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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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을 읽을 때마다 나의 사고를 반성하며.
이 사회를 발로 지탱하고 있는 분들과 나의 천진한 탁상공론의 가치를 뒤바꿔 다루지 말 것을 상기하며.
이렇게 흔들흔들 흘러가지만 그래도 이 물길에서 이렇게 당신을 만날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추도합니다.

나와 같이 징역살이를 한 노인 목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노인이 내게 무얼 설명하면서 땅바닥에 집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에서 내가 받은 충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 집을 그리는 순서가 판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의 순서와는 거꾸로였습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도리·들보·서까래·지붕의순서로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붕부터 그려온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웠습니다.
나의 서가(書架)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낭패감이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책을 읽다가 ‘건축‘ 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한동안 그 노인의 얼굴을 상기합니다.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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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1-16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벌써 3주기더라구요.
무식쟁이님, 따뜻한 하루 되세요.^^

무식쟁이 2019-01-16 15:23   좋아요 1 | URL
네.. 어느새 3년이네요. 미세먼지가 좀 걷혔대요. 맑은 하루 되시구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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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에 오래 묵혀놓았던 페이퍼백이라, 하루꼬빡 휘모리장단으로 책장을 넘기다보니 속지가 뚝뚝 떨어져나가고. 이런 미스터리소설은 재미있으면 장땡. 본업에 충분히 충실했으므로 별다섯개 준다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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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리커버 특별판)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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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자는 운동이다. 남자들은 다 나쁜 놈이라고 꽥꽥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젠더, 인종, 계급의 관점에서 우리 모두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냥 페미니즘이 꼴뵈기 싫으시다고? 난 차별주의자라고 차라리 떳떳하게 밝히시던지.

페미니즘 정치의 목표는 지배를 종식하여 우리가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게끔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다. 얼마든지 정의를 사랑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p.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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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사람에게 ‘출소’의 가장 큰 의미는 독보권이란다. 가고 싶은 곳에 혼자 갈 수 있는 권리. 그래. 지난 10여년동안 내가 갇혀 지냈었던거구나.
(또 그 지겨운 소리. 집과 직장만 챗바퀴 돌며 살았다는 또 그 넋두리냐고. 누가 그러래? 근데 여기저기 여행도 무지많이 다니지 않았어? 근데 뭐가 갇혀 지냈대. 배부른 소리하고 앉아있어.)

근데 내게 가장 중요한 건 ‘혼자’ 야.

오늘 독보권 실행중. 목포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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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1-10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포까지 걸어서 가시는 거예요!? (마치 어디서 출발하시는지 아는 것처럼)

무식쟁이 2019-01-10 12:57   좋아요 0 | URL
칙칙폭폭칙칙폭폭

syo 2019-01-10 13:00   좋아요 0 | URL
독보권이 혼자 ‘걷는‘ 권리가 아니었군요.... ˝가고 싶은 곳에 혼자 갈 수 있는 권리˝라고 써 놓으셨는데 그걸 내가 또 띄엄띄엄 읽었네??

하아.....

무식쟁이 2019-01-10 14:15   좋아요 0 | URL
‘걸음 보’자가 맞겠으나 이 추위에 서울에서 목포까지 걸어가ㄹ..;;
 
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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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신사인 주인을 잘 섬기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긴 한 늙은 집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유능함’을 뛰어 넘어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하여, 아버지의 임종도, 젊은 사랑도, 주체적 사고와 판단도 모두 외면하며 평생을 살아 왔다. 최고의 ‘품위’를 갖춘 집사였던 자신의 지난 삶을 정당화하려고 바들바들 애쓰는 모습이 찌질해 보이다 결국엔 불쌍했다. 그 당시 시대적 분위기는 고려해야겠지만 스스로 가치 판단하지 못하고 맹목적인 도구로서의 자신을 소모해 버린 모습이 참 어리석어 보여 그 얼마나 허무한 인생일까 싶다.

 

충직한 집사로서의 그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에피소드 하나.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성실한 하녀 두 명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해고하기로 한 주인의 결정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 따위는 없다. 그저 믿고 존경하는 주인 어르신의 결정대로 ‘품위’있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사무 로봇처럼 담당자인 켄턴 양에게 그녀들의 해고를 예고한다. (밑줄긋기1) 켄턴 양은 화끈하게 화를 내며 반박을 하지만 그는 주인의 판단만을 신뢰하고 추종한다. 이 부분에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관한 사례(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떠올랐다. 주인공 스티븐슨이 성실한 집사였듯이, 악마의 모습일 것 같은 아이히만도 현실에서는 좋은 가장이자 성실한 공무원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악은 이렇게 개인의 무사유에서, 성실하고 평범한 모습에서 나온다고 아렌트는 말한다. 역자의 해설에서도 역시 언급된다. (밑줄긋기2)

 

 

그놈의 품위, 품위! 껍데기 같은 품위만 찾다가 결국 인간은 파국인게냐?!!!하고 발끈 하던 차에, 다행이도 우리의 스티븐슨 할아버지는, 해 떨어질 무렵 어느 선창가 벤치에 앉아 품위라는 허상에 대한 실체를 깨닫고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한다. 늦었지만 그의 사유가 시작된다. 그의 새로운 전환점이 여기서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힘든 하루가 지나고 아름다운 저녁에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게 또 인생이 아니겠는가.  캬아~ (셀프감동) (밑줄긋기 맨끝)

 

그러니..

거품 같은 품위 따윈 개에게나 줘버렷.

 (지나가던 멍뭉이 의문의 1패)

 

p. 182
"(...) 그러나 우리 판단에 감정이 개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
"스티븐슨 씨, 당신이 그런 얘기를, 거기에 그렇게 앉아서 마치 식료품 주문 목록을 논하듯 말하고 있다는 게 분통 터지는군요. 전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요. 지금 루스와 사라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해고하겠다는 거 아닌가요?"
"켄턴 양, 방금 상황을 충분히 설명했잖소. 나리께서 결정하신 일이니 당신이나 나나 논할 것이 없어요."
"단지 그 이유만으로 루스와 사라를 해고한다는 것이 ‘잘못됐다’는 생각도 안 드나요, 스티븐스 씨? 전 그 일에 찬성할 수 없어요.(...)"


p. 306 (해설)
계급과 편견과 차별에 길들여져 있었던 근대인의 조건은 고려해야겠지만, 결국 인간은 자신의 더듬이로 길을 가고 그 여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 집사의 품위에 앞서 존중되어야 했던 인간으로서의 품위에 대한 성찰은 없는 것이다.

p. 216
어쨌거나 때늦은 깨달음에 의지해 과거를 뒤져 보노라면 그러한 ‘전환점’들이 도처에서 눈에 띄게 마련이다.

p.298
사실 나는, 달링턴 경께 모든 걸 바쳤습니다. 내가 드려야 했던 최고의 것을 그분께 드렸지요. 그러고 나니 이제 나란 사람은 줄 것도 별로 남지 않았구나 싶답니다.
p.299
(...) 나리는 용기 있는 분이셨어요. 인생에서 어떤 길을 택하셨고 그것이 잘못된 길로 판명되긴 했지만 최소한 그 길을 택했노라는 말씀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말조차 할 수가 없어요. 알겠습니까? 나는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분을 모셔 오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

p.293
"하지만 이따금 한없이 처량해지는 순간이 없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내 인생에서 얼마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던가.’하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 말입니다. 그럴 때면 누구나 지금과 다른 삶, 어쩌면 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더 나은’ 삶을 생각하게 되지요. 이를테면 저는 스티븐스 씨 당신과 함께했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하곤 한답니다. 제가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화를 내며 집을 나와 버리는 것도 바로 그런 때인 것 같아요. 하지만 한 번씩 그럴 때마다 곧 깨닫게 되지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남편 곁이라는 사실을. 하긴, 이제 와서 시간을 거꾸로 돌릴 방법도 없으니까요.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p. 300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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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1-03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멍뭉이가 그 품위를 좋아할지 모르겠어요. 애꿎은 멍뭉..... 그러고보면 쟁이님 프로필 이미지 속의 멍뭉이도 참 귀엽네요(아무말)

무식쟁이 2019-01-03 12:15   좋아요 1 | URL
화난 귤님이 더 귀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