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3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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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생에게도 봄은 역시 봄이었다. 공고를 졸업해 전철타고 대학을 가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간직한 채 시작한 재수는 전 수능 점수보다 10점이 오르는 기적에 가까운 일을 만들며 대 실패로 끝났다. 그래도 나는 반드시 대학을 가야한다는 종교적 광신에 가까운 마음으로 삼수를 시작을 결심하고 학원을 들어가기 전에 왜 내가 재수에 실패를 했는지 곰곰히 분석을 했다. 

그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삼수 생활의 교리를 만들어 냈다. 

첫째, 학원에 가서는 아무하고도 대화를 하지 않으며, 밥도 혼자 먹으며 고독의 벗으로 공부에 매진한다.  

둘째, 사람들과의 대화를 단절하기 위해 머리를 노랗게 염색해 가까이 사귀면 좋을 것 없는 날라리의 이미지를 풍긴다. 

셋째, 부모님의 죽음, 천재지변, 자신의 죽음 이 세 가지 절대 조건 없이는 학원에서 절대 나오지 않는다. 

난 이 교리를 가슴에 품은 채 삼수 생활을 시작했다.  

노원에 위치한 삼수 학원은 아침 9시에 시작해 오후 2시까지는 전 과목을 월부터 토요일까지 일정에 맞쳐 수업을 했고 밤 10시까지는 개인 자율학습의 시간을 주었다. 학원은 총 세 분류로 나누어 반을 구성했다. 작년 수능 점수에 맞추어 저급반, 중간반, 우수반이었다.   

저급반은 학생 본인도 의욕이 없고, 부모님이 보내니 그냥 시간 때우러 학원을 오는 학생이 대부분 이었고, 더욱이 학원 역시 그들에게는 돈만 받으면 되기에 수업을 듣던, 공부를 하던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수반의 학생들로 그들이 어느 대학을 가냐에 따라 학원의 평판을 높일 수 있는 기회였기에 그들에게만 모든 정성을 다 쏟았다. 

나는 당연히 저급반에 소속이 됐다. 수업 시간에도 떠들고 자율 학습 시간에는 더 떠드는 학생들 속에서 나는 교리 대로 그 누구와도 인사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만 밥을 먹는 생활을 지속했다. 

그 휴유증은 몇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타났다. 정신병원에 수용된 환자처럼 사람들이 있는 데도 혼자 밥 먹고 사소한 문장, 단어 하나도 말하지 않던 나는 서로 인사를 하며 웃는 학생들을 보며 

'나도 인사하고 싶어! 나도 너희들하고 웃으며 인사하고 싶어 죽겠다고!!' 

마음 속으로 수 백번을 외치기도 하고,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 준다면 그에게 내 영혼을 팔겠다는 결심까지 했었다. 

하지만 교리의 영향은 너무나 강력해 그 누구도 내 옆에 앉지도 않았고 말도 단 한 번도 걸지 않았다. 고독의 벗은 이미 넘어서서 고독의 스승이 될 정도까지 이르자, 나는 연습장에 다가  

'루쉰p 안녕?' '응, 반가워' '오늘 날씨 참 좋지' '공부하기엔 너무나 안까운 날이야' 

쓰면서 내가 나에게 묻고 답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돌아버릴 것이라는 위기감과 스스로 만든 교리를 실천하지도 못 하는 나약한 자신을 질책하며 차라리 사람이 아예 없는 곳으로 가면 대화하고 싶은 욕망도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학원은 13층 건물에 3, 4, 5층을 쓰고 있었다. 3층에는 접수처와 교무실, 저급반이 있었고, 4층은 중간반, 5층은 150평 가량의 대 교실과 우수반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곳, 저 곳을 염탐하던 나는 150평의 교실은 대규모 수업이 있는 날이 아니고는 학생들에게 자율학습 공간으로 개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들의 교실에서 공부를 하기에 이 곳에는 사람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난 수업이 끝나면 이 곳으로 옮겨 공부를 시작했다. 밤 10시까지 이 곳에는 우수반 학생만 몇 명이 공부만 하고 있을 뿐, 연습장에 샤프가 쓰이는 사각사각 소리가 들릴 정도로 숨 막힐 듯한 고요햠 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떨어져 있어도 대화를 하고 싶다는 욕망은 주체를 할 수 없었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나랑은 출신이 틀린 사람들이었기에 그 욕망은 조금은 절제를 할 수 있었다. 

난 이 교실의 칠판이 있는 맨 앞으로 가서 왼쪽 구석 창가와 붙어 있는 책상에 거주지를 정하고 공부를 했다. 올라 와서 공부한 지 2주가 된 무렵, 항상 교실에 들어서면 문 바로 옆에 있는 책상에 앉아 있는 여학생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예쁘장한 얼굴에 머리를 틀어 올린 채 앉아 있던 그녀는 내가 들어오면 흘끔흘끔 쳐다 보는 것이 나에게는 느껴졌다. 사람이 들어오니 신경이 쓰여서 그런가 보다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나는 지나 쳤었다. 

어느 햇살 가득한 토요일 오후, 어김 없이 올라와 공부를 시작할려고 했던 나는 워낙 날이 좋았던 탓인지 그 여학생을 빼고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괜히 신경이 쓰이는 기분을 교리로 누르고 내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다가 누군가 쳐다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뒤를 흘끔 돌아 보니 나를 쳐다 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책상으로 숙이는 여햑생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이상해 보이나? 아니면 나랑 둘이 있어서 무서워서 저러나 하는 생각에 교실을 나와 화장실의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 보았다. 

떡지고 헝클어진 머리,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웃는 어떤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티를 입고 턱수염을 깎지도 않은 어떤 구도자가 화장실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완전 이상해! 정말 이상해! 그 학생이 나를 백반번 오해해도 충분하겠어' 

교리도 중요하지만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흉물스러운 모습은 보여 줄 수 없다는 생각에 긴 머리도 단정하게 묶고,  세수도 하고, 편의점에서 면도기를 사와 면도도 한 후 나는 교실로 다시 들어갔다. 여전히 그 여학생은 책상 앞에 코를 박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또 다시 힐끔 거리며 나를 쳐다 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단정하게 했으니 그리 크게 공포감은 안 가지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내 자리에 와서 앉았다. 

딴 짓을 하다 와서 그런지 공부를 되지가 않았고, 그러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무심코 시선을 던졌다. 커플티를 입고 신나게 팔짱끼고 웃고 있는 커플들, 다정스럽게 깔깔 거리며 웃는 여고생들, 그 모습들은 나 완전 행복해라고 자랑질 하는 모습으로 밖엔 보이지 않았다. 

'커플티 입은 커플, 너희들의 사랑이 영원할 것 같나!'라고 커플을 저주하고,  

'흥! 너희들도 지금은 웃지만 좀 있으면 이 지옥문으로 들어와야 할꺼야, 어린 아가씨들 흐흐흐' 라고 여고생들을 저주하고,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 마다 저주에 저주를 거듭하다가 나는 깜빡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아주 달콤한 향기가 코를 확 찌르는 느낌에 잠이 깼다. 내 책상 위에는 향기의 주인공인 껍질이 까진 채 놓여 있는 오렌지와 예쁜 글씨체의 쪽지가 같이 놓여 있었다. 

'너무 피곤해 보여요. 오렌지 먹고 힘 내세요.'  

사람이 너무 그리운 나머지 오렌지를 내가 싸오고 쪽지도 내가 쓴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까지 들었지만 아무리 봐도 여자 글씨체였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사각 사각 소리를 내며 공부를 하고 있는 여학생만 보였다.  

내 안에서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외치는 자아와 사람을 피해 올라 온 너가 그깟 작은 친절에 감동해 교리를 깰 것이냐라는 자아가 서로 치열한 싸움을 했다. 하지만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고, 그것도 예쁜 여성이라니 난 이 기회를 저 버리면 삼수도 망쳐 버릴거야라는 생각이 나를 집어 삼켜 버렸다. 

상당히 어색하고 얼은 표정으로 그 여학생에게 다가가 

'저...감사합니다.' 

'아니에요. 혼자 먹기는 좀 많아서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 눈은 가늘지만 반달로 예쁘게 감겨지고, 하얀 피부의 매우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게다가 날렵한 몸매에 비해 풍만한 가슴이 매우 아름다운 조화를 보이고 있었다. 조용한 교실에 울려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말들을 한 구절, 한 구절 음미를 하며 듣고 답하며 인간과 대화를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온 몸을 떨며 느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교실에 올라 오면 둘이 있을 때가 많아 공부를 하다 지치면 서로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역시나 예상대로 우수반의 엘리트로 우리 학원내 10위 안에 드는 수능 성적의 보유자 였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흥미를 느낀 것은 이나중 탁구부에 이자와와 비슷한 외모를 보고 깜짝 놀랐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가끔 이런 외모도 쓸모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도 나처럼 이나중 탁구부 매니아 였고, 만화는 물론 문학을 무척 좋아했다. 그녀의 집은 엘리트 집안으로 아버지도 의사, 오빠도 의사였다. 자신은 문학가나 만화가를 꿈꾸는데 집에서 반대가 워낙 심해 갈등을 하고 있으며, 집에 압박을 못 이겨 의사가 되기 위해 연세대를 가야 해서 일부러 또 삼수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대학을 골라 갈 수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리고 그런 집안 배경이 있는 것도 부러웠고 말이다. 나는 공고생이며 공부의 무뢰한, 바닦에 가까운 가난한 집에 대해 털어 놓자 그녀는 내게 말했다.

톨스토이가 말한 것이라고 하며, 

"넌 내가 이런 환경에 있는 것을 당연히 부러워 할꺼야.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부족한 것만 채워지면 행복한 줄 알거든. 근데 그러지가 않아 부족한 것을 채워도 또 채워야 할 구멍이 생기고 또 생겨 끊임없이 말이야. 참 웃긴 일이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좀 어둡다고 느꼈지만 난 그 말에 100% 공감을 하지는 못 했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공부만 하는 것도 힘 드니까 같이 문학 책을 읽어 보고 시간이 날 때 얘기해 보는 것은 어떠냐고 권유를 했다. 그리고 나선 하는 말이 

"넌 신비한 사팔뜨기 눈을 가진 까츄샤 같아." 

뭔 소리야? 난 시력 1.5를 자랑하는 매의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게다가 신비한 사팔뜨기는 또 뭐야? 라고 윽박지르고 싶었지만 예의가 아닌 듯해 참았다.

그런 그녀가 권유한 것이 바로 톨스토이의 <부활>이었다. 나는 전철로 집에서 학원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20분 이었다. 난 그 시간을 이용해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까츄샤에 대해 이해를 했다. 

'망할! 사팔뜨기 눈을 가진 창녀가 나라니 도대체 뭔 소리야? 게다가 나는 풍만한 가슴도 가지지 않았다고!' 

어찌됐는 그녀와의 문학 토론은 시작이 됐다. 그녀는 알고 보니 톨스토이주의자라고 할 만큼 톨스토이에 대해서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이 책을 10년 간에 걸쳐 집필했데, 원래는 '꼬니의 수기'란 제목으로 자신의 친구에게 들은 내용을 가지고 쓰다가 집필 중단했는데 다시 쓰게 된 계기는 러시아의 두호보르 교인들의 이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마무리를 했다고 해. 그는 49세 느낀 죽음에 대한 문제로 그 속에 빠져들고 문학도 예술을 위한 문학에서 도덕을 위한 문학으로 탈바꿈을 했어. 그런 그의 후반기 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이 바로 이 소설이야"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듣고 이 책의 배경과 그리고 그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들으며 나 역시 톨스토이에 점차 점차 빠져 들었다. 

귀족적인 타락한 생활에 빠지던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친척 집에 살던 까츄샤를 유혹해 임신을 시킨 후 돈만 쥐어주고 버리게 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법정에서 자신 때문에 타락해 결국은 창녀가 되었고, 살인범의 누명을 쓰게 된 까츄사를 만나게 된다. 그는 영혼의 충격을 받아 그것을 속죄하기 위해,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는 그녀를 따라간다. 그녀를 따라가며 만나게 되는 감옥이라고 하는 사회의 위선, 그리고 인생의 진실을 모르고 살아가는 부유층 사람들의 허식, 죄가 아닌 죄로 감옥에 갇혀 있는 민중들, 그리고 혁명에 대한 불길을 태우며 살아가는 혁명가들을 만나며 네흘류도프는 점차 각성해 가기 시작한다.

퍼즐처럼 잘 짜여진 톨스토이의 소설은 나로 하여금 삼수라는 상황, 괴로운 집 사정을 잊게 만들 정도의 몰입감을 주었다. 더욱이 그녀의 입을 통해 듣는 톨스토이의 <부활>은 삼수의 시름을 잊게 만드는 강한 힘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특히 어른들은 자기 자신은 물론 상대까지 서로 속이고 괴롭히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신성하고 중요하게 여긴 것은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기 위해 저마다 머리를 쥐어짜는 일이었다. - 부활 상 11, 12페이지  
   

 "너는 대학을 왜 가니?"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어, 전철 타고 대학가고 싶어서..." 나는 대답하고도 엄청 민망했다. 

"그래...나도 대학을 왜 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었어.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일 중에 하나가 학벌이고 학력이지 않을까? 나 역시 그런 흐름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말이야. 근데 대학을 안 가겠다고 버티면 난 우리 집에서 비웃음을 당하고 말아. 마치 <부활>의 저 문장처럼 말이야." 

   
 

 자신을 신뢰하면 항상 사람들의 질책을 받지만 타인을 신뢰하면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 부활 상 78페이지

 
   

 이 문장을 읽고 그녀는 말했다. 

" 톨스토이가 쓴 것처럼, 자신을 신뢰하기 보다 타인을 맹종하게 된 까닭은 자신을 신뢰하며 사는 것은 너무 힘들기 때문이야. 좋은 대학을 가겠다고 발악하며 꿈도 포기한 채 공부를 하는 내 모습을 보면 가족들은 기뻐하기만 해.  내가 대학이 아닌 문학가나 만화가가 된다고 하면 우리 가족들은 두려움에 떨어. 근데 나 가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학을 꼭 가야 해." 

그리고 나서 그녀는 자신이 왜 대학을 가려는지를 담담하게 얘기했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하지 못 했다. 집에서는 모두 엘리트들 인데 자신만 공부를 못하는 미운 오리새끼 같아 항상 집에서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런 그녀에게 고 1 때 친하게 지내게 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그녀보다 공부를 잘 하고 활력적인 친구였다. 친구들을 사귀다 보면 그 중에 이 친구만큼 성공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드는 사람이 있는 데 그 친구가 바로 그런 사람 이었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그녀도 공부에 자신감을 가지고 할 수 있었고, 친구는 그녀가 홀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시험 때는 밤을 새며 그녀를 가르쳐 주기도 했었다. 그녀는 그 친구를 평하기를  

   
 

 타인의 사상을 소화해서 그것을 정확히 전달하는 능력을 지닌 덕분에 - 부활 하 607쪽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시험 점수를 금방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집에 초대를 한 적이 없었다. 고 3의 겨울 방학 때 조르고 졸라서 놀라간 친구의 집은 슬레이트로 지은 판자집이었다. 친구는 부끄러워 하며 집에 초대한 친구는 그녀가 처음 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고 3 수능을 마치고 친구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 갔지만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좋은 성적을 냈지만 의대를 보내려고 하는 부모님들에 의해 다시 재수를 하게 됐고 친구와는 연락이 뜸해 지게 됐다. 재수 생활을 하며 칙칙한 생활을 보내던 어느 여름 날 저녁 전철에서 그 친구와 마주치게 됐고, 친구는 그녀에게 연락 좀 하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친구와 헤어진 후 4주 정도 지난 어느 날 그 친구의 어머니로 부터 연락이 왔다. 친구가 죽었다는 전화였다. 그녀는 너무나 큰 충격에 휩싸였고, 친구의 시체가 있는 병원에 부랴 부랴 달려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됐다. 교통사고나 그런 사고로 숨진 것이 아니라 집에서 목을 메서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죽었는지는 아무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친구의 시체를 염하는 모습을 보며 

어째서 그/그녀는 괴로워 했을까? 무엇 때문에 살았던 것일까? 이제는 그것을 깨달았을까? - 부활 하 665페이지

 라는 생각과 슬픔 속에서 울고만 있었다. 더욱이 벽제 화장터에서 친구의 시체를 화장하는데 화장터 옆에는 살아 생전 그 친구가 소유한 물건들을 소각하는 곳도 있었다. 그곳에 친구 어머니를 부축해 갔는데 20년의 인생을 살아온 그 친구의 흔적은 겨우 비닐 봉지로 세 봉지와 수 십권의 책들 뿐이었다. 비닐 봉지가 소각로로 불태워 질 때마다 어머니는 오열을 했고, 불 태워지기 위해 던져지는 책들 속에서 도서관 대여라는  도장이 찍힌 책은 소각로 아저씨가 가져가라 해서 그녀가 챙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중에 한 권이 바로 톨스토이의 <부활>이었다. 결국 그녀는 그 책들을 도서관에 반납하지는 못 했다. 후에 친구의 죽음에서 조금 벗어나 톨스토이의 <부활>을 보던 그녀는 맨 뒷 장에 친구가 살아 생전에 쓴 소감 같은 글을 발견했다.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톨스토이는 말한다. 하지만 그는 매년 90억의 재산을 버는 인간이었다. 나는 그러지 못하다. 항상 쫓겨야 한다. 공부에 돈에 그리고 가난에, 난 노보드보로프 같은 인간이다. 나에겐 죽음 이외에는 아무런 답도 없다." 

이 소감을 언제 썼는지는 모르지만 오로지 그녀에게 떠오르는 것은 전철에서 씁쓸하게 연락 좀 자주 해 달라고 했던 그 친구의 표정이었다. 그 때 내가 친구와 더 대화를 했다면 그 친구의 어둠을 내가 해소 줄 수 있었다면 이란 자책감과 대학 따위를 가기 위해 친구의 고민 따위는 생각도 안 한 자신의 모습에 경멸스러웠다.

창피하고 비열한 일이야, 비열하고 창피한 일이야 - 부활 상 165페이지

 네흘류도프가 읆조린 저 구절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친구의 죽음을 추적하기 위해서라도 <부활>을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읽었다고 한다. 그리곤 조금이나마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신념이란, 동물의 세계나 식물의 세계에서 거름이 되고 곡식이 되고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며 애벌레는 나방이 되고 도토리는 떡갈나무가 되듯 어느 것도 소멸되지 않고 끊임없이 어떤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하는 것처럼 사람도 소멸되지 않고 다만 변형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는 항상 활달하고 명랑한 태도로 죽음을 직시했고, 죽음으로 이끄는 고통을 잘 극복해 왔다. - 부활 하 598페이지

 그녀에게 있어서 친구의 죽음은 <영혼의 정화>를 불러 왔다. 

   
  그가 <영혼의 정화>라고 일컫는 현상은 오랜 시간을 흐르다가 갑자기 찾오는 것으로, 내면 생활의 지체 또는 정체를 인식하고 영혼 속에 쌓여 그 정체의 원인이 된 모든 찌꺼기를 단숨에 깨끗이 씻어 내는 일을 가리키는 것이다. - 부활 상 160 페이지  
   

 그녀는 울먹이며 여기까지 말하고 나에게  

"난 말이야 오래 오래 살거야. 그리고 반드시 의대를 가서 정신과 의사를 할거야. 그리고 나중에 죽어서 그 친구를 만나면 이렇게 말해 줄거야! 너가 포기한 그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리고 난 왜 죽지 않았는지 그 의미를 찾아서 당당하게 그 녀석한테 말하고 따귀를 한 대 후려갈겨 줄거야 못난 년이라고 말이야..." 

비가 내리는 조용한 교실에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또 불꽃이 튀기는 그녀의 눈을 보며 난 왜 무엇 때문에 대학을 가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얼마나 의미 없이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말이다. 그리고 타인이 만들어준 대학이라는 허상을 위해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것은 누구든지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하는 일이 중요하고 훌륭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떤 입장에 놓이든 자신이 하는 일이 중요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인생관을 반드시 갖기 마련이다. - 부활 상 234페이지

 
   

 나 역시 까쭈샤가 창녀라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그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게 된 것과 똑같은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려는 인생관이나 선악관의 왜곡 현상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그런 왜곡된 관념을 가진 집단이 수적으로 많고 또 우리 자신 역시 그런 집단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 부활 상 235페이지

 
   

 그래, 그렇다 저 말대로다. 그녀가 나에게 까쮸샤라고 했던 것처럼 난 행동했던 것이다. 그녀의 고백을 듣고 <부활>을 읽으며 나는 점점 내 정체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문학 토론과 더불어 내가 공부를 못 한다는 사실을 알고 수능 공부도 도와줬다. 

수학을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중학교 과정 자습서를 구해와 일일이 나에게 풀어주고 설명도 해주고 내가 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너도 공부하기 바쁠텐데 나한테 이렇게 시간을 투자하면 어떻하냐고 묻는 나에게 그녀는 자신도 자신의 공부에만 신경 쓰고 내 일은 신경쓰지 않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고 하며  그럴때 마다

   
 

 바로 지금 자신의 영혼 속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인가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순간 자기 내면의 삶은 최소한의 힘만으로 어느 쪽으로든 기울 수 있는 저울대 위에 놓여 있다고 느꼈다. - 부활 상 232페이지

 
   

 이 문장을 말해주며 그녀는 네흘류도프가 시베리아까지 까쮸샤를 따라 갔듯이 나 역시 똑같다고 하며 싱긋 웃어 주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부활>도 수능 공부도 계속적인 진척을 해 나갔다. 

<부활>안에는 단순한 네흘류도프와 까쮸샤의 사랑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묵직한 물음과 인간을 타락하게 만드는 모든 규칙들 그리고 시설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수능이 코 앞에 다가 오는 시점과 더불어 <부활> 토론회도 거의 끝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부활>에서 이 구절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사람들이  <이름은 뭡니까?>라고 묻곤 하지. 나한테 이름이 있는 줄 아는 모양이야. 하지만 나는 어떤 이름도 없소. 나는 모두 다 거부했으니까. 그래서 이름도, 거처도, 조국도 없는 것이오. 나는 다만 나 자신일 뿐이오. 이름이 뭐냐고? 인간이오. (중략) <황제 페하를 인정하느냐>고? 황제를 내가 왜 인정해야 하지? 그는 그 자신의 황제이고, 나는 나 자신의 황제인데. - 부활 하 636페이지

 
   

 "너는 너 자신의 황제일 분이야. 절대 잊지마" 그녀는 다짐을 하라는 듯 눈을 찡끗하며 웃어 주었다. 

결국 수능에서 난 그녀 덕분에 150점이 오르는 성적을 거두며 성공을 했고, 그녀 역시 수능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는 점수를 얻었다. 대학 합격 소식을 서로 가지고 만난 날 우리는 술을 실컷 먹고 그녀는 나에게 자신은 정신과 의사돼 인간의 암흑을 파헤쳐 보겠다고 결의를 했고 나는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황제는 나다라고 살거라고 얘기했다. 

전철에 오르기 위해 기다리는 플랫폼에서 그녀는 술취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넌 참 신기해. 남자들은 여태껏 나한테 좋다고 치근덕 거렸거든. 근데 넌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 내가 매력이 없니?" 

"아니, 난 정말 너 엄청 좋아해. 근데 넌 네흘류도프고 난 까쮸샤 잖아. 난 말이야. 시몬손을 만날 계획이거든."  

내 얘기에 그녀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리고 시몬손은 반드시 여성으로 만나라고 조언도 해 주고 말이다. 

그녀는 내가 얘기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충분히 이해를 했다. 그 날 전철을 타고 손을 흔들며 신나게 웃으며 헤어진 그녀에게 그 이후로 연락을 하지 않았고 그녀 역시 나에게 연락을 해 오지는 않았다. 

그 후로도 나는 내 자신을 잃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좌절도 많이 했지만 틈이 날 때마다 그리고 새로운 번역본이 나올 때마 <부활>을 읽으며 그녀를 떠 올린다. 그러면 그녀는 조용한 교실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나에게 해 준 말이 귓가를 맴돈다.

"행복은 고난에 지지 않는 거야, 모든 것이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말이야."  

그리고 싱끗 웃는 그녀의 표정과 더불어 생각나고 말이다.  

아파트 경비실에도 봄은 역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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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5-12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서 새로운 번역본이 나올때마다...를 언급하셨군요.
추억을 들추고 싶은 걸 보니...그곳도, 그리고 이곳도 봄은 역시 봄인가 봅니다.
아주 긴 글인데 너무 재밌어서 숨도 고르지 못하고 읽었어요~^^

감은빛 2011-05-12 01:44   좋아요 0 | URL
앗! 내가 첫 댓글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댓글쓰다가 잠시 딴생각을 하다보니,
양철님께 선수를 뺐겼네요.

아깐 마녀고양이님 서재에서, 그리고 제 서재에서,
이번엔 루쉰님 서재에서 자꾸만 양철님을 만나네요.
왜 지금 장기하의 '우리 지금 만나~' 이 노래가 생각나는 걸까요? ^^

루쉰P 2011-05-13 13:11   좋아요 0 | URL
쓰다보면 추억이 나오고 또 나오고 흠...절제를 못 하는 추억의 아지랑이를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니 완전 길어졌어요. 읽어 주시는 것만 해도 대단하시다고 생각해요. ㅋㅋ

재미있으시다니 감사한데요. 헤헤헤

감은빛 2011-05-12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추천! 첫 댓글!
루쉰님의 훌륭한 글에 첫 자취를 남깁니다!
(이거 무지 기분 좋은데요! ^^)

루쉰님의 풋풋한 사랑이야기, 너무 재밌어요!

그래요 봄은 역시 봄입니다.

루쉰P 2011-05-13 13:13   좋아요 0 | URL
누군가에게 댓글로 기분 좋게 만들다니 뿌듯하네요. 오늘의 선행은 다 한 듯해요.

풋풋한 사랑이야기라니 너무 부끄럽네요. 삼수라는 탈옥기죠. ㅋㅋ

이상하게 <부활>에서 저 구절이 참 좋더라구요. '봄은 역시 봄이다.' 헤헤

pjy 2011-05-1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쉰P님의 기억에 모독이 될지도 모르지만, 너무 문학적으로 그녀와 공감하셨군요^^;
제 기억속에서 참 비슷했던 그녀는, 책한장 들춰보지 않던~ 정신세계가 절대 통할수 없는 그럼 남자가 자꾸 찍어대니 무튼 연애하고 급 속도위반 결혼하더군요 ㅋㅋㅋ

루쉰P 2011-05-13 13:15   좋아요 0 | URL
모독이라뇨 ^^ 근데 여성과 남성의 사이 보다는 스승과 제자와 같은 사이였죠. 뭐랄까 근접할 수 없는 숭고함이라고 할까요. ㅋㅋ 문학적으로 공감보다는 문학적 감화였죠. 다시는 못 만날 최고의 문학 스승이었어요.

하하 정신세계가 절대 통할 수 없는 남성과 결혼했다는 분, 대단한데요. 저도 지금 나이면 그렇게 찍어댈 수 있었을 텐데 저 때는 어려서 그런지 용기가 잘 안 나더라구요. ^^

차좋아 2011-05-12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원? 우리동네네요 ㅋㅋㅋㅋ 상계동 살거든요^^ 루신님 고교 때는 월계동 살았으니 그리 멀지는 않고... 우리는 같은 지역사회에서 청춘을 보냈군요 ㅋㅋ

루쉰P 2011-05-13 13:17   좋아요 0 | URL
오잉, 상계동에 사시다니 참고로 저 학원은 없어졌더라구요. 백화점 앞에 사거리 쪽에 위치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저 월계동에 안 사는데. 어쩌죠. 죄송해서 다만 힌트는 노원에서 제가 고교 때부터 쭉 살아 온 이 동네를 올려면 7호선과 1호선을 타야 옵니다. 헤헤 궁금하시죠? 아마 궁금하실거에요. 푸훗.

차좋아 2011-05-13 18:10   좋아요 0 | URL
그 힌트 가지고는 못 알아 맞추겠어요 ㅎㅎ
루신님이 월계동 살거란 말이 아니라 제가 루신님 학생시절 월계동 살았다는 말이었어요 ㅎㅎㅎ

루쉰P 2011-05-14 23:14   좋아요 0 | URL
이거 차좋아님의 끈질기 집념에 제가 항복했어요. ^^ 전 85년도 부터 의정부에 거주해 지금껏 열심히 살고 있어요. 제가 나온 고등학교는 의정부에 위치한 유명한 공고구요. ㅋㅋ
아~~집념의 싸나이 차좋아님...

차좋아 2011-05-16 15:50   좋아요 0 | URL
하하하
그냥 모른다고 한 건데 집념으로 느끼셨군요 ㅋㅋㅋㅋ
'혹시 나랑 같은 학교 나온 거 아닐까?..' 하는 마음은 있었어요. 저는 인덕공고 나왔거든요.ㅎㅎ
저는 학원은 안 다녔지만 루신님이 다닌 그 학원, 저도 알아요. 노원에서 제일 유명했던 단과 학원 맞죠? 이름이 생각 안나네요^^;;
역시 연예담은 재밌어요^^ 다음에 또 이야기 해 주세요~

루쉰P 2011-05-19 20:48   좋아요 0 | URL
역시 차좋아님은 예리하셔. 그 학원까지 아시다니..앞으로는 완벽한 신비주의를 위해 모두 이니셜 처리를 할 생각이에요. ㅋㅋㅋ 그래야 더 스릴있죠. 전 글의 심층을 분석하는 버릇이 있어서 모른다는 것을 집념으로 느끼는 센스를 작렬 했네요. 완전 부끄러워용!!

마녀고양이 2011-05-14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놀러왔다가 다시 논문을 보는군요.
지금은 새벽 1시 40분. 아무래도 이 페이퍼를 열심히 읽으면 두시가 넘겠죠?
내일 다시 읽으러 오겠습니다. 루쉰님. 즐거운 주말되시구요.....

마녀고양이 2011-05-14 10:42   좋아요 0 | URL
루쉰님, 아니 삼수를 해서 150점이나 올린 후에 들어간 대학을
보기 좋게 때려치우신건가요? 저런, 전산 전공이셨죠? 나랑 같은 계열이네.

하기사 어느 대학 나오고 남들 인정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나의 행복은 아니니까요.. 그 시절에 <부활>을 읽으셨다니
의미심장한걸요. 나비가 되기 위한 몸짓처럼.

그렇군요, 그분과는 이후 다시는 연락하지 않으시는군요.
루쉰님은 과연 카츄샤인건가요? 오래 전 경직된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인 느낌이 드는.... 아줌마의 잔소리랄까요~ ^^

그래도 요즘 아파트 아주머니들과 해피하게 지내신다니, 그것만으로도 좋네요.

루쉰P 2011-05-14 23:12   좋아요 0 | URL
하하하 명지전문대 컴퓨터학과를 들어갔었죠. 근데 지금은 과 이름도 바뀌었다고 들었어요. 400점 만점에서 맨 처음 수능 150점, 그 다음 재수 후 160여점. 삼수 295.8점 ㅋㅋㅋ 점수가 잊혀지지 않아요. 워낙 고생해서 받아서 그런지. 마고님이 농협에 대해 쓰신 글 봤어요. 저도 제가 컴퓨터를 상당히 잘 할 줄 알고 지원했는데 주위에서도 해킹을 주로 하고, 야동 사이트를 줄줄 외울 것 같은 악의 프로그래머의 이미지가 풍긴다고 적극 추천해 줬거든요. 근데 그만 1년만 마치고 자퇴를 해버렸죠. 같은 계열이라서 서로 통하나 봐요 ㅋㅋ

그 시절에 읽은 <부활>과 지금 읽는 <부활>과 또 느끼는게 틀려요. ^^ 지금은 나비가 아니라 나방이 되버린 현재이지만 말이죠. 헤헤

저 역시 나름 진보적이다고 착각하며 사는데 20대 때는 저 친구와의 차이가 너무 극심하다고 스스로 느꼈기에 먼저 발을 뺀거죠. 근데 지금 와서 느끼는 것은 그 때 들이댔다고 한다면 과연 지금과 같이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전 좀 비관적인 듯. ㅋ 아줌마의 잔소리는 저에게 필요해요. 많이 해주세용!!! 관심 받고 싶어용!!

아주머니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저 역시 아주머니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어요. 요즘 마트가도 진열된 우유 중에서 맨 뒷 줄에 있는 거 사요. 그게 제일 신선하다고 308동 302호 지현이 아주머니가 가르쳐 주셨어요. ㅋㅋ

후애(厚愛) 2011-05-14 0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놀러왔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루쉰P 2011-05-14 23:15   좋아요 0 | URL
완전 행복한 주말 보내고 있어요. 그냥 뒹굴 뒹굴 ㅋㅋ 내일은 또 일나가고 월요일부터는 3일간 예비군 훈련을 갑니다. 헤헤
자주 놀러와 주세요. 사람이 그리워요. 전 외로움 쟁이!!

노이에자이트 2011-05-19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드라마 소재로 참 좋겠어요.부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재수생 연인...여자는 신세경. 남자는 음...정용화 정도? 니쿤은 우리말을 못하는 게 흠인데...정 안되면 제가 분장 좀 심하게 해서 맡는 수밖에요.

루쉰P 2011-05-19 22:53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 빵 터졌어요. 드라마 소재로 보신다니 뭔가 의욕이 솟는데용! 근데 신세경과 정용화 확 느낌이 오는데요. 하지만 노이에자이트님이 분장을 하신다고 하면 말릴 겁니다. -.- 진지하게 말릴 거에요.

노이에자이트 2011-05-20 18:35   좋아요 0 | URL
아니...왜요? 이거 명예훼손입니다! 내 외모가 국제적으로 통하는데!

루쉰P 2011-05-20 18:38   좋아요 0 | URL
ㅋㅋㅋ 알겠습니다 국제적 외모라고 하시니 인정할께요 ^^ 저도 자랑하자면 아랍권에서 통하는 외모라고 칭찬 받은 적이 있어요

2011-05-20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읽으니, 컵 하나를 들고 온 방을 훑으며 이야기를 하나 지어낸 절름발이가 생각나네요. (유주얼 서스펙트..) 이런 일이 진짜 있었다는 겁니까요?!! 꼭 지어낸 것만 같다고 느끼는 저는 너무 밋밋하게 수십 해를 살아온 것 같군요. 엄청 집중해서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루쉰P 2011-05-20 05:4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섬님 너무 반갑습니다. ^^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과 대화를 하고 친해질 수 있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고 할까요? ^^ 그 이후 1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저에게 저렇게 좋은 일은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오지 않았어요. 만약 저런 일이 다시 생긴다면 놓치지 않을거라 수 십번도 다짐했지만요. 부끄러운 것은 그 친구와 약속한 제가 무엇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는 사실이죠.
저도 솔직히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 만큼 제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찬스였죠. ^^ 지금 생각하면요. 그치만 너무나 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추억이긴 해요. 너무나도 긴 글인데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하하 2011-05-20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목이 '삼수' 여서 서슴없이 마우스를 클릭하고나선 정말 숨쉴틈도 없을정도로 정신없이 읽어내려 갔어요. 저두 과거 재수의 경험이 있는지라....
소설같지만 사실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두 꼭 톨스토이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글 넘넘 감사해요. 저의 과거가 다시 생각나네요...

루쉰P 2011-05-21 09:25   좋아요 0 | URL
인생이 소설 같고 소설이 인생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 반갑습니다! 놀러 와 주셔서 이렇게 긴 리뷰를 보고 놀라진 않으셨는지 걱정되네요 ^^ 부활은 꼭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그러시면 그녀에게 제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아실거에요? 물론 안 읽으셔도 아실 순 있겠지만요 ^^ 앞으로 자주 뵈면 좋겠어요

노이에자이트 2011-05-21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랍권에서 통하는 외모라...그러면 서양에서도 통하겠는데요.서양 사람은 동북아보다 아랍에 더 미남미녀가 많다고 생각하니까요.내가 봐도 아랍인이 눈이 더 크고 윤곽이 뚜렷하더라구요.아랍민족은 아니지만 이란인들도 외모가 좋은 편이죠.

루쉰P 2011-05-21 18:05   좋아요 0 | URL
이 비오는 음울한 오후에 노이에자이트님의 글을 읽다가 왠지 모르게 서서 거울을 봤어요. 제 얼굴을 곰곰히 뜯어보면 짙은 눈썹에 매부리코 그리고 날카로운 턱 선...흠 근데 한국형 미남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추남이라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아랍형 미남이라고 얘기하고 다녀야 겠어요. 자신감이 솟네요. 역시 노이에자이트님 덕분에 제 본 얼굴을 찾았어요. ㅋ

노이에자이트 2011-05-21 20:38   좋아요 0 | URL
오! 축하축하합니다.저는 아랍인보다 이란인이 더 좋습니다만...

루쉰P 2011-05-22 09:05   좋아요 0 | URL
아...그럼 이란형 미남으로 바꿀께요. 아랍형 미남은 많이 들었는데 이란형 미남은 새롭네요. ㅋ

노이에자이트 2011-05-22 15:25   좋아요 0 | URL
한번 사진으로 아랍형과 이란형을 견주어 보세요.

파고세운닥나무 2011-05-31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곧 책이 나옵니다. 지도교수님이 저를 책임번역자의 남편이라 번역후기에 적어 주셨네요^^

출간되면 말씀 드릴게요!

루쉰P 2011-05-31 10:49   좋아요 0 | URL
ㅎㅎ 너무 기대되는데요. 꼭 알려주세요. ^^ 비 오는 날 좋은 소식 주셨네요. ㅋㅋ

쉽싸리 2011-06-02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부활을 읽은지 하도 오래되었고, 기억도 또한 젬병이라 검색을 해서 대강의 줄거리(결말)를 파악했어요. 시몬손이라는 정치범을 따라가는 카츄샤의 선택은 도통 모르고 있었어요.
엄청난 스케일의 얘기입니다. 스토리의 짜임새가 대단합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예요!!

루쉰P 2011-06-02 09:57   좋아요 0 | URL
'부활'은 그 얘기의 스토리가 정말 엄청나죠. ^^ 비평가들은 톨스토이가 네흘류도프에게 무리한 사상을 주입한 주인공이라고 말들이 많았지만, 그의 소설을 읽으며 당연히 있을 법한 인간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시몬손을 선택하는 카츄샤의 선택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뭐랄까 가슴이 저며지는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 저 역시 그 때 그런 마음이었구요.
쉽싸리님이 눈치를 채시다니 대단하신데요. 제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에요. ^^

꼬마요정 2011-06-06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이라서 추천 백만개라도 누르고 싶은데 아쉽게도 한 번만 되네요..^^;; 루쉰P님을 왜 이제서야 알게된 걸까요..ㅜㅜ 아아..이러면 저는 점점 리뷰 쓰기 힘들어진답니다. 요즘은 글 잘 쓰는 사람들 너무 많아요.. 전 점점 리뷰 쓰는 게 두려워진다는..크흑

루쉰P 2011-06-06 16:32   좋아요 0 | URL
ㅋㅋ 너무 과찬이세요. 전 리뷰가 아니라 그냥 책에 대한 추억만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 리뷰를 쓰는 분들의 글을 볼 때 저도 두려워지고 부끄러워져요. 리뷰란 것이 잘 쓰냐 못 쓰냐의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에서 자신이 보는 것을 쓰는 것이기에 절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한 책을 놓고 만 개의 시선이 읽어서 만 개의 평가가 나오는 것이 리뷰이지 않나 싶어요. 어떤 틀도 규정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꼬마요정님의 리뷰도 분명 꼬마요정님 만의 향기를 뿜으며 나온다고 생각해요. 기대하고 있을거에요. ^^

제가 존경하는 루쉰 선생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그 시대는 이가 굉장히 많았는데 어떤 사람이 시장에서 이를 완전 격퇴할 수 있는 비법이라고 팔더래요. 주인공은 너무나 좋아서 그 비법이 쓴 종이를 돈을 주고사서 집에 와서 꼬깃 꼬깃 접힌 비법을 딱 펼쳤는데 거기에는
'열심히 잡아라' 고 써 있었다고 쓰셨어요. 허무 개그가 아니라 전 리뷰의 비법도 거기에 있다고 봐요. 열심히 쓴다 자기 식대로 그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전 그래서 제 멋대로 쓰죠. 푸훕!!

산사춘 2011-06-13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활보다 루쉰P님 리뷰가 더 감동적입니다. 짝짝짝!
알라딘은 이래서 좋아요!

루쉰P 2011-06-14 08:44   좋아요 0 | URL
아이 부끄러워요. ^^ 그래도 톨스토이가 더 훌륭하죠. 아잉 완전 부끄러워라. ㅋ

아이리시스 2011-06-14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니까 저도 [부활]을 읽어야겠군요. 이해가 다 안되는 걸 보면..^^
어린 나이에 이렇게 예쁜 추억이라.. 지금 그녀는 의사가 되었을까요? 너무 감동적이예요. 두 분 우정이..^^

거기다 이건 추억에 대한 한 편의 논문입니까, 소설입니까?^_____________^

루쉰P 2011-06-14 20:39   좋아요 0 | URL
<부활>은 꼭 추천드리는 명작입니다. ^^

의사가 됐다고 확신하고 그녀도 어디선가 제가 무얼 하는지 궁금해 할 것 같아요. 그러기에 더 삶에 대해 투철하게 도전할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만약에 인생의 한 번 쯤 마주치게 된다면 부끄러운 모습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요. ^^

왠지 추억에 대한 논문이 돼 버렸어요. ㅋ

2011-06-27 0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1-06-27 09:3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제가 사실 리뷰를 눈 튀어게 끔 써 버리는 경향이 있어서 맘 잡고 있어야 하는 그런 사태를 속출하고 합니다. 너무나 좋은 칭찬 감사드려요. 제가 다 부끄럽네요. ^^

비가 오는 태풍의 월요일입니다. 정말 활기차게 시작할께요! 화이팅!!

쥬빌리 2011-11-27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예컨데 역사란 승자들이 벌이는 오르가즘 파티일 뿐입니다. 어짜피 인간도 이기적 유전자의 자기 보존 의지에 사로잡힌 노예나 다름없잖습니까. 이건 완전한 과학적 방법론으로 검증된 사실인데요. 이제 갖잖은 위선자 노릇은 그만두고 사창가를 법적으로 용인하는 선진국들의 현명한 용단을 당장 우리나라에 도입해야할지도요. 뭐 어짜피 법적으로 용인 안해도 돈 주고 성파는 산업은 우리나라에서 날로 번창하고 있으니까요. 어짜피 좋은게 좋은거니까. 뭐 몇십억씩 하는 미사일을 도시에 날리고 과부와 아이들을 죽이는게 공적으로 허용되왔으니까 모든게 허용되겠죠?

저는 유복한 부모님을 만나 아무 고생도 안하고 편하게 공부나 하며 책이나 읽고 있으며 여름보다 겨울이 좋다는 드립이나 치고 있는 학생입니다. 이제 대학을 가야겠죠? 전 부활을 3번 읽었습니다. 저가 수능 공부하다가 가장 절망적일 때 부활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리처드 도킨슨의 눈먼 시계공(이 책의 내용을 결론 내리자면 추호의 의심도 없이, 목적론적이며 관념론적인 도덕과 영원, 신,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의 자기 보존 의지의 맹목적으로 종속된다. 즉 번식이 진리다.)을 읽었습니다. 죄와벌을 읽었고 부활을 그렇게 또 2번 읽었습니다.

또 수능을 보고 다시 부활을 3번째 읽습니다. 하루종일 가게를 보면서 읽습니다. 한장 한장 읽는게 너무 힘이 듭니다. 이제껏 읽어왔던 책에 비하면 톨스토이의 부활은 매우 진부한 책으로, 매우 뻔한 진행대로 흘러갑니다. 네흘류도프는 완전히 이건 무슨 인간이 아니라 도덕적 사고회로를 집어넣은 로봇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어려운 책도 아니고 편하게 읽히는 ㅡ하지만 진중한 문학적 무게가 느껴지는ㅡ 품격있는 고전입니다. 근데 읽는게 너무 힘이듭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너무 너무 힘이 들어서 기도하지 않고는 도저히 읽을수도 없습니다. 참을수 없는 내적 절망이 밀려와서 그리스도와 내가 사랑하는 그녀를 생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웬걸, 그녀를 생각하니 내가 더 추악한 놈처럼 느껴저 더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네요.

그래서 밀란 쿤데라의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기수다운 소설이군요. 처음부터 니체의 영원회귀 드립으로 시작하고 세계에 모든 것이 허용되어있다고 냉소합니다. 솔직히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쉽게 읽힙니다. 별로 부담감이 없습니다. 왜냐면 결혼을 하고 다른 여자와 수백번 섹스하는 것은 전혀 비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미학으로 아름답게 서술되어야 하며, 그곳에선 무조건 따뜻함이 느껴져야 합니다.

솔직히 고상한척 하는 놈들은 나이트에서 몸을 부비며 원나잇 스탠드의 짜릿한 맛을 좀 알아야합니다. 솔직히 갖잖은 위선자보다 정직한게 낫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은 속이지 않습니다. 비꼬는게 아니라 정말 그래요. 저같은 놈이 병신이죠. 현재 제 주변에는 원나잇 스탠드를 하거나, 아니면 사창가에서 몸을 푸는 녀석들이 있는데 전 그 녀석들이 그런 얘기를 하면 웃으면서 건강에 안좋다고만 합니다. 도무지 학교에서도, 어른들도 그것이 나쁘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들에게 그것이 틀렸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틀렸다는 말을 경멸할 것이고, 그들은 전적으로 무죄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주위에서 굶어죽든말든 스펙 쌓고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취업하는게 진정한 인간의 도리이지만, 전 갖잖은 위선자가 이제 되려고 합니다. 전 그녀처럼 긍정할수가 없습니다. 그 어여쁜 톨스토이안처럼 긍정할수가 없습니다. 원체 비열한 놈이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제 고상한 자아를 위해서 꾸며대는게 너무 구역질나, 지금 제 덧글도 너무 구역질나 미치겠습니다. 물론 더 미치는 것은 이런 이야기를 진정 공감해줄 친구가 없다는거지요. 제겐 너무 과분한 친구들이 있긴하지만.

전 전 제안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지금 진정한 변화를 목도하고 있습니다만 지금만큼 제가 추악하게 느껴진 적은 처음입니다. 이 허망하고 한번뿐인 인생 오직 아름다움과 너무나 고통받는 이들의 작은 미소를 보며 살겠다고 결심하지만 어짜피 저는 비열한 놈이고 이제 현실과 타협하게 될겁니다. 제 양심은 한달에 2만원에 불과하거든요. 그것도 타성에 젖어 계좌이체하고 있군요. 뭐 저는 편의점 알바 하다가 밤에 강도 들어서 칼에 맞으면 바로 죽을 놈입니다. 고2때도 죽을뻔했고. 모든 것이 허용되는 세계니 이건 단지 확률의 문제입니다.

톨스토이는 주님께 돌아온후 진짜 평생 미치도록 고뇌했습니다. 그가 괜히 펜을 꺽은게 아니지요. 톨스토이는 절대로 그녀처럼 긍정할수 없었습니다. 그의 고뇌와 고통을 비록 활자지만 저에게 너무 절절하게 다가와서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아아 그는 너무 불행했어요. 단지 정직해지기로 결심했는데 말이죠! 주님 앞에서! 그는 정말 정욕이 왕성한 남자였어요. 안나와 신혼 생활때도 다른 농민 여자랑 정사를 벌였을정도니까요. 게다가 러시아 최고의 귀족이고 이천헥타르의 넘는 토지를 가진 대지주였으니까요. 정점에 이른 문학적 재능까지 생각한다면 이거 뭐 사기캐가 없군요. 명예도 얻었겠다, 여자랑 하고 싶으면 그냥 할수도 있었겠다, 그냥 즐기면서 살지 왜 그는 주님께 돌아왔을까요? 여하튼 그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고자, 정말 진정한 사랑을 하고자 결단했을때 아내는 그를 경멸했고 작은 새같은 한 딸을 제외하고는 가족 사이에서 완전 왕따가 되었습니다. 아 그는 너무너무 고독했던 겁니다!

그는 다만 좀 정직해지고 싶었습니다. 복음서에서 유일하게 예수님의 부름을 거부한 그 부자청년이 되기 싫었던거죠. 하지만 정직한 기독교인이였으며 현실적이었던 안나는 그의 위선을 경멸했습니다. 끝내 그는 고독하게 죽었죠.(사실 톨스토이의 마지막이 너무 미화되곤 하는데 말그대로 그건 그냥 동화적 신화에 가깝습니다.) 그는 현재 지금 너무 신화화되서 그의 인간적인 결점과 고통들이 가려져있습니다.

오랫동안 죽어있었던 제 지성과 양심, 그리고 그 모든 감정들이 마침내 부활하여 저 자신을 미치도록 괴롭히고 그 모든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쾌락만이 진리라고 하는 그 거부할수 없는 담론들이 절 괴롭힙니다. 저도 그녀처럼 긍정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처럼 톨스토이의 부활을 경전으로 삼고 삶을 긍정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톨스토이처럼 모든 걸 부정하고야 맙니다. 사회에서 왕따가 되고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할텐데 말이죠! 사실 톨스토이는 별다른 말 안했어요. 그냥 정직해지기로 결심했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실현 가능하다고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죠.

5일전에 마침내 부활을 다 읽었습니다. 어쨋든 제 미칠듯한 정욕과 무한에 가까운 이기주의에도 불구하고 저는 놀랍게도 자살하지 않고 아주 너무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전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도 잘하는 편이고 친절하게 대하는게 몸에 배어있지만, 그럴수록 제가 너무나 추악한 놈이라는 걸 느낍니다. 어쨋든 삶이란 너무 가볍긴 하지만 소중하니까요. 저도 이제 어른이되야한다는 걸 느낍니다. 이런 정신나간 글 써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루쉰님은 정말 소중한 인연 만나셨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 주위에는 책 읽는 사람이 저 혼자인데 말입니다. 정말 님은 귀중한 인연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신 겁니다. 진실한 톨스토이안은, 아무도 심판하지 않기에 이해받지 못하며, 아무도 경멸하지않는 그리스도인은 그냥 백취치급 받을수밖에 없죠. 도스토예프스키가 백치란 책을 괜히 쓴게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루쉰P 2011-11-29 15:14   좋아요 0 | URL
이렇게 긴 댓글은 처음이라서 첫 문장보고 제 리뷰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 욱하는 마음에 쓰셨나란 착각을 했습니다. ^^;;
게다가 또 이렇게 진지한 댓글은 처음이라서 저도 답변을 하는데 참으로 많이 망설여 지더군요. 쥬빌리님은 기독교 신자이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을 믿고 그 가르침대로 살고 싶어하는 마음과 육적 쾌락이 현실이기에 그 마음과 그 사이에서 이중성에 대해 괴로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전 뭐랄까 이 긴 댓글에서 <부활>의 네흘류도프가 쓰지 않았나란 착각이 들었습니다. 제 눈에는 쥬빌리님이 네흘류도프처럼 비쳐진다고 할까요?
외람된 말 일지만 저는 상대방보다 나이가 많다고 훈계조로 얘기하는 것은 가장 경멸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쥬빌리님의 지금의 그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할까요? 쥬빌리님 입장에서는 제가 뭔 소리를 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드실 수 도 있으실 겁니다. ^^ 저 역시 쥬빌리님처럼 기독교는 아니었으나 내 안의 이중성에 대해 20대 초반에 너무나 많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내가 읽은 책으로 살고 싶은 마음인데 현실은 그러지 못하고 너무나 육욕적이고 더럽다고 할까요? 나보다 돈이 많은 자들에게 굽신거려야 하고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되지도 않는 소리에 맞다고 맞장구를 쳐야 하고 하는 이 현실에 대한 더러움과 괴리감 때문에 지독하게 괴로울 때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안 괴롭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다만 지금은 그런 것들을 저주한다면 난 거기에 대해 내가 싸울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일까?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들 속에서 미력한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 일은 무엇일까? 물론 돈도 벌어야 하지만 사람들 속에서 이런 이상한 괴리감 느끼는 사회 속에서 내가 무언가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저는 지금은 비록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사람들에게 핀잔이나 듣는 허드렛 일을 하고 있지만 반드시 그 무언가의 일을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
쥬빌리님의 그 추악한 놈이라고 느끼는 그 마음은 참으로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정말 추악한 놈이 되버리니까요 ^^
저 역시 추악한 놈이기에 게다가 육욕적인 것도 참으로 좋아합니다. 쥬빌리님의 말씀에 많은 긍정을 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패배할 수는 없다고 하루 하루 다짐을 합니다. 어찌됐는 말이죠. ^^
지금 이 서재에 쓰는 리뷰들도 그런 것의 일환입니다. 뭔가 스스로를 해독하고자 하는 글들이기에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일 겁니다.
아무쪼록 어느 대학이든 들어가셔서 그곳에서 자신의 추악한 면을 더욱 더 봐 가시면서 자신이 추악한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전 그 마음만 있어도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쥬빌리 님의 댓글을 통해 저 역시 진지하게 제 자신의 추악함을 많이 돌아 보게 됐습니다. 긴 댓글 감사합니다.
저 역시 정신나간 답글 이었습니다. ^^

죽염먹는고흐 2014-09-30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알라딘에서 이렇게 재미있는 책리뷰는 처음 읽어봅니다. 너무 잘 봤습니다.

루쉰P 2014-10-07 13:28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 이렇게 와 주셔서 재밌다고 해 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의 20대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고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울컥 하면서 힘이 나곤 합니다. ㅎㅎㅎ
사람의 각자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전 운이 좋았던 셈이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