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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의 마지막 반전이 기가 막혔다고 한다면 양철댁님의 책 선택 능력의 기막힌 반전에는 숨이 막혔다고 할까? 양철댁님의 책 선택 능력이 혀를 내 둘르며 읽었다.
<통곡>은 내가 읽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약속된 장소에서>의 내용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이 소설은 분명 그 소재는 일본을 뒤 흔들었던 유아연쇄살인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 안에 있는 핵심은 신흥종교에 대한 문제로 걸고 넘어진다. 그리고 이 책은 1993년에 완성이 됐다.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 책은 1998년 4월에 연재를 시작 10월에 마무리가 됐다. 마치 서로가 짝을 맞추듯이 누쿠이 도쿠로가 쓴 대로 신흥종교의 특징에 대해 <약속된 장소에서>의 옴진리교 신자들은 그 사실성을 증명한다.
그 기막힌 맞춤들을 보며 양철댁님의 책에 대한 선택 포스가 엄청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양철댁님과 더불어 나에게 사회파 추리 소설 입문을 도운 스승이 한 명 있다. 그 분과의 만남은 2009년 여름 무렵이었다. 나는 그 때 당시 변호사를 대상으로 하던 잡지사 기자로 1년 동안 일을 하던 중 잡지사가 폐간이 됐고, 거기다가 내가 생각한 기자의 일과는 틀리게 그 이면에 감춰진 비열한 실상에 대해 실망하고 있었던 때였다. 잡지사가 망함과 더불어 온 몸을 움직이며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오라는 잡지사들을 마다 하고 들어간 곳이 바로 헌책방이었다.
책을 좋아하기에 헌책방도 괜찮다 싶었고 또 이곳은 규모가 커서 인터넷 헌책방 업계에서는 1, 2위를 다퉜기에 이력서를 내고 덜컥 합격을 해버리고 말았다. 10명 정도의 직원과 함께 일하는 이곳에서 나는 그 분과 만나게 됐다.
내가 입사한 후 일주일 뒤 입사 면접을 보고 합격해 첫 출근한 그 분을 만나게 됐다. 처음 인상은 모자를 쓰고 머리는 길게 길러 뒤로 묶은 김태원 스타일에 뚱뚱한 몸매를 커버하기 위해 입은 지나치게 큰 사이즈의 티와 바지, 그리고 몸에 등껍질 처럼 쫙 붙어 있는 가방, 마치 닌자 거북이와 같다고 할까? 다만 안경 뒤에 숨겨진 선량한 눈빛을 보며 이 분은 인생의 탈락자거나 은둔형 외톨이 둘 중 하나로 짐작을 했다.
그 분도 나도 서로 독특한 외모에 끌렸는지 금방 친해졌고, 또 섬뜩할 정도의 헌책방 노동 강도 덕분에 우리는 전우애도 금방 쌓이게 됐다.
이 헌책방의 사장은 하루에 두 세번씩 고물상에 가서 책을 가져왔다. 한 번에 갈 때마다 5백여권씩을 가져오는 데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씩 가져 올 때 마다 종류별로 분류를 하고 각기 창고로 그 책들을 나르고 하는 일만 해도 진이 다 빠졌다. 더욱이 이 책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팔려고 택배로 들어오는 책 양도 몇 백권씩 되다 보니 그 책들도 다 분류, 정리 또 뒤돌아 서서 정리! 정말 정리란 무엇인가 그 극한의 끝을 봐야 했다.
예로 우리가 주차장 창고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은 어떤 건물의 주차장을 빌린 곳이었다. 그 곳에 책을 쌓고 쌓고 또 쌓다보니 나중에는 거짓말이 아니라 천정까지 책을 쌓아 올리게 되는 기적적인 모습까지 연출을 했다.
암튼 이런 노동 속에서 120여만원을 받으며 일을 하는 30살인 나와 이 분은 책 쌓다가 피곤하면 서로 책 이야기를 하며 그 피곤함을 달래곤 했다.
이 분은 나보다 1살 많으신 형이었다. 원래 경상남도 k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그런데 20살이 됐을 때 목사였던 아버지가 신학대를 가지 않으면 대학 등록금을 내주지 않게 다는 얘기에 자신은 무신론자라며 크게 반발하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해 여러 알바를 전전하며 이곳 직장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끔찍히도 기독교를 싫어하던 이 형은 자신의 꿈은 판타지 작가라며 서울로 상경해 그 때까지 11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무한한 창조의 글쓰기를 나날이 거듭하고 있었다. 이쪽 계통의 작가들은 판타지 소설이 올려지는 유명 사이트에 자신의 글을 올리면 조회수를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며 그렇게 돼서 출판해서 작가로서 길을 걷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것이 아니면 간혹가다 있는 문학상에 도전하는 것도 작가로서 입신양명하는 길 중 하나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새 없이 일을 하고 이 형은 자취하는 곳 근처의 24시간 커피숍에 가서 가장 싼 커피를 한 잔 사서 노트북으로 하염없이 글을 써 내려갔다. 그 생활은 11년 간 해 온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반쯤 벗겨진 앞 머리와 뚱뚱한 몸매, 그리고 31살이란 나이를 가진 이 형은 판타지 작가로 출판사에서 선택해 주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이고 차라리 좀 더 나은 직장이라도 잡아서 생활하는 것이 더 현실성 있다고 판단했었다. 그래서 지금의 삶은 너무 판타지 적이야 라고 노상 이 형을 잡아 놓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이 형은 씩 웃으며
"인생은 고통이라 불리는 환상과 희망이라 불리는 환상의 연속이야."
라며 뜻도 의미도 파악할 수 없는 말을 하며 혼자 껄껄대며 호탕하게 웃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설득하고 그 형은 껄껄대고 웃고 하며 하루 하루 생활을 보내던 중 난 어느 날 꿈을 꾸게 됐다.
푸르른 자그마한 녹색 동산 정상에 그 형이 찬란한 햇빛을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내가 그 동산에 올라가서 형을 부르자 그는 뒤돌아 보며 나에게
"루쉰P, 나 합격했어. 이제 나 작가의 길로 갈 수 있어. 이제 이 헌책방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돼"
"형, 정말이야. 너무 너무 축하해" 나는 그 형의 성공 소식에 하염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성공해서 가는 이 형에게 무언가 선물을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 손에 무언가가 쥐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형, 내가 해줄 것은 없고 성공한 기념으로 주는 선물이야."
"그래, 정말 고맙다." 형은 감격에 떨며 내가 주는 선물을 소중하게 받았다.
근데 내가 준 선물은 그 옛날 세상을 제패했던 전설의 게임기 패밀리였다.
속으로 '뭐지? 왜 이런 선물을?' 하며 생각하던 중 꿈에서 깼다.
꿈에서 깨어 출근한 날 난 형에게 가자 마자 패밀리 게임기를 선물로 줬다는 말만 쏙 뺀 채 형이 작가로 합격하는 꿈을 꿨다고 하자 이 형은 크게 놀랐다. 자신이 나에게 말은 하지 않았는데 한 유명 출판사에서 판타지 작가를 뽑는 문학상을 내걸었는데 한 달 동안 준비를 해서 작품을 출품을 했고 그 발표날이 내가 꿈 얘기를 한 바로 그 날 저녁이었던 것이다.
꿈을 얘기한 나도 크게 놀랐고, 내 꿈을 들은 그 형은 더욱 놀라워 했다. 이것은 신의 계시이지 않게냐라며 무신론자 입장 따위는 벗어던지고 눈을 뒤집어 까며 얘기하는 형을 보며 형의 합격은 이제 된 것이며 그 덕은 다 내 예지몽 덕분이다라며 난 나의 직감을 자랑하며 그러니 점심을 고기를 사라는 논리적 구조로 그 형을 압박했다.
결국 완전 기분 업된 형은 나에게 돼지갈비를 사 주었고 우리는 점심에 무리하게 고기를 먹으며 상금은 어떻게 써야 할 것인지, 그리고 언제 이 직장을 그만두고 나가야 할 지, 나갈 때는 어떻게 말하고 나가야 폼도 나고 멋있을지를 한참을 토론했다.
그렇게 신나게 기분을 내고 숨을 죽이며 인터넷 발표를 기다리던 저녁, 발표된 문학상 합격자 명단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수 십번을 보아도 그 형의 이름은 없었다. 형은 모니터를 안고 그야말로 <통곡>을 해 버렸다.
왜 저러냐는 직장 동료들의 말에 오늘 좀 기분이 우울한 것 같다며 대충 둘러대고 저 형이 정신 차리면 무슨 일을 당할 지 몰라 황급한 마음으로 나는 집으로 대피를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형은 말 수가 줄어 들었고 더욱더 틈만 나면 책을 읽고 노트북에 무언가를 꼼꼼히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항상 '대마교사전'이라든가 '판타지무기열전' 같은 책만 읽던 형이 그런 책이 아니라 다른 책들을 읽는 것이 눈에 띄었다.
궁금한 것은 못 참고 지나가는 지랄 같은 성격 탓에 형에게 무슨 책을 읽냐고 넌지시 물어보자 아주 순박하고 선량한 미소로 웃으며
"너를 어떻게 죽여야 완전 범죄로 죽일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읽고 있어."
섬뜩한 대답만 하고 껄껄 웃으며 다시 책을 읽는 형을 보며 뭐랄까 뒤통수가 차가워지는 느낌에 그 형이 읽는 책들의 제목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도 그 형 몰래 구입해 읽기를 시작했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화차', '이유', 마쓰모토 세이초 '점과 선', 모리무라 세이치 '인간의 증명' 등 그 형과 나는 서로 질세라 이 책들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그 내용은 사회파 추리 소설로서 완벽한 사람을 죽이기 위한 트릭이 존재하는 그런 류의 소설은 아니었지만 형의 진심을 아는 나로서는 읽으면서도 섬뜩하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였다.
하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되돌리는 힘을 가졌다고 할까? 그렇게 나를 죽이기 위해 섬뜩한 포스를 내뿜던 형도 다시 쏟아지는 노동 속에서 내가 없으면 그 형도 힘들고, 이 형이 없으면 내가 힘들어 지다는 원리를 깨우치고 우리는 예전 관계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서로 사회파 추리 소설에 대한 지식이 쌓여 졌기에 또 그 쪽 분야에 대한 서로의 이야기를 싹 틔우며 노동의 힘듦을 이겨내 갔다.
형은 나에게 사회파 추리 소설과 판타지를 결합한 대 작품을 써 보겠다는 결의를 했고, 나 역시 내가 한 짓이 있기에 무조건 찬성을 하며 형은 반드시 작가의 혼을 지녔기에 그런 혼이 담긴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 극찬에 극찬을 거듭했다.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은 그 주제가 몹시나 무겁다. 유아연쇄살인사건, 경찰 내부의 승진에 대한 불합리성, 신흥 종교에 위험성 등 탄탄한 소재를 그물망처럼 만들어 읽는 독자를 푹 빠져들게 한다. 미야베 미유키 외에 다른 사회파 추리 작가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나에게 양철댁님이 좋은 선물을 해 주셨다.
어찌보면 소설의 리뷰를 써야 하는데 깊이 있게 쓰지는 못했다. 왠지 건드리면 그 안에 있는 내용들에 대해 스포일러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읽어 보면 후회하지 않을 추리 소설임에는 확실하다.
그 형은 나와 동시에 헌책방을 그만두고 결국 두 세달 뒤에 정말 문학상에 합격해 지금은 1권당 100만원의 계약으로 책을 출판하고 있다. 이제는 1권당 130여 만원을 받는 전업 작가로 업 그레이드를 했다는 소식도 며칠 전에 들었다. 새로운 판타지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며 나와 대화했던 사회파 추리 소설의 기법을 이용한 판타지 책이 유용하다며 나를 극찬해 주고 있다.
박카스와 포카리스웨트를 섞은 음료가 자신의 창조의 샘을 자극하는 음료라고 하며 사용 비법을 말하는 형을 보며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은 우울하게 끝나지만 이 형의 <통곡>은 웃으며 가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다.
암튼 누쿠이 도쿠로 <통곡> 간만에 좋은 책을 읽었다.
양철댁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어머님 병간호 잘 하시고 힘 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