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글링

 

 

 

 

 

     내 손은 두개뿐인데

     잡아야 할 손은 여러개이다.

     애써 친절을 베풀면서

     쉬운 사람은 아니라고 강조하는 사람처럼

     내가 잡아야 할 손들은 뚱한 표정을 하고 있다

 

 

     너무 빨리 돌아가는 회전문 안에서

     우리의 스텝은 배배 꼬이고 뒤엉킨다.

     회전과 와류를 빠져나가지 못해

     우리는 빨래처럼 잔뜩 뒤엉키며 물이 빠진다.

     아무나 막 목을 조르고 싶다.

 

 

     남을 웃길수 있는 능력을

     남에게 웃음거리가 됐다로 번역하면서

     우리는 자존심이 상한다.

     슬픔을 팔고 있다는 수치의 감정이

     우리를 화나게 한다.

 

 

     손안에 쥐고 있는 얼음처럼

     차가움에서 시작해 뜨거움으로 가는 악수.

     내 손은 두 개뿐이지만

     여러개의 손을 잡고 있다.  (P.10 )

 

 

 

 

 

 

          부끄러움을 찾아서 2

 

 

 

 

 

        고향 친구 빙부상에서 제수씨에게 습관적으로

        안녕하시냐고 물었던 나도 안된 인간이지만

        이즈음의 삶이라는 것도 부황자국 같다.

        살겠다고 제 피를 뽑은 자리의 피멍처럼

        죽을 힘으로 살고 사는 힘으로 죽는다는 생각.

 

 

        생각이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을 뿐인데

        결국은 생각이 없어지는 방식으로,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비가 왔다.

        지지도 못하고 매달린 목련의 부황 자국 같은 얼굴.

 

 

        물에 빠져 죽은 나비를 애도하며 이옥(李鈺)은 썼다.

        산꽃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나니, 누구를 위하여 어지럽

        게 붉은가?

        꽃놀이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일가족의 뉴스

        흩날리는 꽃잎들 사이로 차와 함께 찌그러진 사람들 멀리

        아직 꽃들은 울긋불긋하다.

 

 

        한주에 세번 문상을 하고 나서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지 깨닫는 일은 공교롭고 새삼스

        럽다.

        죽음은 너무나 당연해서 생략 가능한 문장 같지만

        생략된 것을 더듬을 때마다 가슴이 눌린다,  (P.30 )

 

 

 

 

 

 

 

            천국의 아이들 2

                 이영광 형께

 

 

 

 

 

 

          자기가 제일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모인 곳이 지

          옥일 테지.

          세상에 안 아픈 사람은 없고

          아픈 사람들도 가끔은 아프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가르르 호호호 꽁지 빠진 새들처럼 웃고 난리다.

 

 

          점잖게 앉아서 염치를 만들어내는 이 능력자들이

          아무도 안 아픈데 혼자 다 아픈 이 능력자들이

          어젯밤에 다녀온 곳은 차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곳

          이라서

          비록 마음 한 자리 불탄 비닐처럼 흉칙하게 얽었어도

          한세상 장난처럼 농담처럼 지나갈 수는 없는가.

 

 

          세상엔 상처 잘 만들어서 상 받는 사람도 있고

          덕분에 이렇게 술추렴하면서 울혈을 푸는 사람도 있다.

          상처는 상처로만 열린다.

          잔뜩 풀어 헤쳐논 이 상처들은 다 뭔가.

          요즘은 아무도 시를 읽으면서 울지 않고 격앙되지도 않

          는데

          아무도 안 보는 시를 명을 줄여가면서 쓰고,

          조금 웃고, 조금 끄덕이고, 들렸다 가라앉앗다 하면서

 

 

          뚫어지게 보고 있는 사람은 역시 쓰는 사람이다.

          여기 통증은 조금 안다는 사람들은 다 모였는데

          봉인된 저 상자는 누가 무엇으로 열었는가.

          하긴 아픈 사람만 봐도 같이 아픈 곳이 천국일 테지.  (P.68 )

 

 

 

 

 

 

 

           이것도 없으면 너무 가난하다는 말

 

 

 

 

 

           가족이라는 게 뭔가.

           젊은 시절 남편을 떠나 보내고

           하나 있는 아들은 감옥으로 보내고

           할머니는 독방을 차고앉아서

 

 

           한글공부를 시작했다.

           삼인 가족인 할머니네는 인생의 대부분을 따로 있고

           게다가 모두 만학도에 독방 차지다.

           하지만 깨칠 때까지 배우는 것이 삶이다.

           아들과 남편에게 편지를 쓸 계획이다.

 

 

           나이 육십에 그런 건 배워 뭐에 쓰려고 그러느냐고 묻자

           꿈조차 없다면 너무 가난한 것 같다고

           지그시 웃는다. 할머니의 그 말을

           절망조차 없다면 삶이 너무 초라한 것 같다로 듣는다,  (P.102 )

 

 

 

 

 

 

             -이현승 詩集, <생활이라는 생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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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2 20: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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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2 2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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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2 2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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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2 21: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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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3 01: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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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3 0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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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10-03 06:46   좋아요 0 | URL
언제나 웃고 노래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꿈꾸며
오늘 아침도 엽니다. 고맙습니다.

appletreeje 2015-10-03 09:21   좋아요 1 | URL
예~저도 언제나 웃고 노래할 수 있는 하루가 되고 싶습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2015-10-03 1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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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3 11: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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