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 - 혁명.이데올로기 편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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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금지를 금지한다는 간지 선언은 우리를 초긍정 사회로 이끌었다. 우리가 오늘날 죄책감에 쫓긴 자기 계발에 시달리고 끊임없이 특강을 찾아다니고 조금이라도 더 우수한 인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빠져 사는 이유. 그것은 우리 사회에 긍정성이 범람했기 때문이다.


강철 빗장을 뜯고 드디어 자유를 꺼내왔지만 그 무게에 질식해 버린 현대인의 아이러니. 더이상 당신의 성공을 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을 무한한 가능성의 창대한 발현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순진해도 너무나 순진한 거다.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말은 곧 실패의 책임이 모두 당신에게 있다는 말과 같다. 가난해서 학교를 다닐 수 없어요. 인터넷에 공짜 강의가 넘쳐나는데요? 작가가 되고 싶은데 등단의 문이 너무 좁아요. 쌔고 쌘게 인터넷 소설 플랫폼이에요.


초긍정 사회에선 낙오자가 속출하고 우울증이 만연한다. 남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불안. 그 잘못이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 구조적 모순은 이 망상 뒤에 숨어 영원히 지속될 힘을 축적한다. 화를 내고 싶지만 도대체 어디에 화를 낸단 말인가?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금지는 이미 우리가 거세해 버린 것을.


지금 우리는 권력의 진화 과정을 보고 있다. 권력은 억압를 제거함으로써 영원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모든 개인에 내재화된 것 뿐이다. 가장 무서운 건 언제나 보이지 않는 적. 현대 사회에서 '나'는 나의 주인이자 동시에 노예다. '나'를 채찍질 하는 건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 나를 죽여야만 내가 해방되는 딜레마. 초긍정 사회는 해방의 딜레마 또는 해방의 아이러니로 가득차 구원이 불가한 세계다.


철학의 힘은 현실이 뒤집어 쓴 두꺼운 가면을 벗겨내 그 안에 든 추잡한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진실은 잠깐 번쩍이고 마는 번개가 아니다. 진실엔 우리가 딛고 선 단단한 땅을 파괴하는 힘이 있다. 그 힘에 넘어지고 구르고 다친 사람들은 찡그린 얼굴로 일어나 파괴된 세상을 목격한다. 그리고? 


분노한다. 


나는 이것이야 말로 철학이 가진 진정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은 그저 어려운 생각을 주고 받는 지적 유희가 아니다. 제대로된 철학은 언제나 물리적 힘을 낳는다. 철학은 우리가 무엇에 화를 내야 하는지 알려주는 학문인 것이다.


철학의 대중화는 그래서 더더욱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진실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며 극소수의 분노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혁명의 엔진은 보통 사람들이 표출하는 보통의 분노로 움직인다.


찬바람이 뼈를 에는 겨울 광장에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섰다. 그 숭고한 마음이 지속되려면 우리는 스스로 진실을 꿰뚫어 볼 힘을 키워야 한다. 지금 우리를 움직이는 건 정치가 보여준 포르노 때문이지 그 밑에 숨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자각이 아니다. 철학을 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비판적 사고를 갖춰야 한다.


이 책은 시인, 소설가와의 대담, 공연을 통해 아주 쉽게 철학을 강의한다. 자기들만 아는 용어를 잰체하며 씨부리고 넘어가는 법도 없이 하나하나 공들여 설명해 준다. 대중 공연으로 기획된 강의를 책으로 옮긴 만큼 부드럽고 편안하다. 그간 웅진 지식하우스의 실망스런 행보에 견주어 보면 탁월하다고 까지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좋은 책을 읽을 때마다 장님이 눈을 뜬 것과 같은 희열을 느낀다. 시야가 환해지고, 초특급 반전 영화를 본 것처럼 가슴이 철렁하다. 철학책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나아중에 가서야 땅을 치며 통곡을 하기 전에, 철학을 하자. 두 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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