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 시인선 97
황지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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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하고 좁아 터진 성미라 느릿느릿 흐르는 노래인 시를 이해할 품을 지니지 못해 시를 읽지 않는다. 그래도 좋은 줄은 알아 책꽂이 한 켠에 시집들을 조금 모아두었는데 눈으로 쓸어보면서도 손길은 가지 않는다.

며칠 뒤 황지우 시인을 볼 수 있게 되어 사두기만 하고 열어보지도 않은 시집을 처음 펼쳐본다. 시집 속 시를 하나씩 훑어 보며 그림으로 그리려든다. 그렇게밖에 할 줄 모르니. 끝까지 그려지지 않는 시구는 몇 번을 되뇌어 읽다가 아리송해 하며 내 얕은 감성(?)을 탓한다. 워낙 시를 멀리하며 살아왔으니...

「너를 기다리는 동안」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에서 목이 메여오고

「들녘에서」

- 야 이년아, 그런다고
소식 한 장 없냐-

죽어버린 이를 향한 애타는 마음일테지만
‘돈 벌러간 우리 순이 편지 한 통 없구요. 바람 불고 꽃은 피는데 어디서 무얼할까‘ 하는「순이소식」노랫말도 생각났다.

「12월」이라는 시에 멈칫, 숨을 참는다.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 세일품 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생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이 싯구에 왈칵 울음 울다가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이 끝 구절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랬지, 시가 이런 거였지. 이 시를 부른 이 볼 날까지 콩닥댈 이 가슴 어쩔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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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19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과 언어의 미학....울어도 좋은 문장이 시에서 발견 될 때^^.

samadhi(眞我) 2017-03-19 13:39   좋아요 1 | URL
유레카님이 늘 함께 하시는 사진, 에세이, 시. 저도 시랑 친하게 지내야겠어요. 아직 낯설어 어색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