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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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는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며, 동등한 '권리'를 지닌다고 배웠습니다. 동시에, 기이하게도 '성역할'이라는 게 정해져 있다고도 배웠습니다. 생활과 태도에서 암묵적 혹은 묵시적으로 '남자는' 혹은 '여자는' 어떠해야 한다고 가르쳤을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이렇게 하라'며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라고 느끼도록 만들었습니다. 

 당연한 지적과 반발을 유난스럽다거나 적응하지 못한다며 비난하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불이익을 주거나 모욕을 안기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걸 보고, 듣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일어나고 있는 일상 속이니까요.

 

 기이한 건 보고, 듣고, 경험하고 있음에도 모른다는 겁니다. 

모호하게 '모른다'라고 말할 게 아니라 좀 더 나눠서 보자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거나, '경험하고 있지만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거나, '다 그런 것이라고 넘겨 버리'거나, '그렇게 하는 게 최선이라고 믿거나 설득 당하'거나 하는 식으로 확장되고, 확산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학습된 무기력


 자기 몸의 100배 높이까지 뛰어오를 수 있는 벼룩을 그 절반 높이의 칸막이 안에 가둬두면 나중에는 칸막이가 없어지더라도 절반 이상으로는 뛰지 못하게 된다고 하죠. 

 어떤 사람들은 여성들이 현재의 사회 구조와 작동 방식을 따른다는 건 현재의 방식에 동의한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합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쩔 수 없어서'와 '그렇게 하는 게 좋아서'는 전혀 다릅니다. 설사 결과가 같다고 해도 둘은 영원히 같아질 수 없다는 거죠. 


 세상에는 생김새나 신체적인 특징 혹은 버릇보다 더 강력한 '유전 요인'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성별'이라는 거대한 유전 요인 말입니다. 남성은 남성의 지위와 행동 방식은 물론 사고방식까지를 계승합니다. 여성은 여성의 지위와 행동 방식, 사고방식을 계승합니다. 

 소위 '대물림'이라고 하는 일이 차이가 명백하다고 믿어지는 성별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남자들, 모든 남성들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겠지만 실제로 모든 남성들은 여성들이 느끼는 불편하거나 부당하거나 두렵거나 끔찍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해한다'거나 '안다'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무성의하고, 무례한 일이었을까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정기적인 모임을 함께 하는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모임 외에는 어떤 상황도 공유되지 않는 모임의 '회원 사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하루는 모임이 늦게 끝나 버스와 지하철 운행이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 상황이 시작됩니다. 다음 상황 중 여자의 입장에서 가장 '무서운 상황'은 어느 것일까요.

1. 택시를 타고 간다.

2. 집에 연락해 누군가 데리러 올 때까지 혼자 기다린다.

3. 함께 모임을 한 남자 회원이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처음에는 1번이 가장 무서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택시에서의 추행이나 범죄 사건이 워낙 자주 일어나다 보니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무서운 건 3번이 아닐까 싶어 졌습니다. 

 몇 번인가 모임에서 얼굴을 본 사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의도는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동행하겠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무서울까요. 

  

 이 생각을 하게 된 건 <82년 생 김지영> 속에 이런 장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못되게 굴고, 괴롭히고 그래.(중략) 짝꿍이 나를 좋아한다고? 괴롭히는 게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김지영 씨는 혼란스러웠다.
<82년 생 김지영> 中

폭력은 폭력이고, 괴롭힘은 괴롭힘일 뿐입니다. 관심이나 애정표현을 괴롭힘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죠. 어쩌면 남자는 여자가 걱정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합의되지도, 공개되지도, 인정받지도 못한 개인적인 의도일 뿐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상대방에게는 또 다른 폭력이 되어 상처를 남길 수도 있는 겁니다.


 '무지가 죄'라면 무지한 남자들은 잠재적인 '죄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죄인의 혐의를 벗는 유일한 방법은, 배우고 익혀서 알아가는 것뿐입니다.

<82년 생 김지영>은 우리 무지한 남자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할머니, 엄마, 누나, 여동생, 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보는 것만으로는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문제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을,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상 속의 '차별'과 '공포', '불이익'과 '비정상'을 들추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의 불편이 아니고, 남자들을 향한 부당함이 아니고, 남자들의 불이익이 아니라고 해서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건 너무나 비열한 행동입니다. 

 성차별,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는 기이하게도 불편하고, 불쾌하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잘잘못을 따지겠다는 것도, 책임을 묻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러저러한 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식의 현재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방어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거죠.


<82년 생 김지영>에서 발견한 이상한 점을 몇 가지 공유해보겠습니다.

1. 집안일과 살림, 육아는 여자의 일이다.

2. 남자는 집안일과 살림, 육아를 '돕겠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남자의 집이고, 남자의 살림이며, 남자의 아이를 키우는 일은 '도울 일'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3. 남자는 여자에게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자는 고생을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공동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거다. 남자가 미안해할 건 고생을 시키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여기는 그 마음의 태도다.

4. 관심 있는 여자, 좋아하는 여자, 사랑하는 여자에게 짓궂게 굴거나 괴롭히는 게 애정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폭력'이다. 다른 이름은 없다.

5. 여자가 친절하게 대하고, 잘 해주면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 줄 안다. 극단적으로는 헤픈 여자로 여기고 막 대하기도 한다. 여자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거나,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최선의 선택으로 웃음과 친절한 태도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거다. 착각은 자유지만, 거기까지만.

6. 합리적이고 열린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양성 평등이라거나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앞과 뒤가 다른 이중 인격자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7. 여자가 너무 뛰어나고 잘나면 남자가 기가 죽는다. 그러므로 여자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왜 남자는 기가 죽으면 안 되는 건가, 그전에 여자가 '더 뛰어나면' 남자가 기가 죽는다는 말의 어디에 합리적인 논리가 존재하는지.

8. '이래서 여자는 안 된다'는 편견이 있다. '그래서 남자는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있나? 저마다 이유와 사정이 있는 법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 공감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편견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9.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서 여성들을 위한 제도와 혜택도 많아졌다.라는 건 안일한 생각이다. 빨간불에는 정지해야 한다는 걸 몰라서 신호를 위반하는 사람은 없다. 제도가 있어도 이용할 수 있는 상황과 여건, 인식이 없다면 법이 아무리 잘 짜여 있어도 지키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과 다를 게 없다.

10.  아이를 낳았을 때만 얻을 수 있는 게 있는 법이다. 잃는 것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부분은 본문을 인용하기로 한다.

"그래서 오빠가 잃는 건 뭔대?" 
"응?"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라며.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근데 오빠는 뭘 잃게 돼?"
<82년 생 김지영> 中

여자는 거의 모든 걸 잃는다. 남자가 잃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직장 동료와의 맥주 한 잔 같은 것들.

11. 직장 생활을 하느라 아이를 남에게 맡겼을 때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비난은 엄마를 향한다. 

지금까지 그래 왔죠. 아이를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건 엄마였습니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 타인에게 맡기는 게 아닙니다. 그들을 향한 비난이 부당한 이유입니다.

12. 모성애는 결코 위대하지 않다. 

적어도 사회가 '열녀비'처럼 떠받드는 모성애는 그렇다는 거죠. 우리는 강제 혹은 강요된 애정에 '위대하다'는 칭호를 붙이지 않습니다. 

13. 남편이 일할 시간에 한가롭게 커피 한 잔을 하는 여자는 자칫 '맘충'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 

아내는 결코 놀고먹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 다만 씹어 뱉기 위해 날카롭고 치명적인 말을 던지는 사람들의 그 입에 저주가 내리길.

14. 남자의 '범죄 행위'가 있었을 때, '가정과 부모의 존재'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가정이 있고 부모가 있다는 건, 그런 짓을 용서해 줄 이유가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82년 생 김지영> 中

그러하다.

15. 이 모든 차별이 부당하다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문제이기에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시스템, 구조, 관습들이 잘못되어 있는 거다. '혼란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우려와 혼란의 진짜 정체는 지금까지 누려온 우월함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치졸한 변명이다. 

 잃어버릴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게 되는 것을 생각해야 할 때다.


 많이 적지 않았습니다. 

너무 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발견 한 건 고작 이 정도죠. 

오래전부터 인간에 대한 '이해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왔지만 지금까지도 '이해는 하거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는 정도의 결론 외에는 얻은 게 없습니다. 

 남자로 태어나, 불편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이, 그야말로 '아무렇지 않게' 생활해 왔습니다. 

누구도 '이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고요.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는 속담을 들먹이며, 책임을 전가하며 모른 척 해왔을 뿐입니다. 

이것이 비겁한 행동이었다는 걸 '인지'하게 된 것도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비겁했고, 비열했으며, 무지했고, 무관심했던 것은 물론, 동조자였고, 방조자였으며, 가해자이기도 했습니다. 

 

 <82년 생 김지영>은 남자들에게 이렇게 하라거나, 저렇게 해야 한다고 훈계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상을 그대로 지면으로 옮겨 적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82년 생 김지영>을 읽으며 충격을 받는 사람이 있을 거고, 읽기 전과 후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우리에게는 '차별'과 '혐오'를 지칭하는 언어가 없었습니다. 

 '열녀', '모성애', '엄마', '현모양처', '요조숙녀' 유사 의미 등등.

 당연하다고 믿어 온 것, 명예롭다고 떠받들어온 것, 남자들이 이용해온 칭호와 이름들.


 좋은 것만 물려주기에도 안쓰럽습니다. 

불행의 대물림, 상처의 연쇄. 

그 외침에, 울음에, 귀 기울여야만 멈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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