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계의 철학 - 측정 그리고 과학의 진보
장하석 지음, 오철우 옮김, 이상욱 감수 / 동아시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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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과학의 골수팬이라면 과학 철학을 변태 잡종 쯤으로 경시할지도 모른다. 과학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라는 거겠지. 그러나 과학과 철학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에게 과학 철학은 강된장을 만난 보리밥이 될 수 있다.


과학 철학은 메타 학문이다. 거창하게 메타라고 써봤지만 사실 나도 메타가 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정도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과학이 그릇에 담긴 물을 탐구하는 분야라면 메타 과학은 바로 그릇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그릇을 연구해서 뭐할 건데요?


물만 쳐다보는 사람에겐 호수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지 않는 법그릇을 더듬어 더듬어 더듬어 가다보면 물 속에선 결코 볼 수 없는 '물 전체의 모양'을 알 수 있다. 그릇을 연구한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메타적 사고는 매우 생경하다. 우리는 초등 6년, 중학 3년, 고교 3년 총 12년 동안 받은 정규 교육에 불필요할 정도의 증오심을 갖고 있는 데, 이는 12년 동안 배운 지식들이 살아가는 데 혹은 직장을 얻는 데 혹은 일 잘하는 회사원이 되는 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지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비메타적인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물론 한국 교육이 메타 교육을 지향한 것 같지는 않지만 사실 학교에서 수학을 배운다는 건 '수학적 사고'를 기르기 위함이지 수학 공식을 외우자는 게 아니다. 비메타적 사고 안에서 지식과 그 지식이 유용하게 사용되는 상황은 오로지 1:1(일반적으로는 그것보다 더 낮은 비율로)로 대응할 뿐이지만 메타적 사고는 지식을 틀로써 이용하므로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극도로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선 이도저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당장 써먹을 방도도 없어 보이는 메타적 사고가 지나치게 폄하되는 경향이 있지만, 200년 전만 해도 과학과 철학은 하나였다. 그 위대한 뉴턴조차 자연 철학을 연구한 '철학자'아니었던가. 피타고라스는 어떤가 그는 철학자이자 사운드 엔지니어였다. 아인슈타인은 위대한 물리학자였지만 그의 연구를 가능케 한 건 우주와 삶에 대한 그의 철학적 태도 덕분이었다. 전공을 하지 않으면 그 분야의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현대의 프로페셔널 멍청이들은 뉴턴과 피타고라스와 아인슈타인이 철학과 과학을 '복수 전공' 했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면 그들이 처음부터 모든 걸 갖고 태어난 천재였다고 믿거나. 그러나 인류 지성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위인들에게 쏟아진 찬사는 그들이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생각할 줄 안다'는 이유로 부여된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들은 메타적으로 사고할 줄 알았기에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분야를 매끈하게 연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온도계의 철학>은 과학 철학서다. 메타 과학이다. 이 책은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온도라는 개념을 확립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렇다고 이 책을 말랑말랑한 과학 이야기 쯤으로 생각하는 건 곤란하다. 메타 과학이라도 과학은 과학. 무시무시한 공식이 등장하고 어마어마한 전문 용어가 쏟아진다. 번역도 그닥 온전치 않다.


그러나 온도계는 커녕 온도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에 '온도'를 연구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걸 기억하자. 그들은 오로지 뜨겁고 차갑다는 감각만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 아주 짙은 안개 속에서 시작한 작은 여정이 끝내는 거대한 '앎'에 도달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 터져나오는 뜨거운 경의를, 당신은 이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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