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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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이토록 우리에게 멀었던 적이 없다.
얼마 전 번역했던 글의 한 문장이다. 이 문장이 <소년이 온다>를 읽은 후 문득 떠올랐다. 너무나 많은 죽음이 여기저기 일상처럼 보도되어 죽음에 무뎌졌으나 우리는 실제로 죽은 사람과 우연히 마주칠 기회도 없이, 죽음을 보지 않고 살아간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 글을 읽으며 나도 죽음을 마주한 적이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아마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죽음을 직접 눈으로 보는 날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죽음을, 그것도 갈기갈기 찢긴 죽음들을 <소년이 온다>에서 목도했다. 내 눈으로 본 것처럼 생생하다. 삼십오 년 전, 고작 16살인 동호가 친구 정대의 죽음을 본다. 정대의 영혼은 자신의 썩어가는 육체를 지켜본다. 20살 진수는 16살 동호가 다른 네 명의 또래 친구들과 함께 총살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고통은 해소될 길이 없어 지금까지 ‘오고 있다.’ 동호 어머니의 독백에서는 숨이 막힐 것 같아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백삼십오 년 전도 아니고 삼십오 년 전의 일이다. 죽음이 이토록 멀었던 적이 없다고, 적어도 광주의 눈물 앞에서는 말할 수 없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글을 쓰고 난 후 세상이 너무나 평온해서 믿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몇 달 동안 광주와 관련된 자료만을 읽으며 1980년 5월 그 날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닐 거다. 아직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다. 죽은 동생이 더 이상 모독받지 않도록 작가가 동호에 대한 이야기를 쓰도록 허락하는 작은 형이 아직 살아 있다. 사실, 잊어선 안 되는 거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라고 해도 ‘이유 없이,’ ‘나라에’ 살해당한 이들의 고통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많은 작품들이 그 날을 잊지 말자고 부르짖는다. 한강도 <소년이 온다>를 쓰고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앞으로도 그날의 기록을 읽고 기억하는 것이 광주의 아픔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런데 많은 죽음이 그때 있었고, 치유될 수 없는 깊은 내상이 있다고 기억하면 그걸로 되는 걸까. 여전히 죽은 자들은 조롱당하고 옛날 일이라 치부된다. 또다시 삼십오 년이 지난 후에는 그 상처가 조금은 아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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