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인 척 호랑이
버드폴더 글.그림 / 놀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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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처음 보는 건 아닐 것이다. 장 자끄 상뻬의 책을 그림책이라 불러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가 생각난다. 대개 그림책이라 하면 파스텔 톤의 따뜻한 그림들이 들어가 있었다. 더럽고 야비하고 치사한 세상을 치유하고자 하는 기세로 따뜻하게 번져가는 그림들. 이런 걸 보면 그냥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좋겠지만 쉽지가 않다. 아무래도 천성이 비뚤어진 것 같다.


세상이 더럽고 치사하고 비열한 건 사실이지만 구태여 그 세상을 부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세상을 따뜻하고 깨끗하게 만들려는 모든 시도들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인간은 애초에 그리 고귀한 존재가 아니고 그런 인간들이 모인 게 세상이니 당연 세상도 고귀하지 않다. 인간은 시비를 가르고 악을 선으로 교화시키는 걸 자기 종만이 가진 유일한 능력이라고 믿으며 그런 이유로 세상을 이루는 다른 존재들과 병적으로 구분되길 원한다. 


인간이 금수와 같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런 자만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고 관계를 망치는 게 아닐까?


<고양이인 척 호랑이>는 다행히 이런 야심이 없는 책이다. 트위터에 올린 140자의 글이 우연히 호평을 받아 연재 형식으로 이어나간 것 같다. 소소하다. 귀여운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귀엽고 아기자기한 그림들을 채워넣었다. 하나는 숲에서 자신을 주워온 할머니를 놀래킬까봐 고양이인척 하는 호랑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을 호랑이로 착각하는 고양이다.


그렇게 버리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간절히 바라는 이가 이 세상 어딘가엔 있다. 그러므로 네가 가진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큰 것인지를 기억하라. 


이런 교훈이 나오는 게 자연스럽겠지만 그 자연스러움을 역행하는 게 이 책의 자연스러움이다. 작가는 모든 페이지에서 침묵한다. 호랑이가 고양이로 살기로 마음 먹었다면 그냥 그것을 바라본다. 응, 그래, 그렇구나. 고양이가 호랑이로 살기로 마음 먹었다면 그냥 그것을 바라본다. 응, 그래, 그렇구나.


깊은 산속 외딴집엔 지금도 여전히 고양이인 척하는 호랑이와 자기가 호랑이인 줄 알던 고양이가 함께 오순도순 살고 있어요. 지금은 누가 커다란 고양이인지 누가 조그만 호랑이인지 아무도 모르겠군요.(p.178, 183)


나도 140자만으로 뭔가를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류의 역사 중 한 시기엔 분명 어렵게 얘기를 하고 길게 쓴 글이 환영을 받은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마음을 고쳐 이런 글을 쓰기로 하면 가능한 일일까그렇게 되면 나는 고양이인척 하는 호랑이일까, 아니면 호랑이인 줄 아는 고양이일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비극은 무엇이 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되고 싶은지 조차 모르는 데서 오니까 그나마 나는 행복한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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