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보고 원작소설인 테레즈 라캥을 읽어보려고 생각만 하다가 드디어 보게됐다. 가급적 잘 안 쓰려고 하는 말이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명불허전이라는 사자성어가 가슴속 깊이 밀려들어왔다. 이런 강렬함을 소설에서 느껴보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에밀 졸라의 소설은 어렸을때 목로주점을 봤는지 안 봤는지 가물가물 하다. 줄거리는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그닥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세월이 지나서 만난 졸라는 전혀 다른 소설가로 다가왔다. 조만간 목로주점도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이다. 작가에 대한 관심이 급 돋아서 간단하게 그에 대해 알아보자면,


파리 출생.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자랐다. 이탈리아계의 토목기사인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가난한 직공의 딸인 어머니의 변통으로 중학교에 들어가 거기서 뒷날의 대화가 P.세잔과 사귀게 되어 시와 예술을 논하는 경험을 하였다. 

그러나 극심한 곤궁 때문에 1858년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옮겨가 생루이고등중학교에 전학하였다. 파리로 옮긴 뒤로는 학업에 의욕을 잃었고, 에콜 드 폴리테크니크(고등 이공과 학교) 입학자격 시험에 두 번이나 실패한 것을 계기로 문학의 길로 나아갈 것을 결심하였다. 이 무렵에 V.위고, A.뮈세를 동경하여 곤궁 속에서도 열심히 장편 서사시를 써 보았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1862년 아셰트서점에 취직하여 그곳에서 처음으로 당시의 과학적 ·실증주의적 사상과 결부된 사실주의적인 문학 조류에 눈을 뜨고 시를 버리고 콩트나 평론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낭만주의적인 작품집 《니농에게 바치는 콩트 Contes à Ninon》(1864), 자서전적인 중편소설 《클로드의 고백 La Conffession de Claude》(1865) 등을 썼다.

1866년 아셰트를 그만둘 때에는 청년비평가가 되어 있었는데, 이 해 봄의 미술전비평을 써서 기성의 대가들을 비판하고 마네·피사로·모네·세잔 등 신진의 불우한 인상파 청년화가들을 강력히 지지하였다. 이 무렵에 플로베르와 공쿠르 형제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특히 공쿠르 형제의 작품을 본받아 처음으로 자연주의적인 작품 《테레즈 라캥 Thérèse Raquin》(1867)·《마들렌 페라 Madeleine Férat》(1868)를 발표하였고, 또 이론적으로도 자연주의 소설관을 명확히 하였다.

한편, 《마르세유의 신비》(1867)라는 약간 통속적인 대작으로 H.발자크적인 사회탐구를 시도하여 자신을 얻은 뒤 발자크의 《인간희극 comedie Humaine》에 비견될 대작 《루공마카르 총서 Le Rougon-Macquart》를 구상하게 되었다. 

《루공마카르 총서》는 아델라이드 푸크라는 정신병에 걸린 여자가 건강한 농부 루공과 결혼하였고 루공이 죽은 뒤 알코올 중독자인 마카르를 애인으로 삼았는데, 이 두 남자와의 사이에 태어난 많은 자손들이 제2제정시대의 여러 방면에 진출하여 어떻게 생활하였는가를 기록하려고 한 것으로서 <제2제정하의 일가족의 자연적·사회적 역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1868년경부터 구상에 착수하여 처음 10권을 5년 동안에 완성할 생각이었으나 계획이 점차 확대되었다. 1869년 완성한 제1권 《루공가(家)의 운명 La Fortune des Rougon》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후에 발표하고, 그 뒤 매년 1권 정도씩 계속 써서 1893년 《파스칼 박사 Le Docteur Pascal》를 출판함으로써 총서 총 20권을 완성하였다.

《목로주점 L’Assommoir》(1877)·《나나 Nana》(1880)·《제르미날 Germinal》(1885)·《대지(大地) LaTerr》(1887)·《수인(獸人) La Bête humaine》(1890) 등 대표적인 걸작은 대부분 이 총서에 들어 있다. 처음에는 이 총서가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목로주점》이 성공함으로써 비로소 대가의 대열에 끼였고, 자연주의 문학을 확립하였다. 《실험소설론 Le Roman expérimental》(1880)에서는 그의 소설이론을 펼쳤다. 개인보다는 집단을, 특히 하층 대중을 묘사하는 데에 뛰어났다. 인간의 추악과 비참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쳤는데, 그것이 인간생활의 개선과 진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진실과 정의를 사랑하는 모랄리스트이고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자였다. 그 때문에 만년에 드레퓌스사건이 일어나자 사이비 애국자들에게 항거하고 군부의 부당성을 공격하였으며 끝까지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여 결국 승리하였다.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장 《나는 고발한다 J’accuse》(1898)는 유명하다. 만년의 작품 《세 도시 이야기 Les Trois Villes》(1894∼1898)·《4복음서 Les Quatre àvangiles》(1899∼1903)는 그 당시의 정열을 반영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발췌)



그러니까 테레즈 라캥은 그의 장편 데뷔작쯤 되는 소설이다. 테레즈 라캥에 대한 문학적인 평가를 찾아봤다.


˝『테레즈 라캥』은 에밀 졸라가 쓴 최고의 명작은 아니다. 이 작품에는 머뭇거림과 방어의 교조주의가 나타나며, 후기의 걸작 『제르미날』(1885)에서 보여준 확신에 찬 시선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불확실과 무절제라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자연주의 신조를 지키면서 성적 욕망과 후회에 관한 그의 논리를 입증하기 위해 졸라는 두 가지 “표본”을 들었다. 그러나 라캥과 그녀의 애인 로랑은 졸라의 기계적인 예정론을 체현하는 데 너무 충실한 나머지 이상하게 왜곡된 생물이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소설은 그 자체가 반으로 쪼개졌고, 거친 에로티시즘과 세심한 초연함의 환상적인 합금이 되어버렸다. 3인칭 화자의 냉담한 화술이 격한 분통으로 바뀌고, “과학적”이려 하는 화자는 두 애인의 행실을 보다 상세하게 기술하기 바쁘다. 테레즈 라캥 자신은 위대한 창조물이다. 그녀는 침묵하는 욕망과 공포의 문장 속에 자유 의지가 없는 “인간 짐승”처럼 등장하여 생체학의 용서할 수 없는 법칙에 굴복한다. 그러나 서서히, 그리고 폭발적으로,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로 하여금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게 하며, 여성으로서의 위대한 자각과 육체적 환희에 눈뜨게 한다.˝


졸라의 최고 명작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몇 편의 영화로 제작됐을만큼 문학적인 가치는 충분히 인정받고 있는 작품이다. 테레즈와 로랭의 어떻게 보면 단순한 불륜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그 내면에 뭔가 다른 열정이 숨어있는 작품이다.


묘한 에로시티즘과 아울러 강렬하고 거친 날것의 사랑이 휘몰아쳐온다. 결말로 가면 갈수록 더욱 뜨거워짐이 다가오는 소설이다. 아마 박찬욱 감독도 그런 감정을 가지고 박쥐를 만들었지 않았을까 싶다. 읽고 나서도 한참동안 뇌리에 남는 그런 작품이었다. 에밀 졸라의 다른 소설들도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한 실질적인 첫 만남이었다. 한번쯤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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