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그래서 나는 요즘 대학생들의 편에서 박정희를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존경한다는 말을 들으면 저 우체국 창구를 뛰어넘을 때와 같은 충동을 다시 느낀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라면, 한때의 압제와 불의는 세월의 강 저편으로 물러나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으니, 그렇게 어떻게 이루어졌다는 경제적 성과를 두 손으로 거머쥐기만 하면 그만일 것이다. 과거는 바로 그렇게 착취당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2009)

 

(21)

도시 사람들은 자연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자연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은 없다. 도시민들은 늘 자연산을 구하지만 벌레 먹은 소채에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자연에는 삶과 함께 죽음이 깃들어 있다. 도시민들은 그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막아내려 한다. 그러나 죽음을 끌어안지 않는 삶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버린다. 죽음을 견디지 못하는 곳에는 죽음만 남는다. 사람들이 좋은 소금을 산답시고, 우리 고향 마을의 표현을 빌리자면, ‘죽은 소금을 고르게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같은 이치다. 살아 있는 삶, 다시 말해서 죽음이 함께 깃들어 있는 삶을 고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좋은 식품을 고르기 위해서도, 사람 사는 동네에 이른바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용납하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59)

모든 시간이 같은 시간이 아니며, 모든 땅이 같은 땅은 아니다. 사람들은 시간을 같은 길이로 쪼개서 달력을 만들지만 어떤 날은 다른 날과 다르고 어떤 시간은 다른 시간과 다르다. 어떤 독재 권력이 추석을 양력 9 18일로 바꾸고 그날에 차례를 지내라고 강압할 수는 있어도, 이 나라 사람들을 남북으로 이동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추석인 날을 추석 아닌 날과 다르게 하여, 그 많은 사람들을 제 고향으로 달려가게 하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이 이 나라의 시간 속에 쌓아놓은 기억이다. 땅이라고 다를까. 어느 부자가 어느 언덕에 아무리 호화로운 집을 지어놓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루이틀도 아닌 오랜 세월에 걸쳐 내 고개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다. 비옥한 땅에서건 척박한 땅에서건 사람들이 살고, 꿈꾸고, 고뇌하는 가운데 조금 특별한 일을 실천하려 했던 기억이 한 땅을 다른 땅과 다르게 하고, 내 몸을 나도 모르게 움직이게 한다. 땅이 그 기억을 간직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 사람이 이 땅에서 반만년을 살았다 한들, 한 사람이 이 땅에서 백년을 산다 한들, 단 한순간도 살지 않은 것과 같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78)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여 한반도와 만주에 걸치는 거대한 나라를 건설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우리나라라고 볼 수 있을까. 풍속과 문화가 지금과 같이 않을 것이며, 따라서 언어도 다를 것이다. 내가 좋아했던 소월의 시는 없을 것이다. 아니 사람살이 형편이 달라지고 서로 사귀는 범위가 달라졌을 것이니, 내가 태어나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소월이라는 재능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고구려의 힘으로 이 땅에 지금보다 더 부강하고 살기 좋은 나라가 이룩되어, 거기서 수많은 다른 재능이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 나라가 나라일 수는 없는 것이 확실했다. 고구려가 건설했을 큰 나라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이기를 바란다는 생각과 무엇이 다를까. “역사는 가정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을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이 나라의 역사가 어떤 역사이건 이 역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때에도 할 수 있었다.

 

(108)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라는 말에 대해서도 필경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우리 삶의 환경이고, 우리가 저마다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저와 이웃의 행복을 가꾸어가는 터전이다. 물론 우리가 완전한 민주주의를 누리고 사는 것은 아니다. 민주적 정의가 올바르게 실현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 자신이 정말로 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자부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살아온 역사도 우리의 민주적 의지를 제약하고, 여러 가지 물질적 조건도 우리를 가로막는다. 우리 개개인의 민주적 자질이 충분히 성숙한 것도 아니며,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인격이 완성된 것도 아니다. 이 점은 우리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다. 어디에서건 민주주의의 이상이 실현된 적은 없다. 공자가 말한 것처럼, 저마다 제 마음대로 행동해도 옳은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경지에 도달할 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의 조건이 이러저러하니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까지만 실현하자는 식으로 민주주의에 선을 긋는 것은 현실의 압제를 인정하자는 것이며,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이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말에는 우리가 어떤 난관에 부딪히고 어떤 나쁜 조건에 처하더라도, 민주주의의 이상에 가장 가깝게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려고 노력한다는 뜻이 포함될뿐만 아니라, 그 뜻이 거기 들어 있는 다른 모든 뜻보다 앞선다. 민주주의에 다른 수식어를 붙일 수 없는 이유가 그와 같다.

 

(176)

그런데 우리는 그 실패의 순간마다 변화한다. 사람들마다 하나씩 안고 있는 이 사소한 당신의 사정들이 실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사정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 바로 그 변화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 같은 큰 목소리에서 우리는 소외되어 있지만, 외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당신의 사정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글쓰기가 독창성과 사실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사소한사정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당신의 쓰고 있는 글에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한다. 자신감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사소한 경험을 이 세상에 알려야 할 중요한 지식으로 여긴다는 것이며, 자신의 사소한 변화를 세상에 대한 자신의 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275)

사실,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자각되지 않는 말들이고 진실과 부합되지 않는 말들이고 인습적인 말들이지, 반드시 어려운 말이 아니다. 어려운 말은 쉬워질 수 있지만, 인습적인 말은 더 인습적이 될 뿐이다. 진실은 어렵게 표현될 수도 있고 쉽게 표현될 수도 있다. 진실하지 않은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억압받는 사람들의 진실이야말로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것에 속한다. 장 주네는 자신이 배반자라고 여겨질 때 마지막 남아 있는 수단은 글을 쓰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의미하는 바도 아마 이와 관련될 것이다.

 

(281)

나는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시간을, 다시 말해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남이 모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식구들에게도 그런 시간을 가지라고 권한다. 애들은 그 시간에 학교 성적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소설이나 만화를 보기도 할 것이며, 내가 알고는 제지하지 않을 수 없는 난잡한 비디오에 빠져 있기도 할 것이다. 어차피 보게 될 것이라면 마음 편하게 보는 편이 낫다고 본다. 아내는 그런 시간에 노래방에 갈 수도 있고, 옛날 남자친구를 만나 내 흉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늘 되풀이되는 생활에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여름날 왕성한 힘을 자랑하는 호박순도 계속 지켜만 보고 있으면 어느 틈에 자랄 것이며, 폭죽처럼 타오르는 꽃이라 한들 감시하는 시선 앞에서 무슨 흥이 나겠는가. 모든 것이 은밀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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