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 크로스로드 SF컬렉션 4
이영수(듀나) 외 지음 / 사이언티카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작년 언젠가부터 스릴러(혹은 추리소설)를 읽는 횟수가 많아졌습니다. 일부러 찾아서 읽는 건 아닌데, 눈길이 가는 책이 대부분 스릴러나 추리소설로 분류가 돼 있더군요. 추리소설이나 스릴러가 ‘장르문학’에 포함된다는 것도 어쩌다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장르문학이라는 말이 애매하더군요. 순문학에 대비(?)되는 의미인 것 같기는 한데, ‘이런 뜻이구나’하고 명확하게 이해되지가 않는 겁니다.

장르문학, SF, 판타지, 스릴러, 추리, 공포... 장르문학도 여러 가지로 나눠지더군요. 가끔 ‘본격, 신본격’이라는 말도 들립니다. ‘사회 현실에서 제재를 구하고, 작가는 제삼자적 관점에서 사건의 진전이나 인물의 움직임을 객관적으로 다루어 구성한 소설’을 본격소설이라고 한다는 데, 설명을 읽어도 잘 모르겠더군요. “재밌으면 그만이지 장르를 나누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어?”하고 생각하며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서점에서 나눠놓은 걸 보니 이 책은 ‘판타지’에 속하기도 하고 ‘SF’에 속하기도 하더군요. 문득, SF는 어떤 내용의 책을 말하는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외계인이나 우주괴물이 등장하면 SF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면 SF의 'S'는 ‘space’의 첫글자를 따온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 SF를 찾아보니 ‘science fiction’을 줄인 말이더군요. 우리말로 풀어놓으면 ‘공상 과학 소설(영화)’라고... SF의 뜻을 알고 나니 <물구나무서기>와 <사랑 그 어리석은>, <전화 살인>, <관광지에서>가 SF에 들어가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 않았다거나, 외계인이 나오지 않아도 SF일 수 있는 것이니까요.

<우주와 그녀와 나>, <시공간-항(港)>, <수련의 아이들>, <물구나무서기>, <백중(百中)>,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 <사랑 그 어리석은>, <달에게는 의지가 없다>, <전화 살인>, <관광지에서> 10작품 모두 작가님들의 상상력에 감탄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특히 <시공간-항(港)>과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를 읽을 때는 감탄이 절로 나오더군요.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는 글도 좋았습니다. 힘없고 돈없는 노동자의 어이없고 안타까운 사연이, 미래가 아니라 지금의 인권문제를 말하고 있는 듯하더군요.

우리나라 SF작가님들의 글을 처음 읽었습니다. 어쩌면 제대로 된 SF가 처음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SF라는 장르가 어떤 영역(?)인지 살짝 알 것도 같습니다. 어느 장르의 글을 쓰는가 와는 상관없이, 작가님들의 상상력에는 특별한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SF를 쓰는 작가님들의 상상력에 감탄하며 책을 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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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욘더 - Good-bye Yonder, 제4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김장환 지음 / 김영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가 2년 뒤에 “여보, 나 여기 있어.”하는 메일을 ‘홀’에게 보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책 뒷표지에 나오는 내용이거든요. 책을 펼치기 전에 잠시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는 이야기를 어디서 시작할까? 아내가 죽은 직후부터? 아니면 건강하던 아내가 암에 걸리는 걸 알게 될 때부터? 혹시 아내가 죽은 지 2년 뒤, 메일을 받으면서 시작할까? 제 생각은 셋 다 틀렸습니다. 아내의 죽음 직전에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한 장을 읽고나니 이런 내용이 나오더군요.

 

그리고 얼마가 흘렀을까? 그녀와의 일방적인 교신마저 끊어져버렸다. 그녀는 완전히 브로핀으로 들어가서 신음이나 가쁜 숨소리 말고는 아무 신호도 내보내지 않았다. 잠시 뒤 후두둑 은빛 센서들이 아래로 떨어졌고 그녀의 가슴 위에 ‘파르르’ 하는 작은 요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것들이 다시 잠잠해졌을 때, 그것이 아무 특이한 사건도 아니라는 듯 내 아내가 정말 떠나버렸다. 세상에 흔히 벌어지는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일 중 하나인 것처럼. (본문 13쪽)

 
가끔 생각하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 먼저 보내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 어느쪽이 더 힘들까...... 어떨 때는 먼저 떠나는 사람이 너무 많이 힘들 것 같고, 또 어떨 때는 홀로 남아서 몇 년을 더 살아야 하는 사람이 더 힘들 것 같기도 합니다. “한 날 한 시에 태어나지는 않았어도 한 날 한 시에 죽었으면 좋겠다.” 는 말이 그래서 있나봅니다.

 
하루는 남편에게 “자기랑 같은 날 죽는 것도 괜찮겠다.”고 했더니 현실적이고 분위기 없는 이 경상도 아저씨가 한마디 하더군요. “그러면 아이가 너무 놀랠 걸?”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서 아무 대꾸도 못했지만 (그래도 재미는 없어서) 한 번 째려봐 줬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생각해보게 됩니다. 내가 ‘이후’라면, 내가 ‘홀’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후처럼 홀을 배려할 수 있을까? 홀처럼 용감할 수 있을까? 이후의 선택은 정말 옳았을까...... 다른 질문에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지만 이후의 선택은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깊은 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참을 생각하다가 불을 켜놓고 선잠이 들었나 봅니다. 꿈속에서 잠깐 동안 욘더 근처에 다녀왔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 

 

욘더 Yonder
n. 1. 슬픔도 헤어짐도 잊힘도 없는 불멸 천국.
2. 준비 없이 떠나 보낸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
3. 영원히 함께할 수 있으나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이별할 수도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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