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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평점 :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목소리는 낸다는 것!
그 소중함에 대하여.....
2017년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처음 접한 후 '반드시 필요한 여성의 이야기'를 의미있게 담론화하는 작가의 세계관에 감화되어 작가의 등단작부터 단행본으로 출간된 모든 소설을 읽어왔다.
그래서 작가의 모든 소설은 다 읽었다고 자부했는데, 여러 문예지에 발표했었던 단편들은 빠트리고 말았다는 것!
나와같은 이들이 아주 반가워할 만한 책이 출간되었다.
바로 조남주 작가의 <우리가 쓴 것> 소설집이다.
신간 <우리가 쓴 것>은 조남주 작가가 등단 후 10년간 꾸준히 발표해온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작가의 소설집 <그녀 이름은>과 맥을 같이 하는 다양한 분야의 여성이야기이기도 하면서,
<82년생 김지영>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는
청소년에서 노년에 걸친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가출>, <현남 오빠에게>를 제외한 모든 작품들을 새롭게 접할 수 있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통찰력에 다시 한번 감탄을 했다.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직업군의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차별과 피해, 감내하는 고민과 고뇌가 담겨있다.
그렇다고 남성을 적대시하고 폄훼하는 이분법적인 소설이 결코 아니다.
병든 할머니를 자식보다 더 애틋하고 살뜰하게 챙기는 다정다감한 손자의 모습에서 따스한 감동을 전해받기도 하고,
같은 여성이지만 여성의 업적과 성과에 딴지를 거는 모습도 보여지므로......
소설 속 작품들은 각기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전달하는 메세지가 있다.
온전한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기!
자신이 가치있다고 믿는 삶을 살아가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기!
이것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 일 것이다.
다만 모든 사회문제 해결이 그렇듯이 사회구조적 제도의 모순과 신체적 열세에 의해 억눌린 여성들의 삶은 그 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로 먼저 발회되어야 한다.
그러한 목소리가 더해져야만 다른 이들이 관심을 갖게 할 수 있고 의식 전환의 공론화도 가능하다.
남아선호사상으로 원치않는 '김말녀'라는 이름으로 한 평생을 살아왔지만 개명신청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동주'라는 이름을 얻게된 할머니의 이야기!
사랑을 빙자해 여자친구를 멋대로 조종한 남자친구에게 용기내어 통쾌한 이별편지를 보내는 여성의 이야기!
냉정해보일지언정 손자의 양육 부탁을 거절하고 평생의 소원인 오로라를 보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 57세의 젊은 할머니!
이외에도 모든 이야기 속에는 수동성을 탈피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과 존재가치를 되찾고 행동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녀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영위해나가길 응원한다.
< 우리가 쓴 것 > 문장 발췌
<매화나무 아래>
언니들은 이름이 예뻤다.
큰언니가 금주, 둘째 언니가 은주,
그리고 나는 말녀. 김말녀. (p.19)
…
"동주라고 불러 주니까 좋다"
"그럼 동주를 동주라고 부르지"
기껏 이름을 바꿨는데 이름 부르는 사람이 없더라고.
…
이제 알겠다. 금주 언니야, 나도 이제야 알았어.
꽃이 눈이고 눈이 꽃이다.
겨울이 봄이고 봄이 겨울이다. 언니야.(p.45)
노년의 여성 이야기 속에는 늙고 병들어 초라한 쇄락만 있는 것이 아니다.
추운 겨울을 견뎌 다시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의 겨울눈처럼,
기다리면 어김없이 다시 돌아오는 계절처럼,
노년 여성의 삶도 쇄락의 길로 시들어져가는 것이 아닌 하루 하루 의미있게 순환하는 것이다.
<오기> p.72
"선생님, 세상에는 아버지나 남자 형제의 폭력을 경험한 여자들이 너무 많아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사실은 꽤 흔한 일이잖아요.
여성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에게 가해지는 이중적 잣대와 악플에 관한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자신이 겪은 피해와 상처에 매몰돼 다른 사람의 상처는 보지 못하는 편협함에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했다.
<가출>
가족의 이사, 누군가의 진학이나 취업 같은 중요한 결정도 결국은 아버지 뜻대로 되었고 엄마는 늘 중얼거리는 사람이었다.
엄마도 저렇게 간결한 문장과 정확한 발음으로 의견을 말할 수 있구나.(p.96)
미안하지만 아버지 없이도 남은 가족들은 잘 살고 있다.
아버지도 가족을 떠나 잘 살고 있는 듯하다.
언젠가 아버지가 다시 돌아와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낼 수 있을 것 같다.(p.116)
엄청난 위력을 가진 수직적 가부장 제도의 허상이 가부장의 부재를 통해 드러난다.
아버지 없이도 가족 구성원이 더 자기 목소리를 내며 문제없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수직적 위계질서가 아닌 수평적 연대임을 알 수 있다.
<미스 김은 알고 있다> p.131
미스 김의 학력에 대해, 입사 절차와 계약 형태에 대해, 연봉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이제는 알수도 없다.
봤다는 사람은 있는데 실체는 알 수 없는 전설의 괴물.
이름 없이 '자기'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미스 김'의 존재!
존재감 없는 미스 김이 회사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교묘하게 해고를 하고,
그에 대한 복수인 듯 유령처럼 회사를 휘청이게 만드는 미스 김의 반격!
<현남 오빠에게> p.190
그동안 오빠가 나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애정을 빙자해 나를 가두고 제한하고 무시해 왔다는 것을,
그래서 나를 무능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 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오로라의 밤>
"잘했다. 젊었을 때 뭐든 해 봐야지.
나이들면 용기는 안 나고 계속 후회만 해."(p.229)
성실하고 꾸준하게 자기 일을 해 나가는 것.
그 평범한 일상이 삶을 버티게 해 준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도,
누군가에게는 싸워 얻어내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p.258)
자식과 손자에게 희생을 강요당하는 엄마세대, 할머니 세대의 속마음이 담긴 이야기다.
젊었을 땐 육아와 일 두마리 토끼를 잡느라 버거웠던 삶,
이제 자식을 독립시키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고싶어지는 순간 뒤따르는 손자의 양육부담!
<여자아이들은 자라서> p.293
그리고 지금 엄마는 남자애들은 생각이 없다,
이해해줘야 한다, 몰래 사진 찍고 낄낄거리는 게 장난이다.
그런 사람이 됐어.
여자애들이 성적 떨어뜨리려고 남자애들 꼬신다,
그런 한심한 소리나 하는 사람이 됐다고.
그러니까 엄마, 업데이트 좀 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남성의 폭력과 성추행이 미성년일때부터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각인시키고
상황을 역이용해 적극적으로 피해에 맞서는 여학생의 모습이 비춰진다.
<첫 사랑 2020>
"너희들이 사귀고 헤어지는 일까지 선생님이 방법을 가르쳐 주고 틀린 부분을 고쳐주고 할 수는 없어.
그런데, 음. 마스크 도로 내놓으라고 그런 건, 좀 아닌 것 같아."
좀더 어린 초등학교 4학년의 이야기!
코로나 바이러스로 창궐로 인해 교육과 가정경제 시스템 전반이 위태로워지면서
첫사랑의 설렘도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먼저 헤어지자고 당차게 말하는 여학생!
헤어짐을 통보받은 남자친구의 치졸한 유치함에 빵터지기도 했던~~~ ㅎㅎㅎ
모든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꾸준히 자기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기를 응원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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