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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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문화비평가이자 역사가이며 환경, 반핵, 인권 운동가인 레베카 솔닛의 에세이다. 그녀로 하여금 이 에세이를 쓰게 만든 계기는 아마도 책머리에 등장하는 그녀의 경험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어느날 한 파티에 초대됐다. 장소는 해발 2,743미터에 지어진 튼튼하고 호화로운 별장. 사슴뿔 장식과 수 많은 킬림, 장작 때는 난로까지 갖춰진 우아한 곳이었다. 사람들이 파티를 마치고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파티의 주최자가 저자의 일행을 붙잡고 말을 걸기 시작한다. 주최자는 남자였고 그는 솔닛이 두어권의 책을 쓴 작가라는 것 말고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솔닛의 일행과 남자는 책에 대해 얘기했다. 솔닛은 자신이 최근에 출간한 <그림자의 강: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와 기술의 서부시대>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자 남자가 갑자기 솔닛의 말을 끊더니 그 해 '마이브리지'에 관해서 나온 아주 중요한 책에 대해 아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솔닛은 남자의 가르침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무지한 여성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고, 남자는 거만함과 우쭐함을 곁들인 지루한 장광설을 끝도없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솔닛의 친구가 그에게 말했다.


"그게 바로 이 친구 책입니다."


그는 세네번 이 말을 반복할때까지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마침내 진실을 깨달은 그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그리고는 거기서 얘기를 끝냈냐고? 천만에. 아주 잠깐 할 말을 잃고 멈췄던 그가 다시 그 지루한 장광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마이브리지'에 대한 솔닛의 책을 읽은 적도없으며 그저 뉴욕타임즈에 실린 북리뷰를 읽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레베카 솔닛은 이 경험을 포함한 한편의 에세이를 '톰디스패치(www.tomdispatch.com)'에 게재하고 그 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녀의 글 덕분에 '남자들은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웹사이트가 생겼고 그 유명한 '맨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솔닛이 살아온 세계에서 여자라는 사실은 공신력 있는, 믿을만한, 과학적인 의견을 내놓지 못하는 부류로 판단하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여자의 말은 비논리적이고, 감성적이며, 타당하지 못하다. 때로는 은연 중에, 대부분은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이러한 편견은 여자라는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세계에 전염병처럼 퍼져있다.


솔닛은 결코 상황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담담히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서술해 나간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겐 절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차가운 이성의 냉철함을 가지고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과연 내가 성차별로부터 자유롭다고 확신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든다. 성차별은 어제와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것은 수천년간 이어져온 문화적 산물이며 그로인해 우리의 행동과 말 한마디 한마디엔 우리도 눈치채지 못하는 편견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차별을 부수려는 싸움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아주 짧은 평화의 시간, 극소수의 지역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이어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성들이 최근의 현상을 급진적이라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여자들의 목소리를 내는 채널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20년전만 해도 방송국 한두개만 꽉 잡아두면 그녀들의 목소리를 지울 수 있었다. 남자들은 그 짓을 엄청나게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방법이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지금 댐이 터지기 직전의 강밑에 서 있다. 바보짓을 하는 게 소원이라면 그 댐을 당신의 '떡 벌어진 두 어깨'로 막아서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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