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니어스 - 실리콘밸리 인재의 산실 ‘스탠퍼드 디스쿨’의 기상천외한 창의력 프로젝트
티나 실리그 지음, 김소희 옮김 / 리더스북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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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인재의 산실 '스탠퍼드 디스쿨'의 기상천외한 창의력 프로젝트. 엥간히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런 요란한 수식이 붙을수록 내용이 빈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나는 이번에도 내 편견을 부술만한 책을 만나지 못했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장을 고르라면 1장 리프레이밍, 2장 아이디어 자극, 3장 브레인스토밍, 6장 제약이다. 우선 리프레이밍부터 얘기해보자.


지난 10년간의 조직 생활 동안 나는 프레이밍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지켜봐왔다. 한국 기업은 특성상 대부분 상명하달식의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소심하고 순종적이며 성실하기까지 한 대한민국의 회사원들은 지시 사항에 의문을 품기보다는 시키는대로 최선을 다해 일을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사무실에는 '완벽한 똥'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들로 가득찬다. 18세기 운송 회사의 직원들이었다면 더 빠른 말을 찾아오라는 사장님의 지시에 전세계의 온갖 말 농장을 조사했을 것이다. 포드가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프레임은 정말로 정말로 무섭다. 컨퍼런스에 온 사람들에게 이름표를 다시 디자인하라고 하면 그들은 너무 작은 이름, 걸리적 거리는 목줄 등을 열거하며 단점이 보완된 이름표를 만들 것이다. 때때로 그런 결과물은 봐줄만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이름표가 왜 필요한 걸까? 창의력은 이런 본질적 의문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름표를 '다시 디자인'하라는 프레임은 너무나도 강력해 사람들에게 이런 의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두번째는 아이디어 자극이다. 이런 책이 무용한 이유는 뻔한 얘기를 한다는 것인데 뻔한 얘기라도 구체적인 How to가 있으면 괜찮아질 수 있다. 하지만 책이 해주지 않기에 내가 해본다.


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때 아무 문장이나 하나 고른 뒤 주어와 동사를 무작위로 바꿔본다.


로켓이 하늘 위로 날아갔습니다. 이 문장을,

개복치가 하늘 위로 날아갔습니다.

로켓이 땅 속으로 기어들어갔습니다.

방구가 눈 위로 날아갔습니다.


일견 말이 안 되는 문장처럼 보이지만 이 과정에서 당신은 당신의 사고 틀이 얼마나 좁고 갑갑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연습은 차차 사물을 리디자인 하는 것으로 발전될 수 있다. 문 손잡이를 사람의 손 모양으로 바꿔본다거나 220v 콘센트에 돼지 얼굴을 그려 넣는 것처럼. 엉뚱하고 유치해 보이지만 이런 생각 연습은 잠자고 있던 우리의 뇌를 격렬하게 깨우는 효과가 있다.


셋째는 브레인스토밍이다. 회사 생활 10년 동안 이걸 잘하는 사람을 만나 본 건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브레인스토밍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심판한다는 것이다. 알콜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이 똑같이 알콜중독자가 되듯이 권위적인 관리자 밑에서 일을 해온 사람들은 어느덧 심판자의 역할을 몸에 익힌다. 누군가 아이디어를 말할 때 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블라 블라 블라. 이 멍청이들아 이건 브레인스토밍이자나!!


아이디어는 언제나 양이 질을 담보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뽑아내려면 우선 많은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것이다. 아이디어 회의를 할 기회가 있으면 사람들이 말을 할 때마다 '안 된다'고 해보자. 당신은 그 한 마디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자신의 아이디어가 타당한지 아닌지 마음 속으로 수백번 심판할 것이다. 그럴거면 차라리 각자의 자리에 앉아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뒤 메일로 공유하는 게 더 낫다.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는 모든 사람이 모든 의견에 대해 호응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런 공포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 의견에 호응하는 걸 진심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나는 그저 브레인스토밍이어서 그랬던 것 뿐인데.' '나중에 자신의 아이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을 때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건 아닌가. 그렇게 호응을 해주더니 이 사람 완전 위선자 아냐!' 그래서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하기 전에 그 방법을 명확히 고지해주는 게 좋다. 적정 인원은 4~5명. 둘은 절대 안 된다. 둘이서 하는 브레인스토밍은 어느덧 쓸데없는 고성과 논쟁으로 변질될 것이다. 적정 시간은 1시간이다.


나아가 나는 안티-브레인스토밍을 추천한다. 1시간 동안 모든 아이디어를 뽑아낸 뒤 가장 마음에 드는 몇 개를 투표로 골라(이 때 여러 조건으로 구분하여 다중 투표하는 것도 좋다.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일. 중장기 과제. 등등) 그 아이디어들이 왜 안 되는지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다. 브레인스토밍과 안티-브레인스토밍을 잘 이용하면 당신은 혁신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제약이다. 마감 시간이 최고의 각성제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람들은 자유에 대해 지나친 망상을 갖고 있다. 무제한의 자원, 무제한의 시간, 무제한의 권한을 주면 엄청나게 훌륭한 서비스나 제품이 탄생할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창의력은 오히려 큰 제약을 만났을 때 반짝 반짝 빛이난다. 얼마를 써도 좋으니 해외 여행을 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뻔한 생각을 할 것이다. 최고급 요트. 별 7개 짜리 호텔의 스위트 룸.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그러나 100만원으로 세계 여행을 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온갖 방법을 생각해 낼 것이다.


뭔가를 요청 받을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뭐가 되도 좋으니 마음대로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지시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마음대로 생각한 나의 결과물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때때로 나는 제약이야 말로 창의력의 본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도 지시하는 사람도 이 제약에 대해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예산도 못 쓰고 인력 추가도 안 된다면서 뭘 해오라는 거야? 예산과 인력을 두 배로 늘려 주면 더 확실한 해결책을 갖고 오겠지? 세상은 정말, 


기절할 정도로 많은 오해와 미신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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