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온전히 나답게 - 인생은 느슨하게 매일은 성실하게
한수희 지음 / 인디고(글담) / 2016년 6월
평점 :
판매중지


한동안 아는 사람에게 전자책을 빌려줬었는데, 돌려받고 나니 도대체 무슨 책을 읽었을지 궁금해졌다. 평소에 생각이라고는 질색을 하는 사람이다. 글자를 읽어본 적은 대학 졸업 이후 한 번도 없다. 책과 가장 안 어울리는 사람을 꼽자면 상위권에 들어갈 것이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책을 읽는다. 이유가 뭘까? 책에서 무엇을 얻으려 한 걸까? 그걸 알 수 있다면 나도 이른바 공감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읽지 않는 사람들의 감성을 간질이고, 마음을 움직이는 한마디. 나는 이 책을 통해 몇 가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정체성에 대한 고민. 즉 나는 누구냐에 대한 답.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삶의 취향과 목적이 뚜렷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사람들은 늘 자기 정체성의 모호함을 두려워한다. 나는 혹시 껍데기 뿐인 인간인건 아닐까?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해주는 '진짜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래서 <온전히 나답게>라는 제목부터가 구미를 당긴다.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온전히 나다운 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거나 온전히 나답게 사는 법을 배우고 싶었을 것이다. 이 순간 나는 사람들의 이중성에 놀라고 만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회가 정한 모범 사례(좋은 직업, 좋은 패션, 좋은 배우자, 좋은 태도, 좋은 외모)를 원하면서 한편으로는 열과 성을 다해 그들과 나를 구분하는 뭔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에겐 평범하면서 동시에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이 공존한다. 먹히는 글을 쓰기 위해선 이 모순을 지적하고 비판하기 보다는 그것을 철저히 활용하고 숨기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구체적 행동지침을 제공하는 것. 나는 그 친구가 이런 가벼운 에세이를 그토록 빽빽하게 줄을 그어가며 읽을 줄은 몰랐다. 그가 칠해 놓은 형광펜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 중 두 가지를 살펴보자.


무언가를 배우려면 무언가를 해야된다.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다(p. 13).


이 말을 해석하면 이렇다. 좋은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선 따로 뭔가를 배워야 한다. 포트폴리오가 될만한 뭔가를. 연봉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다. 38페이지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힘들고 그만두고 싶을 때는 아무 생각도 안 하는 편이 낫다. 그저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p. 38).


이 말을 해석하면 이렇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는 아무 생각도 안 하는 편이 낫다. 그저 그 생각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 또 월급날이 돌아오니까.


그는 13페이지에서 이직의 꿈을 품었다가 25페이지만에 회사를 관두고 싶은 마음을 깔끔히 접었다. 책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셋째, 공감과 위로, 그리고 합리화. 게으르고, 바보같고, 한심하고, 멍청한 나의 모습이 비단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공감과 위로. 나아가 그런 삶이 결코 잘못된 게 아니라는 합리화가 이런 류의 책을 읽게 하는 핵심이다.


다른 인간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이 오해라고 해도 별 상관이 없다(p. 36).

내 오해로 촉발된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는 충분히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딱히 내 잘못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게 묵묵히 만들어 나가다 보면 어쩌면 나도 무언가를 이룰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42p).

'그렇게 묵묵히 만들어 나가다 보면' 이 '생각없이 출근하고 퇴근하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출근하고 퇴근하다 보면' 으로 비약한 것이 분명하다.


인생은 자기 합리화의 과정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77p).

이보다 더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의 외모나 피부색이나 옷차림으로 그를 판단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간사한 본능이라 생각한다(91p).

내가 소개팅에서 외모를 이유로 상대방을 깐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같은 이유로 미용과 패션에 쏟아붓는 나의 소비는 전적으로 옳은 행위다.


아무리 새로운 물건도 빛이 바랜다. 어딘가에 돈을 쓰고도 아깝지 않으려면 경험에 쓰는 것이 가장 낫다. (중략) 비록 우리가 곧 모든 것을 잊게 된다 하더라도, 여행은 투자 대비 효용 가치가 가장 높은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p109).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빠져나간 지출 금액과 갔다 와봤자 전혀 달라지지 않은 일상 때문에 굉장한 허무가 몰려오는데, 이런 감정을 한방에 날려주는 명쾌한 문구다. 우리의 현실 도피, 그 허무한 행위는 사실 투자 대비 효용 가치가 가장 높은 일이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쓰자. 더 쓰자. 마음껏 쓰자.


나는 YOLO라는 게 한동안 큰 이슈가 됐던 건 삶의 허무를 소비로 채우려는 사람들에게 철학적 근거를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번 뿐인 인생 즐기자는 말은 사실 오랜 시간 마케터들이 갈고 닦아온 메시지가 아닌가. 이 익숙한 메시지에 누군가 세련된 껍데기를 입혔다. 욕망을 자극하는 거짓 메시지는 때때로 진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인생을 즐기는 게 정말 잔액이 0이 될때까지 탕진하는 거라면 우리는 허무의 바위를 죽을때까지 굴리는 시지프스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YOLO는 21세기 소비 사회가 만들어낸 최고의 상품이다.


이상 세 가지를 종합하면 사람들은 책을 통해 뭔가 해답을 얻고 싶어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혹은 이렇게 살아도 될까요? 좋은 책은 해답을 제공하기보다는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책을 나쁘다고 말한다. 그래서 답이 뭔데? 나보고 직접 생각하라고? What the...!!


모르긴 몰라도 이 에세이의 작가가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취한 사상적 토대는 이런 류의 값싼 에세이로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아마 도스토옙스키과 빌 브라이슨과 줌파 라히리에서(에세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작가들) 사고의 양분을 얻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에세이는 생각을 많이 한 사람들의 족집게 과외 같은 건데, 나는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몇 개의 족집게 유형 해설로는 딱히 강의를 듣지 않았어도 풀 수 있었을 문제를 풀게 될 뿐이다.


족집게 과외만 듣다가 언젠가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족집게 과외를 엄청나게 많이 들어 다양한 사례를 수집하면 어떠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나가는 건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남의 걸로는 나를 만들 수 없다. 가끔 참고의 대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에게 이 책이 좋은 참고 대상이 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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