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자화상
전성태 지음 / 창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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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에서 받은 다섯 권의 경품 중 가장 훌륭한 책이었다. 글 줄 하나하나에서 땀 냄새가 난다. 성의와 성심이 가득하다. 진정 소설이라 부를만한 작품 열 한 편이 차곡차곡 시간을 깔고 누워 있다. 그럼에도 나는 슬펐다. 그 다섯 권의 책 중 이 책이 가장 팔리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순수 문학은 잔잔하고 지루한 장르다. 스펙타클이나 환상은 없다. 문학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 속을 헤집는 오만가지 사건과는 달리 우리의 삶은 얼마나 무료하고 지루한가. 지긋지긋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다시 지긋지긋한 현실을 집어드는 사람은 없다. 그런건 카프카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이다.


그러나 문학을 열어 본 사람은 어렴풋이 느낄 것이다. 책이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가 웬지 낯설고 생소하고 신비롭다는 것을. 어딘가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일상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깊은 미스테리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지만 정작 주의를 기울여 세상을 읽어본 적은 거의 없다. 인간은 세상을 덩어리로 인지한다. 우리에게 '세상'이란 것은 진정 추상적이다. 그 큰 덩어리를 이루는 세세한 알갱이를 만지며 살지는 않는 것이다. 여기가 바로 문학의 역할이 빛나는 지점이다. 문학은 우리를 추상적인 덩어리에서 끄집어내 세세한 알갱이 앞으로 데려간다. 평생을 알갱이와 부대꼈지만 한 번도 그 존재를 눈치채 본 적 없는 것들. 그래서 나에게 문학은 가장 진부하지만 동시에 가장 새롭고, 또 낯선 것이다.


작가 전성태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신화 속에서 살아온 것 같다. 그는 바다와 산을 보름씩 오가며 사는 산갈치라든가, 백년에 한 번 하얗게 핀 대나무 꽃을 봉황이 날아와 먹는 다는 둥, 마을 어른들과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가슴 속에 보물처럼 쌓아오다 끝내 소설가가 되 버렸다. 물론 이 남자의 소설은 그가 어릴 적 들어왔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환상의 세계를 그려 놓고 현실로 가는 다리 하나를 흐릿하게 지어놓는 스타일도 아니고 현실과 환상을 뒤죽박죽 섞어 한바탕 난동을 부리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인간들의 평범한 일상이 잔잔한 서정을 두르고 담담하게 나아간다. 그런데 나는 이 열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난 뒤, 문학의 무게는 그 뻔한 일상을 묵묵히 밀고나갈 때 여지없이 더 묵직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환상을 찾지 마라. 기적은 일상에 있다. 반짝 반짝 빛나는 삶의 진실도, 그 고통을 어루만질 치료약도 바로 삶 속에 있다.


어릴적 작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어머니는 이제 치매에 걸려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최근 것부터 차근차근 지워지는 기억이 그녀를 자꾸만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그래서 이제는 작가가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차례가 됐다. 오락가락하는 정신을 끌어안고 침대에 누운 어머니에게 산갈치니 봉황이 뜯어 먹는 대나무 꽃 얘기를 하면 반짝 눈동자가 빛난다고 한다. 이야기를 먹고 자란 아이가 소설가가 됐듯 그의 어머니도 환상을 마시고 현실로 돌아왔으면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느 걸 알지만, 기적은 언제나 삶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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