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플라이 투더 스카이’의 환희를 좋아했었다. 물론 옛날 이야기다. 서울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보러 가기도 했다. 그리고 한동안 공백기가 있었다. 근자에 이르러서는 워너원, 특히 강다니엘에 푹 빠져서 희희낙낙하다가 최근자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방탄에 심취하여 혼미한 정신으로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큰 위협이 안된다면 그것이 무엇이건간에 자기자신에게 지속적으로 기쁨을 제공해주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정말 바람직한 일이다. 이른바 덕질이란 것인데, 삶에 회의를 느끼고 만사가 귀찮고 또 인생이 우울해지는 갱년기를 앞둔 혹은 겪고 있는 사십대 중후반의 인간 종에게는 꼭 필요한 처방전이라는 생각이다. 뭐 세계 평화는 모르겠지만 가정의 평화에는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아시다시피 소생의 덕질은 책을 꾸역꾸역 사모으고 또 가끔 읽는 것이다. 읽지도 않는 책을 쓸데없이 사 모아서 집구석만 어지럽히는 것으로 오해되기 십상이나 책의 쓰임이 꼭 읽는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소생이 비록 사모은 책을 다 읽지는 못하지만 약간은 읽기도 읽는 것이다. 소생의 책 덕질에 대한 아내의 대응 방안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도서 폐기’ 정책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으나, 그 기조에는 ‘지적 허영에 넋이 나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짓거리’라는 인식이 얇샤리하게 깔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내의 실질적인 대응책은 크게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는 바, 하나는 책을 사모으는 재원의 출처를 용돈으로 한정하고 용돈을 동결하는 것이며, 둘은 책이 차지하는 공간을 제한하는 것인데, 소생의 책들은 서재방에서 한발 한치도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편 아내의 덕질을 살펴볼 것 같으면, 올 초반 강세를 보였던 워너원은 차츰 밀려나는 추세고(얼마전에 아내는 거금 수십만원을 들여 부산에서 열렸던 워너원 콘서트에도 다녀오셨다. 콘서트의 인터넷 예매라는 것이 거의 개통과 동시에 정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종료되는 관계로 아내는 말하자면 암표를 구입했다. 그 연세에 젊은 것들 사이에 끼어 야광봉을 흔들며 스탠딩으로 수시간을 버티면서도 오히려 즐거움이 남았던 것은 바로 덕력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목하 방탄에 혼이고 넋이고 다 빠져버린 아내는 어머머머!! 춤선이 너무너무 예쁘다, 오호호호! 노래가 너무 좋다, 어쩜쩜쩜! 가사도 마음에 아주 쏙 든다 어쩐다 저쩐다 하며 벌어진 입에 침이 다 말라버리게 칭찬에 애정이 줄줄 넘쳐 흘러내리고 또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종일 티비를 무신 분신처럼 끌어안고끼고 있으며 혹은 유투브 나오는 휴대폰을 자기 목숨처럼 여겨 손에서 놓지않고 있는 (더불어 어떻게 콘서트에 갈 수 없을까 온갖 궁리를 다하고 있는) 실정인데,
옆에서 말없이 가만히 지켜보는 소생이야 사실 다니엘이고 미카엘이고 무슨 조끼고 나시고 뭐고 다 관심이 없을뿐만아니라 한편으로는 아내의 덕질이란 ‘미소년들의 가무에 혼이 가출한 중년 아줌마의 한심한 작태’라는 귀빰때기 쎄리맞을 생각도 설핏 없지는 않았으나 나름 똑똑한 돼지가 주판알을 이리저리 퉁겨보니 역시 아내의 덕질을 적극 격려하는 것이 소생의 덕질에도 도움이 된다는 윈윈의 계산값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고 곰곰 생각해보면, 모두에 언급했듯이 이런 덕질은 결코 ‘쓸모없는 헛짓거리’도 ‘한심한 작태’도 아니며, 바로 우리가 우리 인생을 희희낙락 하하호호하며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생의 고마운 동반자이자 조력자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모쪼록 우리 인생이 높은 덕력의 보살핌을 받아 항상 하하호호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