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무 이름 사전
박상진 지음 / 눌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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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을 나중에서야 읽었다. 읽고 나니 더욱 좋았다. 이 책을 내면서의 저자의 고민과 우려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책을 발간해주신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이다. 몇 십 년 묵은 궁금증들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백프로 정확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렇게 즐겁게 아이들과 함께 옛날의 우리네 삶을 상상하며 나무와 풀꽃의 이름들을 찾아봐야 겠다는 자극을 받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무릎 치며 반갑게 만난 이름의 정체들. 그 보물 보따리 중 몇 가지만 풀어보자.

 

* 개암나무 :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를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바로 그 개암이다. 개암의 가  조금 못하다는 그 일 줄이야. 생김새나 맛이 밤과 닮았으나 밤보다는 못하다는 뜻으로 개밤이라 하다가 개암이 되었다고 한다.

 

* 구상나무 : 크리스마스 트리의 원조 조상님. 성게를 제주 방언으로 쿠살이라고 하는데, 쿠살을 닮은 나무라는 뜻으로 쿠살낭이라고 부르다가 구상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다.

 

* 나도밤나무 vs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는 사실 밤나무와는 전혀 다른 나무인데, 잎이 밤나무와 무척 닮았다. 반면,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너도밤나무는 울릉도에 들어와 살던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육지의 나도밤나무와 구별하기 위하여 너도밤나무란 이름을 붙여준 것으로 짐작된다. 간단히 말해서, 나도밤나무 얘는 진짜 밤나무도 아닌 주제에 자기가 밤나무인척 하는 애. "나도밤나무라규!"  너도밤나무 얘는 도토리 열리는 참나무가 맞음. 밤나무랑 진짜 같은과인데 뭔가 인정을 못받으니, 사람들이 "그래, 너도밤나무야!" 우쭈쭈 인정해주는 격.

 

* 느티나무: 내가 마니마니 좋아하는 느티나무. 울 집앞 느티나무를 지날 때 마다 얘는 도대체 왜 느티나무일까.. 여름나무도 예쁘고, 가을나무는 더 예쁘고, 이름도 참 예쁘구나 했었다. 양반님들에게서 나온 이름인 것 같아서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가을 느티나무는 내게 세상최고로 예쁜 갈색이다.

나무속이 황갈색이라서 한자로는 황괴(黃槐)라고 한다. 누렇다는 뜻의 황()과 회화나무를 나타내는 괴()가 합쳐진 말이다. 방언유석(조선 정조 때 각 단어의 중국어, 만주어, 몽골어, 일본어를 모아 우리말로 풀이한 어휘집)에선 느티나무를 황괴수(黃槐樹)라 하고 한글로는 느틔나모라고 썼다. 황색을 뜻하는 순우리말 노랑은 눋()이 어원이라고 하며 괴()는 옥편에 보면 홰나무(회화나무)라 하였으니 황괴의 한글 이름은 ()왜나무가 된다. 마찬가지로 아언각비(정약용이 지은 어원 연구서)에서 눗회나무라고 했다. 이것이 누튀나무를 거쳐 느티나무가 되었다고 짐작된다. (느릅나무과)

 

* 목련: 연꽃처럼 크고 아름다운 꽃이 나무에 달린다고 목련(木蓮).

 

* 미선나무: 미선이라는 여자의 정체가 드디어 드러나는 건가 했더니 미선(尾扇)은 둥그스름한 모양의 부채의 종류.  열매 모양이 이 부채를 닮았다고 하여 미선나무였다.

 

* 버즘나무: 가로수 플라타너스의 공식적인 우리 이름은 버즘나무’라는 사실. 그 이유는 나무 껍질이 버짐 같아서.. 참고로 북한에서는 탁구공처럼 동그란 플라타너스 열매를 보고 방울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귀엽다 방울나무. 우린 버즘나무. 음..

 

* 아그배나무 : 가을이면 긴 자루를 가진 열매가 대여섯 개씩 대롱대롱 달려 빨갛게 익는 모습을 보고 작은 아기 배 같다고 아기배라 부르다가 아그배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생긴 건 미니 사과에 가까운데 왜 아그사과가 아니고 아그배일까 궁금했었다. 어렵던 시절 아이들이 이 열매를 따먹고 배탈이 나서 아이구 배야하다가 아그배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후자의 이야기에 귀가 더 솔깃하다.

 

* 자작나무: 자작나무의 나무껍질은 새하얀 층이 수십 겹으로 겹쳐 있다. 이것이 매끄럽고 잘 벗겨지므로 종이를 대신하여 불경을 새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 쓰였다. 또한 나무껍질엔 기름기가 많아 좀처럼 썩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을 붙이면 잘 붙고 오래간다. 불에 탈 때 자작자작소리가 나서 자작나무가 된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서 잠시 백석의 자작나무에 관한 시 한편 듣고 가실게요. 뭔가 흰 당나귀도 지나갈 것 같다..

 

백화 (白樺)

                                                                       백석

 

산골 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 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보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 진달래: 향약집성방(조선 세종대에 발간된 의학서)에 나오는 진월배(盡月背)란 이름을 진달래의 초기 형태로 보고 있다. 진달래의 중세어형은 진ᄃᆞᆯ외진ᄃᆞᆯ위라고 하며 진()+ᄃᆞᆯ외(들꽃)를 원형으로 보고 있다. 달래나 산달래의 연한 보랏빛 꽃보다 더 진한 꽃이 핀다는 뜻이라는 풀이도 있다. 진달래는 식품이나 약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참꽃’, 독이 있어 못먹는 철쭉은 개꽃이라고도 한다.

 

*철쭉: 원래 이름은 양척촉. 머뭇거릴 척()자에 머뭇거릴 촉() 자를 쓰는데 양이 철쭉을 먹으면 비틀거리다가 죽어버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척촉과 양척촉을 같이 사용하다가 차츰 척촉으로만 부르게 되었으며 이것이 변해 철쭉이 되었다.

 

* 헛개나무: 열매자루가 육질화되어 울퉁불퉁 이리저리 휜 모양이 벼훑이와 닮았다고 생각했다지방에 따라 호로깨 호깨, 홀깨, 홀태 등 수많은 이름이 있는데, ‘호로깨나무’, ‘호깨나무로 부르던 것이 변하여 헛개나무가 되었다고 짐작된다.

 

이 외에도 참나무 6종세트(떡갈,신갈,졸참,굴참,갈참,상수리나무)에 관한 귀에 쏙쏙 박히는 어원들, 열매에 관한 유래들-아름다운 작은 복숭아 같아서 앵도(앵두), 보라색 복숭아-자도(자두), 오랑캐나라에서 들어온 복숭아씨앗 모양인 호도(호두), 나무에 달리는 참외(모과), 살구 속의 은빛 씨앗(은행), 밤이 되는 밤나무/밤을 밝혀주는 밤나무, 고대 페르시아어로 부도우(budow)라고 부르던 과일을 한자로 음역한 포도, 돼지(돝)가 먹는 밤, 돝의 밤이 돝ᄋᆞㅣ밤-도ᄐᆞㅣ밤-도토밤으로 변하고 도톨밤을 거쳐 도톨에 접미사 '이'가 붙어 지금의 귀여운 도토리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지만. 서재에는 여기까지만.

 

단순한 나무 이름 공부가 아니다. 숲과 나무를 가까이 했던 백성들이 지었던 나무 이름들은 참 쉽고 꾸밈없이 직관적이고, 양반들에게서 나온 이름들은 중국에서 그대로 들여오거나 한자어로 또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느 이름 하나 허투로 지나칠 것이 없다. 나의 나무는 어떤 이름을 가질 수 있으려나. 나이테의 두께가 좀더 확장되는 느낌이다. 올 여름은 많이 덥다는데..

 

p.5 < 머리말 中 >
아직 공개적으로 내놓고 발표하기에는 망설여지는 부분이 많았다. 사실 나무 이름의 유래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이름을 붙였는지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무 이름의 유래에 대한 견해는 사람마다 너무나 다양하다. 다시 확인하고 검토해야 할 내용도 여기저기 보인다. 마침표를 찍으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궁금해하는 분들이 너무 많으니 일단 세상에 내놓고 모자란 점은 고쳐나가자고 마음먹었다. 따라서 내용에 미비한 점도 많고, 내 일방적인 주장도 있으며 오류도 있을 것이다. 겸허히 비판을 받아 다듬어나가고 싶다. 읽는 분들이 더 깊이 생각하고 보태서 나무 이름마다 붙은 물음표가 모두 풀리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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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20-06-14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옛한글자모가 다 깨져나온다. 아몰라.

반유행열반인 2020-06-14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통 자작나무네요. 나무 책 읽지도 않고 가진 거만 몇 개 있는데 또 이거도 막 눈독들이고 ㅋㅋㅋ

무식쟁이 2020-06-14 12:04   좋아요 1 | URL
식물에도 관심이 많으신 반반님. 나중에 도서관에서 함 훑어보세요~ ^^

반유행열반인 2020-06-14 12:15   좋아요 0 | URL
관심은 있는데 또 키우는 건 싫어해요. 모든 키움과 돌봄을 싫어함 ㅋㅋ직업 선택도 에미된 것도 다 에러인 듯 ㅋㅋㅋ도서관 얼른 열면 좋겠어요.
 
선생님들이 직접 만든 이야기 식물도감 - 최신 교육 과정에 맞춘 전면 개정판 선생님들이 직접 만든 어린이 도감
박헌우 외 글.사진 / 교학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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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해 살펴보고 있는 여러 식물도감들중에서 이 도감이 가장 활용도가 높다. 잠깐 피고지는 꽃의 접사나, 다 비슷해보이는 풀샷만 가득한 도감이 아니라, 식물 전체 모습과 함께 꽃이 피었을 때 모습, 꽃이 지고난 모습, 열매나 씨앗, 잎의 모양이나 줄기 방향 등 그 식물의 특성에 맞게 적절하고 다양한 사진들이 제시되어 있어서 실제 식물과 맞닥트렸을때 두눈으로 충분히 식별가능하다는게 참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도심의 공원이나 가까운 산과 들, 도시의 딱딱한 보도블락들 틈새에서 흔히 볼수 있는 식물들로 가득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 책 덕분에 회색 콘크리트 사이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는 초록이들을 알아보고 불러 줄수 있게 되었다. 깊은 산 맑은 숲속에서만 볼수 있는 귀한 야생화들은 이 책에서는 보기 힘들다.
그외 간단명료한 식물정보와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마당은 색다른 덤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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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무 이름 사전
박상진 지음 / 눌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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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종의 나무들의 ‘이름’과 그 유래에 대한 궁금증들을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책. 모르는 나무는 휙휙 패쓰하면서 무지 재밌게 읽었다. 생김새가 아리까리할 땐 바로바로 검색하면서도, 사전의 특성상 긴호흡이 필요없으므로 다시 금방 푹빠져 읽게 된다. 식물도감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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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 강주룡 -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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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공농성 여성노동 운동가 강주룡. 사랑에, 독립운동에, 노동운동까지. 솔직하고 투박하게 짧은 삶을 살고 간 단단한 사람. 을밀대 하면 냉면 밖에 몰랐던 내가 이젠 강주룡을 떠올릴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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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6-07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님도 읽으셨군요 전래동화 씩씩한 강주룡!

무식쟁이 2020-06-07 02:00   좋아요 1 | URL
아뉘.. 아직 안주무고 뭐하신대요. 진짜간만에 북플오면 맨날 반반님이 일빠해주시고. ㅋㅋ
이 책은 백퍼 반반님덕에 알게된 책임을 알립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6-07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님도 다 늦도록 안 주무시고 오랜만에 글 올리시니...언제나 제가 일빠해야죠ㅎㅎ좋은 책이라 알게해드린 책임있대도 흐뭇합니다ㅎㅎㅎ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
리처드 스티븐스 지음, 김정혜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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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아!! 제목봐라. 이제부터 나는 기꺼이 위험한 것으로 넘어가주리라는 베리 오픈마인드로 책장을 넘겼건만. 제목에서 느껴지는 만큼의 기발하고 참신한 일탈은 조장하지 못했다. nothing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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