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마르크스의 무덤은 런던 시내의 북쪽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있으며,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해석하는 일에만 열중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세계를 변혁하는 일이다.”

(21)

이 말은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진리를 인류 역사에 적용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영구불멸하리라고 말하는 사람이나, ‘현실 사회주의사회의 물락을 보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류 역사는 끝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은, 지금과 같은 세계적 대불황에서 대부분에서 대부분의 주민들이 비참하게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나쁜사람일 뿐입니다. 세상은 계속 변한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22)

계급은 어떤 사회의 구성원 전체를, 지배하는 사람과 억압당하는 사람으로 나누는 개념입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지배계급은 먹고 살 수 있는 생산수단(예컨대 토지, 도구, 기계, 원료 등)을 스스로 가지고 있으면서 생산수단을 가지지 않은 사회 구성원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인구 집단입니다.

(26)

물론 임금노동자는 노예와는 다릅니다. 노예는 노예 주인이 가지고 있는 말하는 물건에 지나지 않았으며, 노예 주인은 노예를 죽이든 팔아 버리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본가는 임금노동자에게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임금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자기의 몸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이 지니고 있는 노동력을 하루, 한 주, 한 달, 또는 1년에 걸쳐 판매할 뿐이므로, 어떤 자본가가 매우 잔인하게 일을 시키면 그 자본가를 떠나 다른 자본가에 자기의 노동력을 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자유는 굶어죽을 자유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노예는 노예 주인이 늘 먹여 주지만, 임금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어버리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임금노동자는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아 임금을 얻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임금노예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34)

그래서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해방되면 자본가도 해방된다고 말합니다. 이리하여 자본주의 사회 이후의 새로운 사회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합니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토론하여 사회 전체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모든 주민들이 자기 능력의 따라 일하면서’ ‘자기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모두가 참여하고 모든 성과를 평등하게 나누는 민주주의가 나타날 것입니다.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중국, 북한, 쿠바 등이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류입니다.

(43)

자본가들은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해 기술혁신을 촉진하여 더욱 다양한 상품들을 많이 생산하면서도, 임금노동자들에게는 더욱 낮은 임금을 주며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바꾸고 정부의 복지 정책에 필요한 세금을 더욱 적게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리하여 생산력의 증가에 어울리는 분배 관계와 소비 수준 등 생산관계가 형성되지 않아서, 상품들이 팔리지 않으면서 생산지 정체되고 공장은 놀게 되며 실업자가 생기고 주민의 생활수준은 저하하여 실망과 자살이 증가한 것입니다.

(68)

자본가와 노동자 둘 다 상품 교환의 법칙으로 볼 때는 맞는 이야기라고 말하면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쌍방이 모두 동등하게 상품 교환의 법칙에 의해 보증된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동등한 권리와 권리가 맞섰을 때는 힘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에서 노동일의 표준화는 노동일의 한계를 둘러싼 투쟁, 다시 말해 총자본 즉 자본가계급과 총노동 즉 노동자계급 사이의 투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131)

최근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실업자를 줄이는 것은 민간기업의 고유한 영역이다라고 강변하고 있는데, 이것은 경제의 ABC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대규모 실업자는 결국 따져 보면, 민간기업들이 취업자를 대규모로 해고해야 기업의 수지가 맞겠다고 판단한 결과입니다. 취업자를 해고한 민간기업에 다시 고용하라고 하면 민간기업이 순순히 받아들일까요? 이 때문에 정부는 실업자를 고용하는 민간기업에게 공적 자금을 지원하거나 세금을 삭감해 준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간기업은 이윤을 더 많이 얻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취업노동자를 해고하여 실업자로 만들기도 하고 실업자를 고용하여 취업자의 수를 늘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업자의 문제를 민간기업에게 맡기는 것은 애초에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218)

우리나라의 주류경제학 교과서에서도 자유로운 경쟁이 이루어져야 이윤율이 높은 기업과 산업으로 인적,물적 자원이 이동함으로써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하지만 재벌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독점의 폐해를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단순히 대기업이라고 묘사할 뿐입니다. “재벌을 해체하자고 주장하면 효율적인 대기업을 없애고 비효율적인 중소기업으로 어떻게 경제 발전을 달성하겠는가?”하며 흥분합니다. 그러나 재벌은 사실상 경제적, 정치적, 사상적 권력을 휘두르는 왕중왕입니다. 재벌과 재벌 총수는 공정거래에 관한 어떤 법률적 제재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법률 자체를 자기들의 이익에 맞게 수정할 수 있을 정도로 민주주의와 사회의 정의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독점이윤의 일부를 사회의 엘리트를 뇌물로 계속 나누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255-256)

마르크스는 주류경제학이 제시하는 삼위일체 공식을 비판합니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에 따르면, 산업자본의 지휘, 감독을 받는 임금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새로운 가치 중 일부가 임금이라는 형태로 노동자에게 분배되고 나머지는 잉여가치의 형태로 산업자본가의 주머니에 먼저 들어가는데, 이 잉여가치가 대부자본가에게는 이자의 형태로, 토지소유자에게는 지대의 형태로, 국가에는 세금의 형태로 분배되고, 마지막으로 남은 잉여가치가 산업자본가의 기업이윤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지배계급과 국가의 수입 원천이 기본적으로 임금노동자계급이 창조한 잉여가치입니다. 이로써 모든 지배계급과 국가가 한마음 한뜻으로 창조한 잉여가치입니다. 이로써 모든 지배계급과 국가가 한마음 한뜻으로 노동자계급을 더욱 착취하려고 탄압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속류경제학의 삼위일체공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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