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유교수의 생활 애장판 1~17 세트 - 전17권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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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호란 씨의 본명은 최수진 씨다.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켜 안타깝게 지금은 방송 출연이 뜸하지만, 예전에 한 프로그램에서 활동명의 유래를 《천재 유교수의 생활》 이란 만화에 나오는 인물에서 따 왔다고 밝혔다. 실제 호란은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인데,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몽골 국적을 가진 당차고 멋진 여성이었다. 조국의 발전을 꿈꾸며 한 발 한 발 자기 삶을 걸어나갔던 경제학도 아니면 전공자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물론 주인공은 제목처럼 유 교수다. 본명은 유택. Y대 경제학과 원로교수다. 결벽증이 의심될만큼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원칙주의자다. 저녁 9시에 취침하고 새벽 5시 30분이면 저절로 눈이 떠 지고 매일 출근길도 마찬가지로 마치 기계처럼 가던 길을 눈감고도 갈 수 있으며, 무단횡단이란 그의 삶에서 어림도 없는 일이다. Y대 학생들은 대부분 이 깐깐한 노(老) 교수를 어려워한다. 만화는 이런 유 교수의 일상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소개한다.





(유 교수의 얼굴.)



아시다시피 이런 원칙주의자가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무나 요지경이다. 마트에서 세일하는 정어리를 사려고 줄을 서 있다가 새치기를 당하고, 같은 학교 학과에 재학중인 학부생 딸은 킹 오브 파이터즈 베니마루 머리에 짙은 화장을 하고 다니며 락 가수를 지망하는 씨씨 남자친구를 버젓이 집에 데리고 온다.



겉만 보면 유 교수는 꼰대의 극치를 달리는 캐릭터같고 에피소드도 달리 대단할 거 없는 작품 같지만, 특이하게 이 만화는 이른바 알 사람은 거의 아는 만화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놓고는 아니지만 인지도가 높다. 가수 호란 씨처럼 감명 깊게 봤다는 유명인이 꽤 있고, 만화가들 서재에 빼꼼히 꽂혀 있는 모습을 은근 자주 볼 수 있다. 《드래곤볼》, 《슬램덩크》만큼 인생작으로 언급은 잘 안 되나 의외로 많은 독자들이 알고 소장하는 신기한 작품이다.



이유가 뭘까. 사실 겉만 보면 꼰대 할아버지 교수같지만 알고 보면 매력남이라는 점이다. 정어리를 사기 위해 새치기를 하는 이웃처럼 무단횡단을 하거나 원칙을 어기는 사람들, 딸의 남자친구처럼 자기만의 개성과 소신을 가진 캠퍼스 괴짜 학생들과 사회 인물들, 유 교수를 껌딱지처럼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는 손녀와 무심하고 깐깐한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는 아내와의 케미스트리. 때로는 자신과 너무 다르고 때로는 귀찮게 하는 인물들을 만나고 겪지만, 이 원칙주의자는 욕하고 비난하기보다 그들을 호기심 가득찬 눈으로 끊임없이 탐구한다. 그리고 그 탐구심의 결론에는 인간에 대한 성찰과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가 만나는 다양한 인간상에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다. 앞서 설명한 호란도 한 예다. 한 에피소드에 비중 있게 나오지만 고정 캐릭터는 아니다. 그럼에도 가수 최수진 씨는 호란을 활동명으로 정했을만큼 캐릭터에 빠졌다. 독자는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자신과 닮거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유 교수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로 만난다. 때로는 인간의 천태만상을 보면서 풍자를 느끼고, 때로는 매료되고, 때로는 감동한다. 그리고 그 깐깐한 렌즈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자기 길을 가는 원칙주의자 유택 교수에게 자연스럽게 팬이 된다.



지금 나는 한 유학생 에피소드가 기억에 떠오르는데, 독후감 리뷰를 쓰는 이유도 갑자기 그 에피소드가 떠올라서다. 학업에는 관심이 없고 놀기 좋아하고 밴드 활동에만 열심인 유학생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내막이 밝혀지길 분쟁지역에서 부모님이 반정부 민주화 인사로 낙인찍혀 숙청당하고 일본으로 온 난민이었다. 일면 날나리같은 그녀는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유 교수와 몇 차례 면담 끝에 자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한다. 친부모와 친분이 있던 보호자와 주변인의 만류에도 부모님의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본국행을 택한다. 유 교수는 마지막으로 면담을 하고 당당히 캠퍼스를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유 교수는 원칙주의자이자 테생적으로 타고난 탐구심 덩어리다. 하루하루 원칙을 고수하며 살아가면서도 하루하루 사람을 탐구하며 살아간다. 그에게 있어서 원칙과 소신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나, 순수하고 남다른 탐구심은 나와 남이 다름을 너무나 잘 깨우쳐 준다. 인간과 사회를 편견 없이, 진심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결국 그는 따뜻한 원칙주의자가 되었다.



대체로 저 사람은 왜 저럴까?의 호기심은 단순히 그 인간이 틀렸다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편하기 때문이다. 눈과 귀를 열고 살기보다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눈과 귀를 닫고 사는 태도는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다. 반면에 독자가 이 깐깐하고 집요한 원칙주의자 노(老) 교수에게 반하는 이유는 그에게서 사람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따뜻한 원칙을 발견한 덕분일 것이다. 과연 나는 어떨까. 지금은 어떻고 나이가 들면 또 어떻게 될까. 《천재 유교수의 생활》은 독자를 웃기고 울리면서 은근슬쩍 질문을 던진다.



p.s 유 교수는 작가 야마시타 카즈미의 아버지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실제 작가의 아버지는 요코하마 국립대학 경제학과 교수였고 Y대는 아마 요코하마에서 따 온 이니셜이라는 게 정설인데, 마치 분위기는 우리나라 매스컴에서 접하는 교토대를 연상케 할 정도로 자유롭고 괴짜인 학생들이 많다. 무려 1988년부터 지금까지 연재중인 장수작이나 완결을 맺지 못한 채 우리나라 학산문화사 단행본 기준 34권에서 신간이 출간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완결판보다 애장판이 먼저 나와서 다소 욕을 먹긴 했다. 신간은 잘 안 나오고 완결은 언제될 지 모르는데 애장판이 나오니 조금 속상할 만하다. 하지만 독자가 애정하고 애장하고 싶게 만드는 작품인 점은 마찬가지다. 참고로 나는 종이 단행본 몇 권과 포인트를 모아서 이북으로 한 권씩 사서 큰 부담 없이 34권까지 전자책으로 소장하고 있지만, 이 애장판을 볼 떄마다 살까 말까 망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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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8-20 0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상하게 이 만화를 좋아하는 한명입니다. ^^ 열광적으로 좋아할 만화는 분명 아니나 은근히 자꾸 보고싶은 만화죠

캐모마일 2020-08-20 10:44   좋아요 0 | URL
와....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극적인 요소가 강한 편이 아니라서 대표적인 인생 만화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잊을 만하면 생각나고 곁에 두고 종종 읽고 싶은 작품입니다.
 
작은 아씨들 (영화 공식 원작 소설·오리지널 커버)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강미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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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영화로 개봉하고 고전 명작이라 어머니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 책이 예쁘다고 하시며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주게 한두 권 더 사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초판본 표지 특별판에 영화 스틸컷을 삽입하여 책이 아기자기합니다. 두꺼운 양장본임에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점도 한 몫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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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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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는 일본호러대상 수상작이다. 솔직히 작년 이맘 때 읽어서 자세한 내용은 떠오르지 않는다. 가끔 마음에 꽂히는 작품이 있어 리뷰를 쓰려고 작정하지만, 오히려 부담감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 넘어간다. 《야시》가 그 경우다.



책은 표제인 〈야시〉와 〈바람의 도시〉 두 중편이 수록돼 있다. 호러물보단 기담 형식에 가까운 작품으로 대체로 주인공이 요괴 마을 같은 다른 차원에 들어가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을 그린다. 그 이(異)세계는 저 먼 원더랜드가 아니라 가까운 동산이나 동네 어느 곳에 통로가 있고, 일상에 존재하는 평행 세상이다.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라는 부제가 딱 어울린다. 표제작보다 <바람의 도시>가 더 기괴하고 하드보일드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줄거리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서 감히 리뷰를 남겨 쓰는 나도 안타깝다. 다만 장마철 무더위에 호러 소설, 혹은 일본식 기담을 찾는 독자에게 무턱대고라도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장르성에만 집중하거나 자극적인 고어물이 아니면서도 독자를 끌어들이는 미스터리한 매력이 있다. 기묘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독특한 사건들에 오히려 현실의 삶과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엿볼 수 있어서인지 공포감이나 쾌감 이상의 떨림과 여운을 느꼈다. 단순히 장르소설로만 치부하기엔 아까운 작품이라 무성의하게나마 리뷰를 남긴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읽고 제대로 서평을 남기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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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효범 9집 -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신효범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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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효범 씨 9집 타이틀곡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가 요즘 드라마《슬기로운 의사생활》 ost 로 리메이크되어 이른바 차트 역주행을 했습니다.


출연자 전미도 씨가 부른 리메이크 버전으로 다시금 화제가 되었고, 이번엔 7월 7일 얘능 프로그램《불타는 청춘》에서 원곡자 신효범 씨가 노래하여 초록창 실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원래 좋아했던 곡이었는데 재조명 받고 있네요. 반갑고 기쁜 마음에 역주행 버전과 오리지널 버전을 유투브 영상으로 공유해 봅니다.



♬ 역주행 전미도 씨 라이브 버전 ♬



MV 버전




♬ 원곡자 신효범 씨 버전 ♬



불타는 청춘 실검 1위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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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팔부 1~10 세트 - 전10권
김용 지음, 이정원 옮김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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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에서 신수판 정식완역본 《천룡팔부》가 출간되었다. 신수판은 故 김용 작가가 2005년 최종 개정한 판본을 정확하게 번역했다는 뜻이고, 정식완역본은 그동안 해적판이나 암암리에 번역했던 작품을 정식 판권을 계약하여 완역한 것을 말한다. 해적판에서 출판사, 번역가가 임의로 고친 부분, 개정판 일부만 반영한 판본과 달리 온전히 완역한 번역본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제목인 《천룡팔부》는 불교의 팔부신중(八部神衆)을 말한다.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 다른 신적 존재 혹은 불법에 감화된 악신들이었으나 결국 자신들의 신력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호법신으로 포섭되었다. 그중 으뜸인 천신, 용을 비롯한 야차, 건달바, 아수라, 긴나라, 마후라가,가루라를 일컫는다. 소설은 이 여덟 신장의 특징들을 작품 속 인물들에 투사하여 불교적 주제를 부각시킨다. 



《천룡팔부》는 작가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특유의 불교적 주제뿐 아니라 다양한 중국 역사, 철학, 기예 등을 담고 있는 덕분이다. 작품은 중국 북송 시대(北宋, 960년 ~ 1127년)를 배경으로 주인공 소봉, 단예, 허죽 세 인물을 내세워 요, 서하, 토번, 대리, 여진족 사이 벌어진 역사적 갈등과 인문철학을 버무려 무협 장르를 대하역사소설로 승화시켰다. 일각에선 중화권 문화를 가르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한다. 작품에 담긴 역사, 문화적 소양이 깊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 읽는 데 부담이 없어서다.



작품은 대중성과 함께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무협 소설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위대한 문학 작품으로서, 반지의 제왕이라는 기념비적 작품을 남긴 톨킨을 빗대어 고 김용 작가에게 중국의 톨킨, 신필이란 수식어를 부여하였다. 작가를 연구하는 김학(金學)이란 학문이 정식으로 개설되었다. 한동안 중국 교과서에 처음으로 무협 소설이 수록돼 우리나라 뉴스에도 비중있게 다뤄졌는데, 바로 당시 작품이 《천룡팔부》였다.



이번 김영사판 《천룡팔부》는 중국어 전공자이자 다수의 중화 드라마, 영화를 번역한 이정원 번역가가 번역을 했다. 2018년 하반기에 나온 전정은 번역가의 《소오강호》가 독자에게 호평을 받아 부담이 될 만도 했고, 무엇보다 쉽지 않은 대작을 맡아서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독자평, 여러 후기, 무협 카페 등에선 칭찬 일색이다. 매끄럽게 읽히면서 필요한 한자 단어는 억지로 한글화하지 않되 작가가 일일이 주를 달았다. 마니아층은 물론이고 김용 소설 입문자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김영사의 사조삼부곡, 《소오강호》처럼 세트에 해설 소책자가 동봉돼 있다.



솔직히 리뷰를 남기는 이 시각, 10권 모두를 독파하진 못했고 중반부를 넘어섰다. 흥미로운 스토리와 매끄러운 번역 덕분에 가독성이 좋아서 술술 읽힌다. 반면에 예전 해적판을 읽을 때보다 인물의 묘사가 더욱 눈에 들어오고, 인물들의 은원관계나 업보, 그것을 풀어나가며 겪는 고뇌와 시련이 한층 잘 느껴지고, 작품 속 불교를 비롯한 동양적 세계관과 철학, 문화가 그려진 부분에선 두 번, 세 번 눈이 가고 되새기며 읽고 있다. 그냥 넘기기엔 아까워 일부로 속독을 피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천룡팔부》가 신수판 정식완역본으로 출간된 점에 출판사 관계자, 번역가에게 다시금 감사드린다. 여러 번 드라마, 영화로 리메이크된 작품이라 대중에게 익숙하고, 무협 마니아에겐 필독서임에도 정식완역본이 없었다. 옛 고려원 《영웅문》 시리즈가 7백만 부나 팔린 베스트셀러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해적판 독자의 수가 적지 않다. 이번에 작품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또한 작가는 생전에 당신 작품을 여러 번 고쳐쓰기로 유명했는데, 신수판을 통해 작가가 마지막으로 어떻게 개정했는지 그 궤적을 따라가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일반 독자는 대중성을 가진 무협 장르 소설로 읽어도 되고, 특히 동양권, 중화 문화권, 역사에 관심 많은 독자는 재미 너머 작품성에 감탄하리라 예상한다.



P.S 고 김용 작가가 쓴 또다른 명작 《녹정기》가 김영사에서 정식완역본 발매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청나라 강희제 치세와 반청복명 세력 간의 갈등, 그 사이에서 주인공 위소보가 미천한 출신임에도 뛰어난 잔머리와 신적인 말빨로 일세를 풍미하는 이야기다. 주인공과 스토리가 기존 무협, 작가의 작품과 상당한 차이가 있어 화제가 되었지만 이 또한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독자에겐 즐거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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