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전설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어머니는 아자크 섬에서 나를 낳았다(p.9)."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샀다.


<자살의 전설>은 다섯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중편으로 엮인 선집이다. 여섯 편의 소설은 모두 저자 데이비드 밴의 실화를 바탕으로 지어졌다. 특이한 점은 여섯 편의 소설이 모두 한 개의 경험을 재구성 했다는 점이다. 더 특이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섯 개의 이야기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1966년 아다크 섬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밴은 알래스카 케치칸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평범한 치과 의사처럼 보였으나 실은 마음이 공허한 남자였다. 외도를 했고, 치과를 팔아 어선을 샀다. 만선의 꿈은 한 번도 이루지 못했다.


데이비드 밴은 이혼한 엄마를 따라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갔다. 어느날 그는 알래스카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밴에게 자기와 함께 지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밴은 거절했다. 그가 거절한 직후 "아버지는 44구경 매그넘을 꺼내들고 선미에 섰다. 그러고는 연어 내장 위로 자신의 몸을 뿌렸다." (어류학, p. 21)


이 죄의식이 10년 동안 여섯 편의 소설을 만들어 냈고 2년 간의 퇴고를 거쳐 <자살의 전설>로 묶였다.


여섯 편의 소설 중 핵심은 역시 중편 <수콴 섬>이다. 데이비드 밴의 고백처럼 글쓰기에는 확실히 치유 효과가 있다. <수콴 섬>은 어른이 된 아들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속죄의 편지다.


<수콴 섬>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요청을 받아들여 알래스카로 간다. 부자는 외딴 섬에서 일 년을 지내기로 마음 먹고 사냥을 하고 훈제실을 짓고 식량 창고를 만들었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자신의 상실감을 메워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문제는 아들도 자신이 아버지를 치유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외딴 섬의 외딴 오두막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한 사람 뿐이라는 것을, 아버지도 아들도 알았다.


속죄를 위해 데이비드 밴은 <수콴 섬>의 아들에게 피스톨을 건넨다. 아들은 피스톨의 공이를 젖힌 뒤 총구를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이로써 수 십 년 간 아들을 괴롭힌 죄책감이 구원의 기회를 얻는다. 


아버지는 머리가 박살난 아들의 시체를 침낭에 싸들고 눈 덮인 섬을 헤매며 죽음을 구걸하지만 행운은 그렇게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구원을 얻은 건 멕시코로 가는 밀항선에서였다. 아들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조사를 받은 뒤 도망을 가는 길이었다. 아버지에게 돈을 받고 밀항을 도운 두 명의 선원은 잠든 아버지의 목에 밧줄을 걸고 질질 끌고 가더니 버둥거리는 발을 몽둥이로 내려치고는 그대로 바다 속에 쳐넣었다. 물은 차가웠고 젖은 옷의 무게가 아버지를 깊은 바다 속으로 끌고갔다. 아버지는 차가운 물을 마시며 "아들이 자신을 사랑했음을, 그리고 그 사랑으로 충분했음을 깨닫는다" (p. 163).


그 순간 <수콴 섬>의 아버지와 데이비드 밴이 구원을 얻는다.


<자살의 전설>을 재미 있다고 말하기엔 솔직히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이야기는 특별한 사건이 없고 그저 지루한 일상을 담담히 늘어 놓는다.


그런데 죽음이 있다.


혹한의 겨울 마저 꽁꽁 얼려버릴 듯 차갑고 담백한 죽음의 묘사.


고요한 밤, 불현듯 현관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는 확실히 요란한 낮 시간에 울리는 소리와는 충격의 질이 다르다. 절정의 순간을 지극히 담담히 그려 독자를 방심케 한 뒤 뜩, 강펀치를 날리는 '전형적 하드보일드'. 그러나 여기선 '전형적'이라고 비하하기가 무색할 만큼 깊은 맛이 난다. 이 맛에 빠진 사람은 울고 불고 쥐어짜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모두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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