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핀 댄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2 링컨 라임 시리즈 2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가끔은 순수하게 재미만을 쫓고 싶다. 사고를 정지시킨 채 그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정해진 곳에 도착하기. 그 아무리 고귀한 문학도, 철학도 무용지물로 느껴지는 순간.


잘 만들어진 장르 소설을 찾기 위해 노력해온 건 꽤 오래된 일이다.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사실 나는 '헐리웃 블록 버스터'의 광팬이다. 특히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좋아하고 그 캐릭터들이 초능력이라도 쓰는 날엔 거의 환장할 수준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 제프리 디버의 <코핀 댄서>는 나의 선택을 받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전 FBI 소속의 천재 범죄학자 '링컨 라임'과 역시 그 바닥에선 천재라 불리는 암살자 '코핀 댄서'의 두뇌 싸움. 슈퍼 히어로와는 좀 다른 느낌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슈퍼 히어로를 '현실'이라는 체에 거른 뒤 유니폼을 벗기고 일상의 옷을 입히면 '링컨 라임'과 '코핀 댄서'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은 거의 초자연적 힘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군계일학. 닭장 속의 여우. 쉽게 말해 사기캐.


추리 소설하면 응당 매력 만점의 탐정이 등장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 중에서도 '링컨 라임'은 아주 독특한 존재다. 우선 그는 척추를 다쳐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이다. 오로지 약간의 고갯짓과 대화만 가능.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어 입으로 바람을 불어 전동 휠체어를 몰고 다니는 남자. 불행히도 범죄 현장을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그는 증거물에 집착한다. 그것도 먼지, 종이 부스러기, 모래 따위의 미량 증거물을.


미량 증거물은 상당히 많은 연결고리를 거쳐야만 그것이 지시하는 실체에 닿을 수 있다. 긴 시간 동안 깊은 사유가 필요한 일이다. 팔다리가 멀쩡해, 그래서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는 커다란 장벽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생각' 밖에 없는 라임에게는? 이것이 과연 장벽이 될 수 있을까? 이 순간 링컨 라임의 치명적 장애는 궁극의 장점으로 변태한다. 가만히 누워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범인을 향해 미량 증거물이라는 빛타래를 엮어 나가는 링컨 라임. 그는 마치 미시 입자의 운동 상태를 확인해 우주라는 궁극의 어둠을 파악하려는 물리학자를 닮았다.


<코핀 댄서>를 읽으며 왜 사람들이 추리 소설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문장에는 수 없이 많은 암시와 단서 복선이 존재한다. 독자는 이 부스러기들을 긁어 모아 짧게는 두 세 문장, 길게는 몇 백 쪽 뒤에 제시될 '해답'에 앞서 추리를 해야 한다. 정답을 맞췄을 때 주어지는 보상은 '링컨 라임'과 '독자'의 동일시다. 이 동일시는 '추리-정답 확인'이라는 피드백 과정을 더 빠른 속도로 회전 시키고 회전을 통해 생성된 구심력이 독자를 소설의 핵심으로 끌어당긴다. 이 힘에 빠져든 사람은 두 번 다시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추리 소설은 책이라는 매체의 한계를 뛰어 넘은 거의 유일한 장르가 아닐까 싶다. 문제가 제시되면 독자는 그것을 풀어야 한다. 마음 같아선 다 풀었을 때만 책장을 넘기고 싶지만 궁금해 못 참겠으면 뒷 장을 훔쳐본다(치팅). 정답을 확인해도 이해가 안될 땐 앞 장을 들춰 단서를 다시 수집해야 한다. 수집된 단서를 들고 새로운 문제에 맞선다. 이건 완전히 아이템을 얻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다 최종 보스를 무찌르는 RPG 게임을 닮아 있지 않은가? 더 놀라운 건 이런 상호 작용이 다른 매체의 도움 없이 오로지 '종이'와 '문장'이라는 책의 본질만을 이용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 명탐정의 딜레마가 있다.


반전은 그 누구도 맞출 수 없을 때가 아니라 누구나 맞출 수 있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아마도 추리 소설 작가들은 그 어떤 독자도 자기가 만든 탐정보다 뛰어나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다. 그리하여 그들은 오로지 탐정에게만 중요한 단서를 귀뜸해 준다.


그래서 나에겐 갑자기 '짠'하고 나오는 탐정의 결정적 추리가 명탕점의 뛰어난 재능이라기 보단 작가가 탐정에게 드러내는 편애의(독자보다 탐정을 사랑하는) 결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의심은 추리 소설 전체에 던지는 중대한 의문을 잉태한다.


탐정은 사건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사건이 탐정을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는 <코핀 댄서>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링컨 라임이 사건을 해결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오히려 링컨 라임이 해결할 수 있도록 사건이 벌어진 건 아닐까? 이런 의문이 드는 순간 독자-범인의 싸움은 독자-작가의 싸움으로 변질되고 만다. 문제는 이 변질이, 단단하게 묶였던 몰입의 끈을 허무하게, 너무나 허무하게 풀어버린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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