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쉬왕의 딸
카렌 디온느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카렌 디온느의 책이 딱 한 권만 번역됐다는 건 비극이다. 이게 시작이길 바랄뿐, 켄 브루언처럼 <밤의 파수꾼>을 끝으로 영영 사라진다면 대단히 유감스러울 것 같다. 서사의 대기근을 맞아 나는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쓸 준비가 되어 있다. 나오기만 하라고.


<마쉬왕의 딸>. 안데르센의 동화와 같은 이름의 이 소설은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왔던 추격전과 그 궤를 달리한다. 우선 소재 자체가 파격적이다. 제이콥 홀브룩은 칼과 총, 숲과 늪, 사냥과 생존에 정통한 싸이코패스 인디언이다. 그는 14년 전 한 소녀를 납치하여 외딴 늪 위의 오두막에 감금한다. 그 소녀를 강간하여 주인공 헬레나를 얻는다. 훗날 사람들은 이 끔찍한 범죄자를 늪의 지배자, 마쉬왕이라 부른다.


마쉬왕은 헬레나를 자신의 작은 그림자, 일명 반지이 아가와테야아로 만든다. 마쉬왕의 분신이자 후계자. 바로 여기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끔찍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헬레나는 범죄의 피해자였지만 그 범죄가 없었다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역설적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마쉬왕은 자신의 딸에게 늪에서 살아남기 위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반지이 아가와테야아는 그런 왕을 경외하고 숭배한다. 엄마와의 유대? 늪의 사냥꾼이자 포식자인 아빠와 딸에게 엄마는 그저 열매를 따고, 잼을 만들고, 음식을 하고, 빨래와 설거지를 하는 부속물에 불과하다. 엄마는 나에게 명령을 내릴 자격이 없다. 그녀는 사냥꾼의 피를 물려받지 않았으니까. 나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 오로지 늪의 지배자, 마쉬왕 뿐이다.


물론 헬레나는 마쉬왕이 엄마에게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진실을 알게됐을 때도 그녀는 그 사실이 가슴에 새기는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녀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고대 부족과 인디언의 전통으로부터 관습과 생활 양식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반지이 아가와테야아는 이렇게 생각한다.


여자를 납치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디서 아내를 얻는단 말인가?


마쉬왕의 반지이 아가와테야아가 비로소 왕의 그늘을 벗어난 때는 왕에 대한 경외가 공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왕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전수해준 최강의 남자이자 아버지였지만 그 본질은 결국 늪의 포식자, 폭군이었던 것이다. 폭군은 자신의 세계를 침범하는 외지인을 철저히 망가뜨리고 자신의 세계로부터 탈출하려는 '자신의 소유물'을 잔인하게 제압한다. 폭군에겐 자기가 만든 규칙 외에는 아무 것도 의미를 갖지 못한다. 마쉬왕의 반지이 아가와테야아는 그녀가 반지이 아가와테야아로 존재할 때에만 보호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헬레나는 죽어가는 어머니를 안고 늪을 탈출한다. 마쉬왕은 경찰의 추격 끝에 체포된다. 그는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수감된다.


여러분은 아마 이게 이 이야기의 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의 위대한 점이다. 놀랍게도, 마쉬왕과 그의 반지이 아가와테야아의 대결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수감된 지 13년, 제이콥 홀브룩은 휴지로 만든 칼로 간수 두 명을 죽이고 탈옥에 성공한다. 이송 중인 버스 안에서였다. 하지만 헬레나를 놀라게 한 건 그의 탈옥 소식이 아니라 그가 탈옥에 성공한 위치였다. 마쉬왕은 정확히 헬레나의 집을 향하고 있었다. 반지이 아가와테야아는 더 이상 마쉬왕의 작은 그림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한 사진 작가의 아내이자 두 딸의 엄마였다. 마쉬왕은 다시 한번, 한 가족의 파멸을 위해 끔찍한 촉수를 뻗고 있었다.


헬레나는 루거 라이플과 매그넘 권총, 사냥개 람보를 트럭에 싣고 늪으로 향한다. 그녀는 마쉬왕을 사냥할 수 있는 게 자기 뿐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사상 최강의 사냥꾼으로부터 모든 걸 물려받은 단 하나의 핏줄. 그녀가 마쉬왕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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