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중독 - 새것보다 짜릿한 한국 고전영화 이야기
조선희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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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지난 봄에 재미있게 읽은 책 중에 <세 여자>라는 소설이 있단다. 그 소설을 쓴 지은이는 조선희라는 사람이야. 그래서 그 분께서 쓰신 다른 책들을 검색해 보았단다. 처음부터 소설을 쓰셨던 분이 아니고 기자 생활을 하다가 소설을 쓰기 위해서 기자 생활을 그만두었다고 했어. 기자 시절에 <씨네 21>이라는 영화 관련 잡지 회사의 편집장으로도 일했대. 그런 이력 때문인지 그의 책 중에 영화에 관련된 책이 있더구나.

클래식 중독. 처음에는 이 책이 영화가 아니고 음악에 관한 이야기인줄 알았어. 보통 클래식이라고 하면 고전 음악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야. 아빠도 그런 고전 음악에 관련된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또 다른 고전 음악의 책을 읽어볼 수 있는 기회겠구나 하고 생각했어. 그래서 인터넷 서점에서 그 책의 소개를 읽어 보았는데, 음악이 아니라 영화에 관련된 책이더구나. 그것도 우리나라 고전 영화에 관한 이야기였어.

아빠가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우리나라 고전 영화는 거의 본 것이 없었어. 서양의 고전 영화는 명작이라고 소문이 난 영화들을 찾아 본 적이 있는데 한국 고전 영화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본 것이 생각이 나질 않더구나. 아빠가 20대 들어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하던 시절 이후의 한국 영화는 좀 봤지만 말이야. 한국 고전 영화라고 하면 왠지 시대에 뒤떨어지고 촌스러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거의 찾아보지 않았던 것 같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예전에 성행을 했던 비디오 가게에서도 한국 고전 영화 코너는 못 봤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구나. 그만큼 보려고 했던 사람도 적었고, 보기도 쉽지 않았던 것 같아. 아무튼 그런 한국고전영화의 이야기야…. 아빠가 영화에 관련된 책을 읽는 것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어.

 

 

1.

지은이 조선희는 <씨네21> 편집장 경력으로 한국영상자료원장을 맡게 되었고, 3년 임기를 마치던 시기에 이 책을 출간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우리나라 고전 영화에 대한 소개를 한 가장 좋은 책이 아닐까 싶구나. 물론 아빠가 이와 관련된 책들을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말이야.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우리나라 고전 영화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도대체 무엇을 봐야 할지 선택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이 책은 좋은 나침반 역할을 할 것 같아.

그리고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영화와 영화인들 사이에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읽는 것만으로 재미를 줄 수 있는 책이었어. 다만 아쉬운 것은 세대차이에 따라 이 책에 대한 공감도가 많이 차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빠도 이 책에 나오는 영화들 중에 본 영화가 몇 편 안되어 많은 공감을 하지는 못했단다. 옛날에 이런 영화가 있었구나 하는 정도..

최근까지 활동을 하는 임권택 감독에 관한 이야기 정도가 그나마 아빠가 알고 있는 감독이었어. 임권택 감독이 <춘향전>이라는 영화를 찍었던 것은 알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춘향전>이라는 소재로 찍은 영화가 무려 16편이라고 하는구나. 이 통계는 이 책이 출간된 2009년 기준이니까 그 이후에 더 늘어났을 수도 있고 말이야. 다른 고전에 비해 춘향전이 왜 이렇게 많이 영화로 만들어졌을까? 그것은 서사의 탁월함을 받침으로 사랑, 반전, 코믹 등 영화의 성공 요소를 다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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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서사의 탁월함이다. <춘향전>은 한 청춘남녀의 러브스토리다. 다만 이 사랑의 행로에 온갖 사회, 정치, 문화적 난관들이 겹겹이 치고 들어오면서 러브스토리가 전투를 방불케 하는 모험의 여정이 된다. 여주인공이 애정다툼으로 인해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살해 위협에 놓이는 이런 살벌한 러브스토리가 어디 흔한가. 이 같은 치명적인 삼각관계가 <춘향전>의 극적 긴장을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이다. 여기에 이별과 재회, 원한과 복수, 억압과 저항, 고난과 극복, 출세와 영락 등 명암이 뚜렷한 이야기의 원형들이 드라마를 종횡으로 얽어나간다. 그러니 이야기 구조가 입체적이고 디테일이 풍부할 수밖에. 강력한 코미디의 매력 또한 <춘향전>의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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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검열에 관한 이야기였단다. 요즘에도 검열을 하긴 하지만, 옛날에는 검열이 엄청 심했다고 하는구나. 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잘려나갔대. 음악이나 소설 등은 다 만든 다음에 검열을 하지만 영화의 경우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한번, 다 만든 다음에 한번 더 검열을 한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어떤 영화는 3분의 1 이상이 잘려 나가는 경우도 있고, 원작 소설과는 전혀 다른 영화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대.

예전에 아빠도 괜찮게 읽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소설이 있어. 그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경우도 검열을 피해갈 수 없었다고 하는구나. 원작 소설이 철거민의 약자의 시선에서 다룬 영화로 공권력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어. 이 영화는 시나리오부터 제재를 받기 시작해서 몇 번의 수정을 통해 간신히 통과를 하게 되었는데, 배경도 바뀌는 등 원작과는 전혀 다른 영화로 변질되었으며, 포스터를 보면 에로영화인줄 알 정도로 다른 영화가 되었단다. 원작 소설을 본 사람이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았다면 잘못된 포스터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원작 소설을 보지 않은 사람이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았다면, 야한 영화로 생각하고 영화를 보러 왔다가 실망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구나. 원작 소설의 지은이 조세희님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지금이라도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제대로 영화로 다시 만들어서 원작 소설의 명예를 회복했으면 좋겠구나.

 

 

2.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옛날 고전 영화는 보기가 참 힘들단다. 그런데 요즘에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대부분 VOD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는구나. 그래서 아빠도 한번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았어. , 그런데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는 안되더구나. 아빠는 당연히 VOD라서 스트리밍 서비스인줄 알았는데, 오프라인으로 직접 영상자료원에 가서 봐야 하는 것이더구나. 관심 있는 사람이야 발품 팔아서 가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쉽지 않을 것 같구나. 좀더 접근하기 쉽게 인터넷에서 스트리밍 등으로 제공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PS:

책의 첫 문장 : 한국영상자료원에 와서 3년 동안 정말이지 한국영화 실컷 보았다.

책의 끝 문장 : 앞으로 내가 문학상 같은 데 응모하게 될 일이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혹여 그런 날이 올 때 김연수 씨가 심사를 맡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88)
그것은 당시 청년문화의 한 아이콘이었다. 그것은 젊은이들의 꿈이되 이룰 수 없는 꿈을 의미했다. 일탈에의 꿈, 현실 저 너머 어떤 곳,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사회로부터 멀리멀리 떠난 곳, 탁 트인 대양과 무한의 자유, 권위적인 아버지를 뛰어넘은 젊은 세대의 미래, 그 모든 것을 통칭했다. 또한, 난숙한 풍요의 후기산업사회로 접어든 서구사회가 달라이라마나 라즈니쉬, 참선 등 동양적 패러다임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듯, 과학문명과 경제개발의 중심인 서울에서 바라보는 동쪽 끝, 바다와 고래가 갖고 있는 어떤 근원의, 원시의 이미지에 대한 동경이었다. 하지만 해외이민이나 입산수도라면 몰라도 ‘동해바다의 고래’는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투지가 안 보이는 이루기를 진즉에 포기한 꿈이다. 청년기의 잠재울 수 없는 갈증과 허기와 객기, 군사정권 아래 숨죽인 병영사회 속에서 폭발할 듯한 대학사회의 스트레스가 거기 담겨 있었다. 그것은 희망인 동시에 좌절의 부호였다. 하시 말해, ‘허공에의 질주’였다.

(114)
일본이 항복하고 조선이 해방됐을 때 부푼 꿈이 깨져 허탈해 하는 지식인들이 있었다는 것은, 믿기 싫지만 진실에 가깝다. 총독부가 손목을 비틀어서 이광수가 <전망>이나 <조선의 학도여> 같은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글들의 저류에 깔리는 필자의 정서는 억압과 굴종이 아니라 낙관과 투지에 들뜬 비상한 흥분 상태다. 다만, 당대 최고의 지식인 이광수가 어찌해서 이처럼 믿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는지, 그리고 멀쩡한 조선의 영화인들이 어찌어찌해서 마친내 ‘민족의 죄인’이 되고 말았는지는 연구 대상이다. 그것을 ‘시대적 조울증’과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풀어볼 수 있지 않을까.

(237)
‘꿈’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잠 속의 환각도 꿈이고, 미래의 소망도 꿈이다. 두 가지는 성질도 다르고 차원도 다른, 전혀 동떨어진 영역에 속해 있는 어떤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유사성을 갖고 있다. 모두 마음의 작용이며, 물리적 실체가 없고, 지금 현실과의 관계란 그저 가느다란 끈 정도다. 나는 문득, 그 꿈도 꿈이라 부르고 저 꿈도 꿈이라고 부른 최초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우리말뿐 아니라 다른 언어를 만든 사람들도 똑 같은 발상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영어의 ‘dream’ 역시 두 가지 꿈이다. 중국어의 ‘夢’도 그렇다. 프랑스어의 ‘reve’(레브)나 스페인어의 ‘sueno’(스에뇨)도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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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10-11 1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마음산책 ㅡ 이었네요!^^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태인 2018-10-14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영상원에서 볼 수 있는 영화는 유튜브에서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회원들한테 문자 보내더라고요.유튜브에도 올리니 보러오라고...

bookholic 2018-10-15 08:12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일단 회원 가입이 우선이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