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권력의 토대는 적이고, 적 중의 적은 빨갱이다. 


정적을 쉽게 죽이려면, 반대자의 입을 쉽게 닫게 하려면 빨갱이로 만들라. 그리하면 사람들은 살인자를 탓하지 않을지니, 보아라 이것이 빨갱이의 힘이다. 빨갱이라는 말은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고 거짓을 진실로 바꾼다. 이 말은 일종의 마법 주문과 같다. 아브라 카타브라나 아멘. 듣기에 신은 사탄을 만들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Let there be RED

빨갱이여 있으라. 


빨갱이는 자유를 원하는 시민에게 내려지는 철퇴다. 빨갱이는 인간으로 살려는 시민의 발에 채워지는 족쇄다. 빨갱이는 정의를 말하려는 시민의 입에 물리는 재갈이다. 전세계 독재자들이 이 말 한 마디로 한 시대를 차지했다. 그 시대 중 하나가 1950년 이후의 대한민국이다. 그 시대 중 하나가 1950년대의 미국이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미국 소설이다. 당시 상원의원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는 미국 사회 곳곳에 공산주의자가 활동하고 있으며 자신이 그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지프 매카시는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을 전복시킬 거라고 주장했다. 미소 냉전시대였다. 국민은 공포에 떨었다.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지목되 직장을 잃고 목숨을 잃고 추방을 당했다. 비이성과 광기, 배신과 고발, 음모와 의심이 미국 국민을 갉아 먹었다. 1954년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의 말은 완전한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는 1957년 48세의 나이로 죽었다.


미국은 그 붉은 폭풍을 고작 십년도 겪지 않았음에도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같은 소설을 가졌다. 70년 가까이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린 대한민국도 아직 가지지 못한 것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폭풍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는 그것이 그치고 나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법이다. 필립 로스에게는 폭풍이 쓸고 간 폐허를 차갑게 관조할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리의 폭풍은 아직도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 세 사람이 있다. 아이라 린골드는 뒷골목에서 태어난 가난한 아이였다. 엄마는 일찍 죽었고, 아버지는 쓰레기였다. 온갖 궂은 일을 하다 군대를 갔다. 그 곳에서 공산주의자 오데이를 만났다. 아이라 린골드는 공산주의자가 되어 미국에 돌아왔다. 후에 그는 유명한 라디오 성우가 되어 대중들에게 진보와 평등의 메시지를 전파한다. 파티장에서 만난 부루주아들에게 거침없이 욕설을 퍼부었고 힘 있는 보수주의자들을 모욕했다. 그렇게 그는 붉은 폭풍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사지가, 정신이, 마음이 갈기 갈기 찢어졌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머리 린골드는 뒷골목에서 태어난 가난한 아이였다. 엄마는 일찍 죽었고, 아버지는 쓰레기였다. 그는 공수부대원이 되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머리 린골드는 자유 시민이 되어 미국에 돌아왔다. 후에 그는 영문학 선생님이 되어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머리 린골드는 아이라 린골드의 형이었다. 그러나 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공산주의라는 것 없이도 가난을 친구로 둘 수 있고 평등을, 사랑을, 자유를 전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 네이선은 머리 린골드의 제자였다. 그를 통해 아이라를 만났다. 그리고 열렬한 추종자가 됐다. 열광은 길지 않았다. 네이선은 오래지 않아 아이라의 광기로부터 도망쳤다. 시간이 흘러 네이션은 육십대 중반의 노인이 된다. 그리고 아흔이 된 머리 린골드와 다시 만난다. 아흔 살의 노인은 붉은 폭풍이 휩쓸고 간 폐허를 모두 목격했고, 그보다 더 흉해진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여전히 우리가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청년처럼 활기가 가득했다. 그는 6일 동안, 네이선이 몰랐던, 네이선이 외면했던 아이라의 비극을 얘기한다. 공산주의가 어떻게 그의 삶을, 사랑을, 가정을 망쳤는지, 아이라가 기꺼이 돕고자 했던 가난하고 힘없는 대중들이 어떻게 그를 배반하고 죽였는지를. 네이선은 머리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 밤 하늘을 올려다 봤다. 


네이선은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고 했던 어린 시절 엄마의 말을 떠올렸다. 아이라의 추락, 아이라의 죽음과 관련된 자들은 거의 다 죽었다. 밤 하늘에 그들이 죽어서 된 별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거기엔 "반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p538).


이데올로기는 사람을 모으고 편을 가르고 싸움을 일으키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이데올로기는 평화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평등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자유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인간은 공산주의 없이도 타인을 사랑하고 가난을 극복하고 자유를 가질 수 있다. 중요한 건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우리의 심장이다. 우리의 진심이다. 우리는 갈기 갈기 찢긴 심장을 손에 들고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별이 될 것이다. 반목과 실수 따위는 감히 끼어들 수 없는 저 광대한 우주의 별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