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 - 백인 행세하기
넬라 라슨 지음, 서숙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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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피부를 지닌 흑인 여성의 위태로운 욕망


매혹적인 표지가 시선을 사로잡는 미국소설 <패싱>은 혼혈 여성 작가 '넬라 라슨'의 1920년대 작품으로, 1세기 전의 작품임에도 문체면에서 현대적 감각으로 술술 읽히는 매력이 있었다.

 

'패싱'은 백인과 유사한 신체적 특징을 지닌 흑인들이 자신의 흑인 정체성을 숨기고 백인 행세하는 것을 뜻한다.

고혹적인 표지에서 느껴지는 '여인의 욕망'과 '백인 행세하기'가 결합된 이야기는 플롯 면에서 심플한 이야기였는데 완독 후 생각이 많아지는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한때를 함께한 두 친구 아이린과 클레어는 둘다 백인 피부를 갖고 태어났지만 부모 둘 중 한 명이 흑인인 혼혈인이다.

큰 차별 없이 안정적으로 자란 아이린과 달리 클레어는 일찍 고아가 된 후 차별과 편견 속에서 힘들게 살게 되면서 어느 순간 철저히 흑인 정체성을 숨기고 백인 행세를 하며 부유한 백인 남성과 결혼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두 친구 아이린과 클레어가 성인이 되어 조우한 후 벌어지는 일이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클레어는 흑인을 지독히도 비하하는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서 분출하지 못했던 억압된 흑인정체성을 아이린과의 만남을 통해 되찾고자 한다.

하지만 흑인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자상하고 경제력있는 의사 남편과 두 아들과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아이린은 비밀을 감춘 채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클레어와의 만남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독자인 나 또한 자신이 자초한 비밀로 가정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 채 집요하게 아이린이 거주하는 할램가를 찾아 자유를 만끽하려는 클레어의 이중적 모습에 감정이입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이린이 우선적 가치로 생각하는 안정적인 가정생활에 클레어가 위기감을 더할 땐 더더욱이나 비호감 인물로 보여졌다.

(욕망 캐릭터를 선호하지 않는 개인적인 취향때문인지도......)

 

하지만 인물 저변의 사회문화적 환경을 넓게 들여다볼 때 인종차별적 요소로 인해 '클레어'와 같이 흑인정체성을 감추고 살아가려는 인물이 생겨날 수 있었다라는 것에는 수긍하게 된다.

클레어라는 인물 자체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러한 인물의 탄생 배경은 인정하게 되는......

아이린 또한 지성적인 인물로 비춰지긴 하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에서 벗어난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편협함으로 남편을 숨막히게 한다.

 

이러한 양면성을 갖고 있는 클레어와 아이린의 만남이 야기하는 불안이 작품 끝으로 향하면서 최고조에 달한다.

주변인에게 불안을 야기하고 자신의 삶까지 송두리째 와해시킬만큼 '패싱'의 욕망은 아주 위태로웠다.

1920년대 인종차별적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클레어의 '백인 행세하기' '패싱'이 어떻게 막을 내렸는지는 작품을 통해서 확인해보길......

 

끝으로 그런 생각을 해본다.

클레어가 자신의 불행의 원인을 직시한 후 아이린을 자극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유를 되찾으려했다면 그녀에게 온정의 손을 내밀 수 있었지 않았을까하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패싱 #넬라라슨 #민음사

#영미소설 #세계문학

#인종차별 #백인행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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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22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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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유산의 의미를 통해

진정한 자아로 거듭나기!

 


 

 상당히 긴 호흡으로 위대한 유산 상,하 권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상권에서 주인공 핍이 순수했던 어린시절과 달리 누군가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이후로 물질적인 가치에 휩쓸려 사치스런 생활을 해서 실망감을 전해주었다.

하권으로 이어지며 방대하게 뻗어갔던 인물들의 스토리가 한 곳으로 모아진다.

찰스 디킨스의 놀라운 창작력으로 인물들간 연결고리가 개연성있게 이어진다.


 

 


 

가장 의미를 던지는 화두는 막대한 유산 상속자의 실체가 드러나며 핍이 벼락을 맞은 듯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갖는다는 점이다.

갑작스런 행운처럼 다가온 유산 상속으로 인해 풍족한 환경 속에서 신사 교육을 받고, 사랑하는 에스텔라와 결혼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미래를 낙관했는데, 갑작스레 찾아온 유산 상속자는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유배자 매그워치였다.

이쯤에서 인간이 자신을 행복을 스스로 찾지 않고 타인을 통해 이루려 할때 생겨날 수 있는 비극을 엿볼 수 있다.

사랑의 배신을 견디지 못하고 복수를 위해 '에스텔라'를 입양해 자신이 당했던 배신을 남자에게 행하게 하는 미스 해비셤

자신이 결코 이룰 수 없는 사회적 명예를 위해 한때 자신을 도왔던 '핍'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겨 멋진 신사를 만들고자 했던 매그워치

이 둘의 현명하지 못한 행동으로 에스텔라는 진심을 숨기고 얼음장 같은 심장으로 살아야했고,

핍은 소박하고 근면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알던 순수함을 잃고 나태하고 낭비하는 삶을 살게 됐다.


 


 

이 외에도 물질적으로 풍족하진 않지만 진정한 사랑, 진정한 우정, 진정한 가족애를 보여주는 핍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인간이 살아가는 데 진정 필요하고도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닌 진심어린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설 속 가장 인상깊은 인물 '조 가저리'를 반추한다.

어린 핍이 우악스런 누나에게 구박받을 때 늘 따스하게 감싸주었던,

대장장이로서 땀흘리는 참된 노동을 통해 삶을 일궈내느라 비록 행색은 초라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진심이었던,

아내가 범죄피해로 병고를 치를 때에도 마지막까지 애정으로 보살폈던,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처남인 핍의 난처한 소식을 접하고 인간애를 베풀었던.......

핍은 뒤늦게 깨닫는다.

자신이 우상으로 삼았어야 했던 진정한 신사의 모습은 겉모습만 번드르한 허풍쟁이들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과 주관으로 내실을 갖추고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매형 '조'와 같은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유산의 의미는 무엇일까!

스스로의 가치와 정체성을 찾아내 진정한 자아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최고의 유산이 아닐까!


<리딩투데이 열세창고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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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수상한 서재 3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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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함을 잃은 콘크리트의 균열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한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뛰어난 압도적 서사의 미스테리 스릴러 소설 <콘크리트>!

제목에서부터 육중하면서도 서늘한 긴장미가 전해진다.

 

 

 


 

작품은 '안덕'이라는 도농복합시의 지역 유지 '장정호'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와 연합해 돈과 권력을 장악해간 인물들이 하나 둘씩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연쇄방화실종' 사건으로으로 진행된다.

 

장정호는 호형호제하던 동생들이 하나 둘 실종되자 사건수사를 온전히 경찰에 맡기지 않고 이혼 후 고향에 내려온 전직 검사출신 변호사인 조카 '세휘'에게 맡긴다.

세휘는 장정호가 제시하는 정계진출과 양육권 보장이라는 조건부 제안을 무시할 수 없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간다.

지방으로 좌천된 기자 한병주도 이 사건에 냄새를 맡고 재도약을 하고자 한다.

 

이들을 통해 사건이 파헤쳐지며 각 인물들이 지역에서 자리잡게 되는 과정의 더러운 욕망들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각 사건과 공통분모로 연결되는 기과한 여자 정인숙 포커싱된다.

점점 더 확실해지는 범인의 정체, 또 하나의 공범, 실종자들이 수용된 장소 등 사건은 급물살로 전개된다.

 

그러다 예측을 뒤엎는 엄청난 반전으로 사건의 실체가 베일을 벗는다.

이 실체를 목격한 주인공 세휘의 선택 또한 반전이다.

완전한 사건 해결이 아닌 또 하나의 실체를 봉인하는 선택에서 스산한 공포를 느낀다.

 

 

 

이쯤에서 제목 콘크리트의 의미를 들여다본다.

견고함의 상징 콘크리트!

하지만 어느 틈에 금이 가고 그것을 방치할 때 언제든 건물은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언제든 붕괴위험이 있는 갈라진 콘크리트 건물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축소판같다.

 

회생 가능성이 힘들어 보이는 건물을 임시방편으로 겉땜질하며 유지해가는 위태위태한 모습 또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러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을 과연 우리는 감수할 수 있는지.....

소설이 질문하는 듯하다.

 

데뷔작으로 압도적 서사를 선물한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며 차기작을 기대해본다.

 

<리딩투데이 까페지기 영부인님 선물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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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21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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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유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서......


분명히 20대 초반에 영화로 본 기억이 있는데 스토리는 모두 휘발되고 주연배우 얼굴만 남은 영화 <위대한 유산>의 원작을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으로 읽어보았다.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처음 읽어보는데, 150년 전 영국에서 쓰여진 작품으로 시대와 국가가 다름에도 낯설지 않게 와닿는 이야기를 통해 이게 바로 '시공간을 초월한 명작 고전' 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하권 총 두권 중 상권의 주요 줄거리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누나에게 양육된 핍이 이름 모를 누군가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아 그에 걸맞는 교육을 받기 위해 집을 떠나는 이야기다.

 

대략 핍의 10대시절의 이야기로 볼 수 있는데, 소년 핍은 교도소를 탈출한 죄수의 부탁을 들어주고 자신이 가져다준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모습에 기뻐할만큼 순수한 마음을 지닌 아이였다.

엄마뻘 되는 누나가 자신을 윽박지르고 폭력으로 양육해도 불평불만을 늘어놓거나 반항하기 보다 그냥 조용히 감내하는 순응적인 아이이기도 했다.

가난한데다 부모의 따스한 사랑을 받지 못했음에도 이렇게 순수하고 순응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누나의 반쪽, 즉 매형인 '조'의 영향이 크다.

우악스러운 누나와는 달리 항상 조근 조근 어르고 달래며 핍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던 조는 핍에게 자상한 아빠와도 같은 존재이자 '조'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인생의 친구'였다.

 

이렇게 가난한 하층민으로서 꿈, 욕망과는 거리가 먼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던 소년 핍은 첫눈에 반한 예쁘고 도도한 여자이이 '에스텔라'에게 무시를 당한 후 처음으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핍의 심리상태는 두 소녀 '비디'와 '에스텔라'를 보는 마음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착하고 지각있고 함께 있으면 편안하지만 자신의 처지와 다를 게 없는 '비디'

오만하지만 매혹적인 외모와 분위기로 자신을 압도하는 상류층의 '에스텔라'

핍은 두 소녀 모두를 좋아하지만 다다를 수 없는 먼 세계와도 같은 에스텔라에게 사로잡히고 동경한다.

 

운이 좋게도 이름 모를 누군가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된 후 그 욕망은 더욱 거세진다.

경제적 풍요를 얻게 된 후 분신과도 같았던 '조'를 부끄럽게 여기는 자신의 모습에 갈등하지만 잠시뿐이다.

 

 

이런 핍에게 '조'와 '미스 해비셤'이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준다.

인생이란 너무나도 많은 부분들이 하나로 용접되어 결합된 구성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대장장이, 어떤 사람은 양철공, 어떤 사람은 금세공업자, 어떤 사람은 구리 세공업자인거야.

그런 식의 구분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그런 게 생기면 반드시 만족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란다.

p.382 (조가 핍에게 하는 말)

네게 진정한 사랑이 뭔지 말해 주마.

그건 맹목적인 헌신이고, 의심하지 않는 겸손이고,

완전한 존중이고, 너 자신과 세상 모든 사람들의 뜻을 거스르는 신뢰고 믿음이다.

네 모든 마음과 영혼을 포기하고 그걸 너를 매혹하는 사람에게 다 주는 거지.

바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p.409 (미스 해비셤이 핍에게 하는 말)

 

핍은 막대한 경제적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아직까진 진정한 유산의 의미를 찾지 못한 것 같다.

하권에서 핍이 그 '진정한 유산'의 의미는 물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참된 인생을 살아갈 지 기대해본다.

 

<리딩투데이 열세창고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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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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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목소리는 낸다는 것!

그 소중함에 대하여.....

 


 

2017년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처음 접한 후 '반드시 필요한 여성의 이야기'를 의미있게 담론화하는 작가의 세계관에 감화되어 작가의 등단작부터 단행본으로 출간된 모든 소설을 읽어왔다.

그래서 작가의 모든 소설은 다 읽었다고 자부했는데, 여러 문예지에 발표했었던 단편들은 빠트리고 말았다는 것!

나와같은 이들이 아주 반가워할 만한 책이 출간되었다.

 

 


 

바로 조남주 작가의 <우리가 쓴 것> 소설집이다.

신간 <우리가 쓴 것>은 조남주 작가가 등단 후 10년간 꾸준히 발표해온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작가의 소설집 <그녀 이름은>과 맥을 같이 하는 다양한 분야의 여성이야기이기도 하면서,

<82년생 김지영>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는

청소년에서 노년에 걸친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가출>, <현남 오빠에게>를 제외한 모든 작품들을 새롭게 접할 수 있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통찰력에 다시 한번 감탄을 했다.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직업군의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차별과 피해, 감내하는 고민과 고뇌가 담겨있다.

그렇다고 남성을 적대시하고 폄훼하는 이분법적인 소설이 결코 아니다.

 

병든 할머니를 자식보다 더 애틋하고 살뜰하게 챙기는 다정다감한 손자의 모습에서 따스한 감동을 전해받기도 하고,

같은 여성이지만 여성의 업적과 성과에 딴지를 거는 모습도 보여지므로......

 

소설 속 작품들은 각기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전달하는 메세지가 있다.

온전한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기!

자신이 가치있다고 믿는 삶을 살아가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기!

 

이것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 일 것이다.

다만 모든 사회문제 해결이 그렇듯이 사회구조적 제도의 모순과 신체적 열세에 의해 억눌린 여성들의 삶은 그 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로 먼저 발회되어야 한다.

그러한 목소리가 더해져야만 다른 이들이 관심을 갖게 할 수 있고 의식 전환의 공론화도 가능하다.

 

남아선호사상으로 원치않는 '김말녀'라는 이름으로 한 평생을 살아왔지만 개명신청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동주'라는 이름을 얻게된 할머니의 이야기!

사랑을 빙자해 여자친구를 멋대로 조종한 남자친구에게 용기내어 통쾌한 이별편지를 보내는 여성의 이야기!

냉정해보일지언정 손자의 양육 부탁을 거절하고 평생의 소원인 오로라를 보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 57세의 젊은 할머니!

 

이외에도 모든 이야기 속에는 수동성을 탈피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과 존재가치를 되찾고 행동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녀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영위해나가길 응원한다.

 

 

< 우리가 쓴 것 > 문장 발췌

<매화나무 아래>

언니들은 이름이 예뻤다.

큰언니가 금주, 둘째 언니가 은주,

그리고 나는 말녀. 김말녀. (p.19)

"동주라고 불러 주니까 좋다"

"그럼 동주를 동주라고 부르지"

기껏 이름을 바꿨는데 이름 부르는 사람이 없더라고.

이제 알겠다. 금주 언니야, 나도 이제야 알았어.

꽃이 눈이고 눈이 꽃이다.

겨울이 봄이고 봄이 겨울이다. 언니야.(p.45)

노년의 여성 이야기 속에는 늙고 병들어 초라한 쇄락만 있는 것이 아니다.

추운 겨울을 견뎌 다시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의 겨울눈처럼,

기다리면 어김없이 다시 돌아오는 계절처럼,

노년 여성의 삶도 쇄락의 길로 시들어져가는 것이 아닌 하루 하루 의미있게 순환하는 것이다.

 

<오기> p.72

"선생님, 세상에는 아버지나 남자 형제의 폭력을 경험한 여자들이 너무 많아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사실은 꽤 흔한 일이잖아요.

여성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에게 가해지는 이중적 잣대와 악플에 관한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자신이 겪은 피해와 상처에 매몰돼 다른 사람의 상처는 보지 못하는 편협함에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했다.

 

<가출>

가족의 이사, 누군가의 진학이나 취업 같은 중요한 결정도 결국은 아버지 뜻대로 되었고 엄마는 늘 중얼거리는 사람이었다.

엄마도 저렇게 간결한 문장과 정확한 발음으로 의견을 말할 수 있구나.(p.96)

미안하지만 아버지 없이도 남은 가족들은 잘 살고 있다.

아버지도 가족을 떠나 잘 살고 있는 듯하다.

언젠가 아버지가 다시 돌아와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낼 수 있을 것 같다.(p.116)

엄청난 위력을 가진 수직적 가부장 제도의 허상이 가부장의 부재를 통해 드러난다.

아버지 없이도 가족 구성원이 더 자기 목소리를 내며 문제없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수직적 위계질서가 아닌 수평적 연대임을 알 수 있다.

 

<미스 김은 알고 있다> p.131

미스 김의 학력에 대해, 입사 절차와 계약 형태에 대해, 연봉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이제는 알수도 없다.

봤다는 사람은 있는데 실체는 알 수 없는 전설의 괴물.

이름 없이 '자기'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미스 김'의 존재!

존재감 없는 미스 김이 회사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교묘하게 해고를 하고,

그에 대한 복수인 듯 유령처럼 회사를 휘청이게 만드는 미스 김의 반격!

 

<현남 오빠에게> p.190

그동안 오빠가 나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애정을 빙자해 나를 가두고 제한하고 무시해 왔다는 것을,

그래서 나를 무능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 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오로라의 밤>

"잘했다. 젊었을 때 뭐든 해 봐야지.

나이들면 용기는 안 나고 계속 후회만 해."(p.229)

 

성실하고 꾸준하게 자기 일을 해 나가는 것.

그 평범한 일상이 삶을 버티게 해 준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도,

누군가에게는 싸워 얻어내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p.258)

자식과 손자에게 희생을 강요당하는 엄마세대, 할머니 세대의 속마음이 담긴 이야기다.

젊었을 땐 육아와 일 두마리 토끼를 잡느라 버거웠던 삶,

이제 자식을 독립시키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고싶어지는 순간 뒤따르는 손자의 양육부담!

 

<여자아이들은 자라서> p.293

그리고 지금 엄마는 남자애들은 생각이 없다,

이해해줘야 한다, 몰래 사진 찍고 낄낄거리는 게 장난이다.

그런 사람이 됐어.

여자애들이 성적 떨어뜨리려고 남자애들 꼬신다,

그런 한심한 소리나 하는 사람이 됐다고.

그러니까 엄마, 업데이트 좀 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남성의 폭력과 성추행이 미성년일때부터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각인시키고

상황을 역이용해 적극적으로 피해에 맞서는 여학생의 모습이 비춰진다.

 

<첫 사랑 2020>

"너희들이 사귀고 헤어지는 일까지 선생님이 방법을 가르쳐 주고 틀린 부분을 고쳐주고 할 수는 없어.

그런데, 음. 마스크 도로 내놓으라고 그런 건, 좀 아닌 것 같아."

좀더 어린 초등학교 4학년의 이야기!

코로나 바이러스로 창궐로 인해 교육과 가정경제 시스템 전반이 위태로워지면서

첫사랑의 설렘도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먼저 헤어지자고 당차게 말하는 여학생!

헤어짐을 통보받은 남자친구의 치졸한 유치함에 빵터지기도 했던~~~ ㅎㅎㅎ

 

모든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꾸준히 자기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기를 응원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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