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잭 매커보이 시리즈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부터 이 책을 읽고 배운 점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첫째, 역시 첫 문장이 좋아야 한다. 이는 비단 스릴러 장르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책을 손에 드는 독자들의 인내심은 결코 관대하지 않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첫 문장부터 쭉쭉 빨아들이지 않으면 독자는 스마트폰과 모바일 게임과 웹툰의 차지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첫 문장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나는 죽음 담당이다. 죽음이 내 생업의 기반이다(13p).


첫 문장이 이렇게 나와버리면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책에 서문을 달아준 이야기의 왕 스티븐 킹의 생각도 나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여러분도 "나는 죽음 담당"이라는 문장 너머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찾아가는 기쁨을 누리기 바란다(11p).


둘째, 명백한 사건이 등장해야 한다. 이야기는 언제나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사건은 당연하고 명백할 수록 더 큰 힘을 갖는다. 당연해 보이는 자살, 명백한 타살의 흔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황들. 예컨대 피해자의 등 뒤를 뚫고 나온 총알이 발견됐다면 그건 틀림없이 타살이다. 이 명백한 사건을 풀어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 그것에 의문을 품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 둘, 그것을 철썩같이 믿고 범인을 추적하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 전자의 주인공들은 명백함을 지키려는 자들의 핍박을 받으며 방해와 때로는 협박을 당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진상을 숨기려는 거대한 힘의 존재 또는 음모를 느끼게 되고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아 급속도로 전개 된다. 이는 큰 스케일의 이야기를 다루는 형식으로 적합하며 주인공 또한 단순히 형사가 아닌 기자, 시민 단체 직원, 피해자의 가족 등 다양하게 구성이 가능하다. 반면 후자는 급작스러운 반전을 꾀하기에 아주 유리한 구조를 갖는다. 화자는 철저한 분석과 논리력을 발휘해 범인을 찾아 나간다. 독자는 화자의 논리가 탄탄하고 드러나는 정황 또한 그것을 뒷받침하므로 자연스럽게 화자의 믿음을 자신의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장르 문학에 몰입하는 독자를 이해하는 핵심 요소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야기 사이사이에 충분한 복선을 끼워 넣는 것이다. 사건 현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맡은 독특한 체취는 전체 사건의 구성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아 보이지만 이것 하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모든 증거가 반대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중간 중간 등장했다 금새 잊혀지지만 결정적인 순간, 또는 우연한 계기를 맞아 폭발하듯 진실을 쏟아낸다.


셋째, 실체가 아닌 속성을 묘사해야 한다. 예컨대 피해자의 시신이 심각히 훼손됐으며 일부는 사라졌다고 가정해보자. 피해자들은 모두 건장한 남자다. 범인에 대한 프로파일링 결과는 이렇다. 육체적으로 매우 건장하며 냉정하고 대담한 사람. 일정한 직업이 없으며 고정 수입이나 연금으로 생활. 해부학적 지식은 전혀 없음. 외로운 사람이며 괴짜일 것. 온 몸에 문신을 새긴 사이코패스 부랑자, 어느 갱단의 행동대장, 한때 사법부의 고위직에 있었으나 불미스런 사건으로 옷을 벗고 고향에 내려와 은거중인 거구의 판사.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물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건 어떨까? 새끼를 가진 늑대, 먹이를 찾아나선 곰, 굶주린 악어. 과연 이 셋이 저 조건에 완전히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 아까 언급한 독특한 체취를 결합하면 범인은 힘센 남자가 아니라 사나운 대형견을 기르는 맹인 여자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작가는 충분히 많은 정황과 속성을 제공해 독자의 머리 속에 특정상을 제공해야 한다. 이 상이 단단하고 견고할 수록 반전의 충격은 더 커진다.


넷째, 절정에 다다르면 답을 제시해야 한다. 마침내 나는 모든 진실을 깨달았다. 나는 서장이 왜 결정적인 순간에 잘못된 지휘를 내려 범인을 놓쳤는지 이해한다. 나는 이제 왜 범인이 언제나 경찰보다 한 발 앞서 행동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됐다. 범인은 서장 자신이었다. 나는 이제 총을 꺼내들고 서장의 집으로 쳐들어간다. 하지만 세 번째에서 배웠던 것을 기억하자. 내부 정보를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수사에 혼선을 가져올 수 있는게 오직 서장 뿐일까? 아니 그건 당신의 파트너도 마찬가지다.


다섯째, 연쇄살인은 단지 사건과, 공간과, 수법이 연속적인 것임을 기억하라. 일주일 간격으로 서울 시내에 같은 방식으로 토막난 시신이 발견됐다면 우리의 뇌는 자연스럽게 한 명의 범인을 떠올린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우연의 일치, 또는 한 명의 살인자와 추종자에 의한 모방 범죄일 수도 있다.


마이클 코넬리의 <시인>은 이 모든 것을 교묘히 섞어 진짜 스릴러를 만들어낸다. 이 책은 무려 660p가 넘는 어마어마한 두께를 자랑하지만 지겨운 부분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이 책은 시인 삼부작의 첫 번째에 작품에 불과하다. 같은 두께의 책이 적어도 2권은 존재한다.


플롯이 치밀하다. 구성이 탄탄하다 라는 수식을 붙이려면 이 정도는 되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문장 또한 우아함과 냉담함이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멋진 앙상블을 보여준다. 마이클 코넬리의 <시인>. 정말 많이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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