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중력가속도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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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장르의 매력은 중력의 한계에 묶인 인간의 인식을 우주 밖으로 쏘아보내는 것이다. 우리의 상상력은 의외로, 어쩌면 당연하게도, 지구를 기준으로 형성된다. 판타지 세계의 용은 그 요란한 독특함에도 불구하고 뱀의 비늘과 눈, 악어의 이빨을 갖고 있다. 천사들은 모두 비둘기와 같은 날개를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SF 작가들은 모두 지구인들을 위해 소설을 쓰는 우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술과 중력가속도>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그 내용의 실마리 조차 잡지 못했다. 예술은 중력가속도와 어떤 관계가 있는걸까? 중력과 가장 먼 단어를 하나 고르라면 나는 아마 예술을 골랐을 것이다. 아무리 상상해봐도 그 둘의 접점은 보이지 않는다. 예술은 중력의 속박을 받지 않는 인간의 유일한 행위니까.


소설집의 제목이기도한 이 단편 소설은 화성에서 태어나 '현대 무용'을 전공했고 주거지가 폐쇄되는 바람에 지구로 이민을 올 수 밖에 없었던 은경씨에 대한 이야기다. 화성의 현대 무용이라니, 우리는 여기까지 듣고 나서도 여전히 텅빈 무대 위의 지루한 몸짓이나 온 몸에 페인트를 묻힌 나체의 퍼포머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나아가 보자. 그들이 무대를 박차고 뛰어 올라 허공 위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떠올려 보자. 중력이 몇 배나 낮은 그 곳에서, 오색빛 실크옷을 나풀거리며 천천히 강림하는 여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예술은 우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지구의 예술가들은 인생의 대부분을 이 몰이해와 싸우느라 기진한다. 허름한 전시장을 섭외하고, 해설을 추가하고, 열심히 팜플렛을 돌린다. 하지만 은경씨가 처한 현실은 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구에선 아무도 은경씨의 무용을 볼 수 없다. 지구의 중력이 은경씨의 무용을 무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은경씨가 처한 현실은 압도적으로 비참하다. 지구의 예술가들은 언젠가 자신도 고흐나 베토벤이 될 거라 꿈꾸며 하루를 희망으로 채울 수 있다. 그러나 수십억 년이 지나더라도, 지구가 자신의 중력을 낮춰 은경씨에게 공연의 기회를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은경씨의 꿈은 지구의 예술가들이 평생을 바쳐 싸워 온 그 몰이해를, 단 한번만이라도 가져보는 것이다.


지구는 마침내 그녀에게 기회를 준다. 그녀는 몇몇 예술 협회의 도움으로 특별한 공연장을 섭외하는데 성공한다. 무대는 거대한 튜브처럼 생긴 비행기. 비행기는 관객들을 싣고 하늘 높이 올랐다가 무작정 땅으로 곤두박질 친다. 자유낙하. 비행기 안은 무중력 상태로 변하고, 드디어 은경씨의 예술이 빛을 발한다. 그러나 관객들 중 그 누구도 심지어 그녀와 결혼할 나조차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지는 못한다. 멀미로 토를 쏟아내느라 눈 조차 뜰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구인에게 은경씨의 무용은 구역질나는 예술이었다.


이후 은경씨는 나와 결혼을 하고 행복한 신혼 생활을 이어간다. 그녀는 늘 밟고 아름답게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자살을 선택한 이유를 어렴풋이 추측할 수 밖에 없다. 그녀의 죽음은 마침내 꿈을 이룬 자의 허심탄회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가까스로 얻은 기회가 결국 몰이해로 귀결된 것에 대한 슬픔이었을까? 나는 아무래도 후자에 무게를 두고 싶다. 우주에는 아주 작은 크기에 어마어마한 질량을 가진 중성자 별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그 크기가 점점 작아져 특정 수준에 이르는 순간 붕괴해 블랙홀이 된다고 한다. 은경씨의 고독은 행복한 웃음과 결혼 생활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 질량은 여전했을 것이다. 행복이 커갈수록 고독의 크기는 작아지고, 작아진 크기만큼 밀도가 높아진다. 그리고 마침내, 삶이 붕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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