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상고사 - 대한민국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 역사
신채호 지음, 김종성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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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15년 전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비봉 출판사) 처음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시 나는 치우천왕에 상당히 빠져있었고, 조선의 역사 배경이 원래는 중국 대륙이었으나 일제강점기와 쑨원의 역사 조작으로 한반도에 이식됐다는 이론을,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니 민족사학자 신채호가 해주는 말들이 얼마나 쏙쏙 가슴에 박혔겠는가!


비판의 눈을 제거하고 보면 <조선상고사>는 정말로 대단해 보인다. 특히 신채호의 이두 해석 능력이 그렇다. 지금이야 우리글이 공기처럼 느껴지는 시대니 그 존재감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지만 '이두'라는 걸 보고 나면 아, 우리 민족에겐 우리글이 없었구나!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이두는 대단히 어렵다. 어떨 때는 한자의 음을, 어떨 때는 한자의 뜻을 취해 우리'말'을 표현한 한자가 바로 이두다. 그런데 이 이두라는 건 쓰는 지역마다, 또 사람마다 달라 일관된 해석이 어렵다. 당시에 살았던 역사가들 조차 이두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이두를 아예 한자로 번역해 버리는 경우도 있어 지명과 관직의 이름, 심지어 인명까지 하나의 말을 여러 단어로 기술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일례로 한반도 남쪽 귀퉁이에 자리했던 소국 마한, 진한, 변한이 말조선, 신조선, 불조선을 한자로 번역한 국가명이라는 걸 알고 있는가? 한반도의 삼한은 만주에 살던 신, 불, 말 삼조선의 유민들이 정착하여 만든 나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대사 연구에는 늘 혼란과 논쟁이 도사리고 있다. 저 단어를 이두의 한자 번역으로 보아야 하나 이두로 봐야 하나, 이두로 본다면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신채호는 고민 없이 이 일을 해나가며 자기보다 선대의 역사가들, 그러니까 그 시대에 살며 실제 이두를 사용했던 선배들의 오류까지 척척 짚어낸다. 당시에는 이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였는데, 지금 와서 다시 읽어보면 더듬어 추론할 수밖에 없는 신채호가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보다 어떻게 더 정확하지?라는 의문이 든다.


물론 역사란 늘 객관적 인척 하지만 실상은 역사가의 주관적 기록에 불과하니 여러 기록을 비교 연구하는 자가 훨씬 더 정확할 수 있다. 신채호는 여기에 답사를 더해 자신의 생각을 보강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두 해석에 관한 한 <조선상고사>는 그 추론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잘 따져봐야 한다. 도대체 무슨 수로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역사서의 기술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어떤 것을 날조라 주장하는지도 곰곰이 따져볼 부분이다. 여기서만큼은 신채호가 여러 역사서를 비교 대조하며 진위를 날카롭게 가르는 것이 맞다. 그러나 믿을 수 없다고 했던 역사서에서 어떨 때는 또 사실을 취하고, 역사서의 기술보다는 그 지역에 오래 살았던 사람의 말, 혹은 풍문을 더 신뢰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 역시 읽는 이가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조선상고사>를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지난 15년 간 대단히 달라져버렸다는 사실에 나 조차도 당혹감을 느낀다. 단점이 없는 책은 아니나  그래도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선상고사>는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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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 환경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유전체에 관한 행동 후성유전학의 놀라운 발견
데이비드 무어 지음, 정지인 옮김 / 아몬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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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성유전이란 아주 쉽게 말해 당신의 경험이 후세로 유전되는 과정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솔깃한가? 내가 외운 영단어나 독서로 쌓은 지식, 스쿼트로 만든 30인치 허벅지를 내 자식에게 그대로 물려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유산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후성유전은 이런 방식으로 동작하지는 않는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배아는 이후에 여러 개의 세포로 분열하는데 이 세포들은 서로 완전히 동일한 쌍둥이다. 신기한 건 어느 시점에 이르러 이 세포들이 머리카락, 뇌, 심장 등 완전히 다른 신체 부위를 구성하는 세포로 변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모든 가능성을 지닌 세포를 우리는 줄기세포라 부른다. 이 줄기세포가 어떻게 구체적 기능을 갖는 세포로 변하는지는 아직 밝혀진 게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각각의 세포에 대응하는 줄기세포가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후성유전이란 장차 허벅지 근육으로 변할 줄기세포에 내 30인치 허벅지의 비밀이 담긴 유전코드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후성유전은, 좀 더 미묘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금까지 과학계는 한 번 물려받은 DNA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행동 후성유전학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이 세상의 번잡함과 마찬가지로 DNA 또한 역동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DNA는 환경이나 맥락에 따라 스위치를 켜거나 끌 수 있다. 위암을 유발하는 DNA를 가진 사람이라도, 그 DNA가 꺼져있다면 평생 건강히 살지만 켜져 있는 사람은 암에 걸리는 것이다.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선 히스톤의 메틸화, 아세틸화와 DNA의 메틸화를 알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선 DNA와 히스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DNA는 우리 몸에 필요한 여러 단백질을 생산하는 설계도라고 보면 된다. 그 자체로 하는 일은 없고 RNA가 이 설계도를 베낀 뒤 세포핵을 나와 실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히스톤은 이 설계도(DNA)를 세포핵이라는 작은 공간 속에 집어넣기 위해 돌돌 감아주는 단백질이다. DNA는 다 풀어냈을 때 2m가 넘을 정도로 대단히 큰 분자기 때문에 히스톤이 없다면 대단히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히스톤이 DNA를 똘똘 감아 우리 몸속에 넣는다는 얘기를 들으면 이것이 어떻게 DNA의 발현을 좌우하는지 눈치를 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약 히스톤이 DNA를 너무 단단히 감아 넣으면, 이 설계도에 접근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DNA가 생산하리라 예상되었던 단백질이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음으로써 우리 몸에 변화가 생긴다. 이것이 바로 히스톤 메틸화, 그 반대의 작용을 하는 게 아세틸화다.


DNA도 히스톤과 똑같이 메틸화되면 특정 유전체가 침묵하고 탈메틸화되면 활성화된다. 다만 히스톤 메틸화의 경우 언제나 특정 유전체의 침묵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므로, 일반적인 경우 DNA 메틸화는 유전자를 활성화하고 히스톤 아세틸화는 그 반대라고 이해하면 된다.


DNA와 히스톤의 메틸화와 아세틸화는 당연히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집에서 살며,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다. 생각해 보면 이는 그렇게 새로운 생각이 아니다. 이 세상엔 뭘 어떻게 하든 결국 인간은 정해진 팔자대로 살 것이라는 결정론적 회의주의자보다는 환경과 경험의 변화를 통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더 나은 삶을 위해 주변의 환경을 바꿔왔다. DNA와 히스톤, 메틸화와 아세틸화를 몰랐을 때조차 말이다.


행동 후성유전학이 밝혀낸 과학적 증거는 굳게 닫힌 결정론자들의 마음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자기 행위들로 인해 물리적으로 변한 유전자가 나의 후손에게까지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되면 아무리 부정적인 패배주의자도 생각을 고쳐먹을 기회를 갖게 되지 않을까? 만약 결정론자가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해 보자. 행동 후성유전학을 모르는 선생님이라면 아주 어릴 때부터 인간은 될 놈과 안 될 놈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런 선생님이 모든 학생을 골고루 살피며 그들의 잠재력을 일깨우리라 기대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경험이 어떻게 인간을 바꾸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선생님이라면? 이 세상은 더 많은 가능성과 희망으로 차오를 것이다.


이 글에서 변형된 유전자가 어떻게 후세에 전달되느냐까지 기술하지는 않겠다. 그건 내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꼭 한 번 이 책을 읽어봤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는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읽어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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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사 13 : 수당의 정국 이중톈 중국사 13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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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국 후한이 멸망하고 그 유명한 위촉오의 짧은 삼국시대가 끝난 뒤 중국 대륙은 이른바 5호 16국이라는 대혼란의 시대를 맞이한다. 이 난세에는 누구나 왕이 될 수 있었고 그 운명은 채 1~2년이 되지 않는 경우도 흔했다. 5호 16국은 점차 북위, 북제, 북주로 이어지는 이민족들의 북조와 송, 제, 양, 진으로 이어지는 한족의 남조로 양분되어 남북조 시대를 이루나 혼란의 400년을 마치고 진정한 통일 왕조를 이룩한 건 바로 북주를 계승한 수나라였다.


그러나 이 수나라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중국의 남과 북을 잇는 대운하를 건설하느라 백성의 원성을 샀고 결정적으로 고구려 원정에서 대패해 국운이 소멸한다. 이 수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또 다른 선비족(오랑캐) 출신인 당고조 이연이었다. 이연은 수나라를 끝내고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인터내셔널 대제국 당나라를 세운다.


당나라를 세운 건 이연이었으나 세계가 놀란 '그' 당나라를 만든 건 그의 아들 태종 이세민이었다. 태종 이세민은 여러모로 우리 조선의 태종 이방원과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야심이 컸고 왕조 설립에 결정적 기여를 했음에도 후계 경쟁에서는 밀렸다는 점이 그랬다. 두 사람은 형제들을 모조리 잡아 죽인 뒤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왕조의 전성기를 열어젖힌다.


당나라 문화의 핵심은 '국제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황제 자신이 오랑캐였던 탓에 그는 이민족에게 관대했다. 물론 미소를 짓기 전에 한 차례 칼이 들어간 건 사실이었다. 특히 대대로 중국 왕조를 괴롭힌 북방의 유목 민족을 복속시킨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세민은 당나라 최고의 골칫거리였던 돌궐을 평정한 뒤 그 추장들로부터 '천카간'으로 추대된다. 그것은 중국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세민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대당의 천자인데 카간의 일까지 또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응답은 "만세! 만세! 만만세!"였다. - p.80


나라의 수도 장안에는 페르시아인부터, 이슬람, 위구르, 토번, 중앙아시아의 각종 스탄국, 인도인까지 온 세계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그들은 국제무역의 중심지였던 서시에 살롱을 열고 포도주를 마시며 서역 미녀의 춤을 감상했다. 그들 중에는 고관대작과 유력자들이 많았다. 그냥 살았던 게 아니라, 잘 살았던 것이다.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와 풍속이 다른 그들을 국가의 핵심 자원으로 삼았던 것이 바로 당나라의 힘이었다.


이중톈은 당나라가 전지구적 대제국이 된 이유를 문화 우열론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문화에도 우열이 있을까?

일반적으로 성격과 성질 면에서 보면 문화에는 우열이 없다. (중략) 그런데 성질에는 우열이 없어도 형세에는 우열이 있다. (중략) 우세면 확실히 우등하고 또 확실히 강세다. 열세면 꼭 열등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약세다. (중략) 바로 이것이 여러 나라 중 하필 수당이 세계성을 띤 문명이 된 근본 원인이다. - p.228~229


이중톈은 문화적 토대가 빈약한 나라일수록 문을 닫아걸어 우열한 문화의 유통을 막는다고 했다.


선택은 운명을 결정했다. 어떻게든 수당과 거리를 유지하려 했던 돌궐과 회흘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전면적 한화를 택한 일본과 신라는 결국 독자적인 발전의 길을 걸었다. - p.231


이중톈은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중화의 문화를 동아시아에 전파한 공로에서 찾는다. 그렇다면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도 중화의 문화를 받아들여 열심히 전파했는데도 왜 신라와 일본만 독자적인 발전을 걸었을까?


이것은 모순이다.


당나라가 세계 제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문화의 우열이 아니라 지정학적 이점과 운 때문이었다. 우선 지정학적 이점을 따져보자. 당나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외국인을 꼽으라면 역시 페르시아인들일 것이다. 뛰어난 문명과 문화를 가진 그들이 당나라에 정착했던 것은 때마침 이슬람제국이 일어나 페르시아를 멸망시켰기 때문이다. 대제국을 이뤄 자웅을 겨룰 수밖에 없었던 이슬람제국은 눈앞에 불을 켜고 노려보는 적들(기독교도) 때문에 동방의 강자와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유럽은 아무리 커져도 이슬람이라는 완충지대 때문에 아시아를 넘볼 수 없었고, 또 하나의 제국인 인도는 히말라야가 막고 있는 데다 굽타 왕조 멸망 이후 사분오열된 상태라 당나라를 상대할 수 없었다. 중국은 전 역사를 통틀어 대제국과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인 적이 없다. 그들의 상대는 오직 북쪽과 동쪽의 소수민족 오랑캐들이었다.


고구려와 백제는 멸망 당시 이미 900년 가까이 이어져온 노쇠한 국가였지만 당나라는 이제 막 청년이 된 젊은 국가였다. 그런 노인과 싸우는데도 당나라는 전력을 다해야 했다. 이세민은 직접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의 안시성을 침략했지만 대패한 뒤 병까지 얻는다. 그는 이 병 때문에 불과 4년 만에 죽음을 맞는다. 이때의 고구려가 이세민의 당나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그때는 아직 고구려 문화의 형세가 당나라에 비해 우세였던 걸까?


그것은 그저 주변국들의 정치 상황과 그들의 선택이 얽히고설켜 일으킨 연쇄작용, 그리고 운의 결과였다. 고구려와 백제는 중국 대륙 깊숙이 영토를 확장한 적이 있으나 대제국 당나라가 일어설 무렵에는 이미 운이 다해 소멸하고 있었다. 이세민이 왕위를 찬탈하여 내부 정치가 혼란스럽고 아직 북쪽의 돌궐이 평정되지 않았을 때가 우리의 선조들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싸우지 말고 지키자는 자가 왕위에 오르고 중국정벌을 강력히 주장하던 을지문덕파가 사라지자 고구려는 망국의 길을 걷게 된다. 반면 왕위 찬탈자 연개소문의 죽음이라는 대운을 얻은 당나라는 고구려의 혼란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광개토대왕이 중국의 강자들을 모조리 쳐부수고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동일한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대왕의 업적은 그 자신의 뛰어난 통치력과 고구려인의 힘, 지혜 덕분이었지만, 역시 중국 대륙이 사분오열하여 혼란스러웠던 상황적 이점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우위에 서는 건 누가 더 정확히 정세를 파악하고, 누가 더 과감히 대응하느냐의 문제였다. 이런 일을 놓고 문화의 우열이니 우세니 설명하는 건 대단히, 대단히 불합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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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 개정증보판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2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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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천하는 뭉치면 흩어지고 흩어지면 뭉친다는 말은 역사의 고금을 통틀어 늘 진실이었다.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에 최후의 일격을 가해 삼한이 통일되고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로써 한반도에 갇히게 됐다. 경상도에 고립된 천년 왕국의 통치자들에겐 그 땅을 나와 반도를 걷는 것만으로도 천하를 가진 듯 가슴이 벅찼겠지만 철기병을 이뤄 벌판을 달리던 사람들은 도저히 같은 마음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한반도는 다시 세 개로 쪼개져 자웅을 겨루게 된다. 견훤, 왕건, 궁예. 난세는 결국 왕건으로 종결되고 한반도에는 다시 한번 고려라는 통일 왕조가 탄생한다.


고구려를 계승했다던 나라의 이름이 왜 고려인지는 더 이상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고구려가 곧 고려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고구려와 고려를 혼용해서 썼던 것 같다. 심지어 장수왕 때는 아예 국호를 고려로 고쳤으니 고구려가 곧 고려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취지와는 달리 고려는 신라와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통일신라 기간 백제나 고구려 출신이 사회의 주요 인물이 됐을 리는 없었을 테니, 다시 난세에 튀어나온 유력자들은 다 신라를 기반으로 한 호족이었던 것이다.


단적으로 고려 왕실은 족내혼을 선호했다. 왕족과 왕족이 결혼해 성골을 이룬 신라처럼. 고려 왕실의 가계를 보고 있으면 정말 눈이 돌아갈 정도로 복잡하다. 남매끼리의 결혼은 흔하다는 축에도 끼지 못하고 형이 동생의 딸을 왕비로 맞는다든가 자신의 딸을 조카에게 시집보내는 등등도 별일이 아니었다. 왕실이 족외혼을 하는 경우는 왕권이 아주 불안할 때였다.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지방 세력은 사병을 거느리는 등 잠재적 위험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이 중 세력이 강한 귀족과 혈연관계를 맺는 것으로 왕실은 그 기반을 닦으려 했다. 태조 왕건이 괜히 19명의 마누라를 들인 게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구려의 계승은 명분일 뿐 현실이었던 적은 없다. 확실히 귀족들은 자기 기반을 떠나 모험하기를 꺼린다. 만주에서 말을 달리던 사람이야 이 땅이 얼마나 작고 소박한지 알겠지만 평생 거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그 큰 세상을 알 길이 없다. 현실을 바꾸려면 꿈을 꿔야 하고 꿈을 꾸려면 그런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눈으로 봐야 한다. 배를 만들고 싶으면 만드는 법을 가르치지 말고 바다를 보여주라는 말처럼. 


서희가 강동 6주를 오직 말로 얻어내고, 강감찬이 거란을 물리치긴 했으나 흠, 뭐 거란과 여진이 돌아가며 세력을 키운 바람에 있는 땅을 지키기에도 여의치가 않았다. 이런 거란과 여진이 세력을 상실한 건 세계의 재앙이라 불리는 몽골의 부상 때문이었다. 그 재앙을 바로 코 앞에서 맞닥뜨린 고려다 보니 보통의 인간이라면 팔자 탓을 하며 살아갈 의지를 꺾는다 해도 이해할만했을 것이다.


그래도 고려는 멸망하지는 않았다. 오랑캐와 대륙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벌였고 세계를 집어삼킨 몽골의 시대에도 국가를 유지했다. 완전히 사대로 돌아선 조선과는 차이가 있었다는 말이다. 고려와 조선의 차이는, '불가능해도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와 '현실을 냉정히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중요한 건 둘 중에 뭐가 맞는지 따지는 게 아니라, 언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다. 뭐가 맞는지는 언제나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유연한 사고가 있었다면 고려가 몽골과 손을 잡고 여진과 거란, 송을 격파한 뒤 몽골을 황제의 나라로 섬기는 대신 만주 땅을 얻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조선이 여진과 손을 잡고 명을 무너뜨린 뒤 한몫 크게 챙기는 건 정말로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작은 나라는 정말로 똑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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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호칭 문학동네 시인선 18
이은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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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운 언어를 찾고 싶을 때 시집을 읽는다. 평소에는 함께할 수 없었던 단어들이 먼 곳에서 찾아와 한 문장을 이룬다. 이게 저 옆에 설 수도 있구나, 저게 이 앞에 올 수도 있구나. 그 낯섦에 읽는 눈이 매끄럽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 요철이 마음에 걸린다. 두 개가 만나 온전한 그림을 이루는 퍼즐처럼.


이은규 시인의 <다정한 호칭>에는 구름과 바람과 꽃이 흐드러진다. 그러나 이것들은 평범한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이 시에서 구름과 바람과 꽃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친구에 가깝다. 구름이나 바람이나 꽃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것들은 그냥 우리의 옆에 서 있는 자연물이다.


  긴 기다림일수록 빨리 풀리는 바람의 태엽

  입김을 동력 삼아 한 꽃이 허공을 새어나온다

  찢겨진 것들의 화음으로 소란한 봄

  꽃은 피는 것이 아니다.

  찢겨진 허공에서 새어나오는 것일 뿐

- 별무소용(p.34)


  꽃잎이 귀띔해준 

  초속 3센티미터로 지는 그 이름은 비밀에 부치기로 한다

  말들은 공기의 미동에 따라 알맞게

  바람에게서 귀동냥한 표현이거나 출처를 잊어버린 인용의 일부이기도 하다

- 발끝의 고해성사(p.78)


  빗물 고인 소금사막에 떠 있는 기억의 신기루

  그 풍경을 손에 담으면 구름을 간직할 수 있을까

  간직을 꿈꾸게 하는 이름들

  구름과 당신이 같은 종족임을 말하지 않겠다

- 소금사막에 뜨는 별(p.80)


  바람의 춤이 보인다면 그건 구름의 몸을 빌렸거나 폐활량이 푸른 여름잎의 소관일 것, 구름은 바람으로 흐르고 바람은 여름잎으로 들리니까

- 허밍, 허밍(p.94)


<다정한 호칭>은 쉽게 읽히는 시는 아니다. 멀리 있는 고단한 잠과, 나를 찾지 못한 잠이 누구의 호흡으로 도착해 하룻밤을 보내고 있는지(p. 60) 절기 전에 꽃을 잃는 기억(p.72)이 무엇일까 상상해야 한다. 손을 짚어가며 여러 번 읽어도 눈이 걸려 넘어진다. 그래서 시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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