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정지돈 지음 / 스위밍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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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 소설의 아쉬운 점은 서사가 일상에 매몰됐다는 것이다. 그 바닥에서 이야기는 완전히 촌스러운 게 된 것 같다. 호환마마나 역병을 보듯 작가들은 이야기를 발로 쫓아낸 뒤 재미도 없고 착하지도 않은 계모를 안방에 들였다. 고통받는 건 계모 밑에서 자랄 독자니까 뭐.


정지돈을 처음 본 건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수상집>에서 였다. 그는 <건축이냐 혁명이냐>라는 단편 소설로 대상을 받았는데,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힘을 쭉 빼고 내뱉는 덤덤한 문장들은 진지함과 농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고 대단한 지향과 목표가 없는 듯 부유하는 이야기 속에 본인이 추구하는 비전이 확실하게 들어있는 이중성은 하루 종일 잔소리를 하다 툭, 하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내놓는 츤데레 대리님같은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의 장편을 꼭 한 번 읽고 싶었다.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가 길어졌을 때 단편과 똑같은 집중력과 재미를 유지할 수 있을까? 농담은 주제를 막론하고 길어질 수록 그 재미가 떨어진다. 정지돈이라면 농담의 긴장감을 몇 페이지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게 궁금했다.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는 2063년의 한반도를 배경으로 한다. 남과 북은 드디어 통일이 되었다. 국제 정세는? 일본 열도가 마침내 물 속으로 가라 앉았고 정부 혹은 국토를 잃은 전세계의 난민들이 아직 존재하는 국가를 향해 질주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중앙 정부의 치안 유지력과 행정력은 수도 서울에 한해서만 유효하다. 난민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는지 한국은 총기 소지를 합법화했고 총격전은 일상이 됐다. 아내가 남편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아파트 발코니에서 도로의 행인에게 총격이 가해지고 도로는 박살난 시체로 가득해졌다.


버스 기사 짐은 안드레아의 제안을 받아 만주까지 운전을 해주기로 한다. 매우 위험했지만 서울에서 계속 살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태워야 할 사람은 안드레아와 무하마드. 무하마드는 분단 시절 아랍인으로 가장해 남파된 간첩이었고 1996년 발각되어 무기징역을 받을 위기에 처했지만 그간 무하마드가 보여준 학문적 성과(아랍과 고대 한반도의 관계 연구)와 간첩 행위의 경미함으로 사면을 받는다. 올해 나이는 129세. 현재 직책은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그러나 그 연구소는 국가 전복을 꿈꾸는 테러 단체의 한국 지부였고 안 그래도 위험했던 여행은 국가 공권력의 추격까지 받는 혈투가 된다.


자, 여기까지만 말해도 이 소설이 그간 한국 문학계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그린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단한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현란한 총격전, 숨막히는 추격, 영리한 따돌림과 충격전 반전!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소설은 마치 독자의 바람을 외면하는게 일생일대의 미션이라도 되는 양 힘을 쭉 뺀 채 부유한다. 만일 이 책이 159페이지에서 끝나지 않았다면 나는 완독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지돈은 이 위기를 분량으로 해결했다. 한 페이지에 540자, 159페이지면 8만 6천자가 넘는 분량이지만 수 많은 공백을 고려하면 8만자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단편 소설 5개. 어쩌면 이 분량이 바로 농담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정지돈은 주인공 짐의 입을 빌려 이런 얘기를 한다.


짐은 텅 빈 놀이터, 유원지, 공원을 걸었다. 아무런 의미도 기능도 없는 글. 짐이 걷기 좋아하는 곳이 그런 걸지도 몰랐다(23p).


정지돈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일까? 단순한 유희? 정신이 이상해진 알콜중독자 노숙자가 행인을 향해 내뱉는 얘기 같은, 의미도 의도도 없는 말.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정지돈 만큼 행복한 작가는 없을 것 같다. 그는 유희를 직업으로 삼고 있으니까. 그 놀이가 좀 더 지속될 수 있도록 내가 그의 책을 좀 사줘야겠다. 혹시 또 모르잖아, 언젠가 내가 그 바턴을 이어받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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