다.

하지만 그 남자는 항상 매우 친절하다. 자기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나는 경악을 느낀다. 그 남자는 정말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는 일을 자기 삶의 의미로 만들기로 결정했단 말인가?


삶은 대부분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그런 우연에 맞닥뜨릴 때면 해당 상황에서 의식적인 결정을 내릴 능력이 필요하다.

어느 날 나는 어떤 집 모퉁이를 돌다가 훗날 결혼하게 될 여자와 부딪쳤다. 그 여자가 그때 그 모퉁이를 돌아오리라는 걸 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 그보다도 우리는 결국 그 우연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각자 그리고 함께 선택할 수 있었다. 우리는 결혼했다.

내가 살면서 맞닥뜨린 가장 힘들었던 선택의 상황은 두 번의 낙태였다. 두 번 다 여자들이 임신중절을 결정하도록 내가 압력을 행사했다. 당연히 결국엔 그녀들의 선택이었고 결심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영향력 행사가 너무 과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자기 몸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것은 몸의 주인인 그 여자들이었음에도, 나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그 결정을 내 결정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나는 또한 어느 정도 용기와 이타심이 요구되는 결심을 하고 결정을 내린 적도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당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금전적인 문제에서 너그러움을 보였던 일들이 그렇다.


인간의 선택 가능성은 불공평한 사회에서 그가 어느 편에 설 것인지의 문제에도 적용된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우리는 모두 정치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정치적인 차원에 살고 있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계약에 따라 살고 있다. 그 사회계약은 또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도 포함한다.

우리의 결심을 위한 조건들은 무엇인가? 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생각하거나 또는 절대로 하지 않기로 선택할 때의 전제조건들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거부하는가?

 

자기 인생을 어떤 것으로 만들지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큰 특권이다.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에게는 오직 생존이, 그것도 아주 낮은 수준의 생존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인간이라는 종은 항상 그래왔다. 먹느냐 아니면 먹히느냐의 문제, 맹수와 적과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문제가 언제나 최고로 중요하다.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남도록,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삶에 최대한 잘 준비되어 있도록 만들어주는 일. 지난 세월 동안 순수한 생존의 문제가 아닌 그 무엇에 몰두할 수 있었던 인간은 극소수뿐이다. 지금은 그래도 그런 사람이 많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최소한 인류의 절반은 선택의 가능성 없이 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을 쓰지 않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 전제는 모든 사회형태에 적용된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먹여 살렸기 때문에 그들은 일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신들을 달래거나 수수께끼 같은 운명의 길들을 해석해주는 사제나 신전관리인 들이었을 것이다. 봉기와 혁명은 근본적으로 항상 같은 것에 대한 저항으로 일어났다. 힘들게 일하고 녹초가 되도록 애쓰는데도 생존하기 어렵다면 사람들에게 결국 남는 건 폭동뿐이었다. 반란을 설명하는 그 외의 다른 근거는 드물었다. 그보다 나중 단계에서야 생존 이상의 것에 대한 권리의 요구가 전면에 등장하였다.


물론 나도 선택의 가능성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안다. 어떻게 가족을 먹이고 가족에게 생필품을 제공할 것인지 매일 고민해야 하는 가진 것 없고 가난한 사람들 말이다. 뭔가 선택하고 삶의 방향 전환을 결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사치이다.

아프리카에서 보냈던 긴 시간 동안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진행되는 그 생존 투쟁을 보았다. 매일 저녁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는 염려가 새롭게 시작된다.

 

나는 몇 년 전 인도의 자이푸르와 뉴델리에 간 적이 있다. 어느 늦은 저녁 자이푸르에서 기차를 탔다. 철둑을 따라 불빛이 사슬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철로 바깥으로 몇 센티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곳, 천천히 조심스럽게 뉴델리 방향으로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는 기차를 공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앉아 있는 그 사람들의 초라한 오두막집들 사이로 내가 탄 기차가 달리고 있었다. 마치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에 나오는 주인공 말로처럼 어둡고 위험한 강을 거슬러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열차 주변으로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검은 강을 거슬러 몰락을 향해 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1980년대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도로변에 앉아 돌멩이로 포장도로를 두들겨 부수고 있는 여자들과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 돌먼지가 그들을 휘감고 있었고, 날씨는 말도 못하게 무더웠다. 도로를 부수고 있는 여자들을 보면서, 동행 중 한 사람은 그들이 어쨌든 이 일로 자신과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 외에는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할 것처럼 지쳐 보인다고 말했다. 뭔가 먹어서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는 순수한 생존의 문제 말고 다른 것들을 생각하기엔 그들은 너무 지쳐 있었다.

사회의 가장 변방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거리에 누워 죽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굶어 죽는 것도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못 된다. 오늘날 우리는 절대 빈곤을 근절하고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굶어 죽지 않을 만큼 식량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나는 이 선택을 범죄라고 일컬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존재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기아와 가난을 퇴치하지 않는 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세계적 차원에서 기소할 수 있는 법원이 없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개입해서 그 책임을 넘겨받도록 강제하는 법원도 없다.


파리의 거리를 헤매고 다니며 때때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땅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모았던 시절로부터 긴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더욱 분명히 알고 있다. 파리에서의 그 시절을 제외하면 나는 항상 여러 대안들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할 수 있고 시간과 힘이 있으며 배불리 먹을 것도 있는 쪽, 가난의 반대편에 있었다.

 

나는 틀린 결정을 내린 적이 많았고 그래서 후회할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내 결정들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말 한 마디 없이 전혀 저항하지 않고 흐름에 몸을 맡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 적이 있기는 하다.

나는 30여 년쯤 전에 한 번 흐름에 편승한 적이 있다. 잠비아 북서쪽에 자리한 므위니룽가 주, 잠베지 강의 가장 큰 지류 중 하나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선외(船外) 모터가 달린 조그만 플라스틱 배를 타고 있었다. 나까지 포함해 네 명이 그 좁은 배에 끼어 앉아 있었다. 우리는 상류로 올라가서 모터를 끄고 강의 흐름에 배를 맡기고 내려오면서 타이거피시(tigerfish)를 잡았다. 그렇게 내려오다가 강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우리 텐트와 자동차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그 지점은 하마들이 모이는 곳이어서 모터를 제때 구동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마들이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돼서 극도로 공격적인 시기였다. 굼떠 보여서 속기 쉽지만, 하마가 사실 매년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아프리카 동물에 속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강이 갈라지는 지점에 도착하기 전에 줄을 당겼지만 당연히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장난인 줄 알았다. 그러나 배는 빠른 속도로 하마 머리가 수면에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에 접근하고 있었다. 노를 저어서 하마들을 피해 도망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다. 배가 하마들 사이로 들어가면 모든 게 끝이었다. 하마들이 우리 배를 뒤집어버리고 그 거대한 입으로 우리를 반으로 뚝 잘라 죽일 것이 뻔했다.


모터에 대해 가장 잘 알아서 그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열심히 시동줄을 당기는 동안 보트 안에는 이상한 고요가 맴돌았다. 아무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몇 분 안에 시동을 걸지 못하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으로 뛰어들어 가장 가까운 강가로 헤엄쳐 가는 건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강에는 악어가 들끓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 익사하거나 악어 밥이 되지 않고서 무사히 강가에 도착할 수는 없을 터였다.

다행히도 시동이 걸렸고, 우리는 무사히 하마들을 피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 야영지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모닥불만이 타닥거리며 소리를 냈고, 우리의 얼굴 위로 불길이 춤추듯 타올랐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때 함께 있었던 친구 한 명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 배가 하마들에게로 점점 다가갈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에게 물었다. 그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그 생각을 자주 했던 모양이었다.

 

뭔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있나 생각했어. 그런데 아무런 대안이 없더군. 아마도 그때가 내 인생에서 모든 걸 포기했던 유일한 때였을 거야. 그러다가 시동이 걸렸을 때 나는 한순간 신이 있다고 믿었어.”

 

내가 대답했다.

점화 플러그가 젖어 있었어. 시동을 걸던 친구가 너무 서둘렀던 거야. 그러니까 신이 있고 없고의 문제와는 별 관계가 없었던 거지.”

 

그 친구는 내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물에 젖은 점화 플러그보다 신이 존재한다는 게 더 나은 설명이었다.

신이냐 점화 플러그냐. 그것은 내 선택이 아닌 그의 선택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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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산다는 것- 삶의 끝에서 헤닝 만켈이 던진 마지막 질문
헤닝 만켈 지음, 이수연 옮김 / 뮤진트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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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 걸까?

 


헤닝 만켈

스웨덴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연극연출가였고 헌신적으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헤닝 만켈은 201567세로 타계했다.

불치의 폐암 진단을 받은 후 2년이 채 안 된 투병 기간이었다.

 

, 그림 그리고 음악, 이 세 가지를 번갈아가며 되풀이해 즐기는 방식으로

나 스스로가 병에 고착되는 것을 피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시한부 삶이라는 현실은 헤닝 만켈에게 오래된 악몽 하나를 떠오르게 했다. 사람을 가차 없이 집어 삼키는 모래늪에 빠지는 꿈이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정신적인 위기 속에서 그에게 도움이 된 것은 몇 가지 큰 질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일이었다. 인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현재의 인류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속에서 헤닝 만켈 자신의 삶은 무엇이었고 무엇을 이루려 했는지를 기록한다.

 

죽는다는 건 현존하는 인간의 전통 중 가장 위대한 전통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망각과 거짓은 종종 사이좋게 함께 움직인다.

기억은 이야기이다. 어쩌면 토막 나고 잘게 부서진, 하지만 또한 온전한 이야기일 때도 많다. 나는 망각을 빈 공간으로 생각한다. 우리 내면의 공허하고 추운 우주. 망각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무관심해지고, 과거에 있었던 것과 앞으로 올 것에 대해서도 무관심해진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발란더 시리즈외에도 여러 권의 소설과 청소년 시리즈를 왕성하게 발표한 그는세상의 어두운 구석을 비추고자 했던 작가로서의 남다른 삶을 살았다. 가장 빈곤한 나라 모잠비크에서 삼십여 년의 세월 동안 아프리카인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고, 소설을 집필하며 아프리카에 대해 깊이 이해한 그는 기아와 에이즈, 인종 차별과 불평등, 식민 지배의 잔재와 대륙의 분열로 고통에 빠져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풀기위해 매우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글을 쓴다는 일은 내가 가진 손전등으로 어두운 구석들을 비추고 전력을 다해 다른 이들이 숨기려는 것을 밝히는 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억압과 불의, 폭력에 고통받는 곳이라면 주저없이 자신을 내던졌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봉쇄에 맞서 몸소 해상 봉쇄를 뚫고 들어가려다 체포되기도 했고, 인도의 빈민 구제 사업의 일환으로 마이크로 사업자 육성과 문맹퇴치, 아프리카 내전의 가장 큰 희생자인 아이들을 위한 마을 설립 등, 이 어둡고 고립된 세계에서 인간 연대의 믿음과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망으로 글을 쓰고, 말하고, 또 자신의 몸으로 증명했다.


 

나는 모두를 도울 수 없지만 작은 도움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큰 슬픔을 경험하지 않고선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다.

비극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비극은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다.

파리 시절 가장 강하게 내 기억에 남은 깨달음이 있다. 바로 사회의 밑바닥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내 경우에 그것은 불법 노동자로 사는 것, 닳고 낡아빠진 옷을 입고 항상 배고픔에 시달리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가난을 쉽게 알아본다. 아마도 자신도 언젠가 그런 상태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 밑바닥에 대한 경험이 그저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를 마주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사회를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결정 말이다.

바로 그것이 내 평생을 관통해온 질문이다.

 

아프리카에서 나는 세상에 쓸모없는 고통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그걸 내일 당장이라도 끝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 데 드는 비용은 서구 세계가 애완견 사료에 쓰는 비용만큼도 안 될 겁니다.

 

문명의 야만과 위선의 역사를 추적한 그의 소설 불안한 낙원에서 흑인들은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백인들은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다른 사람들, 아랍인들과 인도인들은,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진실이 파고들 여지가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라고 탄식했던 것처럼 그가 바라본 세계는 고통스럽지만 그의 시선은 냉철하고 또 따뜻했다.

 

만켈은 대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도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종의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는 항상, 심지어 해결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갈등상황에서도 인도주의적 관점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다.

_바바라 패치_오스트리아 일간지 <Die Press>

 

나는 매일 곤궁함과 비참함을 봅니다.

그러나 또한 기쁨을 보고 웃음 소리를 듣습니다.

사람들은 스톡홀름 거리에서보다 마푸토 길거리에서 더욱 웃습니다.

마치 서양은 신용과 지불 사이에서 웃음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웃음은 아프리카인을 여전히 지탱해줍니다.

Teatro Avenida와의 작업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도전이었습니다.

가장 빈곤한 나라에서 연극을 올리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곳에는 상상력이 있고 거기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합니다.

 

 


헤닝 만켈은 2005년 전 독일 대통령 호스트 쾰러의 초청으로 아프리카 지원 협력 회의 참석하여 최초로 연단에 올라 그가 만난 가난한 아프리카인에 관한 일화를 소개한다. 자신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발에 신발을 그려 넣은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적 위엄과 저항에 관한 상징이 된다.

 

산다는 건 또는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죽었다는 건 침묵에 둘러싸여 있음을 의미한다.

 

헤닝 만켈은 또한 평생 핵무기와 원자력 발전에 대한 반대의견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는 서구사회가 땅 속 깊은 곳에 최소 10만 년 동안 방사능 폐기물을 보관하고자 하는 계획에 대해 경고하면서, 그 폐기물에 대한 위험성을 후대에 어떻게 전달 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 모두 고민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했다.

 

나는 평생 원자력과 함께 살아왔다. 핵무기 공포와 핵무기 반대 시위, 계속 엉겨 붙어 싸우다가 어쩔 수 없을 때만 잠깐 서로 떨어져 일시적으로 평화로운 관계를 보이는 두 마리 야생동물 같던 소련과 미국, 그런 것이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그 다음에 찾아온 것이 원자력과 원전사고이다. 쓰리마일 섬, 체르노빌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사고까지. 나는 또 다른 원전사고의 카운트다운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원자력에 반대한다.

목숨을 위협하는 방사능 폐기물이 10만 년이라는 시간 동안 안전하게 보관된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인간이 세운 건축물 중 가장 오래 유지되고 있는 것들도 기껏해야 5, 6천 년 되었을 뿐인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살아남아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우리 문명에 속한 다른 것들이 전부 사라지고 나면 두 가지가 남을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우주공간에서 끝없는 탐험을 이어가고 있는 보이저 우주선과, 지하 수직굴에 저장된 핵폐기물.

우리에게는 미래의 인간들에게 어떻게 위험을 경고해줄 수 있을까 자문하고 고민할 의무가 있다.

만약 경고를 전달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없다면? 그렇다면 남는 건 망상뿐이다. 저 아래 암석 밑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도구는 망각이다. 그러나 망각을 너무 믿지는 말아야 한다.

망각과 거짓은 종종 사이좋게 함께 움직이니까.

 

소설로 연극으로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를 고발했던 만켈은 개인적이고 세계적인 재앙들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 만하다고 확신한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전략의 유무이고, 산다는 것은 결국 생존기술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선택 가능성은 불공평한 사회에서 그가 어느 편에 설 것인지의 문제에도 적용된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우리는 모두 정치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정치적인 차원에 살고 있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계약에 따라 살고 있다. 그 사회계약은 또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도 포함한다.

우리의 결심을 위한 조건들은 무엇인가? 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생각하거나 또는 절대로 하지 않기로 선택할 때의 전제조건들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거부하는가?

자기 인생을 어떤 것으로 만들지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큰 특권이다.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에게는 오직 생존이, 그것도 아주 낮은 수준의 생존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모든 희망이 끝나는 곳에는 인간의 삶 자체가 없다.

하지만 무언가는 항상 남아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항상 희망을 절망보다 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희망이 없이는 사실상 생존도 없다. 그것은 암 환자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마찬가지다.

 

201510월 세상을 떠난 헤닝 만켈. 그가 남긴 마지막 질문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한 위대한 문학인에게서 온 선물과도 같다. 사회와 역사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인간으로서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나은 인간, 더 나은 삶의 의미를 숙고한다.


 

헤닝 만켈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고자 하는 희망을 동인으로 활동해온 꼭 필요한 작가였다. 그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엘리트 의식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의 군더더기 없고 힘찬 산문처럼 그냥 그에게서 나온 것이다.

_펠리치타스 폰 로벤베르그(독일 일간지<Frankfurter Zeit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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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산다는 것- 삶의 끝에서 헤닝 만켈이 던진 마지막 질문
헤닝 만켈 지음, 이수연 옮김 / 뮤진트리 / 2017년 1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2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7년 01월 0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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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뮤진트리 신간을 소개합니다. 

유럽 문단의 살아있는 문학 보고 '로제 그르니에'의 <책의 맛>입니다.

 

로제 그르니에Roger Grenier는 1919년 프랑스 캉에서 태어났습니다

프랑스 서남부 피레네 산맥 근처 도시 포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가스통 바슐라르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1944년 파리 해방에 참여합니다

알베르 카뮈의 추천으로 레지스탕스 신문 <콩바>에서 기자로 첫 발을 내딛으며

 <프랑스 수아르>를 거쳐 20년 넘게 신문기자로 활동했습니다.

에세이 피고의 역할》을 시작으로 사십여 편의 작품을 출간했고페미나 상아카데미 프랑세즈 단편소설 대상알베르 카뮈 상 등 

프랑스 문학의 굵직한 상들을 석권했습니다

1985년에는 그의 전 작품에 대하여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 대상이 수여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1963년부터 갈리마르 출판사의 편집위원으로 일하며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쓰고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작가의 사생활을 아는 것이 중요한가? 

실제의 사건들혹은 사랑은 문학예술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이런 질문들과 함께 위대한 작품들과 작가들 사이에 놓인 미로를 탐사하는 로제 그르니에의 책 읽기는 지적 쾌감과 더불어 독서 행위의 참 맛을 선사합니다.

 

로제 그르니에는 작가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 창작의 동기를 탐색하려 합니다

수많은 작품과 문학적 인용에 기댄 이 문화적 전시를 인문주의적 독법이라 불러 봅니다.

읽기의 즐거움을 위해 쓰기의 비밀을 엿보는 창작의 키친으로 초대받은 느낌입니다. 

 

또 이곳은 프루스트, 플로베르, 나보코프・,플래너리 오코너체호프・, 보들레르, 카프카가 

저자의 친구 및 동료 들인 로맹 가리장 폴 사르트르클로드 루아그리고 멘토인 알베르 카뮈와 함께 행복하게 거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총 아홉 개의 에세이로 이루어져있으며  각각의 에세이들은 모두 하나의 문제 또는 테마로 시작되어 

문학적인 자유연상을 가장한 일종의 논쟁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르니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소설과 에세이들로부터 지혜와 유머를 끌어냅니다.

그의 펜 아래 줄지어 불려 나오는 어마어마한 저자와 작품의 무게만으로 충분히 묵직한 책이지만

소박하고 섬세하고 깊이 있는 노작가의 해박함은 우리로 하여금 즐겁게 책의 맛을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미디어를 점령한 사회 뉴스와 문학의 관계를 짚어보고여러 문학작품이 그리는 기다림에 주목하며 글쓰기가 시간과 맺는 관계도 살핀다
그리고 자기모순에 빠질 권리와 떠날(죽을권리에 대해작가의 사생활에 대해 성찰하고기억과 소설의 관계에도 주목한다
문학의 해묵은 주제인 사랑도 빠뜨리지 않고작가들에게 미완성작품과 마지막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피고글을 쓰는 이유와 글을 쓰려는 욕구에 대해서 성찰한다그의 펜 아래 어마어마한 작가들이 줄지어 불려 나온다
스탕달플로베르카뮈도스토예프스키프루스트체호프베케트멜빌피츠제럴드버지니아 울프헨리 제임스카프카보들레르포크너발레리헤밍웨이사르트르파묵페나크무질....
분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등장하는 저자와 작품의 무게만으로 이 책은 상당히 묵직하다
그러나 이 노작가의 해박함은 위압적이지 않다그의 문체는 과시적이지 않고 소박하며 섬세하고 깊이가 있다."
_역자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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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맛- 로제 그르니에가 펼쳐 보이는 문학의 세계
로제 그르니에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2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2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6년 12월 0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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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댕과 모란디의 정물화에서 
조안 미첼과 리히터의 작품까지 두루 아우르는 
독창적 감수성의 작가 허스트베트의 본격 미술 에세이



<사각형의 신비>

"나는 이 책이 미지의 것을 향한 정신적 방랑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때로 그림 한 점이 데려다놓은 알 수 없는 곳을 두루 거니는 한가로운 산책이었고, 또 때로는 어떤 전시장 전체의 풍경 속을 헤치고 다니는 산책이었다.

나는 보자마자 바로 파악할 수 있는 작품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고 분명히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그림들이다. 나는 이미지를 글로 풀어쓸 마음도, 복잡한 그림을 이전에 형성된 이론적 틀 안에 밀어 넣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를 매혹하는 것은 보는 것에서 시작해서 오직 바라보기만 하는 여행이다. 이를 위해 특별히 신비로운 직관력은 필요하지 않다. 그저 미술작품을 지각하는 일은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시각적 모험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바로 그런 환상적이고 기묘하고 움직임이 없는 세계를 다녀온 나 자신의 여행기다. 그림 앞에 멈춰 서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려고 한동안 기다리는 고독한 경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는 이 글을 썼다."

_시리 허스트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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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형의 신비- 네모난 틀 속의 그림이 전하는 무한한 속삭임
시리 허스트베트 지음, 신성림 옮김 / 뮤진트리 / 2012년 4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2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6년 11월 24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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