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5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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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을까?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1980년대 중반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필립 로스의 멋진 일본 야구라는 번역본을 읽고,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발단이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책의 원제목은 '위대한 미국 문학(The Great American novel)'이었다. 제목만으론 도대체 어떤 소설인지 짐작이 가지 않겠지만, 상상 속 세계의 야구 이야기를 통해 미국 문학을 다루는 곡예적인 내용이었다. …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나도 일본 야구를 통해 일본인들의 마음속 비밀에 다가가 궁극적으로 일본 문학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저자 후기,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에서 발췌)

 

 

책을 소개하기 전에 저자 후기를 길게 인용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쓴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단편소설집으로 야구를 주제로 한 작품 7편을 실었다. <라이프니츠를 흉내 내어>에서 야구공이 에드벌룬처럼 보이는 탓에 아이러니하게도 공을 칠 수 없었던 4번 타자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대체로 작품 속 인물은 야구가 사라진 시대에 그것을 추억하는 야구광들이다. 각 단편 간엔 일견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읽다보면 배경과 설정이 유기적이다.

 

 

작중 인물들에게 야구는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옛 유물이다.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소설 형식의 부조리극을 읽는 듯했다. 몇몇 작가를 제외하면, 일본 소설이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명확한 주제 의식, 가독성 좋은 다이제스트한 스토리텔링과 문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눈에 띄는 주제를 찾기 어렵고, 인물 간의 관계나 행동 또한 기괴하다. 야구를 추억한다지만 야구를 아는 독자라면 그것이 과연 야구냐 할 만큼 기억은 일그러져 있다. 오히려 기괴한 인간상과 언어 유희의 향연을 만난다.

 

 

"야구(사어(死語)……아주 옛날에 사라졌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긴 것으로 둥근 것을 치는 게임이라고도 전해진다. 지면에 네모난 것을 놓고 악귀를 쫒았다." (p.102, <센티멘탈 베이스볼 저니>) 이러한 시대에 야구광이었던 큰아버지는 초등생 조카에게 야구를 잘하기 위해선 시 900편과 포르노 100편을 주구장창 보라고 이르기까지 한다.

 

 

"이렇게 해서, 나는 한신 팬인 극작가에게 한신 타이거스가 우승하지 않았던 1985년의 시즌에 대해 배우게 되었어.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들은 '한신 타이거스가 우승을 했다'라는 이데올로기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거야."(p.226, <일본 야구의 행방>)

 

 

 

실제 다카하시 겐이치로 작가는 <우하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로 제 1회 미시마 유키오 상을 받았고, 자국에서 포스트 모더니즘 소설의 기수로 여겨진다고 한다. 기존 일본 문학의 서사 구조를 해체하고 자기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창조했다는 평이다. 작가는 1960년대 말 전공투 세대로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구금된 이후, 한동안 실어증을 앓았다. 그 경험 덕분인지 언어와 문학 연구에 천착했고, 뻔한 글쓰기에서 벗어나 일본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 대표작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그 산물이다.

 

 

물론 기성 일본 문학과 이를 해체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서사 구조 방식에 낯선 독자에겐 작품이 어렵다. 앞서 밝혔듯, 해독하기 어려운 부조리극을 읽는 듯해서 불편한 감도 있다. 하지만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가 절판되자, 소설 마니아들이 헌책방 순례에 나섰을 만큼,(책 띠지 인용)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문학 애호가나 일본 문학 연구가들에겐 입소문으로 인정 받고 한번쯤 독파해야 할 작가로 유명하다.

 

 

여전히 이 소설집은 나에게 아리송하다. 언뜻 야구광들의 기괴한 군상과 언어 유희에서 일그러진 우리네 삶의 단상이 엿보이고, 기성 문학을 비판하고 해체하는 시도가 언뜻 보이기는 한다. 문학과 언어에 조예가 깊어지면 다시 읽어보고 싶다. 그때는 소설의 진의와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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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22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캐모마일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2017-12-23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캐모마일 2017-12-23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발표가 났나보네요. 축하 감사드립니다.

서니데이 2018-01-01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캐모마일님, 새해인사 드립니다.
오늘부터 새해입니다.
새해에는 좋은 일들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연화 2018-03-25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달인님이 놀러오셨군요 반갑습니다.

달인님 다운 문장력이시네요 많이 배워야 겠습니다.

알게 되어 영광입니다 행복한 주말되세요

가치있는삶 2018-06-09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