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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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거대한 괴물


이야기에는 두 명의 소설가가 등장한다. 삭스와 피터다. 삭스는 단 한 권의 소설을 출판했다. 출판 년도는 정확히 언급된 적이 없으나 1945년 생인 삭스가 23살에 집필을 시작해 5년 동안 썼다고 했으니 1973년 즈음일 것이다. 집필을 시작한 해는 삭스가 징병을 거부해(베트남 전쟁) 감옥에 간 해이기도 하다. 징병을 거부한 자유가 자유의 구속으로 귀결되는 아이러니. 사건이 일어난 곳은 '자유의 나라' 미국이다.


피터가 삭스를 만난 해는 1975년이다. 당시 피터는 예닐곱 편의 단편을 발표한 변변찮은 소설가였다. 그러나 피터는 촉망 받던 한 소설가가 테러리스트로 변할 수 밖에 없었던 비극적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유일한 소설가이기도 했다. 삭스는 1990년에 폭사했다. FBI는 산산조각 난 삭스의 몸에서, 신비하게도 온전하게 남아 있던 지갑을 발견한다. 지갑에는 피터의 명함이 있었다. 피터는 자신을 찾아온 FBI를 보자마자 신문에서 읽은 폭사의 주인공이 삭스였음을 직감하지만 자기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다며 시치미를 뗀다. 대신 피터는 1975년 부터 1990년까지, 그러니까 삭스를 만나 우정을 나눈 15년의 시간을 한 권의 소설로 써낸다. 소설의 제목은 <거대한 괴물>이다.



미국의 현대사


<거대한 괴물>에는 공통된 해석이 존재한다. 촉망 받던 소설가에서 테러리스트가 된 한 남자의 급변을 통해 삶의 추진력이 자기의지나 명백한 인과가 아니라 우발적으로 들이닥치는 사건에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므로 안전한 비평의 주제가 될 수 있지만 내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은 아니므로 오늘의 이야기에선 제외할 것이다. 대신 나는 196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미국의 현대사와 삭스의 변화를 병치함으로써, 사실은 삭스의 변화가 미국 현대사의 상징이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것은 다소 피상적이고, 어떻게 보면 너무 어설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오리지널리티에는 이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생경함이 있기 마련이다.


삭스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1968년에 미국은 베트남과 전쟁 중이었다. 전쟁은 극심한 반대에 직면해 있었다. 패배의 그림자가 짙었음에도 미국은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을 베트남에 쏟아 부었다. 베트남 전쟁은 이전의 양차 세계대전과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른 전쟁이었다. 겉으로는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사실은 비지니스였다. 사람들은 악취가 나는 전쟁을 자유의 비단으로 포장하려는 국가에 분노했다. 자유는 존 F. 케네디와 함께(1963년에 암살 당함) 죽었음이 밝혀졌다. 


피터가 삭스를 만난 건 1975년이고 피터가 삭스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건 1979년다. 페니(삭스의 아내)는 삭스의 여성 편력을 고백하며 자신의 불륜이 공평하다고 주장했다. 피터는 삭스가 외도를 했다고 해서 페니의 외도가 정당되는 건 아니라고 유혹을 거부했으나, 결국엔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후에 만난 삭스를 통해 삭스가 자신이 집을 비운 몇 주 동안 페니와 피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피터는 당황했지만 삭스는 침착했다. 삭스는 자신의 여성 편력은 모두 페니가 지어낸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터의 불륜을 탓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삭스는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진심으로. 피터는 삭스의 말이 맞는지 페니의 말이 맞는지, 정말로 삭스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삭스는 그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라고 했다. 삭스의 말이 맞다면 세상은 도덕과 비도덕이 너무나 엉켜 있어 무엇이 도덕이고 무엇이 비도덕인지 알 수 없는 세계였다. 


1970년대의 미국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닉슨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국가기관을 이용해 상대 당의 기밀 문서를 훔치고 회의 내용을 불법 도청했다. 불법은 너무 자연스럽게 행해져 법과의 구분이 혼동될 지경이었다. 세계 도처에선 반미 데모와 미국 시설에 대한 테러가 들끓었다. 1979년에는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이 습격당해 90명의 외교관들이 인질로 잡혔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이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지 의아해 했다.


그리고 1980년대가 온다. 삭스는 이 시기에 아파트 추락 사고를 겪어 거의 죽을 뻔한다. 삭스는 이 사고를 계기로 지금까지 알고 있던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레이건이 집권한 1980년대는 자유가 부활한 시대였다. 당시 레이건이 주도하던 경제 정책은 오늘날 '신자유주의'라 불린다이 사조의 이름이 왜 '자유'를 포함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1981년은 또한 AIDS가 나타난 해이기도 했다. 우리에겐 아이를 갖거나 갖지 않을 자유가 있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사람들은 피임약을 합법화했다. 합법화된 피임약에 성은 더 문란해졌고 문란해진 성이 AIDS로 귀결됐다. 사람들은 자유가 무엇을 의미했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국가가 약속한 자유의 부활은 익히 알고 있던 자유가 아니었고 우리가 자유라고 믿었던 것은 재앙으로 도래했다. 자유의 여신은 자기가 수호하는 게 무엇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삭스의 선택은 자유를 테러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믿는 자유는 더이상 우리가 알던 자유가 아니었다. 자유는 파괴되야만 했다. 삭스는 자유의 여신상을 폭파하는 것 만큼 자유의 파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유의 여신상을 찾아 모든 주를 돌아다녔다. 1990년 6월 29일 삭스는 여신을 폭파하기 위해 폭탄을 조립하다 폭사하고 만다. 위스콘신 주 북부의 어느 도로변에서 벌어진 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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