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경제학 - 세계적 현상, 부동산 버블과 경제 시스템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다
로버트 J. 쉴러 지음, 정준희 옮김, 장보형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투기란 실제 가치가 아니라 투자자의 '열광'에 의해 일시적으로 가격이 상승하고 유지되는 현상을 말한다(p.11). 누구나 알다시피 '열광'에는 실체가 없다. 그것은 뜨거운 여름날 아스팔트 위로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와 같다. 무섭게 솟아오르다 한 차례 장마비와 함께 순식간에 꺼져 버린다. 사람들은 투기 때문에 버블이 생기는 거라고 믿는다. 내 생각은 다르다. 투기는 버블 그 자체다.


버블의 위험성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자신이 버블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버블을 인지하기 어려운 이유는 버블이 한창일 때 실제로 자산 가격의 폭등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바보인 줄 알았던 내 친구가 아무 생각 없이 2억의 대출을 받아 산 아파트가 1년 새에 3억이 됐다는 얘길 듣고 나면 엉덩이가 들썩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2007년 미국은 대공황 이래 최악의 금융 위기를 맞았다.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원래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저신용자의 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주택 대출이었다(서브프라임은 낮은 신용 등급을, 모기지는 주택 대출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게 투기의 도구로 변질되고 만다.


위기의 연쇄 작용은 언제나 사소한 결정으로 부터 시작된다. 모기지 대출 업체는 대출을 공모한 뒤 이걸 다른 업체에 팔아 넘길 생각 이었기 때문에 신청자들의 상환 능력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았다. 자판기에서 콜라를 뽑듯 은행에 가서 서류를 쓰면 집이 나왔던 것이다. 대출은 당연히 과열 양상을 띄었다. 너나 없이 집을 살려고 하자 주택 가격이 폭등했다. 높아진 주택 가격 때문에 건설사는 유례없는 호황을 맞았고 자연스레 공급량을 늘렸다. 물들어 올 때 노를 젓는다고 탓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노를 너무 저었다. 공급 과잉. 주택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불안을 느낀 주택 소유자들이 매도 움직임을 보인다. 그런데 팔리질 않는다. 큰일이다. 더 늦기 전에 팔아야 겠다. 매도가 폭증한다. 


그런데 이렇게 불안이 팽배한 시장에서 누가 매물을 받아 주겠는가? 무서운 속도로 상승했던 주택 가격이 역시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가 빌린 대출금은 집 값이 아무리 떨어져도 그대로다. 설상가상으로 초기 저리 기간이 끝나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 집을 팔아 대출을 갚고 싶어도 집이 팔리지 않는다. 집 값이 지표를 뚫고 핵으로 돌진한다. 대출자가 파산한다. 이자는 커녕 원금 회수도 안되는 은행이 파산한다. 파산한 대출자가 자동차 할부와 카드 값을 갚을 수는 있을까? 통신료는? 외식은 할 수 있을까? 자동차 회사와 카드사가 망하고 상점 주인이 깡통을 찬다. 위축된 소비로 인해 일반 기업이 파산한다. 이제 파산의 그림자는 미국에 물건을 팔아 경제를 유지하던 나라들을 뒤덮는다.


사람들이 부동산 투자에 열광했던 이유가 뭘까? 90년대 말 닷컴 버블의 붕괴로 주식 시장이 폭락한 게 하나의 계기가 됐을 것이다. 갈데 없는 투자금이 부동산에 몰렸고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환상의 짝궁이 됐다. 게다가 부동산 투자에는 몇 가지 근거 없는 믿음이 존재한다. 


첫째, 인구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둘째, 땅은 유한하다.

고로 부동산은 승리한다. 과연 그럴까?


인구가 계속 증가하리라는 기대는 전세계가 겪는 저출산 문제를 감안할 때 터무니 없는 생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주택 수요로 인해 비교적 높은 가격을 유지했던 부동산은 둔화된 인구 증가의 부작용을 직격으로 맞을 것이다. 토지는 절대적으로 유한하므로 부동산은 언제나 매력적인 투자라는 생각은 어떤가? 사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토지 부족이 아니라 입지 부족에 의해 발생한다. 단적으로 시골 읍내의 아파트를 보라. 그 아파트가 강남의 아파트만큼 오르던가? 서울만 봐도 그렇다. 경제 개발 초기에 대한민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모두 강북에 있었다. 당연 강북의 집 값이 훨씬 비쌌다. 그러나 강남이 개발되고 회사들이 몰리자 지금의 강남 신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매력적인 투자처로 여기는 도시 지역의 부동산은 신도시 개발과 교통 수단의 발달로 얼마든지 반전될 여지가 있다. 특히 미래 사회에는 재택 근무가 보편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도시에 인접한 주거지에 대한 수요는 점차 감소할 것이다. 1980년대에 1,000만 원을 주고 산 주공 아파트가 2000년대에 이르러 17억이 되는 마법은 더 이상 없을 것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부동산 버블에 올라탄다. 아무리 얘기해도 부동산을 포기하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부동산 투자는 주식 같은 금융 투자에 비해 덜 까다롭다. 어차피 살아야 할 집, 사둔 뒤 십수 년 묵히면 자동으로 수 배로 오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둘째, 부동산은 대다수 가정이 보유한 자산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한 가정이 1억을 주식에, 3억은 부동산에 투자했고 둘 모두 20%의 수익을 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수익의 절대액은 주식이 2,000만 원, 부동산이 6,000만 원이다. 완벽한 조삼모사임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더 크게 와닿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부동산 가격의 무서운 상승이 과연 우리에게 이로운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당신이 3억을 주고 산 집을 2억에 샀다면 어땠을까? 남은 1억으로 온 식구가 세계 여행을 다녀오거나 10년 탄 낡은 승용차를 Range Rover로 바꿀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만약 5%로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면 한 달에 이자 비용만 40만 원 이상을 아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 달에 40만 원이면 일년에 480만 원이고 상환 기간이 10년이라고 할 때 4,800만 원이다. 10년 동안 고생한 나에게 4,800만 원을 선물한다고 생각해 보자. 


부동산 가격의 지나친 상승이 현재의 풍요로운 삶을 저해하는 원흉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우리 뒤 세대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다. 지금만 해도 남자가 결혼을 할 때 부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서울에 집을 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모두가 바라 마지 않는 삼성전자 직원이라도 안된다. 그런데 여기서 더 올린다? 나는 집이 있고 대출도 다 갚았으니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 시켜 국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 정책에 박수를 칠 때가 아니다. 당신이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를 때 정작 당신의 자식들은 빛도 들지 않는 지하방에서 신혼 살림을 차릴 것이다. 



로버트 쉴러의 대책


다소 딴 얘기를 길게 한 것 같아 미안하다. 사실 이 책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의 원인을 밝히고 그 해결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 로버트 쉴러는 아이러니 하게도 기존 금융 시스템의 강화를 사태의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소수를 부자로 만들어준 금융을 다수를 부자로 만드는 데 사용하자는 말이다. 산업 혁명 시절 일자리를 뺏긴다며 무리를 지어 증기 기관을 파괴하고 다닌 역사를 떠올려 볼 때 저자의 생각은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럼 어떤 방향으로 금융 시스템의 고도화를 이뤄야 하나? 바로 리스크 '관리'로 초점을 돌리는 것이다. 사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은행이 리스크 '회피'에 중점을 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대출자를 모집한 뒤 이를 다른 업체에 팔아넘긴다는 생각이 적극적인 리스크 회피 전략의 결과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은행은 원래 도전적 사업가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맞은 사람들에게돈을 빌려 주고 그 리스크를 관리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경제의 역동성을(창의적 사업가들이 만드는 신사업!) 한편으로는 국민의 복리와 안정을 꾀하려는 취지에서 설립된 것이다. Back to the Basic. 저자 로버트 쉴러는 은행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이 밖에도 쉴러는 금융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우리가 매년 건강 검진을 받듯 재무 상담 또한 의무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모두 정보의 전달력을 높여 열광적 무지가 버블을 형성하는 걸 막자는 생각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버블임을 안다고 투기를 멈출까? 사람들은 정부의 발표나 뉴스 보다 뒷골목의 찌라시나 소문을 믿는 경향이 강하다. 아무리 금융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해도 국민의 신뢰가 확보되지 않는 한 이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나만큼은 이 난장판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는 다는 것이다. 이는 개미라고 불리는 일반 투자자들의 주식 투자 행태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쉴러의 대책 중 가장 공감가는 것은 대출 계약에 디폴트 옵션을 만드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당시 대출자들은 은행에서 제시한 대출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보통 그러한 조건들이 전문가들의 지지를 받은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비자 보호책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p.182).


따라서 소비자 중심의 표준 모기지 계약을 만들거나 사용자가 별도의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유리한 조건이 자동으로 선택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책이 될 것이다. 일반인들은 기본적으로 정보와 친하지 못하다. 다양한 대안을 놓고 비교 분석하는 데 피로를 느끼며 많은 옵션 앞에서 오히려 선택을 포기하거나 아무거나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디폴트 옵션 계약이야 말로 진정한 사용자 중심의 금융 대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행동경제학'의 대가라면 마땅히 이러한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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