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사람들 - 인간 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 보고서, 개정판
M. 스콧 펙 지음, 윤종석 옮김 / 비전과리더십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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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명의 힘은 대단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진 한낱 몸짓에 지나지 않던가. 특히 과학, 그 중 의학의 영역에선 이 힘이 더욱 도드라진다. 의학이 곤란을 겪을 때는 대개 알 수 없는 증상과 싸울 때다. 도대체 무슨 병인가? 


미드 하우스의 천재 내과의 닥터 하우스가 천재로 불리는 이유는 그가 가진 명명의 힘 덕분이다. 그는 내과의다. 수술을 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책상에 앉아 환자의 증상을 보고 받는 일이다. 이제 보고가 끝나면 그의 팀은 해당 증세를 발현시킬 수 있는 병명을 모조리 꺼내 놓는다. 이 브레인 스토밍이 끝나고 나면(혹은 중간 중간) 하우스는 신랄한 비판과 함께 소거법을 진행한다. 이게 암이라면 이런 증상은 없었겠지, 이게 뇌출혈이라면 이런 증상이 같이 나와야해, 그리고 마침내 짜잔 병의 정체가 드러난다. 투명 망토를 벗은 병을 때려잡는 건 일도 아니지.


스캇펙이 맞닥뜨린 문제도 이것이었다. 그는 오랫 동안 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일부 증상에 대한 새로운 정의 없이는 치료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진찰되는 강박증, 자기 기만, 우울증 등이 본질적으로는 새롭게 명명되야 할 어떤 원인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일반적인 강박증, 자기 기만, 우울증 치료법으로는 환자를 낫게 할 수 없다. 증상이 같을 뿐 이는 완전히 다른 병이기 때문이다. 스캇펙은 이 막다른 골목에서 아주 위험한 도약을 시도한다. 그 원인을 '악'으로 규정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이 책을 덮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약간의 고민에 빠졌다. 누군가를 '악'으로 정의하는 것은 결코 가치 중립적일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러니까 단순히 이러이러한 증상을 갖지만 이러이러한 방법으로는 치료가 불가한 특정 환자군에 대해, 마치 우리가 무궁화 반, 민들레 반, 개나리 반이라고 이름을 붙이듯 '악'이라는 명패를 달아주는 것 뿐이다라고 말해도 납득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아주 오랫 동안 축적되어 고착화된 우리의 언어 관습에 따라 우리는 이 말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까진 한낱 몸짓에 불과했다고 했잖아. 이름엔 신비한 힘이 있다. '악'이라 이름 붙인 것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악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이 때문에 그들은 불필요하게 악해진다.


변명을 해도 모자랄 판에 스캇펙은 강을 건너온 배를 불태워 버린다. 그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예전에 나는 오랫동안 불교와 이슬람교에 관심을 갖고 뭔가를 추구해 보려 애썼으나 결과는 늘 모호했었다. 그러다가 뒤늦게서야 기독교의 본질을 깨닫고 거기에 온전히 귀의했으며, 1980년 3월 9일 마흔셋에 세례를 받았다.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 일이 있기 오래 전이었다."(p. 11)


스캇펙은 그래도 비겁한 사람은 아니다. 자신의 종교를 숨기지 않으니까. 그 때문에 편향된 과학자, 사이비 정신과 의사로 비난 받을 수 있는 여지를 겁내지 않는 것이다. 비록 마지막 문장으로 소심한 변명을 시도하기는 하지만.


스캇펙은 책의 말미에 "악이란 사랑에 의해서만 정복될 수 있다"(p.356) 고 썼다. 이것은 그가 머리말에서 인용한 성 어거스틴의 말과 연결된다. 성 어거스틴은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오해한다. 이 말은 사랑으로 죄인을 용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게 사랑이기만 하면 죄인에게 어떤 짓을 저질러도 상관 없다는 의미다. 중세 시대의 마녀 심판관들은 하나 같이 죄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고한 인간을 불에 태워 죽였을 것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지극히 숭고한 사랑으로 악인의 머리를 철퇴로 짓이겨 터뜨리는 스캇펙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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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2016-11-21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게 바로 말장난이고 거짓의 기만인것같은데요. 책 내용중 스캇펙이 악한사람을 심판하고 배척하고 때려잡고자 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읽힐만한 문장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서문과 마지막에 이 책은 위험한 책이라면서, 타인을 함부로 악으로 심판하지 말라는 류의 글도 써놨고요. 스캇펙은 ˝악˝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현대인에게,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에게 내재한 악한 성향을 끄집어내 드러내주는 겁니다. 악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며, 악의 성향에 대한 설명도 훌륭하고요. 이 글 자체가 스캇펙을 철퇴로 짓이겨 터뜨리려는 것 같네요. 이런 방식으로 중세에 마녀사냥이 자행되었겠죠?ㅋㅋㅋ 마녀사냥 제일 잘하실듯한 분이네요 머리말에서 기독교 저부분만 발췌하신것도 보니 ㅋㅋㅋ 기독교 편향적으로 작성된 글도 아니고요~ 과학자다운 객관성을 유지하는 글입니다. 이글처럼 주관적으로 선동적이지 않아요^^

한깨짱 2016-11-21 15:23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한 번 더 읽어보고 생각해 볼게요.

스캇 2016-11-22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편견 갖지 마시고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악이라고 느껴지는 것에 악이라고 이름붙이는것 자체가 심판이고 악은 아닙니다. 뭐가 선이고 뭐가 악인지 구분은 가능해야 (내 자신이 악을 행하는것도 포함하여)악을 피할것 아닙니까? 이 글에 나온 사례들은 명백히 악한것 맞구요. 스캇펙이 그들을 마녀사냥하는건 전혀 아닙니다. 악이 선에 짬뽕되어버린 거짓과 혼돈을 원하시는게 아니라면 악을 악이라 부르는 것을 비난할순 없을겁니다. 쓰신 글이 굉장히 말장난같은 느낌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