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발 할아버지의 손주 양육기
한판암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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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자 마자 캐나다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마산으로 내려온 한판암씨의 손주 유진은 그렇게 갑자기 나타는 선물이다. 유진이 태어나기 전 태명은 콩이, 복실이였으며, 유진이라는 이름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손주 육아를 책임져야 했던 할아버지 한판암씨의 육아 이야기가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읇어 나간다.


할아버지와 육아. 이 두가지는 사실 매치가 잘 되지 않는다. 어린 조카도 큰집에서 지냈고, 큰어머니 품안에서 자랐다. 자연과 벗하면서 주변 산천 풀내음새를 느끼면서 곤충을 만지고 느끼면서 자라왔다. 하지만 큰 아버지는 육아에 잇어서 젬병이나 다름 없었다. 어쩌면 가부장적 부모밈 밑에서 성장했기에 아기를 가까이 한다는 것은 어렵고 쉽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아내가 온전히 손주 육아를 책임지기에는 몸이 부칠 수 밖에 없다. 사내아이라는 특성상 할머니보다는 할아버지의 적극적인 육아가 필요한 현실 속에서 아이와 마주한 그 순간은 난감함 그 자체였다. 매일 밤 감기와 열로 인해 뜬눈을 지새야 했던 유진은 그렇게 한해를 보내고 두돌이 지나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었다.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일주일에 며칠간 자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저자는 그러나 유진이 어린이집에서 넘어저 뼈에 금이 갔다는 소식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렇게 기브스를 하기 싫어하는 손주를 달래느라 손주도 할아버지도 진이 다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손주를 키우는 재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건 손주 잘 되라고 가르친 예의 범절이 자신에게 고스란히 전달 될 때의 뭉클함은 그 무엇에 비교될 수 없는 소중한 가치였다. 누군가 주는 돈을 잘 챙기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기고 있었던 손주는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했던 그대로 손주가 할아버지에게 보여준다. 할아버지에게 건넨 신사임당 지폐는 뭐 사먹으라는 손주의 마음이었던 것이며, 감동이다.


팔불출 할아버지, 오지랖 가득한 할아버지의 실수담. 은행나무를 만지다가 온몸에 옻 오르는 불상사가 생겨난다. 유치원에 입학하는 유진이 여름 캠프를 떠난다 할 때 할아버지는 웬지 모를 서운함을 느꼈으며, 유진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잘 다녀 오라는 그 마음 속에 느껴지는 할아버지의 애틋함이 묻어난다. 손주 유진과 함께 했던 1살부터 어린이집을 거쳐 유치원에 보내야 했던 지난날, 할아버지와 함께 산행을 하면서 자연 속에 숨어있는 동식물을 통해 세상의 또다른 모습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은 살아있는 자연학습법이다. 문중 시제사에 할아버지와 함께 따라 가며, 절을 하는 그 모습 하나 하나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정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베푸는 마음이 손주를 향한 정이었으며, 손주가 할아버지에게 돌려주는 마음 또한 정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주를 바라보는 그 애틋함, 할아버지는 손주를 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볼 수 있었으며, 자기 자신에게 반성문을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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