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71)

최익현 선생님께서 왜놈들이 주는 음식을 마다하시고 끝내 굶어서 돌아가신 것은 실로 큰 뜻을 이루신 것이고, 우리에게 높은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후일을 기약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도 합당한 것인지 따져보아야 합니다. 대마도에서 후일을 기약하는 것은 어찌 되었거나 살아서 조선땅으로 돌아오는 것일 테지만, 우리의 처지에서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 꼭 산을 내려가 왜놈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산에서 목숨을 보존해 가며 후일을 기다리며 기회를 잡아 무장을 튼튼히 해나가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중대한 문제는 전과를 책하지 않겠다는 조정의 조칙을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73-74)

지난번의 최익현의 처가가 그 고질병이 얼마나 깊은지를 잘 보여준 것이었다. 황제인 고종도 고종이었고, 의병장이라는 최익현도 최익현이었다. 풍전등화인 나라를 구하겠다고 목숨을 걸고 나선 의병들에게 국왕이 해산명령을 내리는 것은 무엇이며, 그 이름 좋은 황칙을 받았다고 하여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며 일으킨 의병을 일순간에 해산시키고 포박당하는 의병장의 처사는 또 무엇인가. 그 결과 불쌍한 평민들만 왜놈들에게 무참히 살육당했다.

최익현은 <황칙>이라는 것의 진의를 면밀히 파악했어야 했다. 을사보호조약이 상감의 뜻이 아니었듯이 그 황칙이라는 것도 상감의 진의가 아닐 수 있었다. 그것이 만약 마지못해 작성된 것이었다면 최익현은 그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불충을 저지른 것이었다.


(107-108)

같은 날 <뉴욕 타임스> <조선민족은 아직도 살았다>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실었다. 그전에 이미 사건을 보도한 것은 물론이었다.

<스티븐슨를 저격한 것은 어느 정도 능력을 가진 조선인들 중에서 자기들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의사표시였고, 자기 민족의 운명을 자기들 힘으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형벌에 상관없이 그 젊은 청년들은 그들의 판단으로 치밀하고 용감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일본을 돕고 조선을 배신한 사람을 공격했다. 물론 그 행동은 그리 바람직하거나 현명한 처사는 못된다. 그러나 추상적으로 생각할 때 그 행동에는 상당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사설은 미국대통령 루스벨트가 <조선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방어하기 위해서 손가락 하나 쳐들지 못하는 민족이다>라고 하면서 조선이 일본의 보호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편 것과는 정반대 논지였다.


(109)

평소보다 더 말이 없어진 방영근은 날마다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장인환, 전명훈…… 장인환은 누구고, 전명운은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들은 보통사람들하고 어떻게 다를까. 특별나게 몸집이 크고 기운이 센 것일까. 글쎄, 씨름꾼이 아닌데 그럴 리가 있을까. 사람이 꼭 몸집이 크고 기운이 세다고 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 하나뿐인 목숨을 내걸고 죽기를 작정하고 나선 것이 아닌가. 죽기를 작정하자면 몸집이 크고 기운이 세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건 마음이 강단지지 않고서는 될 일이 아니다. 그 사람들은 마음이 얼마나 강단지기에 죽기를 작정하고 나서서 그런 장한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그들은 나이가 스물네다섯이다. 그러면 나와 같은 나이들이다. 그들도 고향에는 부모형제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목숨을 내걸고 나섰다. 나는…… 나는 그럴 수 있는가…… 내가 만약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갈 수 있었다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112)

이승만은 7 16일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하버드대학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을 만큼 잘하는 영어로 죽음을 눈앞에 둔 애국자 둘을 살려내리라는 기대로 동포들은 이승만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리고 몇몇 유지들은 서로 다투어 이승만을 자기에들 집에서 묵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그들의 성의를 냉정히 거절하고 비싼 호텔에 투숙하고 말았다.


(112-113)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벌어졌다. 이승만이 8 25일에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버린 것이다.

한인동포 여러분들께 매우 미안합니다. 그러나 재판일이 언제 될지도 모르고 또 나 역시 논문을 써야 되니 시간관계로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예수인이니까 살인관계 재판 통역은 원하지 않습니다. 살인행위는 하나님의 뜻에 거역되는 죄악입니다.”

이승만이 남기고 간 말이었다.

이승만의 행동이나 그 말은 동포들에게 크나큰 충격이 되었다. 그 소문은 사람들 사이에 삽시간에 퍼졌고, 이승만은 실망과 원성의 대상이 되었다.

피나는 돈만 축내고 갔구먼.”

누구나 한마디씩 하는 말이었다.


(143)

그들은 두 달 동안에 벌어진 수많은 죽음의 끔찍스러움에 마음병이 들어 있었고, 의병의 기세가 불 꺼지듯 잦아들어 버린 것을 한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들이 속마음으로 의지하고 믿은 건 의병뿐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번에도 갑오년 때와 다를 것 없는 감정의 엇갈림을 겪고 있었다. 그때 가슴속에 품었던 기대가 무너진 자리에 밀려든 것은 허망감이었다. 그 막막하고 두려운 허망감에서 그들은 헤어날 길이 없었다.


(165)

그들은 용맹스러웠다. 보잘것없는 무기로 신식무기를 갖춘 적들과 맞서 싸웠다. 모두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다가 죽어갔다. 누가 강제로 끌어낸 것도 아니었고, 싸움에 이긴다고 무슨 보장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은 죽음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싸우다가 죽어갔다. 그들은 누구였는가. 그들은 사람대접이라고는 받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하층민들이었다. 대대로 빼앗기고 무시당하며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려고 목숨을 내걸고 나섰던 것이다. 그들의 지고한 마음과 뜨거운 용맹 앞에서는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 비해 임금은 무엇이고, 대소 벼슬아치들은 또 무엇이었는가. 임금은 왜놈들에게 손발 묶인 허깨비였고, 모든 벼슬아치들은 왜놈들의 앞잡이요 매국노들이었다. 결국 나라의 참된 주인은 왜적과 맞서 싸우다 죽어간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뒤에서 도운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적과 싸우다가 수없이 죽어간 그들의 피는 이 땅의 산하를 적시었건만 나라는 구해지지 않고 합방의 위기는 목전에 닥쳐와 있었다.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204-205)

그러고 말일세, 나라가 망하는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서 상감이 짊어져야 할 책무가 더 큰 것인가, 아니면 신하고 백성이 짊어져야 할 책무가 더 큰 것인가. 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신하들이 줄줄이 자결하고, 백성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도처에서 의병을 일으켰네. 그때 상감은 무엇을 했는가. 구중궁궐에서 비통 통분해했는가. 그것으로 상감의 책무가 다 되는 것인가? 또 그와 반대로 매국노 중신놈들의 요구를 물리치지 못하고 의병해산령에 옥새를 찍어 윤허하는 것이 상감의 책임인가? 헤이그에 밀사를 보낸 것을 자네는 상감이 수행할 수 있는 최상의 책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네만, 그거야말로 한 나라 상감으로서 얼마나 비굴하고 무책임한 처사인가. 무기를 들고 쳐들어온 놈들을 수만리 밖에 있는 딴 나라 사람들에게 물러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다니, 그런 답답한 노릇이 어디 또 있겠는가. 보호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그때 실기를 했으면 그다음 강제 양위를 당했을 때 상감은 만백성을 향해서 외쳤어야 하네. 백성들이여, 나와 더불어 왜적들과 싸우자 하고 말이네. 그리고 군대를 이끌고 앞장섰어야 했네. 그러면 왜놈들이 곧 죽이고 말았을 거라고? 죽이면 죽어야지. 그게 나라 뺏긴 상감이 책무를 다하는 길이네 상감이 해산령을 내려도 나라를 구하겠다고 의병으로 나서서 수만명씩 죽어가는 백성들인데 만약 상감이 군대를 이끌고 나섰다가 왜놈들의 총칼에 죽었다면 백성들은 어찌 했겠나. 이 땅에 합방이란 없었네. 상감은 그 책무를 피한 덕에 지금 연명은 하고 있으나 진작에 죽은 목숨이고, 그 초라한 몸에 걸쳐진 것은 백성을 버려 나라를 망친 죄, 치정을 그르쳐 사직을 망친 죄가 있을 뿐이네. 어떤가!


(239)

사진결혼의 소문이 농장마다 퍼져나가면서 나이든 총각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고, 잊을 수 없는 고향병을 더욱 도지게 했다. 그런데 여자들의 비자없는 입국은 조선사람들에게만 주어진 특혜가 아니었다. 농장주들은 그 방법을 일본 중국 필리핀 사람들에게도 확대 실시하게 했던 것이다.

사진관의 문턱이 닳아질 지경이 되는 가운데 최초의 조선 신부감이 하와이에 도착하게 되었다. 국민회 회장 이대수가 시범을 보이듯 신부감을 맞아들인 것이다. 전라도 처녀 최사라가 일본배 지양환을 타고 호놀룰루 항구에 닿은 것은 1910 12 2일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 - 통권 184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 통권 184호를 읽었단다. 2023년은 언제 갔는지 모르게 지나가버렸구나. 여러 가지 의미가 있던 한 해였는데, 1년 여간 휴식기를 가졌던 녹색평론이 다시 돌아온 것도 아빠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이었단다. 환경에 다시 생각하게 하고, 사회의 모순들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글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 아빠에게 여러 경각심을 심어주는 든든한 책이었는데, 1년 동안 없어서 아쉬웠거든. 이번 겨울호의 부제는 파국과 전환, 기로에 선 한국사회더구나.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아직 2년도 안되어 희망이 사라져 보이는데,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나라를 얼마나 더 엉망으로 만드실지 걱정이구나.

이 책에서는 현정부의 정책을 보면, 환경과 기후에 관련된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하는구나. 몇 달 전인가 일회용 용품과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를 다시 푼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어. 그래서 플라스틱 대용으로 친환경 빨대를 만든 업체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소식도나라의 정책이 이리 왔다갔다 하고, 그것도 과거로 회귀하는 정책을 쓰고 있으니, 국민들은 어떤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걸까. 그리고 현정부의 정책 중에 농민의 목소리가 포함되어 있는 정책도 없다는구나. 농민의 남는 쌀을 구매해주는 것은 정부의 역할로, 그들이 또 힘을 얻어 다음 해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동력을 얻는 것이란다. 앞으로 더 농업이 중요한 산업이 되는 것은 기정 사실인데 말이야. 그런데 그것을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하며 거부권을 행사했다는구나. 그러면서 대기업 미분양 아파트를 세금으로 구매할 계획이라고 하네. 이 이야기를 회사 사람한테 했더니, 건설사로부터는 돈을 받고 농민들에게 돈을 받지 않아서 그럴 거라는 신빙성 있는 말씀을 하시더라.

====================

(216)

그러나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양곡법 개정안은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소득을 높이려는 농정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막대한 혈세를 들여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에서는 대기업 미분양 아파트 구매하는 데는 혈세를 10~20조 원 들이면서 농민 쌀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혹독하냐?”고 항의했다. 실제로, 전국 곳곳의 미분양 아파트는 6만 가구에 육박하고, 이것을 정부가 사들이면 47조 원대에 이르는 주택도시기금(주택채권, 청약저축, 세금전입 등으로 구성)이 거론된다.

====================


1.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란다. 민주국가이면서 공화국가라는 의미란다. 그런데 민주와 공화는 상반된 개념이라고 하는구나. 민주는 시민의 평등을 중시하는 반면, 공화는 시민의 불평등을 전제로 한다고 하더구나. 이런 모순된 정치 체제이기 때문에, 후진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그보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우리 나라의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정치인들이 자기 또는 자기네(정당) 밥그릇 챙기는데 열정을 쏟고 있다는 것이란다.

====================

(51)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한다. 민주와 공화의 개념을 합쳐놓은 것이다. 그런데 민주(民主, demokraita)와 공화(共和, res publica)는 기원과 담기는 내용이 서로 같지 않다. 기원에서, 전자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정치, 후자는 로마의 공화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내용에서는, 전자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다소간 시민들 간의 불평등을 전제로 한 귀족공화정에서 유래한다.

====================

우리나라는 대의제를 따르고 있는데, 이 대의제의 기원은 그리고 아테네의 민주정이란다. 아테네의 민주정을 따르려면 정확하게 따르면 좋겠는데, 장점을 과감하게 생략해 버렸단다. 아테네에서는 어떤 법안을 정할 때 시민들로 이루어진 민화에서 최종 결정을 한다고 하는구나. 법안이라는 것이 시민들을 위한 법이니 시민들이 최종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민주정치에서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은 타자를 지배하는 배타적 특권이라기보다, 공동체를 위한 봉사를 동반하는 것이라는 말에 깊은 공감이 가더구나. 현정부에서는 진정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없어 보이는구나. 말 한마디에 아랫사람들이 벌벌 기는 그런 권력만이 보여.

====================

(59)

아리스토텔레스도 공동체의 선을 중시하였으나, 그 선은 국가의 획일적 제도가 아니라 개인의 덕성에 의해 실천되는 것이었다. 그는 개인의 타고난 능력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 경제적 소유 등에서 불평등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불평등은 어디까지나 기능적인 적으로서,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역할, 책무의 수행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불평등이 바로 정치권력의 지배, 피지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국가의 목적 실현을 위한 공동체적 기여에 비례해서 배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타자를 지배하는 배타적 특권이라기보다, 공동체를 위한 봉사를 동반하는 것이다.

====================

이번호에는 민주화 시민 운동을 60년 가까이 하신 정성헌 선생의 대담이 실려 있단다. 아빠는 모르는 분인데, 오랜 민주화 운동을 하신 분답게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계시면서 먹거리, 정치, 기후위기 등 다방면에 대한 의견을 주셨어. 이런 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정부 인사는 없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정성헌 선생의 말씀 중에 학원과 공부에 치여 운동부족인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너희들도 생각나더구나. 아빠와 엄마의 책임이 크고 반성을 해야겠구나.

====================

(173-174)

맞아, 애들이 안 움직이잖아요. 어제 TV를 보니까 서울시내 애들 중 놀 데가 없는 애들이 80%가 넘어요. 먹고 뛰어노는 게 기본인데 하루에 필요한 활동량을 계산한 게 있어요. 13세까지는 일일 활둉량이 2만보 이상이래요. 그래야 건강한 몸이 된답니다. 19세까지는 1 8,000보고, 어른들은 7,000보 이상이면 괜찮대요. 그런데 기분 좋게 걸을 데가 마땅치 않아요. 난 조금만 살펴보면 생명사회를 만들 수 있는 생활운동은 아주 쉽다고 봐요. 문제는 지나친 디지털화예요. 이런 연구결과가 있어요. 아이가 태어나서 5살이 될 때까지 4만 회 이상 질문을 해야 뇌가 정상적으로 발육이 된다. 그런데 온갖 디지털 기기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차단하고 있어요. 애들이 자극적으로 빠른 것에만 반응을 해서 즉자적인 인간이 되어버린다고.

====================

그 밖에 생각보다 오래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 전쟁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이야기, 한반도 지정학적 위기를 이야기하면서 대책 없는 현정부의 반중 드라이브 이야기, 탄소 중립을 위한 방안 제시, 학생 인권과 갑질 학부보, 아동학대법으로 인해 선생님들의 인권은 보호 받지 못하고 그로 인해 선생님들의 자살 사건이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 친환경 에너지를 위한 그린 뉴딜 정책이 유행인데, 제대로 된 그린 뉴딜 정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단다.

이번 호에 실린 책 리뷰 중에 <순이 삼촌>으로 유명한 현기영 작가님의 신간 <제주도우다>라는 책이 소개되었단다. 아빠가 현기영 님의 책은 많이 읽지 않았지만, 이번 신간은 한번 읽어보고 싶구나.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단다.

====================

(239)

어느 인터뷰에서 현기영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제주 4.3 3만의 피해 통계로 쓰지만, 문학은 3만의 개개 사건으로 보는 거다라고, 얼마나 엄청난 선언인가. 3만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의 죽음이 제주 곳곳에서 3만 번 벌어진 것이라니. 그는 이 같은 자신의 신념을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하여 등장인물들이 각기 다 개별적으로 자기역할을 수행하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이창동 감독이 추천사에, “수많은 개인들의 삶과 목소리와 내면을 담아내는 섬세하고 인간적인 시선이라고 표현하면서, “읽는 내내 숨이 뜨거워지면서 거장의 숨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고 적었는데, 이는 결코 과찬이 아니다. 현기영은 최선을 다해 작품 속 인물들에게 독자성을 부여한다. 하나의 세계가 스러진 게 아니라, 3만 개의 세계가 그때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므로.

====================


2.

녹색평론에는 매 호마다 시 몇 편을 소개해준단다. 시 읽기를 어려워하는 아빠는 활자만 읽고 넘기는데, 이번호에 실린 시 중에 한 편은 좋았단다. 김해자 시인의 <30년 후, 소년 소녀에게>라는 시인데,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에 대한 비판을 시로 지었는데, 머리 속에 잘 들어오더구나. 좀 긴데, 이 시 한 편만 읽으면 너희들도 후쿠시마 오염수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전체를 발췌해 보았단다.

====================

김해자


30년후, 소년 소녀에게


1.

2023 8 24

인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선택했다

엘니뇨, 미래의 소년들이여,

너희 선조들은 핵물질을 10배 희석한 오염수를

바다에 흘려 넣기 시작했다

30만 년 동안 당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라니냐, 아 냉철한 미래의 소녀들이여,

1 2,500톤을 방류하면 지하수가 125톤 들어온단다

지하수를 100배 희석하면 1 2,500,

하루에 2 5,000톤 오염수를 바다에 투척하기 시작했다

30년간 2 7,000톤이라니,


너희가 살아갈 바다를 천천히 죽여가기로 결심했다 어른들끼리,

훔쳤다 너희들이 먹고살 미래의 시간을

권력은 결정했다 집단자살의 길을

엘니뇨, , 이럴 수가


2.

2011 3 11일 후쿠시마 원자로가 연쇄적으로 폭발한 이후

원전 저장탱크에는 137만 톤의 오염수가 쌓여가고 있었다

그냥 가지고 있으면 될 일이었다 1,000개가 차면

1,000개의 탱크를 만들면 될 이었다


돈 때문이었다

지하에 묻으면 3조억

대기에 방류하면 3,000

바다에 방류하면 300억이 들기에

그들은 저희들까리 결정했다 가장 돈이 적게 드는 길을

엘니뇨, , 이럴 수가


썩지 않는 죽음,

핵연료와 철근과 콘크리트 찌꺼기가 녹아 있는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기로,

가장 싼 것은 가장 위험한 길이었다 돈과 권력을 융합한 그들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미래의 너희들에게도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


안전하다고 말하는 저들의 말이 진실인가

아니다, 진실은 어느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는 데 있다

과학과 지식과 통계수치를 아무리 들먹여도,

이것은 인간이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몰론 몰라도 선택할 수 있다, 당첨이 안되어도 복권을 살 수 있듯이

그러나 이 길의 결과는 모두에게 무조건 나쁜 것이기에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3.

바다에 핵오염수를 방류함으로써 누가 이익을 보는가

도쿄전력이다 일본이다 몇 사람뿐이다

누가 손해를 보는지, 오 라니냐, 너는 알겠지

지구상 모든 생명체와 바다와 하늘과 바람이란 걸

아니지, 이익의 반대말은 손해가 아니라

바로 죽음이라는 걸


여기에 있는 우리의 죽음이 아니라

10 30 60 100년 후에 올

너희들의 목숨이란 걸

미래의 너희 부모가 지금 우리의 자식들인 것처럼

바다와 땅과 공기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땅과 바다와 사람은 한몸으로 이어져 있기에


, 엘니뇨, 따뜻한 바닷물 같은 소년이여,

너희는 바다에서 헤엄치고 모래집을 지을 수 있을까,

내가 만나지 못할 30년 후 소녀들이여,

미안하다.

우리는 아직 이 죽음의 길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를 철회하라

지금이라도 멈춰라 죽음의 방류를

====================


PS,

책의 첫 문장: 역사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라고 한다.

책의 끝 문장: 그 과정은 행위만 아니라 마음이 함께해야 할 것이다.



기본적인 인권과 자치권을 회복하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평화적, 법적 노력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수십 년간 냉소와 경멸로 일관하고 있고 국제사회는 무관심하거나 방관하는 상황에서,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사람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들은 선거를 통해서 권력을 잡은 가자지구의 합법적 통치세력이었다. 저항하는 ‘테러리스트’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토벌하겠다는 이스라엘의 식민정책 속에서 ‘하마스’ 전사들이 끊임없이 양성되고 있다. - P4

정부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정부가 만드는 정책이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시민들이 폭넓게 개입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개입을 허용하는 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중요한 예를 들어보자.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는 농업, 농촌, 식품산업 기본계획은 농정에 있어서 유일한 종합적 중기적 계획이다. 그런데 이 계획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철저히 농림축산식품부의 집안일이었다. 국책연구기관이 연구용역의 형태로 기본적 틀을 만들었고 최종 단계에서 이른바 전문가들의 의견을 형식적으로 청취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자체 판단으로 만들어졌다. 계획의 수립 주체가 정부인 것은 법이 정하고 있는 바이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다. 5년간 농정의 기본적 틀을 만드는 일에 농민, 농촌 주민, 소비자, 환경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은 의견을 표명할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였다. - P18

민주정치의 핵심은 민중주권이며, 그것은 민중에 의한 정책 결정권과 결정 절차로서의 다수결을 원칙으로 한다. 현재 한국에서 민중주권을 현실화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담론이 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민중을 우매한 존재로 보고 민중이 직접 결정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며, 그래서 남달리 현명하고 도덕적인 사람을 뽑아 권력을 대신 행사하게 해야 한다는 대의제 담론이다. 둘째, 민중은 날 것 그대로서가 아니라 심사숙고하거나 교육과 훈련을 받아서만 올바른 결정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도 민중을 완결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지도자 혹은 어떤 다른 기제에 의해서 교도되어야 한다고 보는 점에서 대의제와 같은 맥락에 있다. - P60

예술은 인간을 넘어서 모든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문학이 사람을 갑자기 변화시킬 수야 없겠지요. 그래도 문학은 끊임없이 인간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문학도 없고, 예술이 없다면 인간은 더욱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어질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맥락에서 이 시대 교육과 문화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오늘날 세계 어디에서나 문학을 비롯해서 교육과 문화가 타락하면서 인간이 대단히 왜소해졌어요. 뭔가 대중문화가 인간을 작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더 좋은 문학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P111

그린뉴딜은 최근 수십 년래에 등장했던 어떤 제안보다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것은 실업문제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전 국민에게 의료보험과 주거를 보장하고 학자금 대출을 탕감해주면서 전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안에는 장애물이 있다. 어떤 형태가 됐든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은 자연과 인간 삶의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세계인의 삶의 질을 고양하면서 동시에 화석연료를 비롯한 에너지원의 사용을 줄이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진보적인 그린뉴딜이라면 에너지 삭감, 즉 에너지 보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사용 총량을 줄이는 것은 인류가 존속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 P13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4-01-28 1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샀는데 다 읽지 못했어요. 이렇게 정리하시다니 훌륭합니다!!
좋은 글이 많아 사게 되더라고요.^^

bookholic 2024-01-28 21:51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많은 분들이 <녹색평론>을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페크 님의 글도 <녹색평론>에서 만나 보면 좋겠습니다^^
 
















(20)

역병에 걸렸다는 느낌은 무덤 저편에서 건너온 듯 그 무엇으로도 완화되지 않는 오한, 늪에 빠지는 듯한 열병, 몽둥이질을 당한 듯한 두통, 눈과 목이 타는 듯한 열기, 바로 눈앞에서 사신이 찾아온 듯 끔찍한 섬망으로 시작되었다. 감염자의 살갗은 청보라 빛을 띠며 점차 시커메지고 손발은 검은색으로 변했고, 숨을 못 쉴 정도로 기침이 터져 나오고 폐가 부글거리는 피거품으로 가득찬 채 고통으로 신음하다가 결국 숨이 막혔다. 제아무리 운 좋은 사람도 몇 시간 안 걸려 목숨을 잃었다.


(68-69)

모든 인간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거나 신이 보기에 평등하다는 이야기는 사기란다, 카밀로. 나는 네가 그것을 믿지 않기를 바란다. 법도 하느님도 우리 모두를 똑같이 대하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는 그게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억양의 미세한 차이, 식탁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쥐는 방식, 또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수많은 사회 계층 중 어느 계층에 속하는 사람인지 단 1초 만에 알아챌 수 있다. 외국인은 거의 통달하지 못하는 재능이다. 이런 걸 강조해서 미안하다. 나는 네가 지나치게 배타적이고 잔인한 계급 제도에 화를 내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조세핀 테일러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려면 이 얘기를 미리 말해줘야 한단다.


(179)

인생의 여정은 한 걸음, 한 걸음, 하루하루, 충격적인 일 하나 없이 지루하게 이어지지만, 그 여정에서 일어난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기억에 새겨진다. 그 기억들이야말로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나처럼 오래 산 존재 안에는 잊을 수 없는 사람들과 잊을 수 없는 수많은 사건들이 깃들어 있다. 내 가엾은 몸은 닳아버렸지만 다행스럽게도 정신은 아직 흐트러지지 않았다. 잊지 모하는 것은 내게 있어 저주란다.


(316-317)

나는 딸과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애가 살았을 때 해주지 않은 말을 마침내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로 너를 사랑했다고, 여러 해 동안 네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고. 나는 그렇게 내 딸과 헤어질 수 있었고 안녕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 애에게 키스하며 무심하고 소홀했던 내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내 딸로 와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할 수 있었다. 내 마음과 아들의 마음속에 네가 언제나 살아 있을 거라는 약속도 했다. 그리고 나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꿈속에서 나를 찾아와 달라고, 신호와 암호를 보내달라고, 거리의 모든 아름다운 아가씨의 화신으로 나타나 달라고, 가장 깊은 밤이면 영혼으로 나타나 주고 한낮에는 퍼져나가는 햇살로 나타나 달라고 부탁을 했다.


(345)

우리는 오늘날까지 30년 동안 민주주의를 유지해 왔고, 강제 수용소, 고문, 살인, 수많은 사람이 겪은 탄압이라는 최악의 과거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 어느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실제 상황이었지만, 당시에는 알지 못했고 정보도 없었고 소문만 무성했다.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독재가 나라에 질서를 부여하고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데 필요한 조치였다며 정당화하곤 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라틴아메리카 국가에 독재가 있었다. 그때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였다. 우리는 미국인들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고, 훌리안 브라보가 10년 전부터 경고한 대로 그들은 우리 대륙에 좌파 사상을 허용하지 않고자 했다. 러시아인들 또한 자기 통제권 안에 있는 나라들에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했다.


(423)

1980년대 말에는 세계도 우리나라도 우리의 삶도 많이 변화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28년 동안 독일을 갈라놓는 장벽을 하룻밤에 망치로 부수는 베를린 사람들의 행복감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과 소비에트 사이의 냉전이 공식적으로 종식되었고, 어떤 나라는 평화를 희망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지만 그 시간은 너무 짧았다. 항상 어딘가에는 전쟁이 존재한다. 몇 가지 슬픈 예외를 제외하고, 오래 고통을 겪어온 온 우리 대륙은 최근에 와서 과거의 족벌, 혁명, 게릴라, 군사쿠데타, 폭정, 암살, 고문, 대량 학살의 역병으로부터 치유되기 시작했다.


(427)

그 즈음에는 내 인생도 바뀌어 여정의 또 다른 시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안토니오 마차도의 시구에 따르면 길은 없다, 길은 걷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나의 경우 길을 걷는다기보다 오히려 좁고 구불구불 이어지다가 종종 덤불 속으로 사라지는 길을 따라 비틀거리며 가는 기분이었다. 도중에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물질적 구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랑을 안고 가벼운 마음으로 70대를 맞이했다.


(469)

살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그 둘 사이에는 기억을 떠올려야 할 시간이 있다. 나는 이 며칠간 침묵 속에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 시간 동안 물질적인 문제보다 감정에 관한 것이기도 한 이 유언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세세한 내용을 기록할 수 있었다. 나는 손으로 글을 쓰지 못하게 된 지 몇 년 되었다. 글씨도 알아보기 어려워지고 어릴 적 미스 테일러에게 배운 우아한 글쓰체도 잃어버렸다. 그러나 관절염도 내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걸 막지는 못한다. 컴퓨터는 마비되다시피 한 내 몸에서 가장 유용한 수족이다. 카밀로 너는 나를 놀리고 있지. 내가 죽어가는 백 세 노인 중에 기도보다 컴퓨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단 한 사람일 거라고 말이다.


(476-477)

한 세기를 살다 보니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 백 년은 어디로 갔을까?

너에게 고해성사를 할 수가 없구나, 카밀로. 너는 내 손자지만 네가 원한다면 내 죄를 사해 줄 수 있겠지. 그러면 에텔비나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거다. 죄 없는 영혼들은 우주 공간을 가볍게 떠다니며 별 가루로 변한다.

안녕, 카밀로, 니에베스가 나를 데리러 왔다. 하늘이 예쁘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
아이사카 토마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출간한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라는 책은 책표지로 인해 눈에 확 띄었단다.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소녀가 소총으로 겨누고 있는 그림은 호기심을 갖게 충분하였단다. 그리고 책 제목도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로 강렬했어. 역시 책 제목과 책 디자인은 무척 중요하구나. 책 소개를 읽어보니,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하고, 애거서 크리스트상을 최초로 심사위원 전원이 만점을 준 작품이라고 하는구나. 이런 홍보 문구에 속으면 안 되는데, 아빠는 이런 홍보 문구에 잘 넘어간단다.

일본 소설이니까 일본을 배경으로 한 소설인 줄 알았는데, 소련과 독일이 2차 세계 대전 때 벌인, 일명 독소전쟁을 배경으로 했다는구나. 그 유명한 스탈린그라드 전투도 배경이 되었고 말이야.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아빠가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있는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전투가 아니겠니. 그렇다 보니 이 소설이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쑥 올라갔단다.

지은이 아이사카 토마는 일본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고 하는구나. 퇴근 후 집에서 책을 썼는데,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가 그의 데뷔작이고, 그 책이 온갖 상을 휩쓸고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라고 하는구나. 이 정도면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을 타고났을 것 같은데, 그 동안 평범한 직장 생활을 했다니얼마나 손이 근질근질했을까.  지은이 아이사카 토마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고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본 전쟁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 먹었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책은 아빠도 읽어보겠다고 몇 년 전에 샀다가 아직 읽지 않고 있는 책인데,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책을 찾는데 좀 애를 먹겠지만 말이야.


1.

그러면 <소지 동지여 적을 쏴라>라는 책의 내용을 이야기해볼게. 1940년 모스크바 인근 시골 마을에 세라피마는 엄마랑 둘이 살고 있었단다. 세라피마의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책에 나왔던 것 같은데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1차 세계 대전 때 얻은 병 때문인 것으로 아빠가 기억한단다. 세라피마는 엄마와 함께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갔어. 엄마와 둘이 살지만 마을 사람들과 모두 친하게 잘 지내서 외로움 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단다. 그렇게 평화롭던 시골 마을에도 전쟁의 기운이 돌았단다.

1942년 어느 날 독일군들이 쳐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단다. 세라피마만 간신히 살아났어. 독일군들이 세라피마에서 몸쓸 짓을 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소련군들이 와서 독일군을 몰아냈단다. 세라피마는 그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어. 마을에 온 러시아군들은 세라피마의 엄마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의 시신을 모두 불태우고 마을도 모두 불태웠단다. 독일군들이 마을을 이용하지 못하게 말이야. 어렸을 때부터 추억이 담긴 마을은 그렇게 불타 없어졌고, 엄마의 시신도 불태워져 사라지고 말았단다. 세라피마는 독일군도 미웠지만, 그렇게 마을과 엄마의 시신을 불태운 소련군도 미워했어. 특히 그걸 지시한 이리나에게는 적개심을 갖고 이리나에게도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단다. 하지만 지금 혼자 지낼 수 없어서 이리나를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단다.

이리나는 세라피마를 데리고 여자 저격병 군사학교에 데리고 갔어. 그곳은 여자들만 저격병 훈련을 받는 그런 곳이었단다. 그곳에 있는 이들은 다들 독일군에게 식구들이나 친구들을 잃고 혼자가 된 이들이었어. 훈련은 쉽지 않았단다. 실제 전쟁에 참가해서 저격병으로 임무를 해야 하니 훈련도 실전처럼 했단다. 중간에 탈락자도 생기고 그랬어. 저격병 군사학교를 졸업할 때는 5명만 남았단다. 시골 귀족 출신이지만 그 출신을 무엇보다 싫어하고 부끄러워하는 샤를로타를 비롯해서 아야, 야나, 올가, 그리고 세라피마 이렇게 다섯 명이었어.

그런데 그 중에 올가는 사실 이리나의 라이벌인 하투나가 보낸 내부 첩자였단다. 같은 러시아 군이긴 한데 그곳에서도 경쟁이 있다 보니, 하투나가 이리나의 사정을 살펴보려고 보냈던 사람이었어. 그러나 이리나도 진작에 올가가 하투나의 사람이란 것을 눈치챘는데, 그걸 오히려 역이용 하는 등 모른 척 했었단다. 올가를 제외한 세라피마, 샤를로타, 아야, 야나, 이렇게 네 명이 진정한 이리나의 제자였단다. 저격병 군사학교를 졸업한 그들은 한창 전쟁 중인 스탈린그라드에 배치되었단다. 이리나가 네 명을 이끌고 스탈린그라드로 향했단다. 이제부터 실전이다.


2.

세라피마의 시골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몰살당했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 전에 군대에 입대한 세라피마의 친구 미하일은 그 참변을 피할 수 있었어. 미하일은 참변 소식을 듣고 오열했단다.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세마피마도 죽은 줄 알았어. 그래서 더욱 슬픔에 가슴 아팠지. 세라피마와 미하일은 동갑내기 친구였지만,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던 사이였거든. 미하일은 독일에 대한 복수심이 더 끓어올랐고, 군생활도 열심히 해서 상사로 진급하였단다.

한편 이리나가 이끈 저격부대는 첫 작전에 투입하게 되었어. 스탈린그라드를 역포위하는 천왕성 작전이었단다. 소녀 저격부대에서 가장 사격술이 뛰어난 이는 아야였는데, 뛰어난 실력답게 첫 작전에서 적군을 12명이나 사살이라는 공을 세웠단다. 하지만, 자신의 실력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실수를 했단다. 저격병은 한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룰이 있는데, 이 룰을 지키지 않고 한 자리에서 적에게 총을 쏘다가 위치가 노출되어 그만 죽고 말았단다. 그렇게 힘든 저격 훈련 학교를 졸업한 가장 유능한 저격병이었는데, 첫 작전에서 허망하게 죽고 만 거야. 다른 소녀들은 슬펐지만 슬퍼할 겨를이 없었단다. 계속 전투는 이어졌어. 세라피마를 비롯한 나머지 저격병들의 활약과 때마침 아군의 전차부대가 공격하여 천왕성 적전은 성공하였단다. 이 때 타냐라는 소녀 의무병이 저격부대와 합류했단다.

두 번째 작전은 12대대를 지원해주는 것이었단다. 대대라고 하면 엄청 큰 군대 단위인데, 전투 중에 죽거나 흩어져서 지금은 4명만 남아 있었어. 막심 대장이 그들을 이끌었어. 그들은 적군의 감시망 때문에 이동을 할 수 없고, 현재 머무르고 있는 진지를 지켜야 했어. 그런데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진지는 사실은 막심 대장이 집이었단다. 그곳에서 독일군의 진격을 막아내고 있었던 거야. 적군에도 저격병들이 배치되어 있었단다. 이번 전투는 저격병들 사이의 전투라고 할 수 있었고, 상대방이 허점을 보일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했어.

독일군이 야비한 작전을 펼쳤단다. 전쟁과 관련 없는 마을 아이들을 공격하여 아군의 정체를 드러내게 하려고 했던 거야. 보그단이라는 군인이 부상 당한 아이들을 대피시키려고 했다가 그만 적의 저격병이 쏜 총에 맞아 죽고 말았어. 섣불리 움직이면 안 되었단다. 세라피마는 은폐된 곳에서 적의 저격병이 나타나기를 끈기 있게 기다렸단다. 그리고 적의 저격병이 가늠자에 들어오자 죽였단다. 그리고 다른 적군들도 유인하여 몇 명을 더 죽였어. 자신도 모르게 적군을 죽이면서 희열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어. 그 희열 때문에 저격병은 한 곳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룰을 잊고 있었어. 다행히 이리나가 와서 세라피마를 데리고 가서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단다. 세라피마는 적을 사살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있던 자신을 혐오하기도 했단다. 전쟁은 이렇게 사람들을 모두 미치게 하는구나.

적군인 독일군은 우연히 소련군의 여성 파르티잔 두 명을 체포했단다. 그 둘을 이용하려고 했어. 두 파르티잔을 소련군이 보이는 곳에서 처형을 하려고 했단다. 그 장면을 본 12대대 소속 유리안이 깜짝 놀랐어. 그 두 파르티잔들은 바로 자신의 대학 동기였거든…. 참지 못하고 유리안이 독일군을 향해 총을 쐈어유리안의 위치가 노출되었단다. 이걸 독일군이 노린 것이었어. 유리안은 독일군의 함정에 빠져 그만 죽고 말았단다.

소련군의 숫자가 확연히 줄어들었다고 판단한 독일군은 중대 병력을 이끌고 진격하였단다. 막심대장은 지원 요청을 했지만 철수 명령을 받았어. 하지만 막심대장은 자신의 집을 버릴 수 없었어. 자신은 그곳에 남아서 독일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이겠다고 했단다. 결국 막심대장만 두고 나머지는 철수를 했단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그 이후에도 공방전을 펼치다가 1943 1 31일 독일군 사령관 파울루스의 단독 항복으로 끝이 났단다. 소련이 독일로부터 스탈린그라드를 지켜냈어.


3.

시간이 흘러 1945 3.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단다. 세라피마는 군인이다 보니 남자군인들과 더 많은 생활을 했어. 그런데 아군의 어떤 보병이 전쟁 중에 독일 여자를 능욕한 것을 자랑하듯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어. 전쟁 중에 힘없는 여자를 능욕한 것을 자랑하는 이야기를 세라피마는 참을 수 없었어. 그것은 여성 전체에 대한 모욕이었어. 뿐만 아니라 같은 편인 저격병 여자들한테도 숨어서 총이나 쏜다면서 무시하고 성희롱도 했어. 이에 격분한 세라피마는 그 남자보병과 다툼까지 했단다. 그곳에서 세라피마는 우연히 미하일을 만났어. 미하일은 포병 소위가 되어 있었어. 고향에서 헤어진 이후 처음 만났는데, 감회가 새롭기도 했지만, 고향 생각에 슬픔에 잠기기도 했어. 죽은 줄 알았던 세라피마를 만난 미하일도 무척 기뻐했단다. 세라피마는 아까 보병이 했던 이야기를 미하일에게 물어보자, 미하일은 소련군이 독일여자를 능욕했던 일들이 사실이라고 했어. 세라피마은 인간으로써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

세라피마 등 저격대는 쾨니히스베르크 전투에 참가했단다. 그 전투에서 야나는 부상당한 독일 아기를 구하려다가 총상을 입고 중상을 입었어.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단다. 세라피마는 독자 행동을 하다가 독일군에 잡혀 포로가 되었어. 고문을 당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탈출해 성공했어. 그러나 여전히 적지라서 어려운 상황이었단다. 그런데 어디선가 올가가 나타났어.

올가 기억나지? 저격병 학교에서 이리나의 라이벌 하투나의 접차였던 사람. 그러니까 지금까지 반대편으로 나쁜 역할이었는데, 그 올가가 나타나서 세라피마를 구출해주었단다. 올가도 착한 사람이었지만, 군대라는 지휘체계에서 반대편에 있었을 뿐이야.

그런데 그만 올가는 적군의 총격으로 죽고 말았어. 총알은 누구도 피해가지 않았어. 이리나가 와서 도와주어 세라피마는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단다. 탈출하면서 그들은 말로만 듣던 소련군의 치욕스러운 장면을 목격하게 돼. 소련의 붉은 군대가 독일 민간 여자를 능욕하는 장면을 보았어.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짓을 한 자가 미하일이었어. 세라피마는 미하일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어. 갈등을 느끼기도 했지만, 세라피마는 미하일을 저격했단다. 전쟁 성범죄에 대한 직결처분.

….

전쟁이 끝나자 여자 저격병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어. 국가는 그들에 대한 대우를 하지 않았단다. 그렇다고 그들이 전쟁 중에 했던 것이 가치가 있었는가. 전쟁이 끝나고 소련은 스탈린 독재정치로 백성들을 공포로 몰아넣었어. 이런 것을 위해 전쟁을 했던 것인가. 그리고 스탈린이 죽고 나서 스탈린 지우기에 나선 소련은 스탈린그라드의 이름도 볼고그라드로 바꿨단다.

====================

(527)

스탈린 체제가 공포정치였다면, 그것을 떠받들며 싸운 우리는 대체 뭐였지?

어쨌거나 스탈린은 극악무도한 자였던 만큼 그의 업적을 모조리 부정해야 하기에, 보존했던 시신을 매장하고 동상을 부수고 각종 서적을 다시 썼다. 당연히 스탈린그라드도 이름을 바꿔야 했는데, 그렇다고 옛 이름인 차리친은 차르, 즉 황제를 연상시키므로 사회주의국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 때문에 볼가강에 가깝다는 이유로 볼고그라드라는 무미건조하고 중립적인 이름을 대충 가져가 붙인 것이다.

====================

….

여자 저격대원들은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에게 잊혀져서 평범하게 살았단다. 세라피마와 이리나는 세라피마의 고향에 돌아와서 같이 지냈어. 그들은 세라피마의 고향을 재건하면서 살고 있었단다. 야나와 샤를로타는 전쟁 때부터 소원이었던 빵공장에서 일했단다. 간호병으로 합류했던 타냐는 간호사로 지냈어.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이 소설의 지은이 아이사카 토마가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하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책제목처럼 전쟁은 여자들은 무시당하고 힘없는 존재였어. 소련과 독일은 전쟁 중에 수많은 여성 피해자들에 대해서 서로 암묵했단다. 아무도 전쟁성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어.

====================

(532)

소련에서도 독일에서도 전시 성범죄 피해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는 여성들이 입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성범죄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을 혐오하는 각 사회의 요구가 합쳐진 결과였다.

마치 교환 조건이 성립된 것과 같았다. 소련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저지른 독일 국방군과 독일인에게 폭력을 저지른 소련군은 사이좋게 입을 다물고 서로를 탓하지 않았다.

기본 좋은 영웅적 이야기. 아름다운 조국의 이야기.

참혹하고 비극적인 이야기. 무자비한 독재의 이야기.

그것은 독일에서도 소련에서도,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이야기 속의 병사는 반드시 남자의 모습이었다.

====================

이런 일이 예전의 전쟁만 있는 것은 아니야. 현재 전쟁중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포로에 대한 성폭행이 있었다는 기사를 보았단다. 전쟁 자체가 사라져야 할 것인데, 여전히 전쟁이 계속 일어나고, 그 속에서 비인간적인 만행이 계속 일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지금은 온 지구인들이 기후위기에 맞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으니, 이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니.

지나친 홍보 문구에 재미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재미있게 술술 잘 읽혔단다. 독소 전쟁에 대해 조금 이해할 수 있었고, 전쟁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 힘없는 여자들의 희생 또한 알게 되었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조만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을 읽어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장작 패는 소리가 봄의 도래를 알리는 새벽종처럼 작은 마을에 울려 퍼졌다.

책의 끝 문장: 그곳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다.


질문의 의도는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유르겐은 자기 인생을 돌이켜 봤다.
십대 중반까지, 독일의 축구 국가대표가 되어 외국에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출전하여 배를 타고 여러 나라에 가서 축구를 하고 환성을 듣고 싶었다. 외국 선수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코치들에게 제2의 제프 헤르베르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러니 병역이 없었다면, 또 올림픽과 월드컵이 중지되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렇게 됐을지도 모른다.
"네 동료가 쏜 여성은 두 아이의 엄마였어. 그 후에도 엄마로 있고 싶어했지. 잃어버린 아이들을 키워서, 언젠가 손주를 만나고 싶어 했어."
- P455

"나는 멈출 수 없었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줘. 나는 지금 죽을 수 없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 전쟁만 아니었다면 나는 그런 끔찍한 짓은 하지 않았을 거야. 전부 전쟁이 나쁜 거야. 그러니까 부탁이야. 제잘 용서해 줘." - P479

소련이라는 이름의 국가는 삐걱거리며 나아가는 쇄빙선과도 같았다.
크고 작은 얼음을 부수며 나아가던 선체가 각종 사회적 모순으로 타격을 받아 언젠가 가라앉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모두가 한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배가 가라앉으면 보트에 나눠 타서 혹한의 바다로 노를 저을 수밖에 없다. 항해 도중에 선장이 바뀌는 것처럼 권력자가 바뀌고 가치관이 달라진다.
- P5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8)

지삼출이나 감골댁이 보부상에 대해 똑같이 거부감을 나타내는 데는 그럴 만한 연유가 있었다. 그때 갑오년에 수많은 농민들이 호남평야를 중심으로 해서 들고일어났고, 공주까지 쳐올라간 농민군들이 신식무기를 가진 일본군과 싸우다가 밀리기 시작하면서 농민군들은 어쩔 수 없이 산으로 섬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군과 관군은 먼저 산으로 들어간 농민군들로부터 뒤쫓기 시작했다. 그때 그들의 길잡이 노릇을 해서 수없이 많은 농민군들을 죽이게 한 것이 바로 보부상들이었다.

등짐을 하고 산길을 따라 이쪽 지방과 저쪽 지방을 문지방 넘듯 넘나드는 보부상들은 산길을 샅샅이 아는데다가, 산속의 정보 또한 신속하게 잘 탐지했다. 그뿐만 아니라 산을 타는 발까지 포수 뺨치게 빨라서 그런 길잡이로는 더없이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19)

그런데 보부상들은 농민전쟁 때만 그런 행악질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 뒤로도 나라를 외세로부터 막고 근대화시키려는 대중운동단체인 독립협회에 맞서 그들은 어용폭력단체인 황국협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자체 폭력부대인 봉군을 만들어가지고 만민공동회를 습격하는 한편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폭행을 가했다. 그런 몇 년 뒤에는 또 일본에 합병통치를 해달라고 애원하는 이용구와 송병준을 우두머리로 모시고 일진회에 가담하기도 했다.


(107)

포구에 바닷물이 가득 실려 있을 때 군산 쪽에서 바라다보면 건너편의 낮춤한 산줄기는 바닷물에 그대로 비쳐드는 듯한 정취를 자아냈다. 섬들을 품고 서쪽으로 펼쳐진 바다, 아슴하게 멀고 긴 수평선, 그리고 그 산줄기는 서로 어우러져 그지없이 아담하고 고운 풍광을 이루고 있었다. 그 풍광은 어느 때나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겨 머물게 하는 힘을 지녔지만 특히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치장할 때는 따로 있었다. 물안개가 잠포록이 끼었을 때, 노을이 자욱하게 피어나는 이른 아침이면 그 풍광은 한없이 신비스러웠고, 노늘이 황금빛 현란함으로 타오를 때면 그 풍광은 더없이 황홀했으며, 빛이 사위어가는 달이 적막 속에 기울어져 가고 있을 즈음이면 그 풍광은 그지없이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날은 비가 내리는 대로 애상적이었고, 눈이 내리는 날은 눈이 내리는 대로 허무적이었다.

그리고 산줄기는 끊긴 듯 이어진 듯하며 동쪽으로 어미줄기를 찾아 뻗어가고 있었는데, 그 오른쪽으로 들판이 널따랗게 펼쳐져 나갔다. 바다와 대칭을 이루고 있는 그 벌판 가운데로 기다란 몸짓을 지으며 유유하게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금강이었다. 몇백리인지 모르게 굽이굽이 흘러내린 금강이 제 몸을 바다에 풀어 맡기는 지점에서 오른쪽 포구에 장항이 자리잡았고 왼쪽 포구로 군산이 앉아 있었다.


(141)

하와이 이민은 노동력 충당을 위해 하와이 사탕수수농장협회에서 주한미국공사 알렌을 통해 교섭하게 한 것이었다. 고종은 1902 11월에 수민원(綏民院)을 설치하게 하고, 12 22일 인천항에서 121명을 떠나 보냈다. 그러나 <백성을 편안케 한다>는 뜻인 수민원은 처음부터 그 직무를 유기하고 있었다. 이민자 121명 중 반 이상이 미국 선교사 존스의 <대한사람이 인간의 천국인 미국에 이민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은혜>라는 설교에 회유된 영동교회 교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도 여러 선교사들이 각 개항장을 중신으로 사람들을 모집하러 다녔다.


(170)

그들이 기쁨에 넘치는 고문정치의 시작이란 제1차 한일협약이었다.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재빨리 군대를 한양에 진입시킨 다음 무력의 위협 아래 한일의정서를 조인하여 조선 안에 군사기지를 확보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것이 2월의 일이었다. 그 뒤로 러시아군을 계속 궁지로 몰아넣으며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게 되자 그들은 그 기세를 조선정부로 확대시켰다. 재정고문과 외교고문을 초빙하라는 강요였다. 결국 정부는 그 강압에 굴복하여 협정서 체결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1904 8 22일이었다. 그 협정에 따라 재정고문에 일본인 메가다가, 외교고문에는 미국인 스티븐스가 앉게 되었다.


(225)

재산을 더 모을라고 허지 마라. 땅으로 재산을 모으는 것은 결국 농부들의 살을 깎고 피를 빠는 일이다. 세상에 그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느냐. 재산을 탐하면 마음이 썩는다. 마음이 썩으면 죄짓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죄짓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자가 어찌 바르게 살 수 있겠느냐. 내가 남기는 전답을 주색잡기 하지 않고 간수만 제대로 하면 네 권속 입고 먹는 것은 족하다. 재산을 탐하지 말고 바르게 살도록 마음을 가꾸기에 게을리 하지 마라. 그것이 바른 사람의 길이고, 옳은 양반의 길이다.”

그 탄식을 꾸짖기라도 하듯 쟁쟁히 들려오는 아버지의 말씀이었다.


(291)

그런데 마침내 을사보호조약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장지연이 <황성신문>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쓴 것이다.

비분에 찬 그 글을 먼저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의 가슴을 쳤고, 그런 사람들의 입을 통해 글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동양 삼국의 평화를 솔선주선하기로 나선 이토가 천만 꿈밖에 어찌 오조약을 내놓았는가. 개가죽을 쓴 우리 대신들은 일신의 영달만 위해 황제폐하와 2천만 동포를 배반하고 4천년 강토를 외인에게 주었도다. 슬프도다! 우리 2천만 동포여, 살아야 할거나 죽어야 할거나.


(299)

임금을 호위하던 시종무관장 민영환이 할복자결을 했다. 전 의정부대신 조병세가 자결했다. 전 참판 이명재가 자결했다.

그 연이은 자결의 소문은 겨울바람을 타고 산지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배를 갈라 붉은 피 쏟으며 죽었다는 그 소문들은 그전의 어떤 소문들보다도 뜨겁고 거센 파도가 되어 사람이 사는 곳이면 퍼지지 않은 데가 없었다.

그런데, 그 소문들은 단순히 나라 잃은 비분으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민영환이 흘린 피는 방을 넘치고 마루를 흘러 토방으로 떨어져 내렸는데 그 자리에 푸르른 대나무가 솟아났다고 했고, 조병세가 목숨을 끊자 그가 기르던 난초들이 일제히 꽃을 피웠다고 하는가 하면, 이명재가 숨을 거두면서 뜰의 매화나무가 사흘 밤을 통곡했다는 것이었다.

그건 충절을 상징하는 매난국죽에 근거를 둔 이야기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