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시 - 인디영화의 대명사, 짐 자무시 인터뷰집 마음산책 영화감독 인터뷰집
루드비그 헤르츠베리 엮음, 오세인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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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야간 열차를 탄 나는 첫 차도 다니기 전인 이른 새벽 부산역에 도착했다. 차갑게 식은 우동 한 그릇을 먹으며 이제 막 깨어나기 시작한 도시를 구경한다. 어둠 속에서 설렘과 기대가 부풀었다. 잠시 후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로 향했다. 그 곳에서 부산 영화제 ID 카드를 받고 보고 싶던 영화를 잔뜩 예매했다. 남포동과 해운대를 오가는, 하루 4편의 영화를 보기 위한 미친 일정.


재미있을 것 같은 영화보다는 봐야만 할 것 같은 영화를 봤다. 그 때는 학생이었으니까. 웬지 예술 냄새가 나는 영화들만 골랐다. 그래서 졸았다. 시작한지 10분도 되지 않아. 그대로 영원히 잠들어 버릴 것 같은 순간 나를 깨운 건 스크린 가득 클로즈업 된 빌 머레이의 얼굴이었다. 순식간에 잠이 달아났다. <Broken Flowers>, 짐 자무시와의 운명적 만남이었다.


이후 나는 <천국보다 낯선>을 봤고 <미스테리 트레인>을 봤고 <다운 바이 로>를 <데드맨>을 <고스트 독>을 그리고 <커피와 담배>를 봤다. 몇몇은 끔찍할 정도로 지루했고 몇몇은 기가막힐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나는 졸업을 했고 영화를 관뒀고 회사에 취직했다. 더 이상 짐 자무쉬를 찾지 않았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다. 시간이라는, 이 부지런한 악마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옛 일을 떠올리게 된다. 구석에 쳐박혀 먼지 덮힌 기억을 자꾸만 꺼내본다. 그럴수록 기억은 더 생생해진다. 나는 어느 큰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고 거의 동시에 꺼내들었다. 이틀 뒤 내 책상 위에는 이 책이 배송되어 있었다.


<잠 자무시> 인터뷰집은 그의 대다수 영화와 마찬가지로 지루하다. 여러 인터뷰를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같은 얘기를 되풀이 할 때가 많다. 확실히 그의 영광은 데뷔작인 <천국보다 낯선>에 몰려 있다. 사람들은 거의 신화가 된 이 작품에 대해서만 궁금해한다. 이 줄거리도, 유명한 배우도 없는 흑백 영화가 왜 자기를 그토록 매료시켰는지 놀라워 한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짐 자무시의 입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대답은 신통치 않다. 대개의 위대한 예술은 창작자의 이해와 역량을 한참이나 초월하는 불가해한 존재기 때문이다.


부질없는 질문과 힘겨운 대답이 이어진다. 자기 영화를 팔아야 하는 입장이 아니었다면 짐 자무시는 결코 인터뷰 같은 걸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위한 유일한 위로는 어서 빨리 책장을 덮고 스크린 앞에 앉아 그저 영화를 보는 것이다. 때문에 의도치 않게 인터뷰집을 효과적으로 읽는 법을 배웠다. 절대적으로 질문에 집중하라는 것. 훌륭한 질문에 바보 같은 대답은 나올 수 있지만 바보 같은 질문에 훌륭한 대답은 나올 수 없다. 그러므로 질문을 읽은 뒤 그게 형편없거나 당신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면 그 답변 전체를 건너 뛰어도 무방하다.


유명한 예술가가 되면 모두 이런 곤혹을 치러야 한다. 수 없이 되풀이 되는 똑같은 질문들. 새 영화를 찍기에도 바빴을 이 사교성 없는 남자가 행한 그 끔찍한 앵무새 연기에, 슬픔과 연민을 담아, 진지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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