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사회과학 - 사회과학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5월 광주의 삶과 진실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6
최정운 지음 / 오월의봄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날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 그러니까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일이 대한민국에선 얼마나 힘들게 쟁취한 권리인지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나는 그 일이 1980년 5월에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 날을 기점으로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된다.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에서 시민들의 선거를 막기 위해 오른 손목을 강제로 자른다는 뉴스를 보고 나면 사람들은 후진국의 야만성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 것이다. 하지만 1980년 5월 광주에서 군인이 지나가는 임산부의 배를 대검으로 갈라 죽였다는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1980년은 그리 오래된 과거가 아니다. 당시 그 지옥을 살아서 이겨낸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 남아 그 지옥을 만들어낸 악마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지구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야만적인 일은 내전이나 인종갈등으로 고통 받는 먼나라가 아니라 경제 대국이자 어엿한 민주주의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5.18의 원인을 한 마디로 규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1972년 10월 유신 헌법에 의해 종신 직권 체제를 구축한 박정희와 오랜 싸움을 해왔던 터였다. 그런데 1979년 10월 26일 이 독재자가 중정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지고 이틈을 타 전두환의 신군부가 12.12 군사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움켜쥔다. 드디어 대한민국에 봄이 오리라 기대했던 사람들은 새롭게 등장한 악마에게 맞서기 위해 다시 한 번 전열을 가다듬어야 했고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명령은 드디어 전면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 핵심에 광주가 있었다.


광주에 파견된 공수부대는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이유 없이 구타하고 연행해 인간 이하의 고문을 자행했다. 이는 시위대에게만 행해진 폭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시내를 돌며 젊은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들였다. 이는 부마 사태의 성공적 진압 이후 공수부대가 자신감을 갖게 된 전략이었다. 무고한 시민들에게 까지 무차별 폭력을 가해 일반 시민들의 시위 가담을 막는 것.


"공수부대의 데모 진압은 이를테면 '전시적 폭력'이었다. 붙잡힌 사람은 사정없이 폭력을 가하여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다시는 데모는커녕 얼씬대지도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공수부대의 폭력은 당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중략) 


죽거나 살거나가 문제가 아니라 처참하고 눈 뜨고 볼 수 없게 패고 찌르고 자르는 등 엽기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진압의 기본 원칙이었고, 이를 위해 이미 4월에 특수 진압봉을 주문했으며 처음부터 대검을 사용했다.(중략)


이러한 폭력은 시위 진압이라 할 수 없으며 통상적 폭력도 아니었다. 이는 시각적 언어였고 명쾌한 뜻을 전하고 있었다. (중략) 또한 중요한 점은 이들의 폭력, 특히 전설처럼 남아 있는 엽기적 행위는 결코 인간의 공격적 본능이나 분노의 표현이나 환각제의 효과가 아니라 고도로 훈련되고 오랜 연습을 통해 익힌 전문 기술이며 주로 월남전에서 갈고닦은 것이었다." (90~91p)


신군부는 오랫동안 휴가 및 외출, 외박을 금지하거나 밥을 굶기거나 야간 훈련을 지속함으로써 시위대에 대한 공수부대의 적개심을 의도적으로 키워왔다. 광주 진압의 훈련명이 '화려한 외출'이었다는 사실은 이 폭력이 철저히 기획된 것이며 불만에 가득 찬 군인들에게 제공되는 '축제' 였음을 증언한다. 광주 시민은 이 끔찍한 살육제의 희생양이 되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특히 노인, 아이,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시민들을 심한 분노와 공포 그리고 그걸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자괴감 속으로 몰아 넣었다.


그러나 광주 시민의 격렬한 투쟁을 공수부대에 대한 복수심의 발로로 이해해선 안 된다. 시민들은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아주기 위해 일어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해 투쟁했다. 시간이 흐를 수록 민주화, 전두환 타도와 같은 정치 구호가 등장하긴 했으나 이는 시위 과정에서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원흉이 누구인지 학습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구호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시위대의 대다수가 전두환이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5월 18일 광주 시민들을 움직인건 인간이고 싶은 열망, 즉 시대적, 이념적 가치를 초월한 기본권에 대한 사수 의지였다.


기본권에 대한 파괴는 80만 광주 시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그들은 역사상 유례 없는 절대공동체를 형성한다. 이 공동체 안에서 개인은 사라졌고 개인이 사라지고 나니 개인이 품을 수 밖에 없는 자기애와 이기심도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하나였으나 혼자가 아니었고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죽음 조차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어 버렸다.


<오월의 사회과학>은 이 절대공동체가 어떤 과정으로 형성됐고 또 어떤 계기로 해체되었는지를 차분히 분석함으로써 이 책이 왜 '그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월의 '사회과학'인지를 증명한다. 일목요연한 사건 개요, 르포,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5.18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이 끔찍한 권력의 폭력을 끝까지 파헤치기 위해, 공수부대의 잔학성을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다른 책을 먼저 읽어 적의를 불태우는 것도 좋을 것이다.


5.18같은 어마어마한 사건이 이토록 조용히 묻혀온 데는 권력자들의 억압과 은폐, 호남에 대한 타지역 사람들의 편견에 기인한 바가 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5.18에 대한 분노를 호남 사람들의 지긋지긋한 피해 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혹은 그런 얘기는 운동권이나 사상적으로 불순한 사람들의 주장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권력이 우리에게 짜놓은 프레임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그것을 유지하는 전략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말해준다. 광주 시민들은 5.18에 대해 말할 수도 없고 말하지 않을 수도 없다. 피해자들이 내는 목소리는 언제나 피해에 의해 편향된 것이라는 오해를 견뎌내야 한다. 그래서 광주하고는 아무런 관련도 연고도 없는 사람이 쓴 <오월의 사회과학>은 우리를 기쁘게 하면서 동시에 슬프게 만든다. 나는 사건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 그래서 목숨을 온전히 부지한 삼자만이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술할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이 몸서리치게 무섭다.


1980년 5월 광주에 내려진 '신화적' 폭력은 이제 거의 잊혀질 위기에 처해 있다. 어느날 전두환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그저 박정희의 뒤를 이은 또 한 명의 군부 독재자라고 기억할지 모른다. 대한민국의 근대사는 이렇듯 '단기 기억 상실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 악마는 단지 이름을 바꿨을 뿐이지만 국민은 그 새로운 지도자가 이번엔 정말 '신한국'을 만들어 줄 거라 희망한다. 지구인을 애완 동물로 키우는 외계인이 있다면, 아마 우리를 금붕어라고 부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