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자국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영국에서 팔려나가는 전체 범죄소설 중 무려 10퍼센트가 '존 리버스' 컬렉션이라고 한다. <이빨 자국>은 존 리버스 컬렉션의 세 번째 작품이다.


제 2의 켄 브루언을 찾기 위해 범죄소설에 뛰어들었다. 끈질긴 탐문으로 작가를 골라내고 돼지 같은 인내심으로 재고와 배송을 기다린다. 참지 못하면 현장에 나가 잠복을 하기도 한다. 검거된 소설은 <악마의 증명>과 <이빨 자국>이다. 나는 둘 모두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두 소설은 어두운 책장 구석에 처박혀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탈옥은 불가능하다. <악마의 증명>은 2017년 7월 23일에 수감됐고 <이빨 자국>은 동년 동월 30일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금은 최후 변론을 위해 내 책상 위에 나와 있다. 전망은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다.


<소년 탐정 김전일>의 범인 규칙을 기억하는가? 그 만화에서 누가 범인인지를 고르는 건 너무 쉽다. 가장 범인처럼 생기지 않은 인물을 고르는 것이다. 초반엔 이것이 충격적 반전으로 다가오지만 에피소드가 거듭될수록 약효는 떨어지고 지루함이 스며든다. 반전은 어느새 당연이 된다.


이것보다 더 나쁜 패턴은 반전이 뜬금없이 등장하는 것이다. 반전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단서들이 사건 속에 촘촘히 박혀 있다 때가 이르러 한꺼번에 터져 나와 진실의 순간을 열어보일 때 만개하는 법이다. 알고보니 우리 옆집 남자가 연쇄살인마였다는 얘기는 현실 세계에서나 충격이지 소설에서는 최악의 플롯이다. 예컨대 BBC <셜록 홈즈> 최신 시즌의 마지막 챕터에서 왓슨이 홈즈에게, "사실은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살인과 사건은 내가 꾸민 짓이야." 라고 고백했다고 하자. 지난 에피소드를 되짚는 플래시백도, 그런 짓을 꾸며야만 했던 왓슨의 동기도 그리지 않는다. 존재하는 건 오로지 왓슨의 고백 뿐이다. 누가 이걸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빨 자국>의 매력 포인트를 매혹적인 플롯과 충격적인 반전이라고 말한다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다. 세 번째 시리즈라 그런지 존 리버스는 아직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을 갖추지도 못했다. 돼지같은 인내심, 탁월한 지성, 놀라운 기억력, 무엇을 장기로 사건을 해결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육감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긴 한데, 그건 너무 편리한 속성 아닌가? "왜 저 여자를 쫓는 거야?", "내 육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이렇게 써도 된다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다(물론 다루기에 따라 육감도 굉장한 매력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문화적 차이가 이런 감상평을 낳는지도 모른다. 스코틀랜드인 존 리버스의 사고 구조, 추리 과정을 한국의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원서가 아니라는 점도 한 몫 거들 것이다. 문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이할 만한 것도 없었다. 플롯이 치밀하지 못해도 문체가 자아내는 독특한 분위기가 수작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밤의 파수꾼>을 읽어 보라. 거기에 어디 반전이 있고 어디 치밀한 플롯이 있는가? 거기엔 '잭 테일러'가 있고 그저 그의 말을 받아 적는 켄 브루언이 있을 뿐이다.


앞으로 몇 개월 동안은 범죄소설을 집중 탐구할 것이다. 존 리버스에게도 몇 번 더 기회를 줄지 모른다. 그 전에 내 마음을 사로잡는 책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오랜 시간 많은 책을 읽다보니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좋은 책을 만나는 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일은 거의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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