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자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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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자>는 2016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동조자>의 후속작이다. <동조자>는 박찬욱 감독이 HBO 드라마로 제작하면서 유명해졌다. <동조자>는 읽지 못했지만 <헌신자>를 토대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 책엔 이른바 웨스턴 1 티어 국가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문장들로 가득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HBO의 드라마화에는 재미있는 구석이 많다. 21세기 최악의 제국주의 국가에서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책이 영상화되다니. <현신자>는 제국이 쌓은 자산으로 자유를 얻은 프랑스 지식인들이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위선을 유머러스하게 까발리는데, 전작 소설의 드라마화는 이 책의 주요 테마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이 대목에서 미국이 진짜 대단한 건 이 부조리한 상황을 유려한 쇼비즈니스로 포장할 줄 안다는 점이다.


미국은 <동조자>에 퓰리처 상을 수여함으로써 출판계의 '쇼 미더 머니'에 응했고 발 빠른 재간둥이들이 읽지 않는 자들을 위해 화면을 마련했다. 자본주의는 자신에게 침을 뱉는 행위마저 상품으로 만들어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이 소름 돋을 정도로 무감각한 자동 생산 체계를 보고 있으면 우리에게 과연 자본주의를 극복할 방법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책의 배경은 1980년대의 파리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를 가진 '잡종 새끼' '나'는 CIA의 비밀요원이자 베트남 공산당에 소속된 스파이다. '나'는 공산당이었지만 스파이로서 남베트남 망명군에 침투에 있었기에 공산당에게 붙잡혀 이른바 재교육이라 불리는 무지막지한 고문을 당한다. 결국 '보트 피플'이 되어 베트남을 탈출한 '나'는 이곳저곳을 떠돌다 고국을 식민화했던 '아버지의 나라' 프랑스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나'는 마약상이 된다.


'나'는 위선적인 프랑스 지식인들에게 마치 보복이라도 하듯 마약을 판매한다. 그리고 그 자신도 서서히 중독되어 간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 보지만 '나'를 지배한 건 결국 돈의 맛이었다. 평범한 월급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고급 가죽 구두와 일제 카메라를 목에 걸고, 일본인 관광객으로 위장한 마약상은 질주하는 돈의 경주에 합류해 스릴을 즐긴다. '나'는 생물학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삶에서도 이중으로 분열한다.


<헌신자>의 문장은 마음이 아플 정도로 아름답다. '나'의 자조 섞인 유머와 폐부를 찌르는 촌철은 진정 우아하고 정확하게 이 세계의 부조리를 드러낸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 비엣 타인 응우옌 또한 '나'와 같은 이중의 어둠에 갇혀 분열하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의 각성을 촉구하는 사람이, 자기 책을 엄청나게 팔아 자신이 극복하려는 세계의 발전에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기여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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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총총 시리즈
황선우.김혼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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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의 김혼비와 <멋있으면 다 언니>의 황선우 작가가 편지를 주고받는다. 서로를 향한 연정을 아낌없이 드러내는데 아직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다 보니 초반엔 뚝딱뚝딱 서먹하다. 상견례 자리에서 처음 사돈을 마주한 분위기. 숨 막히는 침묵이 두려워 끝도 없이 덕담을 늘어놓는 기분이랄까?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말은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열심히 사는 사람을 전부 촌스러운 꼰대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온 힘을 다하는 마음이 혐오의 대상이 됐을까? 열심히 해도 무엇하나 이룰 수 없다는 좌절감이 온 세상을 뒤덮은 것 같이 숨이 막힌다. 곰곰이 들여다보면 최선을 다해 얻고자 하는 열매의 위치가 지나치게 높아진 게 원인인 듯한데... 서울숲 트리마제나 한남 나인원 아파트에 살고, 메르세데스 벤츠, BMW, 포르셰 카이엔을 몰며, 한 달에 두어 번은 인당 30만 원짜리 오마카세를, 분기에 한두 번은 해외여행을 가는 삶은 과거에도 지금도 심지어 미래에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현대인의 불행이 지나치게 벌어진 소득 불평등에서 시작한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 뿌리를 키워 꽃을 피운 건 삶이라는 신앙에서 모든 가치를 말살하고 유일신이 되어버린 마몬(물신)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마몬의 것이 될 거라 정확히 예측했던 낙관주의자 마르크스는 그러나 그 마몬이 가진 태생적 모순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평등한 공산주의로 이행할 것이라 확신했다. 이 똑똑이가 한 말 중에 가장 유명한 걸 고르라면 아마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일 것이다. 21세기엔 '인플루언서의 위로가 아편'이 됐다. 이 두 문장은 듣는 사람에게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충 살아도 괜찮다는 말, 뜨거울 필요 없다는 말, 쉬어가도 좋다는 말들은 불성실과 자기혐오, 나태와 패배감을 긍정하는 게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이 따뜻한 위로에 얼마나 뜨거운 노력이 있었을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유튜브를 만들고, 강연을 기획하고, 책을 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최선을 다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말이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초반의 어색함을 뒤로하고 한 자 한 자 묵묵히 나아가 상처받기 싫어 꽁꽁 싸매둔 뽁뽁이를 톡톡 터트리며 우리네 마음에 도착한다. 거대한 해일이 온몸을 덮치는 게 아니라 발 앞에서 찰랑대던 파도가 어느덧 발등을 적시며 촉촉이 스며든다. 두 작가가 들려주는 오직 '자기만의 생'을 듣고 있으면 두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문장은 독특하고, 유머가 넘치고, 삶에 대한 조용한 환희로 가득하다.


나는 이 책이 이 모든 아름다움을 절단당한 채 오로지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짤'로 남을 까 두렵다.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말은, 가진 힘을 모조리 쏟아낸 뒤 불현듯 찾아온 공허에 마음을 데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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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리터러시 - 혐중을 넘어 보편의 중국을 읽는 힘
김유익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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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중국은 어떤 의미일까? 전근대와 근대의 수백 년 간 중국은 천하의 중심이었고, 중화의 본토였으며, 사대의 대상이었다. 대중화가 북방의 유목민족에게 완전히 패해 멸망한 뒤에도 그 주종의 관계는 끝내 살아남아 오히려 신하가 주인의 정신을 계승했다는 소중화에 갇히게 되었다. 그 뿌리가 너무 깊었는지 내 윗세대는 확실히 중국에 대한 모호한 환상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이색적 풍광을 끝도 없이 내놓는 광활한 대지, 춘추와 전국을 수놓은 철학자, 화산과 곤륜을 지배한 강호인의 향연.


한국이 경제 발전을 이루고 최근엔 문화 분야에서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갖게 되면서 이 관계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요즘 사람들에게 중국은 모든 분야에 짭퉁이라는 독극물을 풀어놓은 파렴치한 나라이자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미개한 민족, 질병을 퍼뜨리고 인권을 탄압하는 비윤리적 독재국가에 불과하다.


정치, 문화적으로 여전히 후진 나라가 짭퉁을 팔아 돈 좀 벌었다고 대국의 행세를 하니 여간 웃긴 게 아니다. 대국의 자부심이 단순히 권력자들만의 인식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중화 민족주의로 무장한 인터넷 세상의 키보드 워리어들을 보라. 그들은 김치가 파오차이의 아류라며 한국을 도둑놈 취급하고 한복을 자기네 전통 복장이라고 우길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역사까지 중화민족의 것으로 둔갑시키려 한다. 중국은 확실히 혐오하지 않기가 더 어려운 나라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보자. 어떤 나라든 경제가 발전해 세계의 이목을 끌면 동시에 민족주의가 싹을 틔운다. 한국인에게는 국뽕이 없을까? 유튜브에는 놀라운 한국 문화에 충격을 받은 외국인들의 비디오가 넘쳐난다. 두 유 노우 김치? 두 유 노우 강남스타일? 두 유 노우 BTS?


반한감정과 혐중정서는 두 나라의 경제 발전에 약간의 시차가 발생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결과물처럼 보인다. 반한은 꿀 수 있는 최고의 꿈이 고작 소중화였던 나라가 세계에 가하는 충격에 대한 시기이고, 혐중은 언제까지나 미개한 나라로 남을 것 같았던 후진국이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면서 생긴 공포가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결국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쌍방의 문제다. 중국인에게는 중화 중심주의가 존재하고 한국인에게는 국뽕이 있다. 중심과 뽕은 관계에서 상대방을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우열을 세우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 우열 가리기는 누가 보편이냐는 싸움이기도 한데, 한국을 비롯한 서구 세계는 유독 중국의 것들을 특수하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당신에겐 전 세계 인구의 20%가 믿고 따르는 신념과 행위를 특수하다고 볼 용기가 있는가?). 한국은 이 보편의 싸움에서 현명한 지저스처럼 중국은 중국의 것이고, 한국은 한국의 것이며, 서구는 서구의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소중화가 트라우마인 이 나라는 그 정신적 공백을 서구적 가치관으로 채워 넣어 자기만의 길을 가려는 이웃나라를 이른바 Global Standard에 미치지 못하는 후진국으로 재단한다.


한편 이 혐오가 실재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가져볼 만하다. 한국에서 연쇄 살인마가 잡혔다고 해서 한국인 전체를 연쇄 살인마로 볼 수 없듯이, 중국에 한국을 혐오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중국인 전체를 반한론자로 싸잡아 비판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 세상을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인식한다. 일부 채널의 과격한 메시지를 세계의 전부로 착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럴 땐 집단에서 벗어나 시민과 시민으로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좋다. 그러니까 관계의 두 축을 중국인과 한국인으로 놓는 게 아니라 탕웨이와 나로 세워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린 육아의 고민을 공유하고, 맛있는 막걸리에 환호하는, 평범하고 대등한 인간이 된다.


저자는 이 책의 핵심 내용이 '우리의 물리적 '부근' 혹은 '주변'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깊이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한 방법론'(p.20)이라고 말한다. 관찰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자기를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객관화가 잘 되면 자신이 부당한 처지를 당했을 때 분노하기보다는 그 원인을 찾으려 노력한다. 또 원인을 알고 나면 차분하고 합리적으로 해결 방안을 강구하게 된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한반도를 똑 떼어 다른 곳에 붙이지 않는 이상 인류의 역사가 다 할 때까지 우리와 함께할 이웃나라다. <차이나 리터러시>는 우리가 이 이웃나라를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을지, 그리고 그들과 관계를 맺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게 좋을지에 대한 나름의 궁리를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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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눈뜰 때 소설Y
이윤하 지음, 송경아 옮김 / 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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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 호랑이 부족 열세 살 세빈은 존경하는 환 삼촌을 따라 우주군에 입대한다. 그녀의 꿈은 언젠가 환 삼촌처럼 선장이 되는 것. 그런데 생도가 되어 우주선에 탑승한 순간부터 불길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반역자로 기소되어 선장 직위를 박탈당한 환 삼촌의 흔적이 우주선에 깊게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이 배경으로 한 '천 개의 세계'는 이름과 어울리게 수많은 종족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주황 호랑이 부족 세빈은 그냥 부족신이 호랑이인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이 정말로 호랑이다. 평소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전투의 순간이 오면 거대한 호랑이로 변신해  앞발을 휘두른다. 어흥! 우주군은 이처럼 초자연적 특성을 지닌 자들로 가득하다. 고블린도 있고, 학도 있고, 우주 밖에서도 살 수 있는 천인이 있는가 하면,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도 있다.


한국 신화와 SF를 모두 '소프트'하게 섞어 넣은 소설이다. 소프트니까, 뭐, 그래, 소프트니까 이런 걸 기대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과학적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요술'로 얼버무리고, 요술은 말 그대로 프리패스가 되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니까,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라는 의문에 '그러니까 요술이지'라고 넘어가는 것 같아 아쉽다. 세계관이 독특하게 느껴질 수는 있는데, 바닥에 딱 붙어 튼튼한 토대가 되지는 않는다. 책은 너무 짧고, 설명은 부족하다.


줄거리는 반역자로 기소된 환 삼촌과 세빈의 관계가 축을 이룬다. 세빈은 자신의 롤모델인 환 삼촌이 절대 우주군을 배반했을 리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생도가 되어 처음으로 탑승한 우주선이 적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곳곳에서 환 삼촌의 냄새가 느껴지자 세빈의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린다. 마침내 세빈은 이 침략이 환 삼촌의 계획이었다는 걸 알게 되고 그의 앞에 선다. 환의 요구는 대범했다. 주황 호랑이 부족을 위해 자신의 계획에 가담하라는 것. 세빈은 이 계획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까지는 듣지 못했다. 그 끝에 천 개의 세계에 대한 배신이 있을지, 우주를 이롭게 하는,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결코 깨닫지 못하는 더 큰 그림이 있을지는 모른다.


부족이냐 국가냐. 누구의 이득을 위해 누구에게 충성할 것인가. 동아시아의 유교적 세계관에서 익숙히 충돌할 수 있는 딜레마다. 부족도 국가도 아닌 나의 꿈, 신념을 위한 제3의 길은 대개 존재하지 않는다. 동아시아에서 개인은 집단 안에 속해있을 때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동양 SF 판타지가 성공할 수 있는 이유였다고 하면, 뭐 그렇다고 하자. <호랑이가 눈뜰 때>는 이 요소들이 매력적일 순 있어도 정교하게 엮인 소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재료에서 나오는 진국이 아니라 맛과 향을 첨가한 간편식이다. 먹기는 편하지만, 맛은 좀... 이 책은 출판사 '창비'의 영어덜트 시리즈인데, 영어덜트가 청소년을 뜻하는 거라면 그 취지에 딱 맞는 소설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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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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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는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필수 노동을 일컫는 말이다. 단어가 드러내듯 일하는 환경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결한 노동을 뜻하기도 하지만 일하는 과정에서 도덕적, 감정적, 심지어 신체적 부상을 입을 확률이 높은 일도 포함된다.


<더티 워크>는 그 직종을 크게 4개로 꼽아 밀착 취재한다. 첫째는 교도관, 둘째는 미군의 드론 조종사, 셋째는 도살장 노동자, 넷째는 석유시추선의 일꾼이다. 한국 독자라면 이 4개를 모두 듣고 났을 때 다소 어리둥절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은 교도관. 군부 독재 시절에는 교도소가 부정한 권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교도관을 부역자로 보는 시선도 있었을 것이다. 일례로 나는 그 어떤 미디어에서도 교도관이 좋게 그려진 걸 본 적이 없다. <1987>의 유해진 정도가 기억나는데 이것도 사실은 그 악독한 형무소에도 이렇게 옳은 신념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는, 역설적 반증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교도관이라는 직업은 남자 기준 6.8 대 1, 여자 기준 11.6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쟁취하는 공무직이다. 미국처럼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나 직업 선택권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뛰어드는 삶의 현장이 아닌 것이다.


드론 조종사의 경우 한국군은 이제 막 육성을 시작했다. 아마 이 직군이 완전히 궤도에 오른 뒤에도 미국처럼 다른 나라의 영공을 날아다니며 요인을 암살하고 마을을 폭격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군은 베트남전을 제외하면 다른 나라를 침범해 공격한 적이 없고, 대부분의 성인 남성이 병역 의무를 지기 때문에 더티 워크의 필수 조건인 '위임'을 충족하지 않는다.


석유시추선 노동자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에서 석유가 났다면 해당 노동자들은 더티 워커가 아니라 영웅이 됐을 것이다. 도살장 노동자에 대해서만 어느 정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데, 곰곰이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하림 닭고기 공장에 다니는 생산직 노동자를 떠올려보자. 깨끗한 최첨단 가공 시설에서 위생복을 입고 땀 흘려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들. EBS의 <극한직업>에 나올 수는 있어도 대기업 생산직을 사회적으로 멸시받는 일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소고기 도살장으로 가도 비슷하다. 쇠사슬 장갑을 끼고 고기를 잘라내는 정형사는 심지어 꽤 높은 소득을 얻는 전문직 아닌가!?


그래서 이 책은 잘 와닿지가 않는다. 더티 워크가 성립하고 유지되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노동자들이 겪는 도덕적 딜레마, 감정적 상처, 정신적 트라우마를 다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의미 있게 읽기 위해선 책이 제시한 4개의 직군을 대체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더티 워커를 찾아 대입해야 한다.


찾는 조건은 간단하다. 첫째, 이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나는 하기 싫어야 한다. 둘째, 나는 그 노동으로 인해 상당한 혜택을 받고 있다. 셋째, 그 일을 생각하면 불평등, 차별, 사회적 무시가 떠올라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거나 죄책감이 일어난다.


생각만 해도 죄책감이 드는데, 그 일이 계속 유지되는 이유는 나 하나가 행동을 바꾼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무력감 때문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은 더티 워커를 마주칠 때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거나, 더운 여름날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대접하는 정도일 뿐. 이런 행위가 개개인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분들이 처한 환경 자체를 더 높은 수준으로 이끌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더티 워크의 핵심 특징이 '선량한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에 기초한 노동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 결과에 만족하기에 이 문제를 깊이 따지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p.457)


하지만 이 동의가 영원한 것은 아니다. 실제 인류의 역사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던 것들이 너무나 쉽게 무너지면서 열리는 길을 따라 대범한 걸음을 내디뎌왔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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