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첨 민주주의 - 선거를 넘어 추첨으로 일구는 직접 정치
어니스트 칼렌바크 & 마이클 필립스 지음, 손우정.이지문 옮김 / 이매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추첨 민주주의란 용어를 아빠는 몇 년 전 녹색평론에서 처음 접했단다. 그 이후 녹색평론에서 여러 차례 추첨 민주주의에 대한 글을 실어서 대략적인 개념을 알고 있었어. 그리고 그것에 관련된 책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한번쯤 추첨 민주주의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싶었어.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인데, 추첨 민주주의에 관한 정의가 명확하고, 그것에 대한 설명이 간단해서 그런지 책도 두껍지 않았어. 어쩌면 추첨 민주주의란 것이 이런 책의 두께처럼 간단하고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이 책은 마이클 필립스와 어니스트 칼렌바크란 미국 사람들이 1985년에 처음 출간했었고, 2008년인가 다시 출간한 개정판을 옮긴 책이란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거의 바꾸지 않았대. 1985년 당시의 미국 정치 상황과 이십여 년이 지난 미국의 정치 상황이 그리 바뀌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 이 책의 한국어판에는 지은이의 글 말고, “보론”이라고 덧붙인 글이 책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글은 우리나라에서 추첨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글을 담고 있단다. 그들의 주장도 지은이들의 주장과 크게 틀리지 않아. 미국은 하원 의원들을 추첨으로 뽑자고 하고, 우리나라는 국회의원을 추첨으로 뽑자고 하는 것만 빼고 말이야.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말도 안 된다고 할거야. 국회의원을 선거가 아닌 추첨으로 뽑는다고? 아빠도 맨 처음 추첨 민주주의란 용어를 들었을 때, 이게 가능할까? 하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설명을 보면 볼수록 추첨 민주주의가 실제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가치에 더 가깝고, 직접 민주주의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직접 민주주의에 가장 가까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이런 추첨 민주주의는 갑자기 나온 생각이 아니야.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 시행했던 것이고, 민주주의라는 것이 원래 누구나 공평하게 관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추첨 민주주의가 그런 민주주의의 정의가 더 가까운 제도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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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서 추첨을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로 인정한 이유는 민주주의(democracy)를 어원이 말하는 그대로 ‘데모스(demos, 전체 인민)가 자기 스스로 통치(kratos)하는 체제’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민주주의를 특별한 엘리트의 지배가 아니라 보통 사람의 지배로, 그리고 누구나 지배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동일한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을 지향하는 정치 체제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추첨은 데모스의 모든 시민들에게 관리가 될 수 있는 동일한 확률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내일 내가 앉아 있을 수도 있는 자리에 오늘 앉아 있는 이의 지배를 수용하는’ 민주주의의 공평한 원칙으로 수용될 수 있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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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의 민주주의를 하고 있단다. 모든 국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없으니, 국민을 대표해서 국가 현안이나 정책 등을 결정하는 거지.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국회의원이 있고, 미국에는 상원과 하원 의원들이 있는 거야. 그런데 그들이 과연 국민의 대표성을 띠고 있는가? 하는 의심을 품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어. 이 책의 지은이들은 그 의심을 품은 거지. 누군가는 이야기하겠지. 국민들이 선거를 해서 뽑은 사람이니까 대표성이 있다고 말이야. 하지만, 국민들의 대표성을 가지려면 국민들의 구성 비율과 비슷하게 의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면서 이 책이 처음 쓰여진 1985년 미국의 상황과 하원의 구성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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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입법 기관은 국민을 전혀 대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체 사회를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볼 수 없다. 우선 심각한 불균형이 존재한다. 성인 인구의 51퍼센트인 여성은 하원의 4.8퍼센트만을 차지한다. 인구의 12퍼센트인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하원의 4.5퍼센트만을 구성한다. 인구의 6퍼센트를 차지하는 히스패닉도 하원의 2.5퍼센트만을 차지해 저대표되고 있다 .투표를 하지 않는 유권자의 절반 정도는 전혀 대표되지 않으며, 이 중에는 (전체 인구의 6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가난과 실업 등 열악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

대신 하원은 거의 모두 백인과 부유한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불균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계층이 바로 변호사다. 변호사는 1983년 현재 전체 인구의 아주 적은 부분을 차지하는데도 하원의 46퍼센트를 차지하고 잇다. 따라서 우리는 ‘대의 없는 과제’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복지뿐만 아니라 엄청난 전쟁 무기와 대규모의 국내외 경찰과 정보기관을 지탱하는 데 충분할 정도로 많은 세금은, 형식적인 의미에서만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가 승인한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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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야. 국회의원들의 구성 비율과 국민의 구성 비율은 전혀 다르거든. 이런 구성 비율이 과연 모든 국민의 대표성을 띠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선거에 의해 의회 의원들은 과연 국민들을 위해 일을 할까? 그렇지 않단다. 오직 자신의 재선을 위해 일을 할 뿐이야. 그리고 자신의 정치 후원금을 지원해준 이들을 위해서 일을 할 뿐이란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인데,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리는 정책인 경우, 특히 자신의 재선과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이라면 과연 그걸 추진하려고 할까?

어떤 이는 그런 말을 하더구나. 지금의 민주주의는 엘리트 민주주의라고… 소수의 엘리트들이 정치를 이끌어 간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런 정치적 엘리트들을 뽑아 정치를 할 거면, 인기투표와 같은 선거를 하지 말고 시험을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러면 지금처럼 부정부패도 심하지 않고, 선거로 인해 들어가는 돈도 적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무엇으로 보나 지금의 대의 민주주의는 크게 잘못된 것 같더구나. 국민들의 대표성도 띠지 않고, 그렇다고 선거로 뽑힌 사람들이 정말 우수한 인력인 것도 모르겠고… 요즘 우리나라 정치판을 보고 있노라면, 무능한 사람들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고,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단다. 아무나 국회의원도 할 수 있고, 아무나 대통령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잘못을 하면 기억이 안 난다, 모른다고 하면 되고…. 양심에 털 난 인간들도 많고… 추첨 민주주의를 하게 되면 보통 사람들도 국회에서 하는 일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될까 생각했는데, 요즘 국회의원들을 보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더구나. 그리고 정책들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잘 설명을 해주어서 이해시키면 되고, 정책 결정에 있어서 신중하게 하면 될 것 같구나.

 

2. 

추첨 민주주의가 상당히 설득력 있고, 타당한 제도인 것 같으나, 그런 것이 현실이 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단다. 이미 기성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밥그릇을 놓으려고 할 것 같지 않고 말이야. 미국에서도 추첨 민주주의를 이야기한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바뀐 것은 없잖아.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지. 소선거구제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데, 추첨 민주주의라니.. 이상세계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인 것 같구나. 그러면 현실에서 가능한 것 중에 타협할 만한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정당의 지지율 만큼 국회의원을 차지하는 전면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이 또한 거대 정당들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 실현 가능성은 높지는 않단다. 하지만, 최근 햇수로 2년에 걸쳐 이어지고 있는 대규모 촛불 집회의 힘을 보고 나서는 그리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결국 민심의 불꽃이 모이면 힘이 된다는 것을 증명되었거든… 그래, 한번 희망을 걸어보자꾸나.

새해에는 부디 정치 때문에 짜증나는 일이 없고, 촛불 들고 길바닥에 앉는 일이 없길 바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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