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의 출간 기념 북토크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유니크한 여성작가 시리 허스트베트를 만나다."

작가 시리 허스트베트는 시인이자 소설가, 미술비평가로서 여성의 주체적 시선을 통해 삶과 사랑, 예술과 세계를 매우 지적이면서도 직관적으로 성찰하는 귀한 작가입니다.

 

소설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 출간을 기념하여 이 책을 번역한 김선형 번역가와 함께 시리 허스트베트에게 닿는 다섯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일시 : 2017418() 19:00

장소 : 조커커피 (마포구 상수동 264 M빌딩 1)

참가비 : 1만원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위의 신청하기를 누르시고 네이버 예약 서비스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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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우아하고 고고한 스타일과 순수하고 비딱한 괴벽이 있다
_살만 루시디



" 이 책은 막막하고 불안한 젊음의 체감을 날카롭게 포착해 최대치로 증폭한 기묘한 스릴러다. 문학의 역사에서 '청춘'은 끝없이 화려하게 미화되어 숭배되고 찬양받아온 불멸의 소재다. 


하지만 자칫 잘못된 선택을 하면 삶이 나락으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던, 그래서 어쩐지 외줄타기 곡예처럼 느껴지던 그 생생한 불안감을 날것으로 픽션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온 사례는 찾기 힘들다. 


그런데 이 소설은 청춘의 이면에 도사린 섬뜩한 공포와 우울증에 현미경처럼 미시적인 시선을 가차 없이 들이민다."-역자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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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일생을 사진으로 볼 때면 '삶'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만 같습니다. 시간의 변화, 육체의 변화, 더불어 피사체 주변 풍경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때로 기묘한 감정을 갖게 합니다.  삶이란 것이 하나의 형태를 띠고 손에 잡히는 듯하지만,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의 비밀을 엿보는 느낌도 듭니다.




1946년 생인 제인 birkin, 1945년 생인 가브리엘 크로포드, 두 사람은 십 대 후반에 처음 만나 칠십 대가 된 지금까지 말 그대로 '어떤 상황에서라도 절대 가라앉지 않는 배'를 함께 만들어 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배우와 모델 일을 시작했지만 한 사람은 성공한 배우, 가수, 전 세계적인 유명 인사이자 <마더 오브 올 베이브스 Mother of all babes>가 되었고 또 한 사람은 카메라 뒤에서 친구의 일생을 담아낸 사진작가가 되었습니다. 물론 사진으로 담아낸 것뿐 아니라 친구의 뒤에서 든든한 조력자이자 동업자로, 가족을 함께 보살피는 자매로 친구의 삶을 품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제인 버킨과 가브리엘 크로포드


네 인생의 남자들은 스쳐 지나갈지라도, 여자친구들은 그들과의 관계를 네가 소중히 유지하는 법을 알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G.C)

제인 birkin은 많은 여성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그 '버킨백'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녀는 아주 젊은 시절부터 피크닉 바구니에 이런저런 잡다한 물건들을 넣어 다녔습니다. '버킨백'의 유래에 관해 에르메스와의 일화는 많이 알려져있습니다만 이 피크닉 바구니야말로 오리지널 버킨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추측건대 그녀가 이른(?) 나이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가 되었던 상황과 관계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시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서로의 아이들을 함께 볼보며 가족, 남자, 일, 삶의 여러 난관을 함께 극복해나갑니다.

우리 두 사람의 우정을 가장 잘 묘사한 단어를 꼽으라면 '결속'일 것이다. 결혼에서는 잘 결속하지 못했으나 우리의 우정에서는 달랐다. 힘들 때나 기쁠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특히 내 경우가 그랬다!) 건강할 때나 병중일 때나 우리 둘이서 헤쳐 나갔다.(G.C)







제인은 1966년 영화사의 걸작으로 남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욕망, Blow up>에 출연한 이래 배우로서, 그리고 가수로서 자신의 재능을 펼쳤고 인생 후반기에는 연극 무대와 영화 연출까지 자신의 한계를 시험했습니다. 열정적인 예술가로서의 삶만큼 사회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사라예보 봉쇄를 뚫기도 했고, 체첸의 어린이들을 만나러 가고 험한 현장을 누빌 때 언제나 그녀의 친구 가브리엘도 카메라를 들고 조용히 제인의 뒤를 따랐습니다.


제인 버킨의 사적인 기록이라 할만한 사진집 <제인 버킨>에는 두 사람의 우정이 수를 놓은 생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매우 자연스럽게 놓여 있습니다. 이 사진집을 보며 한 사람의 일생, 그 시간을 관찰할 수 있는 놀라운 경험뿐만 아니라만큼, 사람 사이의 우정의 질량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갖게 됩니다.  가브리엘 크로포드는 이 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책은 물론 '제인으로부터'나오게 되었다. 근사한 여성, 그리고 내 카메라가 무한대로 머물 수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친구에 대한 기록으로 읽었으면 좋겠다. 천부적으로 수천 가지의 앵글을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얼굴과, 지난 45년간 패션에 자연스러운 오마주를 보내온 육체와, 이 책에 실린 사진들 이면에 밴 인생에 대한 사랑을 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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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문학의 거목이었던 스웨덴 작가 헤닝 만켈은 <발란더 시리즈>의 저자로 국내에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67세의 일기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다수의 범죄이야기와 희곡, 청소년 소설 시리즈를 발표하며 작가적 명성을 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사회 운동가로서 그의 남다른 삶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아프리카 모잠비크를 자신의 또 다른 고향으로 삼아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극단을 꾸리고, 기아와 질병, 정치적 불의와 억압, 인종차별과 내전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대륙의 산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적, 사회적 투쟁을 선도한 투사로서의 면모는 많은 유럽인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작가로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정의를 무기로 굴복하지 않았던 그의 삶은 그의 유고집 <사람으로 산다는 것>을 통해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을 글쓰기로 이끈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아버지는 늘 책읽기를 권했고 나는 그에 충실히 따랐습니다어린 시절부터 상당히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었고상상이 생존의 기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빠르게 익혔습니다상상의 힘이 현실과 대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합니다.

여섯 살 때 나의 할머니는 내게 읽기를 가르친 이후 여전히 단어를 쓰거나 문장을 만들고이야기를 전달할 때의 그 놀라운 감정을 매번 환기하곤 합니다내가 맨 처음에 쓴 것은 로빈슨 크루소를 한 페이지로 요약한 것이었습니다안타깝게도 그 이상의 것을 해내지는 못했지만 그 순간이 바로 내가 작가가 된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토록 많은 독자들이 당신의 작품을 좋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그리고 그 속에서 끓임 없이 변화하는 사람들을 묘사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로써 글을 씁니다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근본적으로 실존적인 질문들입니다인간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내가 사는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하는 것들 말이죠내가 쓰는 모든 것은 어떻든 그것에 관한 것입니다.

 

창작의 아이디어나 영감은 어디에서 얻습니까또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십니까?

 

나는 도처에서 영감을 얻습니다특히 책을 많이 읽습니다나는 일에 상당히 몰두하는 스타일이고 글을 쓸 때는 극단적인 엄격함을 유지합니다창작자로서 나는 항상 스스로를 몰아 부칩니다그래서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풍경이나 느낌을 수집하는 것이 나의 휴식이 되어버렸습니다그것은 마치 빈 보트에 물이 차올라 보트가 침몰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보트를 다시 비워야 할 때와 마찬가지 일입니다




형사 발란더의 인기요인은 무엇입니까?

 

발란더는 매우 인간적인 캐릭터입니다그는 유능한 탐정이지만 약점이 많습니다당뇨병으로 고생하고 인간관계도 취약합니다자기 일에 몰두하지만 스스로 옳은 일을 하는지아닌지 여전히 의심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종종 미스터리와 동떨어진 또 다른 곳을 갈망합니다그저 우리 모두가 때때로 그러는 것처럼 말이죠.

 

발란더 시리즈를 쓰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또 커트 발란더라는 인물은 어떻게 탄생했습니까?

 

발란더 시리즈의 아이디어는 1980년대 스웨덴의 인종차별에 대해서 쓰려던 것에서 기인합니다인종차별은 내게 있어 하나의 범죄이고범죄 소설을 쓴다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자연스럽게 여겨졌습니다나는 커트 발란더의 이름을 전화번호부에서 골랐습니다글을 쓸 때 항상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려고 노력합니다현실은 점점 피상적이고 폭력적으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우리 주변에 널린 폭력과 그것이 주는 영향을 발란더를 통해 반추하고자 했으나 현실은 언제나 시를 능가합니다.

  

당신은 커트 발란더와 많이 닮았습니까?

 

우리는 음악에 대한 사랑을 공유하고 둘 다 자신의 일에 엄격한 태도를 지니고 있습니다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발란더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만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가공의 인물이니 상관은 없습니다.

 


당신의 문학적 롤모델이 있습니까있다면 누구입니까?

 

아우그스트 스린드버그존 르 카레고대 그리스 희극 등등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맥베스를 예로 들자면현존하는 최고의 범죄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아프리카와 스웨덴 양국에서 살 생각을 했습니까어디가 좀 더 집처럼 느껴집니까?

 

아프리카와 유럽 사이를 오가던 삶은 나에게 균형 잡힌 관점과 거리를 주었고나를 좀 더 나은 유럽인이 되게 해준 것 같습니다스웨덴의 꽁꽁 얼어붙은 땅과 모잠비크의 불모의 땅은 각각 스웨덴의 추운 겨울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메마른 열기까지 각인시킵니다양쪽 다 나의 집입니다그러나 나는 항상 유럽인일 것입니다.

 

범죄소설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나는 무엇인가 배우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나는 비평적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책을 선호합니다좋은 범죄이야기는 범죄에 대해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범죄를 해결해야 합니다범죄 이야기가 반영하는 문화의 심리 분석이 이루어져야 하는 거죠.

 

아프리카에 살며일하는 것은 어떻습니까특히 가혹한 빈곤과 HIV와 AIDS에 관련된 최근 상황을 고려한다면...

 

나는 매일 곤궁함과 비참함을 봅니다그러나 또한 기쁨을 보고 웃음소리를 듣습니다사람들은 스톡홀름 거리에서보다 마푸토 길거리에서 더욱 웃습니다마치 서양은 신용과 지불 사이에서 웃음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웃음이 아프리카인을 여전히 지탱해줍니다극단 <아베니다>와의 작업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도전이었습니다.

가장 빈곤한 나라에서 연극을 올리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그곳에는 상상력이 있고 거기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가난하다고 해서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합니다아프리카의 빈곤문제문맹과 HIV를 해결하기 위해 서구사회에 도움을 청했을 때 그들의 냉소에 좌절을 맛보기도 했습니다그러나 나는 모두를 도울 수 없지만 작은 도움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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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 파리에서 보낸 반년은 누구나 항상 뭔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내게 가르쳐줬다담배를 피울 것인지아니면 전날보다 조금 더 풍성한 식사를 할 것인지 매일 선택해야 했다어떤 박물관에 갈 것인지 선택했고언제 하루 종일 시간을 내서 그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아직 먼 미래지만 언젠가 어떤 이야기를 쓰게 될지 상상할 것인지 선택했다.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였다프랑스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알제리 독립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그리고 전쟁의 여파가 여전히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던 파리에서 나는 그것을 배웠다한편 그때는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이 시작되기 직전이기도 했다그 시절에는 나 자신이 나의 선생이었고보도나 지하철역 계단에서 내 곁을 지나던 모든 사람들이 나의 선생이었다.


그 후로 살아가며 가끔 잘못된 선택을 하긴 했지만아예 선택하지 않는다는 실패에 비하면 그런 잘못은 아무것도 아니다아무런 저항 없이 그저 자신을 흐름에 맡기고 살며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거나 꼭 해야 할 궐기를 시도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종종 놀라게 된다.

죽음이라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물론 그것도 궐기의 한 형태이기는 하다하지만 내 삶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와 같이 더 깊이 들어가는 결정들은 우리가 직면하는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내려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들이다.


앙티브에는 간단한 식재료를 판매하는 작은 식료품 가게가 하나 있다앙티브에 가면 나는 그곳에서 장을 본다그 가게에 가면 아침 일곱 시부터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열두 시간 동안 작은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남자가 있다내가 가게에 갈 때마다 그 남자는 예외 없이 텔레비전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정말 모든 프로그램을 다 보는 것 같다계산을 해야 할 때면 억지로 화면에서 눈을 돌리는 게 보인다그리고 내가 가게에서 채 나가기도 전에 남자는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린다.

하지만 그 남자는 항상 매우 친절하다자기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그러나 그의 인생에 나는 경악을 느낀다그 남자는 정말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는 일을 자기 삶의 의미로 만들기로 결정했단 말인가?


삶은 대부분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우리가 그런 우연에 맞닥뜨릴 때면 해당 상황에서 의식적인 결정을 내릴 능력이 필요하다.

어느 날 나는 어떤 집 모퉁이를 돌다가 훗날 결혼하게 될 여자와 부딪쳤다그 여자가 그때 그 모퉁이를 돌아오리라는 걸 나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나는아니 그보다도 우리는 결국 그 우연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각자 그리고 함께 선택할 수 있었다우리는 결혼했다.

내가 살면서 맞닥뜨린 가장 힘들었던 선택의 상황은 두 번의 낙태였다두 번 다 여자들이 임신중절을 결정하도록 내가 압력을 행사했다당연히 결국엔 그녀들의 선택이었고 결심이었다그러나 이제는 나의 영향력 행사가 너무 과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자기 몸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것은 몸의 주인인 그 여자들이었음에도나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그 결정을 내 결정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나는 또한 어느 정도 용기와 이타심이 요구되는 결심을 하고 결정을 내린 적도 있다고 생각한다특히 당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금전적인 문제에서 너그러움을 보였던 일들이 그렇다.


인간의 선택 가능성은 불공평한 사회에서 그가 어느 편에 설 것인지의 문제에도 적용된다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우리는 모두 정치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우리는 항상 정치적인 차원에 살고 있고동시대를 살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계약에 따라 살고 있다그 사회계약은 또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도 포함한다.

우리의 결심을 위한 조건들은 무엇인가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생각하거나 또는 절대로 하지 않기로 선택할 때의 전제조건들은 무엇인가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거부하는가?

 

자기 인생을 어떤 것으로 만들지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큰 특권이다지구상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에게는 오직 생존이그것도 아주 낮은 수준의 생존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인간이라는 종은 항상 그래왔다먹느냐 아니면 먹히느냐의 문제맹수와 적과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문제가 언제나 최고로 중요하다우리의 후손들이 살아남도록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삶에 최대한 잘 준비되어 있도록 만들어주는 일지난 세월 동안 순수한 생존의 문제가 아닌 그 무엇에 몰두할 수 있었던 인간은 극소수뿐이다지금은 그래도 그런 사람이 많은 편이지만그럼에도 최소한 인류의 절반은 선택의 가능성 없이 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을 쓰지 않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이 전제는 모든 사회형태에 적용된다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먹여 살렸기 때문에 그들은 일할 필요가 없었다그들은 신들을 달래거나 수수께끼 같은 운명의 길들을 해석해주는 사제나 신전관리인 들이었을 것이다봉기와 혁명은 근본적으로 항상 같은 것에 대한 저항으로 일어났다힘들게 일하고 녹초가 되도록 애쓰는데도 생존하기 어렵다면 사람들에게 결국 남는 건 폭동뿐이었다반란을 설명하는 그 외의 다른 근거는 드물었다그보다 나중 단계에서야 생존 이상의 것에 대한 권리의 요구가 전면에 등장하였다.


물론 나도 선택의 가능성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안다어떻게 가족을 먹이고 가족에게 생필품을 제공할 것인지 매일 고민해야 하는 가진 것 없고 가난한 사람들 말이다뭔가 선택하고 삶의 방향 전환을 결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사치이다.

아프리카에서 보냈던 긴 시간 동안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진행되는 그 생존 투쟁을 보았다매일 저녁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는 염려가 새롭게 시작된다.

 

나는 몇 년 전 인도의 자이푸르와 뉴델리에 간 적이 있다어느 늦은 저녁 자이푸르에서 기차를 탔다철둑을 따라 불빛이 사슬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철로 바깥으로 몇 센티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그 사람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곳천천히 조심스럽게 뉴델리 방향으로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는 기차를 공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앉아 있는 그 사람들의 초라한 오두막집들 사이로 내가 탄 기차가 달리고 있었다마치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에 나오는 주인공 말로처럼 어둡고 위험한 강을 거슬러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물론 열차 주변으로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검은 강을 거슬러 몰락을 향해 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1980년대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도로변에 앉아 돌멩이로 포장도로를 두들겨 부수고 있는 여자들과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돌먼지가 그들을 휘감고 있었고날씨는 말도 못하게 무더웠다도로를 부수고 있는 여자들을 보면서동행 중 한 사람은 그들이 어쨌든 이 일로 자신과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 외에는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할 것처럼 지쳐 보인다고 말했다뭔가 먹어서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는 순수한 생존의 문제 말고 다른 것들을 생각하기엔 그들은 너무 지쳐 있었다.

사회의 가장 변방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거리에 누워 죽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굶어 죽는 것도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못 된다오늘날 우리는 절대 빈곤을 근절하고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굶어 죽지 않을 만큼 식량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선택했다나는 이 선택을 범죄라고 일컬을 수밖에 없다그러나 존재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기아와 가난을 퇴치하지 않는 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세계적 차원에서 기소할 수 있는 법원이 없다그리고 우리 모두가 개입해서 그 책임을 넘겨받도록 강제하는 법원도 없다.


파리의 거리를 헤매고 다니며 때때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땅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모았던 시절로부터 긴 세월이 흐른 지금나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더욱 분명히 알고 있다파리에서의 그 시절을 제외하면 나는 항상 여러 대안들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할 수 있고 시간과 힘이 있으며 배불리 먹을 것도 있는 쪽가난의 반대편에 있었다.

 

나는 틀린 결정을 내린 적이 많았고 그래서 후회할 이유도 있었다그러나 내 결정들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내가 말 한 마디 없이 전혀 저항하지 않고 흐름에 몸을 맡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 적이 있기는 하다.

나는 30여 년쯤 전에 한 번 흐름에 편승한 적이 있다잠비아 북서쪽에 자리한 므위니룽가 주잠베지 강의 가장 큰 지류 중 하나에서 있었던 일이다우리는 선외(船外모터가 달린 조그만 플라스틱 배를 타고 있었다나까지 포함해 네 명이 그 좁은 배에 끼어 앉아 있었다우리는 상류로 올라가서 모터를 끄고 강의 흐름에 배를 맡기고 내려오면서 타이거피시(tigerfish)를 잡았다그렇게 내려오다가 강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우리 텐트와 자동차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그 지점은 하마들이 모이는 곳이어서 모터를 제때 구동하는 것이 중요했다하마들이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돼서 극도로 공격적인 시기였다굼떠 보여서 속기 쉽지만하마가 사실 매년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아프리카 동물에 속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강이 갈라지는 지점에 도착하기 전에 줄을 당겼지만 당연히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처음에는 그냥 장난인 줄 알았다그러나 배는 빠른 속도로 하마 머리가 수면에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에 접근하고 있었다노를 저어서 하마들을 피해 도망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다배가 하마들 사이로 들어가면 모든 게 끝이었다하마들이 우리 배를 뒤집어버리고 그 거대한 입으로 우리를 반으로 뚝 잘라 죽일 것이 뻔했다.


모터에 대해 가장 잘 알아서 그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열심히 시동줄을 당기는 동안 보트 안에는 이상한 고요가 맴돌았다아무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몇 분 안에 시동을 걸지 못하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강으로 뛰어들어 가장 가까운 강가로 헤엄쳐 가는 건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강에는 악어가 들끓었다우리 중 어느 누구도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 익사하거나 악어 밥이 되지 않고서 무사히 강가에 도착할 수는 없을 터였다.

다행히도 시동이 걸렸고우리는 무사히 하마들을 피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 야영지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모닥불만이 타닥거리며 소리를 냈고우리의 얼굴 위로 불길이 춤추듯 타올랐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때 함께 있었던 친구 한 명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우리 배가 하마들에게로 점점 다가갈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에게 물었다그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그 생각을 자주 했던 모양이었다.

 

뭔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있나 생각했어그런데 아무런 대안이 없더군아마도 그때가 내 인생에서 모든 걸 포기했던 유일한 때였을 거야그러다가 시동이 걸렸을 때 나는 한순간 신이 있다고 믿었어.”

 

내가 대답했다.

점화 플러그가 젖어 있었어시동을 걸던 친구가 너무 서둘렀던 거야그러니까 신이 있고 없고의 문제와는 별 관계가 없었던 거지.”

 

그 친구는 내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에게는 물에 젖은 점화 플러그보다 신이 존재한다는 게 더 나은 설명이었다.

신이냐 점화 플러그냐그것은 내 선택이 아닌 그의 선택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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