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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일간지 모모한 기자의 불로그에서 퍼왔다.  아마 2~3년 전이지 싶다 .       

미술 전공한 그 기자 외국으로 공부하러 떠나고 불로그는 아마 닫혔던 것 같다.

미당시중에서  <질마재 신화>에 나오는 시편들은 제일 좋아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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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이 자랑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지사겠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운 일도 아닐 것이고, 자왈 지지이지지요부지이부지이시지야라 어쩌고 저쩌구리....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고,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라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느니라 뭐라는 옛 성현의 뜻깊은 말씀도 들은 바가 있거니와, 말하자면 글 읽는 사람의 학문하는 자세를 일컬음이랄 것이다.


문진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과거에도 물론 있었고, 앞으로도 여전히 있을 것이 분명한 것으로, 국어사전상의 의미는 이렇다. [문진(文鎭) : 서진(書鎭), 책장이나 종이쪽이 바람에 흐트러지지 못하게 누르는 물건] 어린시절 서예를 배울 때, 화선지를 누르고 있던 물건이 바로 문진되겠다. 분명 본인도 옛날에 그 문진이라는‘물건’은 보아 왔다. 다만 그것의 명칭이‘문진’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인데 


그런데, 두어 해 전에 <아빠와 함께한 베니스여행>이라는 꽤 괜찮은 책을 보다가 여기서 문제의 문진이라는 것이 등장하는데, 도대체 문진이란 무엇인지, 그림이 나와있는데도 도무지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차저차해서 알아보니 문진이란 아항~ 바로 그렇고 그런 물건이었던 것이었다. 



요지를 말하자면 문진이라는 것의 정체를 삼십이 훨씬 넘은 나이에 알게 되었고, 그것도 글하는 선비를 자처하는 본인으로 문진을 몰랐다는 것이 심히 부끄럽다는 말이다. 그런 생각이 가슴에 사무쳐 자책하고 있던 차제에 모 사이트에서 문득 반지의 제왕 문진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순간, 본인 가슴에 품었던 부끄러움과 영화 <반지의 제왕>에 대한 애정이 ‘영희 철이 크로스’하여 지름신으로 화하여 강림하였던 것이다.

 

반지의 제왕 1에 등장하는 <두개의 석상>과 반지의 제왕 3에 등장하는 <미나스트리스>가 내부에 레이져로 새겨진 아크릴 문진이다. 두개의 가격이 64,000원이다. 우리 마누래는 또 쓸데없는 거 샀다고 야단이다. ‘하나에 15000원 정도 하겠네’ 하길래 ‘그래 두개 32000원 줬다’고 뽕때렸다. 거짓말에 능한 성격은 아니지만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뚜디리맞아 죽을까봐 겁이나서 어쩔수 없었다.



참고로 이 액자는 <반지의 제왕> DVD 구입하고 받은 소책자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오려서 본인 심혈을 기울여 직접 만든 액자다. 이 액자를 얻는 대신 반지의 제왕 소책자는 걸레가 되었다. 



왼쪽부터 <반지원정대>, <두개의 탑>, <왕의 귀환> 되겠다....아시다시피

<두개의 탑>에서 바람을 맞고 서있는 에오윈의 모습이 왠지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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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느 날 갑자기

젊은 들꽃이 되어

이 바다 앞에 서면

나는 긴 열병 끝에 온

어지러움을 일으켜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망각의 해변에

몸을 열어 눕히고

행복한 우리 누이여.

쓸려간 인파는

아직도 외면하고

사랑은 이렇게

작은 것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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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에 등장하는 이 시는 마종기의 연가 시리즈 중 4편에 해당한다. 강석 김해영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싱글벙글쑈>에서 강가의 돌 강석이 맨날천날 부르는 그 <경아>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 아가씨 경아가 남자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자 결국 알콜중독자가 되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그런 내용이다. 신파고 통속이다. 소설로도 영화로도 성공했다. 성능이 386은 되어야 알 수 있겠다.


최인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소년문사로 당대에 이름을 날렸다. 천재라고들 했다. 최인호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이 아마 고등학교 때 였을 것이다. 황석영도 고등학교 2학년 때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최인호는 당선이었지만 황석영은 입선이었다. 이문열이 삼십이 넘어 그것도 지방지를 통해 겨우 등단한 것에 비하자면 대단한 문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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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만년필 끝

이렇게 작고 짧은 삽날을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다.


  한때, 이것으로 허공에 광두정을 박고 술 취한 넥타이

나 구름을 걸어 두었다 이것으로 경매에 나오는 죽은

말대가리 눈화장을 해주는 미용사 일도 하였다.


  또 한때, 이것으로 근엄한 장군의 수염을 그리거나

부유한 앵무새의 혓바닥 노릇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것으로 공원묘지에 일을 얻어 비명을 읽어주

거나, 비로소 가끔씩 때늦은 후회의 글을 쓰기도 한다.


  그리하여 볕 좋은 어느 가을날 오후 나는 눈썹 까만

해바라기 씨를 까먹으면서, 해바라기 그 황금 원반에

새겨진 ‘파커’니 ‘크리스탈’이니 하는 빛나는 만년필

시대의 이름들을 추억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오래된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지난

날 습작의 삶을 돌이켜 본다 - 만년필은 백지의 벽에

머리를 짓찧는다 만년필은 캄캄한 백지 속으로 들어

가 오랜 불면의 밤을 밝힌다 - 이런 수사는 모두 고통

스런 지난 일들이다!


  하지만 나는 책상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혼자 뒹굴

어 다니는 이 잊혀진 필기구를 보면서 가끔은 이런 상

념에 젖기도 하는 것이다 - 거품 부글거리는 이 잉크

의 늪에 한 마리 푸른 악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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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의 시 <만년필>의 전문이다. 본인은 송찬호를 모른다. 본인도 한때는 시를 즐겨 읽었고 시집도 백여권 책꽂이에 꽂아두고는 있다. 다 옛날 이야기다. 문득 오늘자(2006.2.14.) 중앙일보 22면을 보다가 이 시를 발견했다. 도서출판 ‘작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문인들이 꼽은 지난해 가장 좋은 로 선정되었단다. 안타깝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거품 부글거리는 이 잉크의 늪에서는, 시커먼 잉크가 점점 뻑뻑해지고 있을 뿐이다. 푸른 악어라니! 가당찮은 소리다.   


만년필하면 뭐니뭐니 해도 파커와 몽블랑!

IMF구제금융신청인가 뭐인가 할 때, 아무개 장관이 서명에 사용한 만년필이 몽블랑이었는데, 국가적 경제위기에 경제수장에게 고급 외제 만년필이 가당키나 하냐며 시끄럽기도 했었다. 그때 그 아무개장관은 선물받은 것이라고 답변했던거 같다. 아마도 맞는 말일 것이다. 자기돈 주고 그 비싼 만년필을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람의 그림자>에서 주인공이 갖고 싶어했던 만년필도 빅토르위고가 사용했다는 몽블랑 뭐시기 였다. 

 

그리고 또하나 파커 만년필,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2(2가 아니고 제곱인데....)과 함께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던 파커 만년필, 미완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첨탑 중에 제일 높은 첨탑 꼭대기가 만년필 촉으로 덮여있는 파커만년필 광고도 잊을 수 없다. 사실 그 광고는 내마음을 만년필보다 바르셀로나로 떠나 보내고 있었다. 아! 스페인에 한 번 가봤으면, 알함브라가 있는 그라나다. 톨레도,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세비야.... 그건 그런데....만년필 하나 사고싶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잉크넣은 만년필로 노트에 뭐라도 끄적여 보고 싶다.  

 

광두정이 무엇인가 했다.  대가리를 둥글넓적하게 만든 못이란다. 일명 대갈못이라고도 한단다. 우리나라 말은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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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21 - 제3부 천하통일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5월
구판절판


그 무렴 후지와라 세이카, 요시다 오키야스, 아카마츠 히로미치 등의 학자와 교유가 깊었던 조선사람 강항은 도쿠가와 가문과 모리 가문의 부를 비교하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에야스의 땅에서 수확되는 미곡은 이백오십만 석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그 곱에 달한다. 테루모토의 금은도 이에 못지않다......이에야스는 칸토에서 쿄토에 이르기까지 미곡으로 길을 만들수 있고, 테루모토는 산요와 산인에서 쿄토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량을 은전으로 가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248쪽

강항은 1567년에 생하여 1618년에 졸했다. 자는 태초(太初), 호는 수은(睡隱), 사숙재(私淑齋)를 쓴다. 영광 출생이다.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97년 정유재란시 의병을 일으켰으나 고향인 영광이 함락되자 가족과 함께 해로를 통해 탈출하려다가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되었다.

1598년 교토(京都)의 후시미성(伏見城)으로 이송되어 이곳에서 후지와라 세이카, 아카마쓰 히로미치 등 학자와 교류하며 성리학을 가르쳤고, 특히 후지와라는 그에게 배운 것을 토대로 일본 주자학의 개조가 되었다. 일본 억류 중 사서오경의 화훈본(和訓本) 간행에 참여, 그 발문을 썼고, 소학, 근사록 등 16종의 글을 수록한 <강항휘초(姜沆彙抄)>가 일본의 내각문고(內閣文庫)에 소장되어있다고 한다. 1600년 위에 나오는 두명의 일본학자의 도움으로 가족과 함께 귀국했다. -붉은돼지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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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06-02-12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보다가 우리나라 사람 이름이 나오면 눈이 커진다. 도쿠가와 21권의 부제는 <파멸의 조짐>이다. 히데요시의 후계자 히데요리가 말그대로 유아였기에 히데요시가 죽은 후의 혼란을 어쩔수 없는 일어었을 것이다. 드디어 일본이 동서로 나뉘어 건곤일척 한판 대판 싸움을 벌이려하고 있다. 이름하여 세키가하라전투의 서막이 올랐다.

모든 전쟁은 결국 권력투쟁의 부산물이 아닌감. 신불, 평화 운운하는 이에야스가 정말 느끼하다. 하기사 이에야스가 정말 그러했는지는 알수 없는 일이니, 그보다 야마오카 소하지의 이에야스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 더 맞겠다. 책 표지에 저자 스스로 이책을 인간성의 이상과 평화에의 꿈을 집요하게 추구한 이상소설이라고 했다고 하니, 저자의 이에야스 해석이 이상적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소하지가 정말로 평화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또 일본의 개개인들을 그러했는지는 모르지만 국가로서의 일본은 언제나 위협적이고 전투적이어서 끊임없이 대륙으로의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조선전쟁에서는 대륙진출에 실패했지만 2차대전에서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대륙의 일부인 만주를 경영한 경험도 있으니 비록 일본국민 개인 몇명이 평화를 염원한다고 하더라도 일본이라는 국가는 대동아경영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것 같아 두렵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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