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utobiography of Malcolm X (Hardcover)
X, Malcolm / Ballantine Books / 199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가 몹시나 내리던 6월 말 새벽에 나는 어두운 사무실을 나와서 숨을 몰아 쉬었다. 모두 잠들고 있는 고요한 이 시간, 오로지 들리는 소리는 우산을 때리는 비 소리와 저 멀리 들리는 차 소리 뿐. 그리고 내 주위는 안개로 자욱하게 싸여 있다. 아파트 단지 뒤에 있는 개천 때문이다. 
 
홀로 서서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이 곳에서 눈을 돌려 주위를 보니, 화단에 있는 꽃들과 단지 너머 울타리에 자리 잡고 있는 벚꽃 나무가 보였다. 이미 벚꽃은 져버린지 한참이고 벚꽃이 피던 그 자리에는 초록색의 싱싱한 잎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문득 어떤 구절이  떠 올랐다.

'벚꽃이란 밝고 아름다운 꽃도 거칠고 칙칙한 나무에서 핀다.'

벚꽃은 어찌하여 저리도 거칠고 투박한 나무에서 피는 것일까? 이해하기도 어렵고 신비하다. 나무의 어디에 저리 아름다운 벚꽃이 숨어 있는 것일까? 나무처럼 거칠고 투박한 나도 벚꽃 같은 아니면 그 보다 더 예쁜 꽃을 간직하고 있고 그것을 꽃 피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콤X는 자신의 인생에 자기 만의 꽃을 피운 사람이다. 39살에 암살을 당했지만 흑인에게 자신은 누구인가를 끊임 없이 자각시켰고, 할렘을 비롯한 미국의 빈곤 사회를 지탱하는 흑인들에게 투쟁심을 불러 일으켜 자신들은 바닥이 아니라 당당한 아프리카의 후예이자 역사와 뿌리를 가진 인간이다란 사실을 죽을 때까지 외쳤다.

그는 자신을 격렬하게 불태워 육체적, 정신적 노예인 자신의 동지들인 흑인들을 비추었다. 이 검은 불꽃인 말콤X의 빛이 너무 강렬했기에 미국의 기득권층은 그에게 '미국에서 제일 성난 검둥이' ' 무서운 검둥이'라고 비난을 하고 두려워 했다.

내가 존경하는 루쉰 선생 역시 말콤X와 비슷한 측면이 많다. 잡문이라는 촌철살인의 문장으로 중국의 민중을 암흑으로 빠뜨리고 자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고 있는 어용 문인들과 평생을 격렬하게 싸우셨다. 그리고 민중을 학대하는 국민당의 수고 많은 검열과 감시 속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글을 쓰며 반항하셨다.

역시나 일류급 인물들은 공통되는 점이 참으로 많다. 

비 오는 새벽 벚꽃 나무를 보며 잠긴 생각이 이렇게 끝을 모르고 계속 이어졌다.

'루쉰 반장, 뭐 해?'

뒤를 돌아보니 염려에 섞인 듯한 표정의 경비 반장님이 서 계셨다. 폐지 수집소에서 급하게 들고 오신 듯한 살이 부러져 휘청 거리는 우산으로 몸을 반만 가리신 채, 흰 색 메리야스에 진한 검정색 정장 바지를 입으셨는데, 너무 급하게 나오셨는지 바지 자크는 잠그지도 않으신 채 열려 있으시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 이 새벽에 홀로 나와 서 있는 내가 걱정이 돼 달려 나오신 것이다. 

요즘 투신 자살한 사람 때문에 마음이 쓰여 밤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근무를 하시는 경비 반장님, 옴진리교를 비롯한 나의 그간의 독서 편력 때문에 근심이 많으신 우리 경비 반장님, 이 달의 리뷰에 당선돼 알사탕 4천개를 받았다고 하자 '이빨 썩겄다'하며 아빠 미소를 지어주시던 우리 경비 반장님. 

그래, 정상적인 아주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 드리고 경비 반장님께 걱정을 끼치지 말자. 나는 태연하게 아주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화단에 꽃을 보고 있었어요. 비를 맞고 있는 이 꽃들 참 아름답죠.'

입가에 미소까지 띄우고 말이다.

내 말을 들으신 경비 반장님은 머뭇거리시며 말했다.

'어...그거 말이지. 꽃이 아니라 잡초인데, 잡초...'

음...잡초라고, 잡초란 말인가? 이 꽃들이 모두...전부...당황하면 안 된다. 그러면 경비 반장님이 더 놀라신다. 침착하게 아주 침착하게 말을 하자.

'아! 잡초였군여. 음..잡초였어. 하하하 잡초였구나!'

제길! 목소리를 너무 하이톤으로 잡았다. 나는 웃으며 눈은 경비 반장님의 표정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경비 반장님과 눈까지 마주쳤다. 고요한 새벽 내 낭랑한 웃음소리는 경비 반장님과 눈을 마주친 채 하이톤으로 아파트를 가득 매웠다. 더욱이 안개까지 자욱이 낀 이 곳에 내 웃음소리는 울림까지 더 해져 귀신 곡성과 같이 돼 버렸다.

경비 반장님의 표정은 더욱 얼어 붙으셨고, 난 더 발랄하게 웃었고, 우리는 몇 초인지 몇 분인지 모를 시간을 그렇게 서 있었다. 안개가 낀 비가 내리는 새벽에 말이다.

어찌 어찌하여 경비 반장님을 초소로 돌려 보내고, 나는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란 약속을 하고(근데 이 약속을 왜 해야 하는지?) 사무실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반이다. 내 시계는 스텐 줄에, 시간을 가리켜 주는 시계판은 검정색에, 시계 바늘은 하얀색으로 돼 있다.

말콤X 말하기를 자신의 재산은 오로지 시계와 안경 그리고 서류 가방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시계에 대해 이런 말을 덧붙였다.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시계를 차고 있지 않은 사람을 보면 제일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시간 관념이 없거든요. 우리가 행동할 때 시간에 대한 올바른 존중심과 가치관념이 있는가 여부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좌우됩니다.

이런 말콤X에 비해 나는 시간에 꽤나 관대하다. 

6월 말 부터 시작된 시간의 관대함으로 인한 패배감이 온 몸을 휘젓고 있었다. 

경제학원론을 읽고 있다가 침을 흘리며 책상에 앉아 있는 자신, 티에는 침 흘린 흔적이 흥건하고 말이다. 인터넷의 쓸데 없는 뉴스를 보다가( G컵 화성인녀 출현! 이라는 기사에 현혹돼 미친듯이 그녀의 신변을 조사하기도 했다. -.-) 잠깐 꺼진 모니터에 비춰지는 충혈된 눈의 자신.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마음 먹은 대로 쉬지도 않고 공부 또 공부를 하고 싶은데 TV리모컨으로 어느 새 손이가 '미스 리플리'의 이다해를 보며 응원하고 있는 자신! 화류계 출신이면 어떤가 제발 그녀가 박유천과도 결혼하고 승리하기를! 바닥 인생도 승리하는 것을 보여줘! 라며 숨 죽이며 이다해를 보고 있는 자신!

그러다가 흘러가 버리는 시간들 속에서 멍하니 있는 나를 발견할 때 그 패배감! 다른 것이 힘든 것이 아니었다. 내가 힘든 것이었다. 내 자신이 말이다.

그런 속에서 집어 든 책이 '말콤X 자서전'이다. 

카프카는 말한다. 

우리가 읽은 책이, 우리들이 머리에 주먹으로 일격을 가해서 각성 시켜주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책을 읽겠는가? 한 권의 책, 그것은 우리 내면의 얼어 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하네.  

자서전 문학을 나는 몹시나 좋아한다. 그렇지만 아무 자서전이나 좋아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나만의 독특한 기준이 있다. 난 사람이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뛰어난 점이 있으면 못난 점이 있고, 또한 인간이 완벽하게 선하거나, 완벽하게 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위대한 인물이라고 그를 박제화 시켜 성인군자로 치장하는 평전류는 비위가 상해 읽지를 못하고, 분명 배울 바가 많은 인물인 데 너무 위대하다고 그의 단점만을 부각시켜 깍아 내리는 평전류도 못마땅해 한다.

이렇게 입맛이 까다로우니 마음에 확 차는 자서전이나 평전은 무척이나 찾기가 힘들다. 그런 나를 감동시킨 자서전은 몇 안 되지만 그 중 최고봉은 '말콤x'다.

이 책은 읽을 때마다 그 느낌과 감동이 <달라> 내가 뭔가에 정신이 나가 버렸거나 혹은 스스로 생각할 때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고 느낄 때 그 방황을 깨주는 도끼와 같은 역할을 한다.
 
내가 읽고 있는 '말콤X 자서전'은 창비에서 1978년 출판된 책인데 1993년 다시 재판된 것이다. 김종철, 이종욱, 정연주라는 동아일보 해직 기자들이 1977년 경 생계를 위해 다닌 '종각번역실'이란 곳에서 번역한 것이다. 게다가 말콤X의 육성을 기록한 사람은 <뿌리>라는 저작을 쓴 알렉스 헤일리다.  

이 책을 난 어떻게 구하게 됐을까? 

22살 대학 생활을 1년 마치고 복제품이나 양산하는 공장과 같은 대학 생활에 질린 나는 휴학을 했다. 내가 진정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찾기 전에는 군대를 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결심은 결심이고 생활은 생활이기에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우리 동네의 비디오 방에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풀타임 킬러 알바생으로 들어갔다.

비디오 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는 카운터가 있고 그곳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방들이 짝 펼쳐져 ㄷ자 모양으로 배치가 돼 있다. 한 쪽마다 10개의 방들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카운터에만 형광등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을 뿐 그 양 옆의 방들 쪽으로는 아주 어두워 사람이 걸어다닐 수만 있는 조그만 불빛 밖에는 없었다.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는 내가 앉아 있는 곳에만 불이 비춰져 있어 무슨 상품 진열대에 올라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라는 결심은 알바 일주일이 되자마자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고, 나는 손님들의 시중을 들기 위해 정신 없이 바빴다. 그렇게 바쁘던 어느 하루 저녁 때 쯤 대학생 커플인 듯한 남녀가 들어왔다. 나에게 감동이 있고 재밌는 전쟁 영화를 틀어달라는 부탁을 하기에 대충 외워둔 지식으로 올리버 스톤 감독의 명작 '플래툰'을 주저 없이 권했다.

커플들은 승낙을 하고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영화를 튼지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커플이 있는 방 옆의 손님이 나가 그 방을 치우기 위해 지나치던 중, 남자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와 여자의 야릇한 신음소리가 그 커플의 방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아뿔사 내가 영화를 잘못 틀었구나란 생각에 얼른 카운터로 달려가 대학생 커플이 들어간 방의 영화를 모니터로 보았다.

모니터에 나오는 장면은 헬기가 폭격을 하고 병사들이 사정 없이 총을 쏘는 과격한 전투신이었다. 다시 그 커플들이 있는 방 앞으로 가 보았지만 여전히 신음소리가 들렸고, 다시 모니터로 오면 전투신이 한참이었다.

난 비디오 방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가 않아 이 곳이 젊은 열정의 커플들에게 영화 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때 나는 이해했다. 왜 비디오 방의 조명이 어두운지, 방 안의 소파는 왜 눕듯이 제작이 돼 있는지, 또 방들의 창문은 내부에서 포스터로 덕지 덕지 붙여놔 안이 안 보이게 해 놓았는지 말이다.

비디오 방 사장님은 알바를 시작한 나에게

'비디오 방의 생명은 은폐야, 은폐. 밖에서 안 보이게 포스터로 꽉 꽉 붙여놔야 돼. 알았지?'

라고 하며 오전에 손님이 오기 전에 각 방을 순찰하며 경건한 몸가짐과 마음으로 방에 손상된 포스터는 없는지를 꼼꼼이 체크하시고 퇴근하셨다.

또 한 가지, 사장님은 나에게 손님들이 질문을 하면 웃으며 되도록이면 대꾸를 하지 말고,  '명작이죠'란 대사만 하라고 하셨다.

커플이 있는 방의 영화가 끝나고 대학생 커플들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오른채 카운터를 지나가며 나에게 '좋은 영화인데요. 감동했어요' 라고 말했다.

난 사장님의 직감에 감탄을 하며 오로지 배운대로 '명. 작. 이. 죠' 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명작이죠란 대사를 작렬하며 나는 손님들에게 오로지 상쾌한 미소만 날렸다. 

백인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쇼만 해주면 뭐든지 산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구두 닦는 헝겊으로 팍팍 소리를 내는 것과 똑같은 원리였다.  


나중에 말콤X 자서전을 읽으며 그가 구두닦이, 기차 간식 판매원, 웨이터 등 직업을 전전하며 백인들의 유치한 심리를 파악한 저 위의 구절을 읽으며 손님을 대하는 나의 심리 역시 그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나는 비디오 방에 오는 그런 열정의 대학생 커플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진심으로 말이다. 그런 소리가 들리면 욕정을 거부하기 위해 깨달음의 경계를 향해 나아가는 고타마 싯다르타처럼 여자의 나체가 썩어 뼈로 변하고 재가 되는 상상도 하였으며, 그 육욕의 방을 지나쳐 청소를 하러 갈 때는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휘번덕 거리며 뛰어가거나 했다.
 
하지만 그런 수행도 하루, 이틀 나는 그 고통을 이기기 위해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소리를 소리로 잡는 전략을 개발, 나도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욕정을 이겨내기 위해 보기 시작한 영화는 한, 두 편 씩 보다가 실력이 늘어 나중에는 하루 최고 7편의 영화를 보는 기록도 갱신하였다. 또 영화를 점차 많이 보다 보니 외국 영화의 경우 3배속으로 빨리 돌려서 자막만 보며 스토리를 파악하는 비디오 방 종결자가 됐다.
 
얼만큼의 영화를 보게 되었을까? 어느 날은  'X'라는 표지의 영화가 손에 걸렸다. 표지를 보며 속으로는 조금은 변태적이며 야하지 않을까란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 영화는 이번에 미국 의회도서관이 선정한 '영구보존작품'인 스파이크 리 감독의 '말콤X'!!!
 
보는 내내 흑인민권운동가는 마틴 루터 킹이라는 상식만 가지고 있던 나에게 '말콤X'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도대체 그는 누구일까? 영화 속에서 비춰지는 '말콤X'만 가지고는 나에게 너무나 정보가 부족했다.
 
지성의 창고, 책무덤인 우리 동네의 헌책방으로 나는 퇴근 후 발길을 옮겼다. 상가 건물의 지하에 있는 이 책방의 사장은 40대 정도의 아저씨로 항상 왼쪽 귀에 솜을 넣고 계셨다. 염증이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될 뿐, 전축에 레코드 판을 걸고 교향곡을 항상 틀으며 자신만의 독서에 빠져 계셨기에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더욱이 정리도 안 되고 무리지어 있는 책들 속에서 내가 원하는 책이 있냐고 물으면
 
'한 번 찾아봐, 있을 수도 있어'
 
란 희망적인 멘트만 날릴 뿐 찾아 줄 생각도 안 하고 오로지 혼자 독서에 매달리셨다.
 
그 실날 같은 멘트에 온 희망을 걸고 뒤지고 뒤지고 또 뒤지고  몇 시간이고 뒤진 끝에 구석 책장의 맨 끝에 찾기도 힘들게 가로로 눕혀 있는 이 책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이란!! 
 
     
독서할 수 있는 능력은 나의 내부에 있던 잠재적인 열망, 즉 정신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이 되려는 열망을 일깨워 주었다. - 말콤X   
    

다른 그 누구의 자서전보다 내 자신에 가까운 그의 인생을 읽었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자서전의 머리말을 쓴 뉴욕 타임즈의 기자 M.S 핸들러는 그의 인상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아내는 말콤이 떠난 뒤에 조용히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뭐랄까요, 검은 표범과 차를 마시는 기분이었어요.'
나는 그 표현에 움찔 놀랐다. 검은 표범은 동물계의 귀족이다. 그 짐승은 아름답다. 그리고 위험하다. 한 인간으로서, 말콤 엑스는 타고난 귀족과 같은 육체적 거동과 내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 방황하던 내 인생에 쳐 들어온 말콤X는 검은 표범 그 자체였다. 깊은 어둠 속에서 눈이 불꽃처럼 빛나며 나를 주시하고 내 안을 파헤쳐 주었다.

말콤X의 아버지는 마커스 가비란 흑인 민족주의자를 따르는 열성적인 신자이자 침례교 목사였다. 가비는 훅인종 순수성의 가치를 치켜들고, 흑인 대중은 선조의 고국인 아프리카로 돌아가라는 가르침을 전파하고 있었다. 이것은 후에 말콤X가 이슬람교를 믿으며 흑인 민족주의자로 간 것이 아버지의 이런 발자취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백인극우자에 의해 아버지는 살해당했고,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경제고 파탄으로 정신병에 걸려 말콤X를 비롯한 형제들은 나뉘어 키워지게 된다.

말콤X의 어머니가 가난 속에서도 오로지 남은 것은 자존심이었기에, 정부에서 나누어 주는 구호 물자도 거부하고 싸워가다 미쳐가는 과정을 보며 우리 부모님이 가난 속에서 자존심이 깨질 때 얼마나 괴로워 하셨는지를 공감했다.

우리 아버지는 일용직 근로자로, 페인트 미장이다. 빌라나 조그만 상가 외벽에 페인트 칠을 해 주고 버는 돈으로 나를 키우셨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한테 돈을 조금 얻을 일이 있어 일 하는 곳으로 찾아 간 적이 있는 데 빌라 옥상 옆 계단에 쭈그려 앉아서 볶음밥을 드시는 모습을 보고 차마 돈 얘기를 하지 못하고 돌아 온 기억이 있다.

말콤X의 어머니가 경제적 고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존심이 상처 받어 미쳐 가버린 것처럼 나의 아버지는 IMF시절 페인트 미장이 일이 끊겨 미친듯이 괴로워 하셨다. 트럭 운전사로 일용직 인력도 하시며 기를 쓰고 버티던 아버지가 결국에는 돈이 끊겨 집에 전기도 끊겼을 때 나는 철이 없어 아버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었다.

아버지의 자존심을 짓밟는 말이 었기에 울면서 아버지는 내 등을 때리셨다. 지금도 말콤X의 부모님 부분을 읽을 때는 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결국 보다 못한 어머니는 식당 일을 나가시기 시작했고, 일을 구하지도 못하시고 집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가 멍한 눈으로 그리고 미안한 눈으로 어머니의 일 가는 모습을 배웅했던 그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내가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당신의 자존심과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콤x의 저 글처럼 나 역시 나중에 깨달았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 후 말콤X의 엄청난 방황이 시작된다. 그 방황의 시점이 되는 사건은 이러하다.
 
그는 어머니와 헤어진 후 백인 가족에게 보호 입양이 된다. 그 가족들 속에서 학교를 다니며 그는 반장도 하게 되고, 공부에 있어서도 훌륭한 성적을 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좋아했던 역사 공부를 가르치던 선생이 그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는(말콤X) 그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 중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의 한 사람이고 학교에서도 가장 우수한 축에 들었지만, 그의 눈에 비친 나의 장래는 거의 모든 백인들이 흑인을 보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네 처지에서' 장래를 찾아라는 것이었다.    

변호사가 돼 보겠다는 말콤X에게 역사 선생은 웃으며 네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일, 그러니까 손재주가 좋으니 목수나 되라고 말한 것이었다. 말콤X 보다 공부도 못하는 백인 학생들에게는 더 좋은 목표를 가지라고 격려를 하고는 그에게 만은 '네 처지에서' 어울릴 일이나 찾아 보라고 한 것이다! 

 고3 때 수능 시험을 보겠다는 결기 어린 내 대답에 수능 원서를 줘야 했던 내 담임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수능 시험을 보고 성적을 보면 자살할 수도 있으니 원서 줄 수가 없는 걸

아주 화사하게 웃으며 말이다. 

말콤X는 그 역사 선생이 자신에게 목수가 되라고 했던 것은 악의가 없었고, 호의에서 나온 말이지만 다만 그것이 미국 백인으로서의 그의 본성이었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나 역시 그 담임이 악의가 없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 담임은 역사 선생처럼 '네 처지에서' 어울릴 일을 찾아서 공장을 나가든 기술을 배우러 어디 회사로 취직하라고 나에게 권유했던 것이다. 다만 그것이 한국 교사로서의 그의 본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는 나라는 인간은 나 자신이 원하는 인물이 될 정도로 똑똑한 인간은 못 되는 모양이었다. 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속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말콤X는 그 이후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위에 쓴 것처럼 학교를 그만 둔 그는 구두닦이로, 소다수 판매원으로, 기차 샌드위치 판매원으로...

결국 그는 뉴욕의 할렘에 거처를 정하고 술집 웨이터로 일을 시작해 대마초도 팔고, 사창가에서도 살며 노름과 마약에 쩔어 살아가기 시작했다. 허슬러라는 사기꾼의 인생을 살아 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 역시 술 집 웨이터, 편의점 직원, 아파트 공사 현장 잡부 등 알바와 알바 그렇게 끊임 없이 일을 하며 알바하다가 천국 갈 것 같은 알바천국의 인생을 보냈다. 그렇게 번 돈으로 PC방가서 게임이나 하는 등, 대학 휴학 후의 인생은 말콤X 보다는 격이 낮은 내 인생의 사기꾼(허슬러)같은 삶을 살았다. 
 

이 시절 내내 나는 정말로 죽어 있었다. 정신적으로 죽은 상태였다. 다만 그런 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그는 결국 자신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백인 여자 자매와 짜고 흑인 둘을 합쳐 조를 편성해 도둑질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범죄를 눈치 챈 경찰들에 의해 체포되고 만다.

그는 도둑질보다도 흑인이 백인 여자와 놀아났다는 사실에 격분한 사회에 의해 10년 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이 된다.

교도서에 수감된 말콤X가 획기적인 인간 변혁을 하는 부분들...책에서 제10장 사탄, 제11장 구원, 제12장 구원자인데 이 부분이 내가 비디오 방의 알바를 할 때나 비 오는 새벽 무력감에 젖어 지쳐 있는 지금의 이 때나 대 감동을 하며 온 정신을 떨치고 일어나게 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잠깐 숨을 돌려 딴 소리를 하자면 이 리뷰는 무력감에 빠진 6월 말부터 차근 차근 쓰여져 지금까지 쓰고 있다. 그 동안에 말콤X가 감옥에서 겪었던 대 사상의 변화처럼 나 역시 굉장한 사상의 변화가 일어났다.

7월 초에는 그러니까 7월 3일 비가 오던 일요일 날 나는 근무가 아니고 쉬는 날 이었는데도 대신 근무를 서 달라는 요청을 받아 근무를 이틀 연속하고 있었다.

마포 걸래가 냄새가 나니 치워달라는 주민들의 요청에 별 생각 없이 말콤X에 대한 이어질 리뷰에 대해 구상을 하며 지하실로 마대를 깃발처럼 높이 든 채 들고 가다가 유리등을 깨 버렸다.

이 등은 우리 사무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산이 확실한 유리등이다. 등의 밑부분을 정확히 가격해 깨 먹어 버렸기에 밑에 만 구멍이 휭하니 나서 아주 날카롭게 유리등이 붙어 있었다. 이걸 보면 사무실 사람들도 주민들도 나를 죽일려고 할 것이 확실하기에 들고 있던 마대로 유리등의 남은 부분을 깨다가 그 파편이 정확히 내 얼굴로 떨어졌다.

무슨 생각으로 내가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멍청한 내 행동 때문에 날카로운 유리 파편은 코와 입술 사이의 인중을 베고 지나갔다.

피가 나기 시작하더니 무슨 손이고 얼굴이고 피범벅이 되자, 난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 됐다.

손으로 피가 나는 인중을 움켜잡고 피 귀신이 된 채 경비 반장님께로 뛰어 갔다. 쏟아지는 비 덕분에 지하실에서 경비 반장님이 계신 초소까지 가는 100m 정도의 거리 동안 나의 옷, 얼굴은 모두 피로 빨갛게 물들었고, 지나가던 주민들은 기겁을 하고 놀라고, 난 인중을 움켜쥐고 뛰고, 놀이터에서 우산을 들고 나와 뛰어 놀던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고 평온하고 조용한 일요일 오후를 난 오직 이 한 몸으로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일요일 오후 시원하게 수박을 드시며 휴식을 취한 던 경비 반장님은 먹던 수박을 입으로 줄줄 흘리시며 너무 놀라서 '피! 피!'라고만 외치시며 눈을 희번덕 거리시다가 유일하게 차량을 가지신 경비 2초소에 도움을 요청해 나를 싣고 병원으로 달리셨다.

일반 병원에서 간단하게 지혈을 한 후 얼굴에 흉터가 남을 수 있으니 자신들은 꼬맬 수 없다고 성형외과를 가라는 얘기에 나를 또 싣고 이동!

결국 O시의 유일하게 문을 연 성형외과를 찾아냈다. 거기서 무사히 봉합 수술을 마쳤는데 무려 13바늘을 꼬맸다. 코와 입술 사이의 인중에 가로로 줄을 쭉 긋는다면 내 상처는 완벽한 가로가 아니라 조금 비스듬하게 찢어졌다.

완전 얼굴에 제대로 스크래치를 한 셈이다. 내 덕분에 쉬고 계시던 소장님, 과장님 모두 모두 사무실로 오셨고, 난 조퇴 처리를 받아 집으로 오게 됐다. 3일 휴가도 덤으로 받고 말이다.

그 때 읽고 있던 부분이 말콤X의 감옥 부분이었다.

이틀 뒤 소독을 하기 위해 다시 찾은 성형외과에 가서 내 이름을 대고 접수를 시킨 후 손님들을 위한 소파에 잠시 앉아 있자 이층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별 신경도 안 쓰고 상처 부위에 붙인 반창고가 콧구멍의 반을 덮을 정도로 두툼해 오늘은 제발 거즈 좀 조금 덜 쓰고 반창고를 붙여달라고 말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층에서 내려 온 사람은 여성이었는데 분홍색 반팔 셔츠, 분홍색 긴 바지를 입고 머리카락이 등 중앙까지 올 정도의 길이 였는데 포니테일 스타일로 깔끔하게 묶여 있었다.

뒤에서 보니 몸매도 호리 호리해 얼굴도 꽤나 이쁘겠구나 상상을 하던 중, 그 여자 간호사가 뒤를 돌아 나를 보는데 그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비디오 방 다닐 시절 제일 좋아했던 외국 여 배우는 얘슐리 쥬드였다. <키스 더 걸>에 나온 그녀에게 홀딱 반 해 <더블 크라임>도 그렇고 얼마나 돌려 봤는지 테이프가 늘어날 정도 였으니 말이다.

근데 이 간호사 얘슐리 쥬드와 무척이나 흡사했다. 근데 웃긴 건 이 여 간호사의 첫 대사였다.

'루쉰P! 너, 나 기억안나?'

이런 예의를 밥 말아 먹었나, 왜 반말인가. 그리고 누구인가 내 인생에 얘슐리 쥬드 닮은 여성을 알았던 기억은 없다.

누구신지 죄송하다고 머뭇거리는 나에게 그녀가 말한 한 마디의 단어는 그녀가 누구인지를 순식간에 생각나게 만들었다.

'곰돌이 팬티! 나야!'

곰돌이 팬티...잊지 못한다. 이 단어...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즐거웠던 그 어느 날, 나는 선생님이 쓰고 계시는 칠판을 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칠판에 조조와 손권 그리고 한 명의 이름은 쓰지 않으신 채 삼국지에 유명한 이 사람의 이름을 맞춰보라고 하셨다. 의외로 책을 읽지 않은 반에 있었던 것인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근데 나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이미 1년 전에 나를 훌륭한 인물로 키우고 싶었던 작은 외삼촌에 의해 삼국지 강의를 듣고 책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외삼촌은 그 때 당시 운동권 과격파 학생이었고, 데모를 하다가 상처도 많이 입고 다니시던 멋쟁이셨다. 물론 지금은 배 나온 중년이지만 말이다. 나에게 삼국지 강의와 책을 읽게 하신 후 백골 부대로 원해서 갔는지 끌려서 갔는지 군 입대를 하셨는데 작은 외삼촌이 입대하는 날, 관우가 죽어 너무 열 받아 삼국지 책을 집어 던졌던 그런 마음으로 서럽게 울었다.

그런 단련을 받은 나는 답을 알기에 속으로 '유비인데, 유비야!' 그러고 있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손을 들지 못하고 있었을 때 선생님께서는 맞추는 사람에게는 한 달 청소 당번을 빼주겠다는 빅딜을 제안하셨고,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손을 들고 유비라고 맞췄다.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잔머리는 빨랐다.

알면서도 손을 늦게 들었으니 청소 당번은 무효라고 선생님은 하셨고, 맨날 웃기는 얘기만 하고 떠들던 내가 답을 맞춘 것에 감탄을 하던 아이들은 선생님께 야유를 했다. 결국 오호대장군을 맞추면 청소 당번 면제의 공약을 지키겠다는 선생님의 말에 난 다시 그 답을 맞췄다.

그 후로 아이들에게는 삼국지의 전문가라는 칭호를 얻으며 난 꽤나 인기가 올라갔다. 그러던 어느 날, 삼국지를 읽은 아이들도 서서히 생겨났고 누가 제일 멋지냐는 유치한 토론에서 난 '상산의 조자룡이 최고이다'란 지론을 펼쳤고 반발하는 아이들을 무마시키고자 나름 생각한 유치한 논리로 아이들을 설득시켰다. 그리고 넘치는 자신감에 '상산의 조자룡'과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까지 떠 벌렸다.

나의 논리에 진 녀석들은 어떻게든 나를 이기고자 며칠 뒤 너가 상산의 조자룡 임을 증명할 일을 가져왔다며 제안한 일은 바로 어떤 여자아이의 치마를 들추는 아이스께끼였다. 지금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이스께끼와 조자룡의 용맹의 증명과의 연관성이 전혀 없는데 왜 그 때는 그게 그렇게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 여자아이는 같은 반 친구로서 소문이 자자한 친구였다. 키도 남학생들에 비해 머리 하나는 컸고, 더욱이 두각을 보이는 분야는 싸움이었다.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싸움을 하면 이 여자아이는 주먹을 꽉 말아지고 제대로 원, 투 펀치를 날렸다.

여자아이는 흔히 머리를 잡거나, 아니면 울거나 해서 싸움을 못하는 종족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녀석 만큼은 주먹을 쥐고 제대로 싸우는 파이터 였다.

아이스께끼는 반 여자아이들은 모두 당했지만 오로지 이 녀석만은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다. 알고 보니 이 녀석의 아버님은 우슈(쿵후) 도장 관장님으로 그 도장의 이름은 백호관! 게다가 위로 오빠가 둘이라 파이터로서 자질은 무한히 갖춘 셈이었다.

친구들의 제안을 받은 나는 이대로 물러서면 조자룡의 용맹을 증명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흡사 장판교에서 아두를 구하고 조조의 대군을 돌파하는 그런 심정으로 약속을 했다.

약속한 쉬는 시간 자기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이 녀석의 뒤로 접근을 했다. 아이스께끼를 당하는 역사가 없던 이 녀석은 거의 치마를 입고 다녔다. 무릎까지 오는 노란색 치마 그렇게 세월이 지났어도  그 치마의 색깔은 잊지를 못한다.

난 아주 과감하게 그 치마로 위로 한껏 올리며 아이들이 부탁한 명대사!

'나는 상산의 조자룡이다!'

를 크게 외치자 마자 뒤를 돌아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달리지도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내 뒤를 낚아 챘고 뒤를 돌아본 나는 아이스께끼를 당한 그 녀석이 얼굴이 시뻘건 진 채 씩씩 거리며 나를 붙잡았암을 눈치챘다. 마치 관운장 같은 대추빛 얼굴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 어떻게 당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그 녀석이 내 머리는 왼쪽으로 치고 다리는 걸어 오른쪽으로 치는 기술로 한 번에 복도 바닥에 고꾸라 졌고, 완전 넉다운 돼 바닥에서 그 녀석의 발길질과 주먹으로 순식간에 묵사발이 됐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인생에서 그렇게 심한 게 맞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얻어 터지면서도 상산의 조자룡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아이들을 향해 외쳤던 내 대사!

'소연이(가명)는 곰돌이 팬티다!'

소연이(지금부터 아이스께끼를 당한 이 친구의 이름으로 대신함)는 내가 아이스께끼를 했을 때 하얀색 팬티에 엉덩이 쪽에 곰돌이가 그려진 팬티를 입고 있었다.

가뜩이나 이성을 상실한 소연이는 내 외침에 완전 돌아버려!

'이 자식! 죽여 버릴꺼야~~!!'

라고 괴성을 지르며 나를 더욱 때렸다. 이 엄청난 사태에 달려 온 선생님들이 아니었으면 난 아마 거기서 죽었을 것이다. 선생님이 소연이의 광분을 말리지를 못 해 억지로 들고 가셨을 때까지 난 바닥에서 몸을 웅크린 채 일어나지를 못 했다.

눈은 멍 들어서 밤탱이가 됐고, 옷은 다 찢어져 반 거지가 돼 있었다.

결국 우리는 격리된 채, 부모님까지 오시게 됐고, 부모님들과 합석해 선생님 앞에서 취조를 받게 됐다. 나를 때릴 때 그 격렬한 것과는 반대로 선생님과 부모님들 앞에서 소연이는 꺼이 꺼이 구슬프게 여성처럼 울었고, 난 눈은 멍들고, 코에는 휴지를 박은 채 윗 옷을 찢어져 타잔처럼 한 쪽 소매에만 손을 넣은 채 그러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파악한 부모님은 정중한 사과를 하였고, 집에 끌려간 난 또 맞았다.

그 이후 소연이는 나를 보면 괴롭히기로 작정하고 별의 별 심부름을 다 시켰다. 난 등교 시간 보다 더 일찍 소연이의 집 앞에 가서 얘가 나오면 소연이의 신발 주머니, 책가방을 들고 뒤를 졸졸 쫓아 다녔고, 학교 끝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운 정도 쌓인다고 나랑 친해진 소연이는 재미없는 농담을 나에게 던지며 웃으라고 강요도 했다. 그렇게 6학년 졸업할 때까지 난 소연이의 심부름을 했다.

6학년 졸업식 날 소연이를 안 봐도 된다는 생각에 어찌나 기쁘던지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후 중학교 3학년 정도가 됐을 때 소연이가 나를 찾는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전화도 피하고 학교 앞에서 나를 기다린다는 소연이의 얘기를 전해 들은 나는 담을 넘어 도망칠 정도로 이 녀석과의 만남을 극구 피하고 도망다녔었다.

근데 말이다. 성형외과에 간호사로 소연이가 내 눈 앞에 있는 것이다. 그것도 얘슐리 쥬드를 닮은 채로 말이다. 여성은 시간이 지나면 못 알아 본다는 사실이 정말 맞다.

소독을 하고 소연이에게 반 강제적으로 연락처를 주고, 며칠 뒤 불려 나가 밥을 먹고 차도 마시고 15년 간의 지난 시간에 대해 수고 많은 얘기를 했다.

물론 말콤X에 대한 얘기도 해 주고 말이다.

근데 의외로 이 녀석 많이 바뀌었다. 말콤X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서

"세상이 어두우면 스스로 태양이 돼서 비추는거지, 말콤X처럼 말이야."

아버님은 도장을 그만두시고 부동산을 하시고, 오빠들도 모두 자기 사업들을 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소연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간호학과로 졸업해 지금 이 곳이 3번째 직장이라고 한다. 여전히 운동은 하고 있고 말이다. -.-

난 나에 대해서도 다 말해 줬다.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것도 말이다. 변변치 않은 자신에 대해서도 말이다.

근데 다 듣고 나서 소연이는 내가 보여준 말콤X란 책에서 나온 이 구절을 나보고 읽어보라고 했다.  

말콤, 내가 너에게서 좋아하는 게 한 가지 있다. 너는 형편없는 애지만 넌 그걸 숨기려 들지 않아, 넌 위선자가 아니야. 

말콤X에 대한 소개를 잘 해 볼려고 했는데 마무리가 소연이를 소개하는 것으로 됐다. 

근데 문제는 이 녀석 내가 쉬는 날마다 불러낸 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 간 기분이다.  

무력감이나 공부의 패배감 따위는 어디론가 멀리 떠나보낸지 오래고 소연이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할 지가 얼굴의 상처보다 더 큰 고민이다. -.- 어쩌죠?? 

 

 


댓글(5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2011-09-01 14: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1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너구리들 2024-05-20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 문의 드립니다.
혹시 소개해주신 책 완역본 맞나요.?

루쉰P 2024-06-25 15:55   좋아요 0 | URL
완역본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1970년대 창비에서 나온 책이었거든요 ^^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