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명남 엮고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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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많은 애서가들의 반응이 뜨거웠단다. 드디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책이 출간되었다고 말이야. 그리고 김명남이 번역을 했다면서 기대된다는 반응들이었어. 하나 둘 읽은 이들이 올린 평점들은 별 다섯 개가 기본이었어. 아빠는 처음 보는 작가인데 꽤 유명한 작가인가보다 했어. 그래서 검색해봤더니 우리나라에서는 이번이 두 번째 출간된 책인 것 같았어. 첫 번째 출간된 책도 제법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고 말이야. 그런데도 많은 애서가들의 사랑을 받다니, 꽤 유명한 사람이고 그의 책 또한 꽤 재미있을 것이란 생각을 가졌어.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단다.

지은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더구나. 미국 사람인데 1962년에 태어나서 2008 46세 젊은 나이에 죽었다고 하는구나. 이십 대부터 우울증을 앓아와서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가지 치료를 많이 받고, 치료에 효과가 없어서인지 술, 마약 등에도 빠지고 나중에는 항우울제 부작용으로 그만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힘든 삶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글 쓰는 일은 계속했다고 해. 죽기 직전까지 소설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내놓은 책들은 미국에서 문제작으로 거론되며 많은 이슈를 받았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작가이고, 그의 소설들은 가볍게 읽기는 쉽지 않은 책들이라고 하는구나. 이 책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책은 <이것은 물이다>가 전부인데, 이것도 소설은 아니고 캐니언 대학 졸업 축사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라고 하는구나. 이번에 출간된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책은, 그의 여러 산문집들 중에서 옮긴이 김명남님이 골라 엮어서 묶은 책이란다. 그의 유명한 산문들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되지만, 사실 아빠는 이런 편집은 별로야. 번역본의 경우 원래 지은이가 출간한 그대로를 번역 출간해야 한다고 생각해. 누군가에 의해서 골라서 새로 엮은 스타일은 별로 안 좋아한단다.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지 않은 작품들 중에는 아빠가 좋아할 수도 있는 작품들이 있을 수 있잖아. 그냥 시간이 좀 들어도, 사람들이 좀 적게 찾더라도 원전 그대로 번역해서 출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1.

이 책에는 총 아홉 개의 길고 짧은 에세이가 나온단다. 그 중에 첫 번째 글이 책의 제목으로 따온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이란다. 지은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잡지사로부터 지원을 받고 호화 크루즈를 타고 쓴 기행문이라고 볼 수 있어. , 뭐랄까아주 길게 쓴 크루즈 솔직 후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크루즈의 이름은 네이디어 호였어. 배에 관한 이야기, 배의 직원들에 관한 이야기, 같이 승선한 손님들의 이야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솔직 후기이다 보니, 흠이 있으면 흠이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어. 그리고 과도한 친절, 프로페셔날한 미소에 대한 비판도 했어. 그들의 과도한 서비스가 오히려 불편했다고 말이지아무튼 일주일 간의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150페이지가 넘는 기행문을 쏟아낼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그의 필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구나.

이 책에 실린 에세이 중에는 책의 서평들도 실려 있었어. <현대 미국 영어 어법 사전>이라는 사전에 대한 서평도 실렸는데, 영어 어법 사전에 대한 서평이니 한국사람인 아빠가 읽기 얼마나 어려웠겠니이 서평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중에 하나가 문법 파괴에 대한 비난이란다. 우리나라에서 문법 파괴에 대해 심심치 않게 문제 삼는 경우가 있어. 말이라는 것이 세대에 따라 변하고 새로운 말이 등장하는 것은 아빠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엄격한 잣대의 문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좀 반댈세.

그리고 조지프 프랭크라는 사람이 쓴 도스토옙스키 전기에 관한 책의 서평도 있었어. 아빠가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읽은 책들로 인해 강한 인상을 받아서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는 작가 쪽으로 생각하고 있단다. 그래서 이 에세이를 좀 관심 있게 봤단다. 아빠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었을 때 책 뒷편에 도스토옙스키의 삶에 대해 간략하게 나온 것을 보고 살인 선고를 받았다가 극적으로 살아났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의 삶에 전반적인 것은 모르고 있었거든. 그래서 이 서평을 읽다 보니, 도스토옙스키의 전기에 대해 읽어보고 싶더구나. 이 책에서 소개된 조지프 프랭크의 도스토옙스키 전기는 안타깝게도 출간되지 않은 것 같더구나. 다른 전기라도 한번 볼까? 갑자기 무척 궁금해지네. 지은이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쓴 이유는 지은이 또한 도스토엡스키를 무척 뛰어난 작가로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지은이가 생각하는 도스토엡스키 소설의 위대함을 잠시 읽어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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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그리고 이 점은 틀림없이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어떤 예술은 온갖 장애물을 넘는 추가의 노력을 들이고서라도 감상할 가치가 있으며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단연코 그런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도스토옙스키가 서구 고전문학을 압도하는 거물이라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고전과 필수 교과로 추앙됨으로써 오히려 가려지는 사실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도스토옙스키가 위대할뿐더러 재미있는 작가라는 사실이다. 그의 소설에는 거의 늘 좋은 플롯이 있다. 강렬하고 복잡하고 철저하게 극적인 플롯이 있다. 살인과 살인 미수와 경찰과 문제 있는 집안의 반목과 스파이가 나오고, 터프 가이와 아름답고 타락한 여인과 간지러운 사기꾼과 소모성 질환과 뜻밖의 유산과 반드르르한 악당과 흉계와 창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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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후기. 어떤 지방의 랍스터 축제 후기. 이번에도 솔직 후기. 랍스터 축제를 다녀오면서 랍스터의 맛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랍스터의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단다. 인간들의 쾌락을 위해서 동물들이 하루에 몇 톤씩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냐우리나라에도 많은 먹거리 축제가 있는데, 랍스터 축제가 주제여서 그런지 대게 축제나 대하 축제가 떠오르긴 하더구나. 그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되면 뭐든 하는 것이 뭐 먹거리 축제뿐이겠냐.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예전에는 랍스터가 혐오음식이었다는 사실이야. 오호..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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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랍스터는 그 자체로도 먹기 좋다. 적어도 요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1880년대까지만 해도 랍스터는 말 그대로 하층 계급의 음식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만 먹었다. 초기 미국의 감옥 환경이 가혹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식민지는 수감자들에게 랍스터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먹이는 것을 법으로 금했는데, 왜나하면 그것은 꼭 사람에게 쥐를 먹이는 것처럼 잔인하고 지난친 고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랍스터의 비천한 지위는 옛 뉴잉글랜드에 랍스터가 엄청나게 많았던 것이 한 가지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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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테니스를 보는 것이든, 하는 것이든 좋아하는 편은 아니란다. 하지만 스위스의 천재 테니스 선수 페더러는 알고 있어. 오랫동안 테니스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올 초에는 메이저대회 4강에서 우리나라의 정현 선수와 맞붙기도 한 테니스 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야. 어느덧 그의 나이 삼십 대 후반이지만, 여전히 많은 우승 트로피는 그의 것이란다. 테니스를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 같아. 이 책에는 그에 대한 찬사로 도배된 에세이가 한편 실려 있단다. 그러나 그 찬사들은 모두가 인정하는 찬사란다. 그 글을 읽다 보면 지은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도 테니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았어. 마치 테니스 전문 기자나 해설의원이나 할 수 있는 말들을 쏟아내더구나.

아빠가 비록 테니스에는 관심이 없지만, 페더러라는 사람은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다 보니 이 글이 쏙쏙 눈에 잘 들어오더구나. 그냥 명성만 익히 알던 페더러라는 사람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었어. 운동장뿐만 아니라 운동장 밖에서의 선행도 멋진 선수라는 것을 알았어. 코트의 신사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구나. 지은이가 페더러가 왜 그렇게 뛰어난 선수인지 엄청 길게 적었는데, 일부만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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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

페더러의 서브 속도는 세계 정상급이고, 서브의 위치와 다양성은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서브를 넣는 움직임은 유연하고 딱히 별난 점은 없는데, (TV로 볼 경우) 특징이라면 공을 때리는 순간 온몸에 뱀장어처럼 스냅이 들어간다는 것 정도다. 페더러는 공을 예상하는 능력과 코트 감각이 비현실적인 수준이고, 발놀림은 이 게임의 역사상 최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어릴 때 축구 신동이었다. 이 모든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중 어떤 말도 이 선수가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을, 그의 시합에 담긴 아름다움과 천재성을 직접 목격한 경험을 제대로 묘사하거나 환기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미학적인 것에는 비딱하게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에둘러 말하는 수밖에 없다. 혹은-아퀴나스가 자신의 형언할 수 없는 주제에 대해 그렇게 했듯이-그것이 무엇이 아닌가를 말함으로써 그것을 정의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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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책을 덮고 제목을 다시 보았어. 분명 지은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다른 작가들과 다른 면이 있는 것은 확실해. 글을 씀에 있어 망설임이 없고, 자유분방을 느낄 수 있으며, 아주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문학적인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다만 아빠의 스타일과는 맞지 않는 것 같구나.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평점 별 다섯 개의 리뷰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평점 별 세 개의 리뷰들에 공감이 가더라구.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이 책은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읽지 않을 책이라고 말이야.


(106)
호화 크루즈 여행에서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절망은 내가 무슨 수를 써도 나의 본질적이고 새삼 불쾌한 미국인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일부 비롯한다. 그리고 이 절망은 항구에서 절정에 달한다. 난간에 서서 내가 어쩔 수 없이 그 안에 속하는 사람들 무리를 내려다볼 때. 이 위에 있든 저 밑에 있든 나는 미국인 관광객이고, 따라서 그 정체성상 크고, 살찌고, 벌겋고, 시끄럽고, 거칠고, 오만하고, 자기 생각뿐이고, 응석꾸러기이고, 외모에 신경 쓰고, 창피해하고, 절망하고, 탐욕스럽다. 우리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솟과 육식동물이다.

(322~323)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이 점부터 인정하고 넘어가자. 동물이 통증을 느낄 줄 아는가. 느낄 줄 안다면 어떤 방식으로 느끼는가, 우리가 그들을 먹기 위해서 그들에게 통증을 가하는 일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정당화되다면 어떤 이유로 되는가 하는 질문들은 극도로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들이다. 비교신경해부학은 문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통증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정신적 경험이므로, 우리는 자신 외에 다른 인간이나 다른 동물의 통증을 직접 알아볼 수 없다. 게다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인간도 통증을 경험하고 따라서 그도 통증을 겪지 않으려는 타당한 이해를 갖고 있다고 추론하도록 이끄는 원칙들은 본격적인 철학의-형이상학, 인식론, 가치 이론, 윤리학의-영역이다.

(366)
정보의 억압, 국가의 검열, 특히 그가 소중하게 여기고 글을 쓰고 싶어 했던 자신의 신념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경우가 많았던 계몽주의 이후 유럽 사상이 인기를 끄는 현실. 내가 도스토옙스키에게 정말로 놀랍고 감동적이라고 느끼는 점은 그가 천재였다는 것만이 아니다. 그는 용감하기도 했다. 그는 문학적 평판에 대한 걱정을 한시도 놓지 못했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은 굳게 믿되 세상에서는 인기 없는 신념을 세상에 퍼뜨리는 작업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더구나 자신에게 불친절한 문화적 환경을 무시하는 방식이 아니라(요즘은 이런 방식을 "초월한다"거나 "전복한다"고 표현한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면서 그것에 대항하고 그것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해냈다.

(379)
이 윔블던 결승전에는 복수의 내러티브가, 왕 대 제왕 살해의 구도가, 극단적인 인물 대조가 갖춰져 있다. 이것은 남유럽의 열정적인 남성상과 북유럽의 섬세하고 임상적인 예술성의 대결이다. 디오니소스 대 아폴론이다. 식칼 대 메스다. 왼손잡이 대 오른손잡이다. 세계 이인자 대 일인자다. 나달은 현대적인 파워 베이스라인 게임을 최대한 밀어붙인 선수이고… 그 상대는 속도와 발놀림 못지않게 뛰어난 정확도와 다양성으로 이 현대적 게임을 또 다르게 바꿔놓은 인물이지만, 앞의 선수에게만큼은 유난히 맥을 못 추는, 혹은 기가 눌리는 선수다. 영국의 어느 스포츠 기자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면서 기자단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 번이나. "이 시합은 전쟁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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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ya7676 2018-11-15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주는 독서편지~독서가 편지가 된다는걸 첨 알았습니다. 멋지세요.

bookholic 2018-11-16 16:05   좋아요 1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