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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3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7월
평점 :
삼수생에게도 봄은 역시 봄이었다. 공고를 졸업해 전철타고 대학을 가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간직한 채 시작한 재수는 전 수능 점수보다 10점이 오르는 기적에 가까운 일을 만들며 대 실패로 끝났다. 그래도 나는 반드시 대학을 가야한다는 종교적 광신에 가까운 마음으로 삼수를 시작을 결심하고 학원을 들어가기 전에 왜 내가 재수에 실패를 했는지 곰곰히 분석을 했다.
그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삼수 생활의 교리를 만들어 냈다.
첫째, 학원에 가서는 아무하고도 대화를 하지 않으며, 밥도 혼자 먹으며 고독의 벗으로 공부에 매진한다.
둘째, 사람들과의 대화를 단절하기 위해 머리를 노랗게 염색해 가까이 사귀면 좋을 것 없는 날라리의 이미지를 풍긴다.
셋째, 부모님의 죽음, 천재지변, 자신의 죽음 이 세 가지 절대 조건 없이는 학원에서 절대 나오지 않는다.
난 이 교리를 가슴에 품은 채 삼수 생활을 시작했다.
노원에 위치한 삼수 학원은 아침 9시에 시작해 오후 2시까지는 전 과목을 월부터 토요일까지 일정에 맞쳐 수업을 했고 밤 10시까지는 개인 자율학습의 시간을 주었다. 학원은 총 세 분류로 나누어 반을 구성했다. 작년 수능 점수에 맞추어 저급반, 중간반, 우수반이었다.
저급반은 학생 본인도 의욕이 없고, 부모님이 보내니 그냥 시간 때우러 학원을 오는 학생이 대부분 이었고, 더욱이 학원 역시 그들에게는 돈만 받으면 되기에 수업을 듣던, 공부를 하던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수반의 학생들로 그들이 어느 대학을 가냐에 따라 학원의 평판을 높일 수 있는 기회였기에 그들에게만 모든 정성을 다 쏟았다.
나는 당연히 저급반에 소속이 됐다. 수업 시간에도 떠들고 자율 학습 시간에는 더 떠드는 학생들 속에서 나는 교리 대로 그 누구와도 인사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만 밥을 먹는 생활을 지속했다.
그 휴유증은 몇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타났다. 정신병원에 수용된 환자처럼 사람들이 있는 데도 혼자 밥 먹고 사소한 문장, 단어 하나도 말하지 않던 나는 서로 인사를 하며 웃는 학생들을 보며
'나도 인사하고 싶어! 나도 너희들하고 웃으며 인사하고 싶어 죽겠다고!!'
마음 속으로 수 백번을 외치기도 하고,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 준다면 그에게 내 영혼을 팔겠다는 결심까지 했었다.
하지만 교리의 영향은 너무나 강력해 그 누구도 내 옆에 앉지도 않았고 말도 단 한 번도 걸지 않았다. 고독의 벗은 이미 넘어서서 고독의 스승이 될 정도까지 이르자, 나는 연습장에 다가
'루쉰p 안녕?' '응, 반가워' '오늘 날씨 참 좋지' '공부하기엔 너무나 안까운 날이야'
쓰면서 내가 나에게 묻고 답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돌아버릴 것이라는 위기감과 스스로 만든 교리를 실천하지도 못 하는 나약한 자신을 질책하며 차라리 사람이 아예 없는 곳으로 가면 대화하고 싶은 욕망도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학원은 13층 건물에 3, 4, 5층을 쓰고 있었다. 3층에는 접수처와 교무실, 저급반이 있었고, 4층은 중간반, 5층은 150평 가량의 대 교실과 우수반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곳, 저 곳을 염탐하던 나는 150평의 교실은 대규모 수업이 있는 날이 아니고는 학생들에게 자율학습 공간으로 개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들의 교실에서 공부를 하기에 이 곳에는 사람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난 수업이 끝나면 이 곳으로 옮겨 공부를 시작했다. 밤 10시까지 이 곳에는 우수반 학생만 몇 명이 공부만 하고 있을 뿐, 연습장에 샤프가 쓰이는 사각사각 소리가 들릴 정도로 숨 막힐 듯한 고요햠 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떨어져 있어도 대화를 하고 싶다는 욕망은 주체를 할 수 없었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나랑은 출신이 틀린 사람들이었기에 그 욕망은 조금은 절제를 할 수 있었다.
난 이 교실의 칠판이 있는 맨 앞으로 가서 왼쪽 구석 창가와 붙어 있는 책상에 거주지를 정하고 공부를 했다. 올라 와서 공부한 지 2주가 된 무렵, 항상 교실에 들어서면 문 바로 옆에 있는 책상에 앉아 있는 여학생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예쁘장한 얼굴에 머리를 틀어 올린 채 앉아 있던 그녀는 내가 들어오면 흘끔흘끔 쳐다 보는 것이 나에게는 느껴졌다. 사람이 들어오니 신경이 쓰여서 그런가 보다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나는 지나 쳤었다.
어느 햇살 가득한 토요일 오후, 어김 없이 올라와 공부를 시작할려고 했던 나는 워낙 날이 좋았던 탓인지 그 여학생을 빼고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괜히 신경이 쓰이는 기분을 교리로 누르고 내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다가 누군가 쳐다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뒤를 흘끔 돌아 보니 나를 쳐다 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책상으로 숙이는 여햑생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이상해 보이나? 아니면 나랑 둘이 있어서 무서워서 저러나 하는 생각에 교실을 나와 화장실의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 보았다.
떡지고 헝클어진 머리,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웃는 어떤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티를 입고 턱수염을 깎지도 않은 어떤 구도자가 화장실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완전 이상해! 정말 이상해! 그 학생이 나를 백반번 오해해도 충분하겠어'
교리도 중요하지만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흉물스러운 모습은 보여 줄 수 없다는 생각에 긴 머리도 단정하게 묶고, 세수도 하고, 편의점에서 면도기를 사와 면도도 한 후 나는 교실로 다시 들어갔다. 여전히 그 여학생은 책상 앞에 코를 박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또 다시 힐끔 거리며 나를 쳐다 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단정하게 했으니 그리 크게 공포감은 안 가지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내 자리에 와서 앉았다.
딴 짓을 하다 와서 그런지 공부를 되지가 않았고, 그러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무심코 시선을 던졌다. 커플티를 입고 신나게 팔짱끼고 웃고 있는 커플들, 다정스럽게 깔깔 거리며 웃는 여고생들, 그 모습들은 나 완전 행복해라고 자랑질 하는 모습으로 밖엔 보이지 않았다.
'커플티 입은 커플, 너희들의 사랑이 영원할 것 같나!'라고 커플을 저주하고,
'흥! 너희들도 지금은 웃지만 좀 있으면 이 지옥문으로 들어와야 할꺼야, 어린 아가씨들 흐흐흐' 라고 여고생들을 저주하고,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 마다 저주에 저주를 거듭하다가 나는 깜빡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아주 달콤한 향기가 코를 확 찌르는 느낌에 잠이 깼다. 내 책상 위에는 향기의 주인공인 껍질이 까진 채 놓여 있는 오렌지와 예쁜 글씨체의 쪽지가 같이 놓여 있었다.
'너무 피곤해 보여요. 오렌지 먹고 힘 내세요.'
사람이 너무 그리운 나머지 오렌지를 내가 싸오고 쪽지도 내가 쓴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까지 들었지만 아무리 봐도 여자 글씨체였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사각 사각 소리를 내며 공부를 하고 있는 여학생만 보였다.
내 안에서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외치는 자아와 사람을 피해 올라 온 너가 그깟 작은 친절에 감동해 교리를 깰 것이냐라는 자아가 서로 치열한 싸움을 했다. 하지만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고, 그것도 예쁜 여성이라니 난 이 기회를 저 버리면 삼수도 망쳐 버릴거야라는 생각이 나를 집어 삼켜 버렸다.
상당히 어색하고 얼은 표정으로 그 여학생에게 다가가
'저...감사합니다.'
'아니에요. 혼자 먹기는 좀 많아서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 눈은 가늘지만 반달로 예쁘게 감겨지고, 하얀 피부의 매우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게다가 날렵한 몸매에 비해 풍만한 가슴이 매우 아름다운 조화를 보이고 있었다. 조용한 교실에 울려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말들을 한 구절, 한 구절 음미를 하며 듣고 답하며 인간과 대화를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온 몸을 떨며 느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교실에 올라 오면 둘이 있을 때가 많아 공부를 하다 지치면 서로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역시나 예상대로 우수반의 엘리트로 우리 학원내 10위 안에 드는 수능 성적의 보유자 였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흥미를 느낀 것은 이나중 탁구부에 이자와와 비슷한 외모를 보고 깜짝 놀랐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가끔 이런 외모도 쓸모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도 나처럼 이나중 탁구부 매니아 였고, 만화는 물론 문학을 무척 좋아했다. 그녀의 집은 엘리트 집안으로 아버지도 의사, 오빠도 의사였다. 자신은 문학가나 만화가를 꿈꾸는데 집에서 반대가 워낙 심해 갈등을 하고 있으며, 집에 압박을 못 이겨 의사가 되기 위해 연세대를 가야 해서 일부러 또 삼수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대학을 골라 갈 수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리고 그런 집안 배경이 있는 것도 부러웠고 말이다. 나는 공고생이며 공부의 무뢰한, 바닦에 가까운 가난한 집에 대해 털어 놓자 그녀는 내게 말했다.
톨스토이가 말한 것이라고 하며,
"넌 내가 이런 환경에 있는 것을 당연히 부러워 할꺼야.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부족한 것만 채워지면 행복한 줄 알거든. 근데 그러지가 않아 부족한 것을 채워도 또 채워야 할 구멍이 생기고 또 생겨 끊임없이 말이야. 참 웃긴 일이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좀 어둡다고 느꼈지만 난 그 말에 100% 공감을 하지는 못 했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공부만 하는 것도 힘 드니까 같이 문학 책을 읽어 보고 시간이 날 때 얘기해 보는 것은 어떠냐고 권유를 했다. 그리고 나선 하는 말이
"넌 신비한 사팔뜨기 눈을 가진 까츄샤 같아."
뭔 소리야? 난 시력 1.5를 자랑하는 매의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게다가 신비한 사팔뜨기는 또 뭐야? 라고 윽박지르고 싶었지만 예의가 아닌 듯해 참았다.
그런 그녀가 권유한 것이 바로 톨스토이의 <부활>이었다. 나는 전철로 집에서 학원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20분 이었다. 난 그 시간을 이용해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까츄샤에 대해 이해를 했다.
'망할! 사팔뜨기 눈을 가진 창녀가 나라니 도대체 뭔 소리야? 게다가 나는 풍만한 가슴도 가지지 않았다고!'
어찌됐는 그녀와의 문학 토론은 시작이 됐다. 그녀는 알고 보니 톨스토이주의자라고 할 만큼 톨스토이에 대해서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이 책을 10년 간에 걸쳐 집필했데, 원래는 '꼬니의 수기'란 제목으로 자신의 친구에게 들은 내용을 가지고 쓰다가 집필 중단했는데 다시 쓰게 된 계기는 러시아의 두호보르 교인들의 이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마무리를 했다고 해. 그는 49세 느낀 죽음에 대한 문제로 그 속에 빠져들고 문학도 예술을 위한 문학에서 도덕을 위한 문학으로 탈바꿈을 했어. 그런 그의 후반기 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이 바로 이 소설이야"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듣고 이 책의 배경과 그리고 그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들으며 나 역시 톨스토이에 점차 점차 빠져 들었다.
귀족적인 타락한 생활에 빠지던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친척 집에 살던 까츄샤를 유혹해 임신을 시킨 후 돈만 쥐어주고 버리게 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법정에서 자신 때문에 타락해 결국은 창녀가 되었고, 살인범의 누명을 쓰게 된 까츄사를 만나게 된다. 그는 영혼의 충격을 받아 그것을 속죄하기 위해,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는 그녀를 따라간다. 그녀를 따라가며 만나게 되는 감옥이라고 하는 사회의 위선, 그리고 인생의 진실을 모르고 살아가는 부유층 사람들의 허식, 죄가 아닌 죄로 감옥에 갇혀 있는 민중들, 그리고 혁명에 대한 불길을 태우며 살아가는 혁명가들을 만나며 네흘류도프는 점차 각성해 가기 시작한다.
퍼즐처럼 잘 짜여진 톨스토이의 소설은 나로 하여금 삼수라는 상황, 괴로운 집 사정을 잊게 만들 정도의 몰입감을 주었다. 더욱이 그녀의 입을 통해 듣는 톨스토이의 <부활>은 삼수의 시름을 잊게 만드는 강한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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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특히 어른들은 자기 자신은 물론 상대까지 서로 속이고 괴롭히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신성하고 중요하게 여긴 것은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기 위해 저마다 머리를 쥐어짜는 일이었다. - 부활 상 11, 12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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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대학을 왜 가니?"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어, 전철 타고 대학가고 싶어서..." 나는 대답하고도 엄청 민망했다.
"그래...나도 대학을 왜 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었어.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일 중에 하나가 학벌이고 학력이지 않을까? 나 역시 그런 흐름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말이야. 근데 대학을 안 가겠다고 버티면 난 우리 집에서 비웃음을 당하고 말아. 마치 <부활>의 저 문장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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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신뢰하면 항상 사람들의 질책을 받지만 타인을 신뢰하면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 부활 상 7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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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읽고 그녀는 말했다.
" 톨스토이가 쓴 것처럼, 자신을 신뢰하기 보다 타인을 맹종하게 된 까닭은 자신을 신뢰하며 사는 것은 너무 힘들기 때문이야. 좋은 대학을 가겠다고 발악하며 꿈도 포기한 채 공부를 하는 내 모습을 보면 가족들은 기뻐하기만 해. 내가 대학이 아닌 문학가나 만화가가 된다고 하면 우리 가족들은 두려움에 떨어. 근데 나 가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학을 꼭 가야 해."
그리고 나서 그녀는 자신이 왜 대학을 가려는지를 담담하게 얘기했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하지 못 했다. 집에서는 모두 엘리트들 인데 자신만 공부를 못하는 미운 오리새끼 같아 항상 집에서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런 그녀에게 고 1 때 친하게 지내게 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그녀보다 공부를 잘 하고 활력적인 친구였다. 친구들을 사귀다 보면 그 중에 이 친구만큼 성공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드는 사람이 있는 데 그 친구가 바로 그런 사람 이었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그녀도 공부에 자신감을 가지고 할 수 있었고, 친구는 그녀가 홀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시험 때는 밤을 새며 그녀를 가르쳐 주기도 했었다. 그녀는 그 친구를 평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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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사상을 소화해서 그것을 정확히 전달하는 능력을 지닌 덕분에 - 부활 하 6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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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시험 점수를 금방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집에 초대를 한 적이 없었다. 고 3의 겨울 방학 때 조르고 졸라서 놀라간 친구의 집은 슬레이트로 지은 판자집이었다. 친구는 부끄러워 하며 집에 초대한 친구는 그녀가 처음 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고 3 수능을 마치고 친구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 갔지만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좋은 성적을 냈지만 의대를 보내려고 하는 부모님들에 의해 다시 재수를 하게 됐고 친구와는 연락이 뜸해 지게 됐다. 재수 생활을 하며 칙칙한 생활을 보내던 어느 여름 날 저녁 전철에서 그 친구와 마주치게 됐고, 친구는 그녀에게 연락 좀 하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친구와 헤어진 후 4주 정도 지난 어느 날 그 친구의 어머니로 부터 연락이 왔다. 친구가 죽었다는 전화였다. 그녀는 너무나 큰 충격에 휩싸였고, 친구의 시체가 있는 병원에 부랴 부랴 달려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됐다. 교통사고나 그런 사고로 숨진 것이 아니라 집에서 목을 메서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죽었는지는 아무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친구의 시체를 염하는 모습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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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그/그녀는 괴로워 했을까? 무엇 때문에 살았던 것일까? 이제는 그것을 깨달았을까? - 부활 하 665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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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생각과 슬픔 속에서 울고만 있었다. 더욱이 벽제 화장터에서 친구의 시체를 화장하는데 화장터 옆에는 살아 생전 그 친구가 소유한 물건들을 소각하는 곳도 있었다. 그곳에 친구 어머니를 부축해 갔는데 20년의 인생을 살아온 그 친구의 흔적은 겨우 비닐 봉지로 세 봉지와 수 십권의 책들 뿐이었다. 비닐 봉지가 소각로로 불태워 질 때마다 어머니는 오열을 했고, 불 태워지기 위해 던져지는 책들 속에서 도서관 대여라는 도장이 찍힌 책은 소각로 아저씨가 가져가라 해서 그녀가 챙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중에 한 권이 바로 톨스토이의 <부활>이었다. 결국 그녀는 그 책들을 도서관에 반납하지는 못 했다. 후에 친구의 죽음에서 조금 벗어나 톨스토이의 <부활>을 보던 그녀는 맨 뒷 장에 친구가 살아 생전에 쓴 소감 같은 글을 발견했다.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톨스토이는 말한다. 하지만 그는 매년 90억의 재산을 버는 인간이었다. 나는 그러지 못하다. 항상 쫓겨야 한다. 공부에 돈에 그리고 가난에, 난 노보드보로프 같은 인간이다. 나에겐 죽음 이외에는 아무런 답도 없다."
이 소감을 언제 썼는지는 모르지만 오로지 그녀에게 떠오르는 것은 전철에서 씁쓸하게 연락 좀 자주 해 달라고 했던 그 친구의 표정이었다. 그 때 내가 친구와 더 대화를 했다면 그 친구의 어둠을 내가 해소 줄 수 있었다면 이란 자책감과 대학 따위를 가기 위해 친구의 고민 따위는 생각도 안 한 자신의 모습에 경멸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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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하고 비열한 일이야, 비열하고 창피한 일이야 - 부활 상 165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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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흘류도프가 읆조린 저 구절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친구의 죽음을 추적하기 위해서라도 <부활>을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읽었다고 한다. 그리곤 조금이나마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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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념이란, 동물의 세계나 식물의 세계에서 거름이 되고 곡식이 되고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며 애벌레는 나방이 되고 도토리는 떡갈나무가 되듯 어느 것도 소멸되지 않고 끊임없이 어떤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하는 것처럼 사람도 소멸되지 않고 다만 변형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는 항상 활달하고 명랑한 태도로 죽음을 직시했고, 죽음으로 이끄는 고통을 잘 극복해 왔다. - 부활 하 59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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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있어서 친구의 죽음은 <영혼의 정화>를 불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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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영혼의 정화>라고 일컫는 현상은 오랜 시간을 흐르다가 갑자기 찾오는 것으로, 내면 생활의 지체 또는 정체를 인식하고 영혼 속에 쌓여 그 정체의 원인이 된 모든 찌꺼기를 단숨에 깨끗이 씻어 내는 일을 가리키는 것이다. - 부활 상 160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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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울먹이며 여기까지 말하고 나에게
"난 말이야 오래 오래 살거야. 그리고 반드시 의대를 가서 정신과 의사를 할거야. 그리고 나중에 죽어서 그 친구를 만나면 이렇게 말해 줄거야! 너가 포기한 그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리고 난 왜 죽지 않았는지 그 의미를 찾아서 당당하게 그 녀석한테 말하고 따귀를 한 대 후려갈겨 줄거야 못난 년이라고 말이야..."
비가 내리는 조용한 교실에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또 불꽃이 튀기는 그녀의 눈을 보며 난 왜 무엇 때문에 대학을 가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얼마나 의미 없이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말이다. 그리고 타인이 만들어준 대학이라는 허상을 위해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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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누구든지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하는 일이 중요하고 훌륭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떤 입장에 놓이든 자신이 하는 일이 중요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인생관을 반드시 갖기 마련이다. - 부활 상 23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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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까쭈샤가 창녀라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그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게 된 것과 똑같은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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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려는 인생관이나 선악관의 왜곡 현상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그런 왜곡된 관념을 가진 집단이 수적으로 많고 또 우리 자신 역시 그런 집단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 부활 상 23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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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다 저 말대로다. 그녀가 나에게 까쮸샤라고 했던 것처럼 난 행동했던 것이다. 그녀의 고백을 듣고 <부활>을 읽으며 나는 점점 내 정체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문학 토론과 더불어 내가 공부를 못 한다는 사실을 알고 수능 공부도 도와줬다.
수학을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중학교 과정 자습서를 구해와 일일이 나에게 풀어주고 설명도 해주고 내가 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너도 공부하기 바쁠텐데 나한테 이렇게 시간을 투자하면 어떻하냐고 묻는 나에게 그녀는 자신도 자신의 공부에만 신경 쓰고 내 일은 신경쓰지 않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고 하며 그럴때 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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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자신의 영혼 속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인가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순간 자기 내면의 삶은 최소한의 힘만으로 어느 쪽으로든 기울 수 있는 저울대 위에 놓여 있다고 느꼈다. - 부활 상 23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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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말해주며 그녀는 네흘류도프가 시베리아까지 까쮸샤를 따라 갔듯이 나 역시 똑같다고 하며 싱긋 웃어 주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부활>도 수능 공부도 계속적인 진척을 해 나갔다.
<부활>안에는 단순한 네흘류도프와 까쮸샤의 사랑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묵직한 물음과 인간을 타락하게 만드는 모든 규칙들 그리고 시설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수능이 코 앞에 다가 오는 시점과 더불어 <부활> 토론회도 거의 끝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부활>에서 이 구절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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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름은 뭡니까?>라고 묻곤 하지. 나한테 이름이 있는 줄 아는 모양이야. 하지만 나는 어떤 이름도 없소. 나는 모두 다 거부했으니까. 그래서 이름도, 거처도, 조국도 없는 것이오. 나는 다만 나 자신일 뿐이오. 이름이 뭐냐고? 인간이오. (중략) <황제 페하를 인정하느냐>고? 황제를 내가 왜 인정해야 하지? 그는 그 자신의 황제이고, 나는 나 자신의 황제인데. - 부활 하 63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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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너 자신의 황제일 분이야. 절대 잊지마" 그녀는 다짐을 하라는 듯 눈을 찡끗하며 웃어 주었다.
결국 수능에서 난 그녀 덕분에 150점이 오르는 성적을 거두며 성공을 했고, 그녀 역시 수능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는 점수를 얻었다. 대학 합격 소식을 서로 가지고 만난 날 우리는 술을 실컷 먹고 그녀는 나에게 자신은 정신과 의사돼 인간의 암흑을 파헤쳐 보겠다고 결의를 했고 나는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황제는 나다라고 살거라고 얘기했다.
전철에 오르기 위해 기다리는 플랫폼에서 그녀는 술취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넌 참 신기해. 남자들은 여태껏 나한테 좋다고 치근덕 거렸거든. 근데 넌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 내가 매력이 없니?"
"아니, 난 정말 너 엄청 좋아해. 근데 넌 네흘류도프고 난 까쮸샤 잖아. 난 말이야. 시몬손을 만날 계획이거든."
내 얘기에 그녀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리고 시몬손은 반드시 여성으로 만나라고 조언도 해 주고 말이다.
그녀는 내가 얘기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충분히 이해를 했다. 그 날 전철을 타고 손을 흔들며 신나게 웃으며 헤어진 그녀에게 그 이후로 연락을 하지 않았고 그녀 역시 나에게 연락을 해 오지는 않았다.
그 후로도 나는 내 자신을 잃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좌절도 많이 했지만 틈이 날 때마다 그리고 새로운 번역본이 나올 때마 <부활>을 읽으며 그녀를 떠 올린다. 그러면 그녀는 조용한 교실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나에게 해 준 말이 귓가를 맴돈다.
"행복은 고난에 지지 않는 거야, 모든 것이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말이야."
그리고 싱끗 웃는 그녀의 표정과 더불어 생각나고 말이다.
아파트 경비실에도 봄은 역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